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꽃(Flower) 이야기
<5> 이른 봄의 전령사(傳令使)들
얼레지 / 군락을 이룬 얼레지(가평 연인산) / 얼레지 나물
변산 바람꽃 / 너도 바람꽃 / 노루귀 / 복수초
<얼레지(dog-tooth-violet) 꽃>
‘야생화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얼레지는 이른 봄에 숲속의 나무 그늘에서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나무들의 잎이 나오기 전 이른 봄에 꽃이 피었다가 잎이 나올 무렵에 열매를 맺고 죽기 때문에 봄을 알리는 식물(傳令使)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야생화 중에서 비교적 꽃의 크기가 큰 편으로 분홍빛을 띠는 연한 자주색 꽃과 날렵한 모습은 이른 봄, 온 산이 갈색으로 겨울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을 때 피기 때문에 더욱 화사해 보여 ‘야생화의 여왕’이라는 찬사(讚辭)로도 불리는데 어울린다. 순우리말인 꽃 이름 ‘얼레지’는 잎이 초록색 바탕에 갈색 얼룩 반점(斑點)이 있는 것이 어루러기 (피부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꽃말이 ‘바람난 여인’, ‘질투’라니 웃긴다.
몇 해 전, 이른 봄에 집사람과 가평의 연인산에 갔다가 정상 부근에서 뜻밖에도 활짝 핀 얼레지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군락을 만나 환성을 지르던 기억이 새롭다. 연인산(戀人山)은 가평의 대표적인 산인 명지산의 한 줄기로, 예전 백둔초등학교(지금은 폐교) 앞에 있는 이름 없는 산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인산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은 후 등산객이 몰려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산이 제법 크고, 오르는 등산코스가 너무 가파르고 멀어서 정상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다.
산을 오르며 ‘연인들이 왔다가 너무 힘들어 다투다가 오히려 멀어지겠다.’고 이야기를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생각이 난다.
서양에서는 얼레지를 ‘Dog Tooth Violet’이라고 하는데 번역하면 ‘개 이빨 제비꽃’으로, 생긴 모양이 흡사 개 이빨처럼 날카롭게 보여서일까?? 또 얼레지는 땅속에 미늘줄기가 있어 ‘가재 무릇’이라고도 부르는데, 봄철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도 하고, 초가을에 미늘줄기를 캐서 쪄먹거나 이질, 구토 등의 치료에 쓰이고 강장제(强壯劑)로도 사용된다.
특이한 것은 씨앗이 발아(發芽)한 후 7년 만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는 것과, 씨에서 개미 유충과 똑같은 냄새가 나서 일개미들은 자신들의 새끼인 줄 알고 얼레지 씨를 부지런히 땅속 개미집으로 옮겨서 보호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얼레지의 땅속 뿌리는 보통 2~30cm로 깊이 박혀있다. 얼레지는 자신의 씨앗이 추위에 얼지 않고, 다른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개미 유충의 냄새를 나게 하여 땅속 깊이 옮기게 했다니 그 지혜가 경이롭다.
<이른 봄의 전령사들>
얼레지가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지만 이른 봄에 피는 꽃 중의 복수초(福壽草)가 있다.
일명 장춘화(長春花), 설련화(雪連花), 원일초,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르는데 관상용 혹은 약용으로 이용된다. 이른 봄, 채 녹지도 않은 눈을 비집고 올라와 노랗게 피는 꽃은 보기가 쉽지 않아 보는 이들에게 복을 주고(福) 수(壽)를 준다고 해서 복수초(福壽草)라 부른다고 한다. 복수초는 이뇨(利尿), 진통(鎭痛), 변비(便秘), 강심제(强心劑) 등의 약재로 두루 쓰이나 독성이 강하여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또 이른 봄의 귀한 야생화로 바람꽃도 있는데 미나리아재빗과의 초본(草本)으로 작고 가녀린 꽃이 이른 봄 찬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가엽고도 앙증맞다.
꿩의 바람꽃, 외대바람꽃을 흔히 볼 수 있고, 한라산에서 볼 수 있는 세 바람꽃, 설악산에는 홀아비바람꽃이 있고, 변산반도에서 자라는 변산 바람꽃도 있다.
바람꽃 속(屬)이 아니면서 모양이 비슷하여 붙인 이름으로 너도바람꽃(경기 북부), 나도바람꽃(강원 북부), 만주 바람꽃(경기 북부), 매화바람꽃(북한 지방) 등도 있다고 한다.
노루귀는 잎의 모양이 보송보송 털이 난 노루귀와 흡사하여 얻은 이름인데 꽃 모양은 바람꽃과 비슷하다. 잎을 데쳐서 나물로도 먹는데 독성이 강하여 조심하여야하고, 잎을 짓이겨 종기(腫氣)에 붙이면 근(根)이 빠진다.
이른 봄, 눈을 비집고 나온다고 하여 설할초(雪割草), 파설초(破雪草)라고도 불린다.
몇 해 전, 강화도 마니산 북록(北麓)인 내리(內里) 뒤의 골짜기로 산을 오르다가 노루귀가 군락을 이루고 자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너무도 신기하여 몇 포기를 캐다가 화분에 심기도 했는데 금 년 봄에 갔더니 가랑잎에 덮여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