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삼가동 본당 교우 여러분께
예수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고개 깊이 숙여 형제자매님 여러분께 인사 여쭙습니다. 삼가동 본당에 3년 동안 몸담았다가 여기 동백성요셉 성당으로 옮긴 지 상당한 시일이 흘렀습니다. 성사를 보는 기분으로 고백합니다만, 교적만 옮겨 놓고, 몇 달 쉬다시피 하였습니다. 새로 손자가 한 녀석 태어났는데, 녀석이 어찌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지--.녀석을 돌보느라 온 가족이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돌이 지나 조금 수월한 듯하지만 그래도 진땀을 흘립니다. 주님이 주신 새 생명에 경외심을 갖습니다.
용인에 와서 4년, 상당 기간 이런저런 고생을 했었습니다. 삼가동 성당이 아니었으면, 어디서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서북원 베드로 주임신부님과 회장님, 그리고 여러 교우님들의 따뜻한 마음씨! 덕분에 위기도 넘기고, 적응도 조금은 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 참, 이경숙 마리아 자매님과 어느 자매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서북원 베드로 원장 신부님께 한 번 들르기도 했지요.
서울도 자주 갑니다. 일흔 살까지 제가 서울에 발걸음 한 횟수보다, 몇년 사이가 훨씬 많을 정도로 많이 상경합니다. 군 부대에 자처해서 안보강사로 나가는데, 서울을 경유해야 하거든요. 문학 모임이 자주 열리니 거기 참석하기도 합니다. 바로 명동성당 곁의 '문학의 집'에서--.촌로라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르지만, 5000번 버스를 타고 명동 성당에 내려서 걸으면 7분 정도 걸려 닿을 수 있는 곳에 '문학의 집'이 있습니다. 이사장이 바로 저 유명한 김후란 시인님. 그분은 부산사범학교 제 아홉 해 선배이시기도 하지요.
작년 말 거기서 한국가톨릭문인회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그래 사전에 간절하게 요청했지요. 사무국장에게. 복음성가 '살아 계신 주'를 봉헌하게 해 달라고(미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설마했는데,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다!
드디어 당일 약속된 시간에 우리는 모였습니다. 김춘산 지도 신부님을 비롯한 오정희 소설가님(회장/ 최연소 예술원 회원), 김남조 시인님, 김후란 시인님, 신달자 시인님, 성춘복 시인님(한국 문인협회 전 이사장), 구정회 한국 작가회의 이사장님 등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주 간단하게 회의가 끝났는데, 마이크를 잡은 사무국장이 코멘트했습니다.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문우의 복음성가 '살아 계신 주'를 들으시겠습니다."
저는 그 복음성가와의 인연을 들먹이면서, 감회에 젖었습니다. 참으로 힘들게 생명을 유지할 때,나를 살린 복음성가! 첫음이 염려스러웠지만, 그런대로 잘 잡혀 나갔습니다. 혼신의 힘을 쏟아, 저는 차라리 토했습니다. 가사의 뜻과 제 가슴속에 묻었었던 삶의 환희, 눅음을 딛고 일어서게 한 영혼까지도 노래로!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노래가 끝나자 감고 있던 눈을 떴습니다. 그 순간 내 앞에 펼쳐진 광경-.박수가 우레와 같이 터지고, 얕잡아보였던(?) 촌로 치고는 제법이라는 반응으로 해석할 수밖에요. 다음에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한국 최고의 시인 김남조 교수님이 일어서더니 세상에 앙코르를 청하시지 뭡니까? 실로 최고의, 거짓말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시간 때문에 응하지 못했지만, 그 감동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군데서 '살아 계신 주'의 신비한 능력(?)을 애써 선보였지만, 그 총화(總和)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8월쯤 제 생애 마지막 콘서트를 열어 볼까 합니다. '문학의 집'에서--. '살아 계신 주'와 '내 발을 씻기신 예수' 와 저승에 계신 엄마께 가르쳐 드리려고 배운 찬불가 등등. 그리고 화합을 위한 메시지로 대중가요/ 군가/ 가곡/ 팝송/ 민요 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내 발을 씻기신--'는 삼가동 본당에서 성가대와 합류할 인연이 있었지만, 암 수술도 중도 포기한 일이 있어, 올 부활절을 앞두고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이 아파하는 곳으로/ 주여 나를 보내 주소서 당신 손길 필요한 곳에/ 먼 훗날 당신 앞에 가거든 나를 받아 주소서
삼가동 본당 형제자매님 여러분들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추태균 아마토(또) 지휘자 선생님께 지도를 받아야지요, 제 호소가 들리십니까? 어제 박재식 요셉 회장님과도 통화했습니다. 그분께 신앙이며 사람 사는 도리 등을 많이 배웠었습니다.
모든 교우 여러분이 늘 주님과 함께 일상을 보내시도록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우구스띠노 형님 오랜만입니다. 항상 저희 성가대와 제게 많은 힘이되어 주셨던 그 덕과 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한 동안 못 뵈어 부산으로 가셨나보다 하고 생각했었는 데,,, 가까이 계신다니 반갑고 한 번 뵙고 싶네요. 8월 공연에는 꼭 가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주님 은총 속에서 생활하시기를 빕니다.
형제님 반갑습니다...주님의 부활의 은총과 축복이 늘~~형제님과 형제님 가정에 항상 머물기를 기도드립니다....^-^
두 분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우스운 얘기 하나 할게요. 신앙 생활 10년 남짓인데, 몇 번 세족례 때 발을 씻어 주겠다고 하셨지만, 극구 사양. 그게 꼭 겸손만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유는 부끄럽게도 발톱 무좀. 한데 청국장을 먹고 나서 거의 완치되었지 뭡니까? 하지만 오래도 제겐 그런 은총은 없었고. 대신 손자랑 그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제법 큰 소리로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불렀습니다. 물론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않고. '삼가동 본당'에서 배운 성가입니다. 아마토 선생님/ 소피아 자매님. 함부로 살아가는 저를 꾸짖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그리로 향해 고개를 숙여야 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