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고 /이시향 불쑥 아내가 선물이라며 준다. 선물은 대부분 내가 했는데 그것도 책을 선물로 아내가 해주는 것이 신기해서 받았더니 잘 생긴 혜민 스님 사진이 붙어 있고 “멈 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불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크 리스천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선물로 주는 책을 스님이 쓴 걸로 사주냐! 하는 생각에 겉으로만 고맙다고 하고 며칠 겉표지도 들춰보지 않고 뒀다. 조카 결혼식이 있어 제주도를 가기 위해 회사로 출근하지 않은 금요일 시간이 나 고 그래도 아내의 선물이라 드디어 책을 펼쳐 들었다. 우선 책 표지를 펴고 전체 적인 감상을 하며 혜민 스님에 대한 프로필을 읽었다. 하버드 대학을 나오고 미국 대학교수이며 승려라는 특별한 프로필 그리고 트위터로 수십만 트위터 사용자를 감동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카페 활동은 열심히 하지만 트위터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데 트위터도 해야겠다는 생각과 얼마 전에 동경대학 출신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 작가가 쓴 “생각 버리기 연습”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은 터라 빵빵한 스펙을 가지고 왜 스님이지? 라는 호기심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긍정”이라는 에너지가 흘러나옴을 느껴 자세를 바로 하고 형광펜도 준비해 정독하기 시작했다. 제주도 내려갈 준비물들 준비하고 있으 라는 아내의 전화벨 소리가 아니었으면 아마 계속 책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지만 이렇게 쉽게 대중과 호흡하며 스스로 느끼게 할 수 있도록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슬슬 읽히는 행간마다 깨우침 이라는 열매를 묻어둬서 독자들이 스스로 그 열매를 캐낼 수 있도록 배려한 마음 이 커 보인다. 요즘 사람들이 긴 문장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데 짤막짤막하게 쉼표로 호흡을 조 절하도록 묶인 문장이 읽는 이들을 편하게 한다.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 그중에 마음에 들어온 글들을 옮겨본다.“복권을 사는 대신 꽃을 사보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꽃 두세 송이라도 사서 모처럼 식탁 위에 놓아 보면, 당첨 확률 백퍼센트인 며칠간의 잔잔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도 복권을 사지 않는 대신 꽃과 화초를 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 식 탁에는 꽃이 자주 꽂혀 있다. 아들에게 위의 구절을 읽어줬더니 우리 집에는 거의 매일 꽃이 꽂혀 있잖아요. 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런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세상을 볼 때 우리는 이처럼 각자의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만을 보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었어요.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 우주 전체가 아니라, 오 직 우리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한정된 세상이라는 걸 새삼스레 발견하 게 된 것이지요.” 그런 것 같다. 구두를 살 사람에게는 종일 구두만 보이고 가방을 살 사람에게는 가방만 보이며 머리를 하러 가는 사람에게는 머리스타일만 보이는 것처럼 자기 자 신이 원하는 걸 보고 있다는 걸 나도 따라 발견한다. “세상이 바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바쁜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은 세상 스스로 가 ‘와! 나 참 바쁘다!’라고 불평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결국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바쁘다는 사람은 늘 바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원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일을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바쁜 것을 한가 함으로 바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바쁜 게으름을 한가로운 부지런함 으로 바꿔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저에게는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큰 기쁨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참 마음에 와 닿는 글이다. 나도 직장과 사회 여러 단체에서 무척 바쁘게 활동하 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언제나 있어 주고 도움이 되어 주는 걸 기쁨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리라. 제주 내려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읽었다. 부산에는 햇살 가득한 맑은 날씨였는데 제주에 도착하자 거센 바람과 함께 함박눈이 날린다. 올해 첫눈을 제주에 와서 보 게 된다. 첫눈은 내리고 이시향 사랑을 기다리며 매년 봉숭아꽃물 들이던 그대 그저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도 작아지는 분홍빛 꽃물 보듬으며 어디선가 첫눈 기다리고 있는지 사랑은 곁에 두고도 모르는 눈먼 바보 같아서 붙잡지도 못하고 가슴만 치고 앉았는데 그대 걸어오듯 올해도 첫눈은 내리고. 부산으로 올라오면서도 읽다가 책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뒷 부분을 조금 남겨뒀다. 마음은 책의 뒷부분에 가 있는데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삭혀내며 다른 책들을 먼 저 읽고 출근하지 않은 토요일 다시 책과 노트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앞부분을 대충 다시 훑어보고 조금 남은 뒷부분을 드디어 다 읽었다. 책에서 이런 진한 감동을 받아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일 년에 한두 번 이런 책을 만나면 짜릿하게 흥분이 된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으로 이 책과 다른 책들을 합해 열권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꼭 적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많은 사람도 같이 공유하도록 할 것이다. 후반부에도 마음에 들어온 글이 많았지만 몇 가지만 소개해본다. “그를 용서하세요, 나를 위해서 나를 배신하고 떠난 그 사람, 돈 떼어먹고 도망간 그 사람,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나에게 했던 그 사람,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 정말로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하세요. …….” 윗글은 직장사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회사 동료에게 해줬다. 조선 초 맹사성에게 한 고승이 준 가르침이라는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도 다른 곳에서 읽을 때보다 더 깊게 다가왔고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직원 에게 들려줬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재물을 숨겨두는 방법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 은 베풂만 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 없이 사라질 재 물이 받는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너무도 마음에 와 닿는 진리이다.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큰 의미 없이, 쏜살같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갈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을 현실로 정지시켜 놓는 능력이 있어요.” “사람들은 대개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상대가 나와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느끼게 하는 방법은 좋은 질문을 많이 해서 상대가 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한 후, 그 사람 말에 즐겁게 맞장구를 쳐주면 됩니다. 사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이 부분도 이직(移職) 그리고 상담(相談)이란 글을 적으며 많이 필요하고 많이 느 꼈던 부분이라 크게 동감이 되었다. 주변 분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가족과 종교가 달라 힘들어하는 분들은 “종 교가 달라 힘들어하는 그대를 위해”라는 252 ~ 255페이지의 글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글들이 마음에 무척 들어왔지만 과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 으니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첫 느낌은, 스님이 쓴 책을 내가 왜 읽어야 하는가 하는 선입견 을 품고 책을 대한 나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했다. 혜민 스님을 이 책 에서 법구경보다 성경 구절을 더 많이 인용했으며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경하 는 마음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혜민 스님 스스로 왜 스님이 되었는지도 책의 행간에 밝혀 주어서 내 궁금증이 풀렸다. 이 책은 혜민 스님이 적었지만, 종교 서적은 절대 아니며 이 세상 사람 누구나의 마음에 삶의 지혜와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는 멋진 책이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선물해준 아내에게 감사함과 사랑을 전한다. 난 너를 사랑꽃이라 부른다/이시향 시 /진우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