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지’라는 독백이 폐부를 찌르는 엔딩. 4월 15일 서계동 백성희 장민호극장에서 관람한 국립극단 주최, 극단 미인 제작의 <말뫼의 눈물>(김수희 작 · 연출)은 조선소를 주제로 한 사회극이지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인들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2017년 10월에 선돌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조선업의 흥망 속에 목줄을 대고 사는 노동자들은 운명, 목숨을 앗아가는 작업 환경, 고공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극한투쟁 등 조선소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주목을 받았다.
말뫼는 스웨덴의 항구도시 지명인데 대형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남해 조선소로 수입된 고공크레인이다. 이 말뫼는 조선업 호황으로 한 때 선망의 눈길을 끌었지만,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 노동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급기야 극한투쟁까지 벌이는 눈물의 표징이 돼버렸다. 김수희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고 연출한 <말뫼…>는 땀 냄새
흥건한 작업복 남성들의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프롤로그부터
죽마고우인 수현(최정화)과 미숙(박성연)이라는 두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해
세파에 시달린 그네들의 대화로 막을 내리는 여성 연극이기도 하다.
여기에 조선소 사람들 하숙을 치는 강두금(남미정)이라는 억척할멈과
하청업자의 아내로 삶 자체가 따분한 은옥(이정은)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빼고 이 여자들만의 이야기만으로도
가슴 시린 인생 연극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역은 최정화로
다소 우유부단한 듯한 설정을 보이지만 박성연은 아주 현실적이고
욕망이 강한 여인상을 똑부러지게 해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남미정이란
걸출한 배우가 중심을 세우고 있어 빛을 발했다. 연출가로도 활동한
그는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자로 많은 무대에서 많은 역을 맡아왔지만
이번 두금 역은 압권이었다. 돈만 버는 억척 할멈이지만 세상 이치를 다 꿰는
현실적이고 달관한 여인상을 남미정은 사람냄새 물씬 나게 연기했다.
하숙하는 조선소 사람들과 자신의 피붙이에게 애정을 쏟지만 치매로 세상을 뜨는
강두금 할멈의 일생은 어쩌면 우리네 보편적 모습일 것이다.
장례식 장면에 강두금이 홀연히 나타나 춤을 추는 장면의 연출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자 배우들의 연기도 리얼하면서 힘이 넘쳤다.
진수 역 김규도는 처음엔 약하다가 후반부에 강렬하게 폭발했다.
그와 콤비를 이룬 정현 역 전인수는 처음엔 신선하고 각이 있더니
후반에는 약해 보였다. 근석 역 정나진, 정길 역 권태건도
인생의 무게가 실린 깊이 있고 걸쭉한 연기를 보였다.
<말뫼의 눈물>은 사회문제와 우리네 삶의 현실을 그린 연극으로
우리 노동환경의 부조리나 인간을 소중히 여지기 않는 현실에 나지막하지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거칠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특히 여성의 시각으로 우리네 삶과 인간관계를 진솔하게 그려내
고공 크레인의 농성 장면이 기대만큼 실감나지 않았는데
일제시대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고공투쟁한 강주룡이라는 여성을 대비시킨 재치가 돋보였다.
연극이 사회적 이슈를 극화해 오늘의 관객과 소통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특히 민간 극단이 강한 주제와 앙상블이 되는 연기진을 내세워 국립 무대에 진출했다는 것은 신선한 시도였다.
말뫼라는 대형 크레인이 무대디자인으로 형상화 되지 못한 점,
공연시간이 좀 길어 지루한 부분이 있다는 점만 빼고는 주목할만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