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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바다로 간 노인, 33회,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총,재산입니다,"
"큰,돈인데요,"
"네,쌀 20십가마 값은 될겁니다,"
"쌀,한가마에 3만환이면,,60만환,!"
큰 돈이였다.
이돈이면 왠만한 집한채 값이다.
"이돈을 어떻게 할려구요?"
"저희들도 모르죠,대장 성님께서 알아서 하셔야죠,"
난감하다.
세상 물정에 어둡기는 그들과 다를배 없는 나다.
이때 문밖에서 인기척이다.
똑,똑,
"네,들어오셔요,'
감자가 문을 열어준다.
이모님 이다.
"어서 오셔요,"
"덥잖아요, 시원한 보리차나 들어요,"
이모님은 시원한 보리차를 맹얼움덩어리가 동동 뜨는 보리치를 노란 알미늄 주전자에 그득이 담아 오셨다.
여름 한나절이라서 더운 열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에고,한증막이네, 덥지도 않아요? 시원한 보리차나 들면서 이야기 나눠요,"
"아,네,감사히 먹겠습니다."
"근데 이모님,성님께서 하숙비를 굳히 내신다고 성화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엊그제 조카가 준돈은 뭔데?
괜찮아요, 됐어요,"
이모님은 근본이 착하신 분이다.
엊그제 조카 감자가 주었던 몇푼의 금전도 도루 꺼내 놓으신다.
"좋은일에 보태써요,"
"아닙니다여, 도루 넣으시시요, 잉!"
완강히 안받다는 내 고집에 이모님은 상황파악을 인지 하였음인지 마음을 접은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부지의 생각을 떠 본다.
아부지는 지금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 하셨을까?
아부지는 평소에 늘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슝년에 살아남을려면 먹는 곡식뿐이여,나라가 시끄러울땐,
시끄러울수럭, 먹을것을 곳간에 채워놔야 됀당께,"~~
우리집은 언제나 창고에는 쌀가마가 그득했다.
언젠가 누님이,
빨래 함지박에다 쌀을 퍼서 애뭉치리려다가 들켜서 호되게 맞는걸 보았다.
옳지,쌀을 사드려야지, 지금도 나라가 시끄러운것 같은께,
"감자씨! 쌀을 삽시다.
내,돈이면 두 가마니는 살 것 같구먼요,"
~~"히,히,,께 자를 빼보았다."~~
"네! 쌀을요!?"
"내 돈은 쌀을 사고,여러분 돈은 생각을 해보기로 합시다."
이때,감자가 옆 동지들과 눈들을 마추며 숙덕인다.
"대장 성님! 우리돈도 함께 쌀을 살께요,"
"음, 좋은 생각입니다.
울 아부님은, 늘 말씀을 하셨는디,
나라가 시끄러울땐, 먹는걸 먼저 장만하라구 하드구먼요,
쌀을 삽시다.
쌀은 현금이나 똑같은 께 그람 잘 됐구먼요,"
곧, 우리들은 인현동 쌀,도매상에서 상픔으로 23가마를 사서 이모님 창고에 차곡히 쌓아 놓았다.
1962년 6월 9일. 아침,
"대장 성님! 크,큰일이 났습니다. 큰일이 ..."
감자가 숨을 몰아쉬며 대문을 박차고 뛰어들면서 호들갑을 떤다.
평상시의 감자가 아니다.
"무슨? 일인디여?"
"화페! 화페 개혁이래요,"
"화페 개혁! 돈이 바뀐다꼬요!?"
"네! 지금 가지고 있는돈은 하나두 쓰지 못한데요,
휴지가 된거죠!"
"지금, 시내는 식당이고, 점포고, 완전 철시상태예요,"
시내 상가는 일제히 문을 닫았다.
간혹 문을 연 상점은 아수라 장이다.
물건값은 부르는게 값이다.
철물점 못이며 연탄 찝게며 열쇠통이며 파는 물건은 몇곱씩을 받고 팔아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 개혁이였다.
아 니, 벌건 대낮에 날벼락 이다.
독재의 만행이였으며 민주주의 말살이였다.
독재는 무엇이던지 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중심! 충무로도 잠들은 도시가 되어 버렸다.
충무로의 이층 사무실에는 동료들 모두가 허탈에 빠져 있다.
"소문에 듣자허니, 한집에 십만환씩만 바꿔주고 나머지 돈은 못쓴다고 하던데요,"
"설마! 그럴라구여?"
"워 메, 배가 고파서 죽을 맛이네요!?"
뭔가 대책이 필요한것 같은데 생각이 없다.
이제 겨우19세인 내게서 별루 뾰쪽한 묘책이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데 뱃속을 채워야 한다.
"감자씨! 필동 이모님께 부탁 좀 드려봐요, 동지들이 굵고 들 있다구요,
글구, 현금 주머니를 털어요, 몇푼이라도 모아서 바꿔봐야죠,"
"현금 없시우,전번짝에 쌀을 다 삿잖어유,
잔돈 몇푼밖에 없어요,"
장정 십여명이 주머니를 털어 모음돈이 십여만환이다.
"우리들은 주거지가 확실치 않아 돈을 바꿀수가 없으니 이모님께 부탁하면 될겁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이모님 댁에서 식사를 하기로 합시다.
감자씨는 지금 곧,이모님께 말씀드려요,
우리들 식사를 부탁드리고 돈, 교환 문제도 부탁해봐요,"
사람은 상황의 여건에 쉽게 적응 되어 지나보다.
나는 불과 10여일 사이에서 몰라보게 어른스러워 졌다.
불평없이 따라주는 동지들의 순수함이 용기가 되어 일사천리 일들을 처리한다.
대처 능력이 순탄스럽게 이행되고 협동적이며 곧 좋은 결론으로 마무리 되고있다.
어느순간 부터 내입에서는 께,자가 빠져 있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의 자체가 머리끝의 말초신경까지 긴장의 연속이 되었는가 싶으다.
필동 이모님 댁에 갔었던 감자와 번개가 돌아왔다.
"모두들 오시랍니다."
"이모님이 쾌히 승락 하셨어요, 얼추 식사 준비가 됐어요,"
우리들은 대 식구다.
감자,덕배,번개,땅꼬마,무송,무슬이,나,직계 식구들이 10여명이다.
이모님의 깊은 혜아림으로 2층 집은 때아닌 잔치상이다.
약간의 막걸리도 반주로 곁들어져서 금새 분위기가 뜨겁다.
"자자! 조용히! 지금 우리는 매우 긴박한 상황에 서 있어요,세상이 요지경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요,
자고나면 난리 세상이고 이젠 돈도 바꿔 났으니 생각을 하면서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감자는 책임감과 속내깊은 도량이 있는 사나이다.
나도 몇마디 거든다.
"지금 시내에는 돈의 값어치가 종이값에 불과 합니다.
한집에 몇십만환 밖에 바꿔주지 않은다니,
나머지 돈은 종이쪼가리가 된거구여,
우리는 다행이 쌀을 삿으니 다행입니다.
이럴때 일 수록 조용히 얌전히 있는 겁니다.
시내에서 얼쩡거리지 말구 각자 집안에서들 사무실에들 꼼짝말구 있어야 합니다요,"
모두를 돌려보내고 감자와 번개만 남았다.
우리들은 기회를 웅켜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평상시의 지혜를 빌려서 쌀,을 사 놓은게 대박을 튼것이다.
"감자씨! 우리가 지금, 무엇인가 해야 겠잖아여?"
"네에,...글쎄요? 인현동,술,독아<탁주,소주,대리점,>가,그게 원래는 우리 꺼,였구먼요!"
감자는 인현동 술독아를 도로 찾고 싶다고 한다.
"지금 충무로는 종로 패들이 식당들을 점유하고서 우격다짐으로 독아술을 강매하고 있어요,
며칠전 감자탕,사건의 고놈아 들도 종로패거리 예요,"
"힘으로 하지말구 타협으로 하면 될텐디,"
충무로5가 인현동의 술독아<대리점>는 혁명의 군인들이 오야지를 잡아가기 전 까지는
충무로파의 소유였다.
혁명의 바람을 타고 종로파의 짱구가 우격다짐으로 빼았다시피 점유한것이다.
종로의 오야지는 유도,씨름,박치기의 달인으로 소문난 싸움꾼 이란다.
술독아가 한판 승부의 불씨를 예고 하고있다.
"암튼간에 내일쯤 만나기로 연락을 취해 보드라고여,"
감자와 번개는 내일을 약속하면서 기대에 부플며 돌아간다.
똑,똑 ,이모님이다.
이모님은 빗자루와 걸래를 가지고 와서 방안을 치운다.
"이모님! 놔 두시시요, 제가 치울랑께요,"
"호,호 ... 겸손하긴요, 오늘만 치워주는 거예요,"
이모님은 방 청소를 마친후 보리차를 컵에 따라주면서 궁금증으로 묻는다.
"공부하는 학생이 맞죠? "
"네,"
"우리 조카는<감자> 중 3에 중태하고 서울에 와서 고생이 많아요,
부모님은 전쟁통에 돌아가시고 조카만<감자> 달랑 외톨이예요,"
공부도 잘했는데, ...
그놈의 전쟁만 없었으면 ... 휴 후, 학생은 저,아래녁 사람 같은데,"
"네, 맞구먼요, 전라도 강진이구먼요,"
"강진?"
"네, 젤루 남쪽 끝, 남해안 바닷가 땅끝고을 이구먼요."
"호...오, 얼추 알겠어요, 따뜻한 고향을 두셨네요, 부모님은요?"
"네,고향에서 건안하시구요, 조그마한 함석 공장을 운영하십니다."
"어쩜,다복한 가정이네요, 어쩐지,...뼈대가 있는 집안, 있어뵈어서요,....
호 호, 근데? 저 창고의 쌀은 어쩔려우?"
"2가마는 이모님 꺼구요,
나머지는 사업에 투자 할겁니다."
"에구, 2가마니 씩이나?"
"네,첨부터 이모님 드릴려구 삿구먼요,"
"지금 쌀값이 금값이예요, 돈,을 쪼금 박에, 교환해 준다니깐요,
너두나두 물건 사재기에 혈안이 됐어요,"
"네,저두 아까침에 봤구먼요,
설마 나머지 돈을 못쓰게,버리게끔은 않겠지요?"
"그럴테죠,지방에는 내일 돈을 교환해 준다고 하더군요,6월 10일,"
"친척이 시골인 사람들은 돈을 싸들고 시골로 내려들 가고있어요,"
1962년 6월 9일 아침,
서울은 전격적으로 6월9일아침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화페개혁을 실시했으며,
지방은 이튼날 6월10일날 화페 개혁을 실시했다.
지금 세상 같으면 꿈에도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 그땐 그들의<혁명군> 마음 내키는데로 였다.
총칼을 앞세운 독재자들의 놀음에 하얀 민심은 언제나 슬펏다.
일재의 36년 억압에서 겨우 해방되어 가슴을 펴고 숨을 돌리나 했더니,
6ㅡ25 동난에서 동족간의 살상으로 수백만명이 희생되었으며,
자유당의 이기붕의 탐욕과 만행은 박정희의 야망을 불렀다.
독재자들의 야망에 백의 민족은 숨소리 조차 크게 쉬어보지 못하고 토끼 가슴이 되어,
놀라며 자빠지고 엎프러지고 깨지고 멍들고 있다.
이튼날 아침,
감자와 번개가 눈두덩이가 밤텡이가 되어 나란히 무릎을 굻는다,
"대장성님! 죄송 합니다."
"왜,그런디여?
얼굴이 못쓰겠는디여,
워디가서 쌈박질을 한거여?"
"어제저녁에, 종로 페거리 한테 당했어요,"
"술독아 <대리점> 때문에 찾아 갔다가 말도 제데로 꺼내지 못하고요,"
"어허, 서둘지 말었어야지여, 잘못했당께!"
화가나면 이놈의 께,자는 잊어버리지 않구 튀어나온다.
"지그들, 밥통을 뺏을려구 하는디 누가 선듯 가져가시우, 하고 내 주겠냐 말이여! "
흥정,을 해야지 여!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치라고 했는디 여!
그쪽,오야지가 짱구라고 했던가 여?
나이도 많은가 보든디,"
"네, 34ㅡ5세 쯤,"
"밝은 대낮에 만나야재, 오늘이나 내일쯤, 만나자구 연락해 봐여!"
"넷! 지금곧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순 전라도 촌놈이었다.
아부지의 괴팍한 성깔을 고분고분 새겨 삼키면서 말도 잘듣는 순둥이었다.
지난 겨울까지도 그날 그날의 주어진 삶에 책임을 지는 공부하는 학생이며 아부지의 공장 직공이며
경리사원이며 장돌뱅이 심부름 꾼이었다.
"기술이 밥멕여 주제, 그깐놈의 핵<학>교가 밥멕여 준다냐,
핵<학>교 댕겨봤됬자,
시건방만 떨다가 배고파서 얻어배기 노릇하다가 객사죽음 하드라,
늬,도 핵<학>교에 다닐라믄은 뇌,몫슬<야리끼리>함스렁 핵<학>교 댕게야제
핵<학>교 그냥은 못댕기니께, 잉!"
무지하고 괴팍스럽고 원칙이신 아부지 셨다.
아부지를 닮은 그 아들인 나는 고통일수도 있는 아부지의 완고한 고집을 무던히 따르며 실천했다.
잠이 없으신 아부지는 언제나 헛기침으로 새벽을 연다.
아부지의 새벽의 헛기침은 온집안 식구들한테는 감옥 감방장 같은 왕벌이었다.
뭉그적 거리며 이불자락을 끌어 당겨 봤됬자 불과 몇분을 견뎌내지 못한다.
기왕지사 홀가분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밖으로 튄다.
뒷산 우두봉 끝자락의 언덕배기를 오르면서 언젠가는 아부지 그늘을 벗어나리라고 수만번 다짐한다.
따뜻한 봄이왔다.
열아홉 젊음이 고개를 처들었다.
더 이상 아부지의 터치가 싫은거다.
가슴에 봄부터 불었던 잔솔 바람이 초여름에서야 터졋다.
혼자만의 야성을 위하여 밤봇짐을 쌋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서도 중심, 충무로에서 깡페 오야지가 될라카고 있다.
~"아부지,죄송 스럽습니다. 글구 괴로움 일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께,제가 발목 끼어든 거나 아닌지,...두려움이 큽니다.
생각해 보니께,아부지의 말씀이 다아 옳았습니다.
젊음의 미숙으로 스스로 변명할수도 없게된 때가 오고 만 것입니다.
아부지,이럴땐 어떻하면 옳을것 같습니까?"
~"아들아!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믄은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했었다.
어쩌믄 그런 싸움이야 말로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벗아나지 못했다는 것은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이며 그 강한 자존심은 자신을
지켰으며 의리를 배신하지도 않았었다.
적에게 등을 보이지 말거라, 아부지 에게서 내세울만한게 있다믄 두둑한 뱃짱인거다.
이익에 관계없이 끝장을 볼 것이다.
내몫을 다 하게 되믄은 마음이 편안해 지며 너그러워 진다." ~
아부지의 계시다.
무지하고 괴팍스러웠던 아부지다.
그렇지만 그 아부지의 옹골찬 고집이 약해진 내마음에 용기를 주는 몫을 떼어준다.
아부지의 역마살이 만주를 떠돌때에 무지막지한 도적<마적>들에,생사의 기로에서도
최소한의 자존심만은 지켰다고 했다.
이튼날 정오쯤,
"대장성님,종로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오늘 오후 5시에,충무로 인현동 한국체육관에서 만나자고요,"
"종로에서 만나자고할 줄 알았는데?"
"이유가 있어요, 술독아가 체육관 근처에 있거든요,"
<그 당시에는 소주나 막걸리는 큰항아리를 땅에 묻고 저장을 했음,나무 되,로 퍼서 한말씩 담아 배달했음>
"감자씨!"
"네?"
"우리 쪽에서는 감자씨와 번개,나,세사람만 가는겁니다. ㅡ
"네! 않됩니다!"
"그렇게 하드라고여!"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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