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의 낮은 생산성은 제9정애서 일본의 사례를 논하면서 언급했던 것과 같은
수목 재배업(agrrforestry)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삼림은 양분의 대부분이 토양에 있지 않고 나무 자체에 있다.
따라서 최초의 유럽인 정착민들이 접한 삼림이 파괴되었을 때에도 그랬고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인드이 재조림된 자연 삼림을 벌채하거나 수목 플랜테이션을 운영할 때에도 그렇듯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다른 목재 생산국에 비해 나무의 생장 속도가 더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오스트리아 원산의 목재용 나무 (테즈메이니아 섬의 유칼립투스)가
지금은 해와 여러 나라에서 더 작은 비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토양의 낮은 생산성은 놀랍게도 어류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다에 사는 어류와 토양 생산성이 연관이 있다는 것은 얼핏 떠올리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강과 일부 연안해의 양분은 토양의 양분이 강물에 씻겨 내려와 바다로 유입된 것이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의 강과 연안해에는 양분이 적고,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산물은 농산물과 임산물 처럼 빠르게 중어들고 있다.
바닷물고기의 남획도 심해서 발견된 지 수년 이내에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다.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 200여 국가들 중 세 번째로 넓은 배타적 수역을 가지고 있지만
바닷물고기의 가치로 따지면 세계에서 55번째이고, 민물고기의 가치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양의 낮은 생산성과 관련하여 말해두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이런 문제를 최초의 유럽인 정착민들이 알아찿ㅊ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넓은 삼림을 보고 토양이 매우 비옥하리라고 생각했다.
특히 빅토리아 주의 깁슬랜드에서 120미터까지 자랐을 유칼립투스를 보았을 때는 더욱 그렇게 생각햇을 것이다.
그러나 벌목꾼들이 나무를 베고 양떼가 풀을 뜯고 난 뒤, 정착민들은
나무와 풀의 생장 속도가 느리고 땅이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큰돈을 들여 집과 울타리르 짓고 농사 시설을 갖추었지만 이 모든 것을 포기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초기 식민지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의 땅은 개간.투자. 파산. 포기의 과정을 반복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농림수산업에 존재하는 이 모든 경제적인 문제들과 농지 개발의 실패는
토양의 생산성이 낮은 데에서 기인한다.
오스트레일리아 토양의 또 다른 큰 문제는 대부분의 땅에 염분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휘트벨트에는 인근의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염분을 날라다 주었고,
남동부의 또 다른 곡창지대인 머리 강 유역과 달링 강 유역은 지대가 낮아서 바닷물의 침수가 잦은 탓에 염분이 많아졌다.
또한 내륙 지방의 또 다른 저지대는 원래 담수호(湖)였는데
호수의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않고 증발해서 염분이 많아졌고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사해나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솔트 호가 그렇다).
결국 물이 다 증발하여 바닥에 남은 염분이 바람으로 인해 동부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떤 지역에는 1평방야드의 표토에 90킬로그램 이상의 염분이 함유되어 잇는 곳도 있다.
토양에 함유된 염분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겠지만,
농지 개간이나 고나걔 농업을 하게 되면 염분이 쉽게 땅의 표충부에 이르고
그렇게 되면 염분이 많이 함유된 표토에 작물이 자리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사진 28)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주한 초기의 농부들은 토양의 비옥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듯이
땅속의 염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농업 활동으로 인해 토양이 양분을 상실하리라는 것도,
염화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도 그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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