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2월 13일 열린 제18대 대선 원주 유세. 박근혜 후보는 끝나자마자 김지하 시인을 방문하고, 이어 제천 베론성지 고 지학순주교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 노장서기자 | | 18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었던 작년 12월 13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는 원주에서의 유세를 마친 이후 유신시대의 대표적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 시인을 만났고, 이어 제천 베론성지에 들러 고(故) 지학순 주교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김지하 시인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과 고 지학순 주교에게 분향을 하는 모습은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신속하게 보도되었다. 이 두 사람 모두 유신시대의 희생자들이었기에, 이날 원주와 제천에서 이루어진 박근혜 후보의 행보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고 지학순 주교는 1965년 춘천교구로부터 분구된 원주교구의 초대교구장으로 부임했다. 이때 원주시 중심가에 소재한 원동성당이 서품식 등 주교가 주관하는 모든 예식이 거행되는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었다. 지학순 주교는 부임과 더불어 사제가 제대를 향하여 미사를 봉헌하던 것을 신도들을 향하여 미사를 드리도록 바꿨고, 주교좌는 간소한 것으로 마련하였다. 교회재정도 외국에 의존하던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자립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교구민들의 자립을 위해 교구내 모든 본당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보급하고자 했다. 이때 탄생한 것이 1966년에 출범한 원주신협(초대 이사장: 장일순)이다. 지학순 주교는 유신헌법 체제하인 1974년 7월 6일, 해외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던 중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된 김지하에게 자금을 대주어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지학순주교의 구속은 한국 천주교회에 큰 공분을 불러일으켜, 교회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해 9월 300여명의 신부들이 원동성당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하여,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1차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가두시위에 나서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초기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였다. 강원도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자라는 이유로 귀양보내지거나, 유배형에 처해지거나 박해를 피해 피신해 들어간 것이 계기가되었다. 강원도에 처음 본당이 만들어진 것은 1885년 부엉골(현재는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서였다. 1887년 한불조약 체결되고 어느 정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1888년에는 풍수원에 두 번째 본당이 만들어졌으며, 1896년 들어 세 번째 본당이 원주에 설정되면서 부엉골 본당은 폐쇄되었다. 1913년에는 원주 본당에 약 70평 크기의 고딕 양식 새 성당이 축성되었는데, 현존하는 춘천의 죽림동성당과 유사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성당은 1950년 6.25전쟁으로 전소되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원주 본당에서는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1954년에 새 성당건물을 완공했으니 바로 오늘날의 원동성당 건물이다(등록문화재 제139호).
장방형 평면인 이 건물은 남동방향의 주출입구와 북동방향의 보조출입구를 두고 있으며, 돔 지붕을 얹은 4층 종탑이 정면 주출입구와 수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이지만, 엄격한 양식보다는 기능적인 부분을 중시하고 있는 검소한 인상의 성당건축물이다.
성당내부는 아치형 천정에 열주와 앱스(apse)가 없는 강당 구조이며, 성단 중앙에 십자가가에 달린 예수상 외에는 주위에 일체의 성상이 없고, 스테인드글라스나 14처 장식도 유럽의 천주교당에서 흔히 보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 성단 벽 중앙에 걸려 있는 십자가메 매달린 예수상 © 노장서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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