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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0장
감옥에서 파라오의 두 관리들의 꿈을 해석한 요셉
(찬송 187장)
2024-2-15, 목
맥락과 의미
요셉이 형통하는 이야기는 39장에서 41장으로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있는 40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요셉의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십니다.
1. 감옥에서의 요셉의 승진과 왕의 두 관리들의 투옥(1-4절)
2. 두 관리들의 꿈을 요셉이 해석함(5-19절)
3. 요셉의 꿈 해석대로 성취(20-23절)
4.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심
1. 감옥에서의 요셉의 승진과 왕의 두 관리들의 투옥(1-4절)
요셉이 갇힌 감옥은 왕에게 중대한 죄를 지은 관리들을 가두는 곳이었던 같습니다. 1절에 보면 두 관원장이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왕의 두 관리, 술 맡은 관원장과 빵 굽는 관원장, 정확히 말해 술 맡은 내시가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시위대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일종의 비서처럼 그들 곁에서 돕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41장에 가면 요셉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고난 가운데 내버려둘 때 그 안에서 계속 하나님의 모습, 임마누엘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아주 힘든 상황에서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일하고 계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고 우리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실히 살아가면 그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갖게 되고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2. 두 관리들의 꿈을 요셉이 해석함(5-19절)
두 관리들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들은 그 의미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6, 8절에 보면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요셉은 감옥에 들어와 있는 노예 중에 노예였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잘 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살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직장에, 직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는 사업이 잘 안 되면 얼굴이 좋지 않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직장 동료들의 그런 마음을 잘 읽는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맡은 일이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때, 그 가운데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꾼 꿈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말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내게 이르소서”(8절).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해석(9-15절): 술 맡은 관원장은 자기가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어 파라오에게 바쳤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가 복직될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떡 맡은 관원장의 꿈과 해석(16-20절): 떡 맡은 관원장은 자기의 머리 위에 광주리가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새들이 와서 그 떡을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그가 처형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요셉이 꿈을 해석하는 은사보다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해석”이라는 말은 고린도전서 2장 13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성령을 통해서 배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 “분별한다”는 단어가 요셉이 “해석”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께서 사도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사실, 영적 세계에 대해서 분별하게 하셨습니다. 영적인 것은 성령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신령한 세계를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성경을 볼 때 요셉이 시대를 해석하고 꿈을 해석할 때 가졌던 그 지혜를 갖게 됩니다. 요셉처럼 어떤 특별한 계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일어날 일을 알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말한다”(마태복음 24:25). 종말에 대한 그런 말씀을 이야기할 때 내가 미리 말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계시의 말씀을 아주 소중히 여깁시다. 말씀을 잘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영적 세계를 보여줍니다. 오늘 읽은 요셉이 안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 알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운명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서 구원받는 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가정생활에서 정말 부부가 헌신해야 되고 이혼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선 보기에 가정에 헌신하지 않고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해 보여도 성경말씀을 통해서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두 번째 생각할 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을 주셔서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살 동안 계시의 말씀에 주의하도록 합시다.
3. 요셉의 꿈 해석대로 성취(20-23절)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고 떡 맡은 관원장은 처형되었습니다.
그 전에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청탁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14절) 달라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을 말하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바로에게 나를 기억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 나를 “생각하고” 하는 말은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바로에게 “아뢴다”는 것도 바로에게 “기억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3절에 나와 있는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의 기억과 똑같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시지만 요셉이 인간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을 쓴 성령께서는 이 단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관원장에게 자기를 기억해달라 합니다. 그리고 파라오가 자기를 기억하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당신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이 “헤세드”라는 말은 언약적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은 “은혜를 행하다”(아사 헤세드)는 뜻입니다.
여기 요셉의 믿음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영을 따라 꿈을 해석하는 성령의 은사가 있지만, 성령의 열매가 약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요셉이 사람을 의지해야 하고 사람이 요셉을 기억해줘야 합니까? 왜 파라오가 기억해줘야 하지요? 지금 애매하게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헤세드가 있는 사람인데 파라오의 일개 신하에게 나를 기억해달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맞지 않는 태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해석한 것 같이 되어서 전직이 회복되었으나 23절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요셉을 기억하고 파라오에게 이야기해서 감옥에서 꺼내 줬다면 요셉은 평생 이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평생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 가운데서 종 노릇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요셉에 대한 위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 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술 맡은 관원장보다 훨씬 높은 지위인 이집트 총리가 되는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신뢰를 사람한테 바치면 안 됩니다. 요셉을 2년 동안 하나님께서 더 훈련시키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주님의 은혜의 말씀을 신뢰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감옥 훈련이 2년정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주께서 꺼내 줄 때까지 거기에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심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은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드러나는 사람, 뭔가 도와줄 사람의 발을 잡고 도움을 청하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물론 우리와 관계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해 은혜로 우리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사업 관계 때문에 직장에서 일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말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하고 통상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는 “당신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당신을 수단으로 쓰기를 원하신다” 하는 이런 자신감과 당당함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세상적으로 볼 때 초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대통령실 직원만 되어도 굉장히 으스대고 행동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아들 딸들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언약을 제자들과 이미 맺어서 하나님 나라를 주었다 했습니다(눅 22:29,30). 이미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마음껏 헤집습니다. 아무리 높은 정부 고위 공직자이고 재벌 기업이고 하더라도 사탄이 공격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안의 작은 아이들, 가난한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탄이 넘보지 못하도록 굳세게 돌보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지혜의 말씀, 하나님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인생의 지혜를 갖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깁시다.
믿고 복종할 일: 우리의 헌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언약적 신실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셉에게 주신 것보다 더 중요한 계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으로 이 시대를 분별하고 우리 삶을 헌신하며 살아갑시다.
요셉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2년 더 감옥 훈련이 필요했습니다. 요셉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다 버릴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셨습니다. 오직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그 하나님만을 신뢰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게 구원하시는 분임을 붙들고 나아갑시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만,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쓰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갑시다. 우리의 내면에 영적인 자부심과 도도함을 주셔서 비록 이 땅에서는 궂은 일을 하고 무시를 당한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살아갑시다.
우리의 수고의 열매를 이 땅에서 다 맛보지 못해도 불평하지 않고 천국에 있을 주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큰 상을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갑시다. 우리의 신뢰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말씀을 가볍게 대한 것 용서해주시고 회개의 영을 보내주셔서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구합시다.
관악교회에 속한 가정마다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가장들에게 가장의 직분을 맡겨 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말씀으로 가정을 세우고 신뢰로써 가정을 세워 가도록 은혜 주시기를 구합시다. 관악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이 지역에 있는 영혼들을 우리가 책임지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은혜 주시기를 구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9:21, 인자(헤세드)와 은혜(헨), 40:14 은혜(헤세드)
하나님께 요셉에게 인자(헤세드)를 베푸셨습니다. 그 결과 감옥의 간수장이 요셉에게 은혜(헨)를 베풀었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물을 때 우리가 믿는 이유에 대해서 대답하고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도하고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를 버리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고 헤세드를 주십니다. 헤세드를 주신다는 것은 앞에서 노아에게 썼던 말입니다. 홍수가 났을 때 8장1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9장15절에 하나님이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하십니다. 언약을 기억하신 하나님은 언약적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마음 속에서 항상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제 인간 관계 속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예절을 다 지켜 행해야 하지만 우리 영혼은 도도함과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일하시니까, 언약 백성으로서 도도한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귀히 여기도록 가르칩시다. 우리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분명한 특권의식을 갖고 살 수 있도록 정체성을 형성해 줍시다. 세상 사람과는 다르다는 자존심을 갖고 세상과는 다른 길, 친구들이 살아가는 길과는 다른 고상한 영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잘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 해석하다(40:8,9,12,22, 41:12,15, 신-크리노)
‘해석하다’(신-크리노) 중요한 단어입니다. ‘신크리노’는 신(함께)과 크리노(판단하다)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이 말은 신약에 몇 번 나오는데 고린도전서 2장에 성령께서 계시를 주신 사도에게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고린도 전서 2장 13절에 성령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배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 분별한다는 단어가 신-크리노입니다.
성령께서 사도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사실, 영적 세계에 대해서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게 하셨습니다. 영적인 것이 말씀입니다.
<참고> 옥(3절-갇히는 곳, 15절-우물)
오늘 말씀에 옥, 즉 감옥이라는 말의 원문은 두 개로 쓰였습니다. 하나는 “갇히는 곳”(아시르, 3절)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물”(보르, 15절)입니다. 15절에 “나는...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이 자기가 있는 곳을 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 우물은 어디에 썼냐 하면 37:22, 24, 28절에 형들이 요셉을 빠뜨렸던 구덩이와 같은 단어입니다. 지금 요셉은 여기 옥, 구덩이를 전에 자기가 이집트로 팔려올 때 들어갔던 구덩이와 같은 것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 어떤 믿음을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구덩이에서 꺼내 주신 하나님이 여기 구덩이에서도 꺼내줄 것으로 믿는 요셉의 믿음이 여기에 들어있습니다. 구덩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전에 꺼내 주셨으면 앞으로도 꺼내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 15절, 끌려온 자(가나브)
15절에 요셉은 말합니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끌려왔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 “절도당했다”는 뜻입니다. 여기 컵이 있는데 컵을 누가 훔쳐가면 다른 곳으로 위치 이동하지 않습니까? 절도당했다는 것은 자기가 형들에게 팔려 나왔다는 것, 아버지 집에서 형들이 자기를 훔쳐서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이 말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고생스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말입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얼룩진 양과 염소들을 나에게 임금으로 주십시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만약 나의 양떼들 중에 얼룩진 것이 아닌 게 있으면 내가 훔쳐온 것으로 기억하십시오”(30:33).
지금 요셉은 자기 아버지가 밧단아람에서 밤낮 일하면서 아주 고통을 당하고 거짓말로 속임을 당했지만, 절도하지 않고 나왔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도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곳이 31장입니다. 라헬이 자기 아버지 집의 드라빔을 훔쳐온 것과 관련하여 이 말을 쓰고 있습니다(31:19, 20, 30, 32). 요셉 자신은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도라는 단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곳은 44장 8절입니다. 요셉이 자기의 잔을 가져다가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의 자루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자기 종을 보내어 형들에게 “너희들이 나의 중요한 잔을 훔쳐갔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이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우리가 어떻게 왜 잔을 훔쳐오겠습니까?” 했습니다. 그 말을 통해서 형들이 과거 요셉을 그의 집에서 훔쳐 판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고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훔쳐왔다는 작은 한 단어를 통해서 창세기의 역사 한 부분, 중요한 부분의 맥을 지금 잡고 있습니다.
요셉은 훔침을 당해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께서 원래 자기 집으로 데려가 주실 것을 생각했습니다. 또 자기가 우물에 갇혀 있지만 전에도 우물 구덩이에 빠졌지만 건져내주신 것처럼 이제도 구해주실 것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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