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 - 10강|人文學특강 EBS인문학특강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 ~ 10 강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0 강 2015-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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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9 강 2015-06-02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8 강 2015-06-01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7 강 2015-05-27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6 강 2015-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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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5 강 2015-05-19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4 강 2015-05-18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3 강 2015-05-12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2 강 2015-05-12 |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 강 2015-05-12 |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강
● 인문학 이란? 인간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성찰하는 것 (탁월함의 추구, Arete !) 문(文) · 사(史) · 철(哲)의 지혜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것
Who am I ? -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 How to live ? -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 Live Creatively & Die Gracefully - 창조적인 삶과 멋진 죽음의 문제
플라톤 [Plato, BC 427 ~ BC 347]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미아에 학교를 열어 수사학, 문법, 수학, 음악 등을 교육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 고대 로마의 문인 ·철학자 『의무론』의 저자 후마니타스(Humanitas, 인문학)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1304 ~ 1374] 이탈리아의 시인 인문주의의 선구자 로마 시대 키케로의 인문학을 인간연구의 학문으로 발전시킴 호메로스 [Homeros, BC 800 ? ~ BC 750] 고대 그리스의 작가 유럽 문학 최고 최대의 서사시로 평가받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통해 문학, 교육,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침 로마 인문학의 개념 발전 : 역사의 지혜, 도덕적 판단력, 말하고 쓰는 능력 신학이 대세를 이루던 중세 시대, 지도자 인문학 교육이 사제 교육으로 바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학 : 역사, 도덕철학, 문법, 수사학, 시 근대 대학에서 인문학의 특화 : 문(文) · 사(史) · 철(哲)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 : 眞, 善, 美 眞의 성찰 : 역사 善의 실천 : 철학, 美의 창조 : 문학, 예술, 종교
이탈리아 바티칸 궁 서명(署名)의 방 - 역대 교황들이 서명하던 방으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1508년 화가 라파엘로에게 벽화를 장식하게 함
일리아스 원문 -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10년 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서사시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아내 '헬레네'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트로이와 그리스의 10년간의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의 계책 ‘트로이 목마’ 위장 전술로 그리스군이 승리하게 된다.
아킬레스의 승리 - 프란츠 마치 - 그리스의 전사 아킬레스와의 결투에서 패배한 트로이 총지휘관인 헥토르의 시신을 유린하는 아킬레스
※2,740년 전 작품 『오디세이아』를 통해 호메로스가 던진 질문은,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율리시스와 사이렌 - 윌리엄 위터하우스 - 사이렌의 유혹을 견디기 위해 돛대에 자신을 묶은 율리시스와 그 주위를 날아다니며 유혹하는 새의 형상을 한 여인 사이렌
『오디세이아』 - 제1권 1-5절 들려주소서, 뮤즈의 여신이여! 트로이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디세이아』 - 제1권 1-5절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들을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에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 아르놀트 뵈클린 - 칼립소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파산한 오디세우스. 파이아케스에 표류한 오디세우스를 나우시카아 공주가 발견
『오디세이아』 - 제5권 223-4절 나는 이미 너울과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 Amor fati!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오디세이아』 - 제13권 306-310절 그대가 그대의 잘 지은 집에 가서도 얼마나 많은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할 운명인지를 그대에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대는 억지로라도 꾹 참고 남자든 여자든 어느 누구에게도 그대가 떠돌아다니다가 왔다는 말은 하지 마라 그대는 오히려 남자들의 행패를 감수하며 많은 고통을 묵묵히 참도록 하라
『오디세이아』 - 제20권 18-21절 참아라 나의 마음아, 너는 전에 키클롭스가 전우들을 먹어 치울 때 이보다 험한 꼴을 참지 않았던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너를 계략이 동굴 밖으로 끌어낼 때까지 너는 참고 견디지 않았던가!
※ 인문학의 힘이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용기를 내게 하는 것
『오디세이아』 - 제12권 212절 전우들이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로토스라는 환각제를 먹고 환각상태에 빠져버린 오디세우스의 부하들
『오디세이아』 - 제12권 164절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 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는 그대들은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
『오디세이아』 - 제23권 247-250절 여보! 우리는 아직 모든 고난의 끝에 도달한 것이 아니오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고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무리 많고 힘들더라도, 나는 그것을 완수해야만 하오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2강
Know your self - 당신은 누구인가? * 호메로스의 인문학을 통해 나는 고통을 당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내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움 (Amor fati!)
How to live?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의무론』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배움
『의무론』 - BC 44년 무렵에 저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 후 두 번째로 인쇄한 책 중세시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던 고전
『의무론』 - 제1장 1절 - 키케로가 아테네에서 공부하고 있던 아들에게 쓴 편지 『의무론』 “나의 사랑하는 아들 마르쿠스야! 너는 이미 일 년째 크라팁푸스 스승 밑에서 그것도 아테네에서 수학 중이구나!”
* 인간은 개인이 아닌 사회에 소속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지혜의 덕목 - 『의무론』 제1장 18절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체하며 맹목적인 동의를 하지 말라!
정의의 덕목 - 『의무론』 제1장 21절 각자에게 할당된 것은 각자에게 소유하게 하자. 만약 누군가가 자기 몫보다 더 많은 것을 탐낸다면 그는 인간사회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의무론』 제1장 22절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 간의 의무를 교환해야 하고 때에 따라 기술, 노동, 재능을 주고받음으로써 인간 사회의 결속을 다져나가자!
용기의 덕목 - 『의무론』 제1장 80절 불굴의 정신이란 역경에 처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켜나가며, 계획과 이성에서 이탈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절제의 덕목 - 『의무론』 제1장 94절 적절(Decorum)한 것이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고,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적절한 것이다.
『의무론』 제1장 51절 길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남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은 아니다.
『국가론』 : 기원전 380년경에 플라톤의 허구적 대화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상가들이 정의에 대해서 논하고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그리며 ‘스파르타’를 이상 국가로 묘사
Live creatively & Die gracefully - 어떻게 창조적인 삶을 살고 멋지게 죽을 것인가? * 르네상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를 통해 어떻게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며 멋진 최후를 맞이하는가를 배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 이탈리아의 조각가ㆍ화가ㆍ시인ㆍ건축가 15세 때, 메디치 가문의 양자로 입양 후 인문학자 마르실리오, 폴리치아노 등으로부터 인문학 교육을 받음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 ~ 1610]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 화가 대담한 명암의 대비를 매우 극적이고 종교적인 상징으로 사용 종교미술에 강렬한 사실주의를 도입함 미켈란젤로 vs 카라바조
카라바조가 미켈란젤로와 경쟁하기 위해 그린 그림
미켈란젤로 소네트 - 238번 예술을 통해 이룩한 열정적인 환상은 나 자신과 형상을 위한 절대권력을 만들었지만 확신하는 것은 죄로 가득했던 나의 삶. 모든 사람의 바람과 반대되었던 삶. * 이 순간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삶
● 인문학 : 아는 것과 실천하는 사이의 간격을 줄여가는 것 ● 키케로의 인문학 : 기술, 노동, 재능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다 ● 미켈란젤로의 인문학 :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삶의 유한성을 기억하자.
김상근 교수의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3강
Re-naissance : 부활, 재생 그리스가 발견한 위대한 위인 호메로스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알렉산드로스
호메로스 [Homeros, BC 800 ? ~ BC 750] 고대 그리스의 작가 유럽 문학 최고 최대의 서사시로 평가받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문학, 교육,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침
호메로스의 발견!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右) 호머의 흉상을 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_램브란트 판 레인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하데스(저승)의 세계로 모험을 감행 그곳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는 죽은 어머니와 트로이 전쟁에서 함께 싸운 아킬레우스의 혼백을 만난다
『오디세이아』 제11권 아킬레우스여 죽었다고 슬퍼하지 마시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런 오디세우스여! 나는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를 통치하느니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한 사람 밑에서 품이라도 팔고 싶소이다.
와인을 마시는 바쿠스 _ 귀도 레니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바쿠스’를 통해 행복한 인생을 추구했던 그리스인들의 이상을 표현
병든 바쿠스 _ 카라바조 -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 숙고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 ~ BC 399]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에서 펼친 교육 · 사상활동이 아테네 법에 어긋난다 하여 사형을 당함.
- 그리스 파르나소스산 델피신전에 신탁(信託)을 받으러 간 소크라테스, 신전 입구에 새겨진 그리스의 일곱 현자의 격언을 발견 → 탈레스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를 평생 화두로 삼음.
- I only know that I know nothing ‘나는 단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 자크 루이 다비드
『국가론』 제7권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고 끝에 보게 되는 것이 선(善)의 ‘이데아’라네. 이것이 모든 것에서 옳고 아름다움의 원인이며 가시적인 영역에서 빛을 낳고 지성과 진리를 제공한다네.
플라톤의 이데아 (Idea) :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생각한 끝에 보게 되는 것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 작자 미상 - 동굴 벽을 향해 묶여 있는 죄수들이 모닥불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그것을 실체로 인식, 죄수는 석방된 뒤에 그림자의 실체를 보고도 여전히 그림자 쪽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 이데아(Idea)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사랑(Eros)을 통해서 이데아(Idea)를 발견할 수 있다.
로마가 위대해질 수 있었던 이유? - 그리스의 유산을 계승하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로마의 정신
그리스의 ‘향연’ Symposium → ‘Drink together’ 로마 · 르네상스의 ‘향연’ Convivio → ‘Live together’ 인간의 이상은 탁월함의 추구를 통해서 실현되었다.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4강
르네상스의 기억 - ‘로마는 어떤 시대인가?’ 로마의 흥망성쇠 로마가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 1. 아이네아스 2. 로물루스 3. 스키피오
로마의 건국 신화
『아이네이스』- 베르길리우스 (BC.70 ~ BC.19) :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모방한 건국신화로 로마를 건국한 영웅 ‘아이네아스’의 모험이야기
여신 뮤즈와 함께 있는 베르길리우스 (210) - 튀니지 국립박물관 소장
『오디세이아』 :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괴물 키클롭스 · 스퀼라 등 고난을 이겨내는 오디세우스의 영웅담
『오디세이아』 - 제12권 212절 “전우들이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
*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로마의 건국신화 『아이네이스』
트로이를 탈출하는 아이네아스 (1598) - 페데리코 바로치
『아이네이스』 - 베르길리우스 트로이와의 전쟁이 끝난 뒤, 아이네아스는 일족을 이끌고 새로운 나라를 찾아 떠난다. 7년간의 표류 끝에 도착한 카르타고에서 여왕 디도가 아이네아스를 붙잡지만 거절하고 모험을 계속해 나간다. 티베르 강에 도착해 라티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인 후 승리하여 로마 건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아이네이스』 - 제12권 아이네아스는 피를 흘리며 두 걸음에 한 번꼴로 긴 창에 몸을 기댔다. 그는 분통을 터트리며, 화살촉을 뽑으라고 명령했다. 칼로 상처를 가르고 화살촉을 빼낸 다음 자기를 싸움터로 돌려보내 달라고 명령했다. 아이네아스는 무장한 두 팔로 아스카니우스를 안고 투구 사이로 아들의 입술 끝에 입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아! 너는 용기와 진정한 탁월함은 나에게서 배우고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도록 하라!
『아이네이스』 - 제1권 오, 전우들이여! 그대들은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소! 그대들도 스킬라 괴물의 공격에서 살아남았으며 키클롭스 동굴에서의 시련도 견뎌내지 않았소!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불행과 공포는 잊어버리시오! 아마 이 고생도 그대들에게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오! 경건한 아이네아스는 밤새도록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생명을 부양하는 햇빛이 비치자마자 밖으로 나가 낯선 땅을 정탐하여 바람에 밀려 자기가 어떤 해안으로 떠밀려왔으며 이곳에는 누가 사는지 그것이 사람인지 야수인지 알아내 전우들에게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로마가 세계를 발견했는가?
로물루스와 레무스(1615~1616) - 페테르 폴 루벤스
* 반역자에 의해 강에 버려졌던 왕족 레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성장 후, 함께 로마를 건설했지만 경계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형 레물르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임 BC.753년경 로물루스가 팔라티누스 언덕에 정착 · 로마의 초대 왕이 됨.
『고대 로마』 - 디오니시오스 로물루스의 정복지 정책은 로마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로마인이 자유로워졌고 역사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즉 전쟁에서 정복한 국가에서 적국의 주민을 몰살하지 않고 노예로 만들지 않으며 그들의 땅을 빼앗지도 않고 오히려 땅을 배분해 주고 심지어 로마 시민권의 일부를 나누어 준 것이다.
죽어가는 갈리아인 (BC 1) - 카피톨리니 박물관 누오보 궁
* “로마 군인들이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수많은 종류의 민족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로마 군인들은 더 나은 방법을 발견하면 즉각 자기 것을 버리고 상대방의 방법을 도입하여 싸웠기 때문이다” - 몽테스키외
『국가론』 - 키케로 로물루스는 원로원과 같은 자문회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강화했다. 많은 전쟁도 기꺼이 수행했다. 그러나 그는 전리품 중에서 어떤 것도 사유화하지 않았고, 시민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도록 했다
『역사』 - 홀리비오스 스키피오는 늘 전투에 직접 참여하였고 3명의 부하가 방패를 들고 자신을 방어토록 했다. 그는 진지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전황도 살피면서 왔다 갔다 했는데 병사들이 자기를 볼 수 있도록 해서 사기를 올리려는 목적이었다.
아우구스투스 [Augustus, BC. 63 ~ AD. 14]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41년간의 통치 기간에 로마의 평화시대가 시작 (우중에 발생) “라인 강과 도나우 강(北) 유프라테스 강(東) 북아프리카(南)의 경계선을 넘지 말라”
안토니누스 피우스 [Antoninus Pius, 86 ~ 161] 로마의 황제(재위 138∼161)로 오현제(五賢帝)의 네 번째 황제
스틸리코 [Flavius Stilicho, 359? ~ 408] 나 반달족 2세로 로마군대에서 입신하여 서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지도자 역할
* 로마 고대 후기에 관한 최근 연구 제정 후기 로마에 급격한 내부 붕괴의 요인도 없었고, 제국의 경계선 내 · 외부에 있던 야만족들은 야만적이지 않았다.
『로마제국 쇠망사』 - 에드워드 기번 그는 부하들이 공연히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 초래할 큰 희생을 예상하고 부하들에게 그렇게 할 필요 없다고 말한 다음 스스로 목을 내밀었다.
※ 로마의 붕괴 멈추지 않고 질주했을 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개방성을 포기했을 때 세계전망을 상실했을 때 더는 탁월함을 추구하지 않았을 때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5강
과연 중세는 암흑의 시대였는가? - 중세의 밤에 찬란히 빛나는 두 개의 별이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354 ~ 430] 북아프리카의 누미테아 출신 당대 최고의 그리스 학문을 섭렵했던 수사학 교수. 교부철학과 신(新)플라톤학파의 철학을 종합하여 가톨릭 교회의 교의에 이론적인 기초를 다짐.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민 “나는 어떤 존재인가?”
*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체계를 의심한 아우구스티누스 → 인간의 지성과 앎은 선(善)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고백록 [Confessions, 告白錄]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40세 때 저술한 자서전,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저술 중의 하나
『고백록』 제10장 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휘몰아치는 큰 대양을 바라보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운행을 바라보면서 넋을 잃지만. 정작 인간 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인간의 이성적 측면 · 가능성 · 긍정성 VS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 인간의 악(惡) · 욕망 · 한계
비너스의 탄생 (1485) - 보티첼리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4 ~ 1274] 이탈리아의 신학자, 철학자. ‘벙어리 황소 (Dumb ox)’ 라고 불릴 만큼 과묵하고 우직했다
세인트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혹 (1632) - 디에고 벨라스케스
* 가톨릭 신학의 기본체계를 닦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교도대전 [Summa contra Gentiles] 이교도들에 대해 신의 본질과 그에 대한 인식을 제시. 1258/59년 파리에서 시작해서 1260년 또는 1264년 이탈리아에서 완성
-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절대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 (Knowledge of God)이 본성적으로 주어져 있다.
레콘키스타 (Reconquista)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에 걸쳐서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과정
* 『이교도대전』을 통해 무슬림들과 신학적 · 철학적 토론을 시도
아퀴나스의 승리 (1366~1368) - 안 드레아 다 보나이우토, 스페인 채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스페인의 신학자 1526년 살라망카대학 도미니크파 신학 교수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교도대전』을 재해석
제2 토미즘 (The Second Thomism) - 기존의 아퀴나스 신학체계에서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강조
※ 인간의 가치 발견 → 세계에 대한 가능성의 발견 인간과 세계의 발견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6강
르네상스의 배후, 메디치와 인문학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호세 데 아코스타 [Jose de Acosta, 1540 ~ 1600] 에스파냐의 예수회 선교사 페루와 멕시코를 비롯한 신대륙 선교 활동
“인도 제도를 지날 때였다. 나는 고대의 철학자나 시인들이 열대 지역에 대해 쓴 책을 읽었던 터라. 배가 적도에 이르렀을 때 엄청난 더위가 엄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나는 추위를 느꼈고 햇볕을 쬐려고 선창으로 나와야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과 그의 철학을 비웃는 것 말고 달리할 것이 없었다” - 호세 데 아코스타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 ~ 1492]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최대의 정치가ㆍ시인 학교를 설립하는 등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후원에 힘씀 * 르네상스의 배후 → 메디치 가문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인물들>
● 메디치 가문의 두 명의 교황 - 레오 10세 · 클레멘트 7세 ● 메디치 가문의 두 명의 프랑스 왕비 - 카테리나 왕비 · 마리아 왕비 ●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인재 - 미켈란젤로 · 마키아벨리 · 갈릴레오 갈릴레이
※ 르네상스가 탄생한 피렌체에는 대학이 없었다! 상인계급들이 필요로 한 지식, 즉 물건을 사고팔기 위한 정보가 중요했기 때문에, 새로 등장한 상인 계급은 대학의 현란한 지식체계가 필요하지 않았다. 실제 생활과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인문학이 필요하기 시작했다. 인문학은 상인계급의 필요로 피렌체에서 재탄생했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 | 조반니 데 메디치 (교황 레오 10세) |
코시모 데 메디치 [Cosimo de' Medici, 1389 ~ 1464]
5세기 이탈리아의 금융인이자 인문학적 지식인 1463년 플라톤 아카데미 설립
도나텔로 [[Donatello, 1386 ~ 1466]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전통적인 고딕조각을 극복 자연 관찰의 결과로 제작된 르네상스의 조각 세계를 창조
다비드 (1430 ~ 1433) - 도나텔로 | 복음서 저자 성 요한 (1401 ~ 1404) - 도나텔로 |
선지자 하박국 (1423 ~ 1425) - 도나텔로 | 막달라 마리아 (1453 ~ 1455) - 도나텔로 |
*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 : 숨겨진 인재들의 재능을 발견, 파격적인 후원
미켈로초 [B.Michelozzo, 1396 ~ 1472] |
피렌체의 건축가 · 조각가 주요작품 《팔라초 메디치 리카르디》 (1444 ∼ 1459) 등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 ~ 1446]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건축가 주요작품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 (1436) 등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
이탈리아의 조각가·건축가 주요작품 《다비드》 (1504)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 (1541) 등
로렌초 무덤, 황혼과 새벽 (1526 ~ 1533) - 미켈란젤로 | 줄리아노 무덤, 밤과 낮 (1526 ~ 1533) - 미켈란젤로 |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 [Anna Maria Luisa de'Medici, 1667 ~ 1743]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직계 후손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들을 피렌체에 기부 과거의 한계를 발견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사람들 메디치 가문의 교훈 1 대학의 한계를 발견하고 인문학을 태동시키다 메디치 가문의 교훈 2 사고방식의 전환을 위해 플라톤을 부활시키다 메디치 가문의 교훈 3 예술의 생산방식을 바꿔 르네상스를 창조하다 메디치 가문의 교훈 4 부의 목적을 규명하여 가문의 명예를 남기다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7강
르네상스의 탄생, 14세기-15 세기 전반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변화 → 21세기의 새로운 시대를 위한 시금석
단테 [Dante, 1265 ~ 1321] 중세를 종합하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문을 연 이탈리아 시인 · 철학자 · 정치가 주요작품 『신곡』, 『향연』 등
『신곡』 연옥편 제24곡 내 여기서 보는 자가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인들’이라고 시작되는 저 새로운 시를 끌어냈던 바로 그인가? 사랑이 내게 입김을 불어 줄 때 내 마음을 모으고 그가 속으로 속삭이는 대로 읊조리면서 가는 사람이라오
『신생』 2장 바로 그 순간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내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역동적인 감정이 솟구쳐 올랐으니 내 가슴을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 때문에 내 맥박은 잦아들었다
라파엘로 소르비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의 결혼식>, 1928년 작
헨리 홀리데이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나다>, 1883년작
베르길리우스 [Vergilius, BC 70 ~ BS 19] 로마의 국가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저자
그리스의 호메로스 ⇒ 로마의 베르길리우스 ⇒ 르네상스의 단테 『오디세이아』 『아이네이드』 『신곡』 중세의 Vita contemplativa 숙고(熟考)하는 삶
단테의 Vita activa 활동하는 삶
“처참할 때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네” 단테 <신곡> 지옥 편, 제 5 곡
페트라르카 [Petrarca, 1304 ~ 1374] 이탈리아의 시인, 인문주의자. 프랑스 빵두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고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을 시작
『고백록』 -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은 산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굽이치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세상을 휘몰아치는 큰 대양을 바라보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운행을 바라보면서 넋을 잃지만 정작 인간 내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인간의 내면세계, 영혼의 세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데 말이다. 나는 내면의 눈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산 아래로 내려올 때까지 단 한마디도 입술에서 내뱉지 못했다
지오토 [Giotto,1266? ~ 1337] 이탈리아의 피렌체 출신의 화가 서양 미술사 최초로 인간의 내면을 작품으로 표현
(L) 마에스타 (1285~1285) 치마부에 / (R) 오니산티 마돈나 (1310 추정) - 지오토 |
*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보겠다 ? 르네상스의 정신
스크로베니 채플의 프레스코화 (1310년경) - 지오토, 스크로베니 예배당 소장 |
마사초 [Masaccio, 1401 ~ 1428] 이탈리아의 화가 회화에서의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
* 15세기 초 피렌체 예술의 3대 거장
건축 : 브루넬레스키 조각 : 도나텔로 회화 : 마사초 |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urer, 1471~1528]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원근법의 원리를 습득하고 북유럽에 전파 |
* 원근법의 적용
삼위일체 (1425~1428) - 마사초 |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 (1427년경) - 마사초 |
세례를 베푸시는 성 베드로 (1425~1428) - 마사초 - 중세시대 예술 작품 속 성 베드로는 교황권 상징 |
르네상스
인간의 시선을 긍정 그림: 우리를 비추는 거울
※ 새로운 창조의 시대는 어떻게 도래하는가? “La vita dolce” - 달콤한 인생 “Vita activa“ - 활동하는 삶 “인간과 사물의 본질 발견 ⇒ 과학적 원근법의 도입”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8강
르네상스의 절정, 15세기 후반-16세기
● 르네상스는 피렌체의 문짝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흑사병으로 피렌체 인구의 80%가 사망, 1500년 다시 흑사병이 피렌체를 위협 * 흑사병의 소멸을 기념하기 위해 성 세례 요한 세례당의 문을 제작
성 세례 요한 세례당 / 이탈리아 피렌체
● 피렌체의 이중성 : 철저한 경쟁과 패배자에 대한 관용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태동의 배경 1. 철저한 경쟁 2. 패배자에 대한 관용
판테온 신전 / 이탈리아 로마
| 선한 자의 휴식처 -로지아딕- (1419~1424) - 브루넬레스키 / 이탈리아 피렌체 |
두오모의 돔 (1419~1536) - 브루넬레스키 / 이탈리아 피렌체 | 산토 스피리토 성당 (1435) - 브루넬레스키 / 이탈리아 피렌체 |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년 ~ 1464년] 15세기 이탈리아의 금융인이자 문화 예술 후원자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정면 파사드, 피렌체, 이탈리아 |
● 메디치 가문은 왜 예술가들을 후원했는가?
1439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열린 피렌체 공의회 * 동방 비잔틴 교회와 서방 가톨릭 교회의 만남
8세기부터 동방교회와 서방 교회의 갈등 일어나 11세기에 동·서로 교회가 분열 ⇒ 제4차 십자군 전쟁 * 서방 가톨릭 교회가 동방 비잔틴 교회의 수도 격인 콘스탄티노플 공격
Eastern Orthodox Church Roman Catholic Church
그리스어 사용, 라틴어 사용 사제 결혼 허가, 사제 독신주의, 신비주의 경향 이성적 사고 우선, 플라톤 철학 중시, 아리스토텔레스 중시 코시모 데 메디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700 명의 동방비잔틴 교회 대표단을 피렌체에 초대, 유럽 최초로 플라톤 사상의 전모가 원전으로 밝혀짐 신 플라톤 철학은 르네상스의 원동력 제공함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파노라마>, 작가 미상 / 이스탄불 파노라마 박물관
12~13세기 중세 말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중심 시대. 현상 세계 주목, 관찰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중시한 서방 가톨릭 교회
플라톤 - 초월적 사고 * 플라톤 철학을 중시한 동방 비잔틴 교회 ※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 중심 사고는 한계가 있다.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년 ~ 1564년] 이탈리아의 조각가·건축가·미술가 주요작품 《피에타》(1499)《다비드》(1504) 《최후의 심판》(1541) * 전혀 다른 문화가 충돌할 때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최후의 심판(1537~1541) - 미켈란젤로 피에타(1499) -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1508~1512) -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의 경쟁상대 최고(Paragon)를 추구하는 자기 자신 더 이상 조각이란 예술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 『미술가 열전』 (1550) 조르지오 바사리
※ 르네상스의 창조성은 어떻게 실현되었을까고딕?- 치열한 경쟁과 실패에 대한 관용
- 사상의 다양성과 문화의 개방
- 세상을 바꾸기 위한 몰입과 파라곤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9강
르네상스의 긴 그림자, 혹은 바로크의 서막
엘 그레코 (1541~1614)카라바조 (1571~1610)
1527년 로마 대함락 사건
15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르네상스의 중심 베네치아
베네치아 - 다양함을 존중
베첼리오 티치아노[ Vecellio Tiziano ] 이탈리아의 화가로 피렌체파의 조각적인 형태주의에 대해 베네치아파의 회화적인 색채주의를 확립했다. 고전적 양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격정적인 바로크 양식의 선구자 역할을 함
16세기 르네상스의 경쟁 : 구도와 색채 피렌체 르네상스 화풍베네치아 르네상스 화풍 미켈란젤로티치아노 구도 우선주의 색체 우선주의
펠리페 2세에게 후원 제안을 했으나 스페인 국왕은 정통 이탈리아 양식을 선호함 카라바조 - 속 된 인간의 삶을 그리기 시작 - 인간의 느낌과 감정에 충실 알라프리마(aila prima)기법:밑그림 없이 주제에서 받은 첫인상을 직접 전달하는 기법
* 르네상스 화가들의 고민 -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
-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인간 ▷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진솔한 모습
-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인간의 내면 ▷ 성스럼움과 속 된 모습이 혼재하는 모습
- 초자연적 기적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 ▷ 이중성이라는 근대성에 노출된 인간
'인문의 시대, 르네상스' 10강
르네상스의 마지막 꿈
마키아벨리 1469년 5월 3일, 피렌체 출생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부터 풍요로움이 아니라, 궁핍함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먼저 배웠다네”
1500년, 마키아벨리의 첫 번째 업무 - 교황 알렉산데르 6세 피렌체 침공을 막기 위해 프랑스에 원조 요청
체사레 보르자 [Cesare Borgia, 1475~1507]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 교황군의 총지휘관으로 이탈리아 중부 로마냐 지방 정벌 『군주론』의 모델로 불림 “타인의 힘이나 호의로 권력을 잡지 않겠다”
1502년, 이탈리아 우르비노에서 체사레 보르자를 만난 마키아벨리 우르비노의 영주 페데리코 몬테펠트로 우르비노의 공작 15-16세기 이탈리아 최고의 용병대장으로 문무를 겸비하여 “이탈리아의 등불”로 불림
이몰라에서 두 번 째 만난 두 영웅 (1502년 10월 ? 1503년 1월) 『군주론』 의 영웅과 “마키아벨리즘”이 탄생한 순간
“늑대를 피하자 호랑이를 만나다”
율리우스 2세의 등장 (1503-1513년 재위) - 체사레보다 더 능숙하게 “마키아벨리즘”을 구사하며 교황의 권력을 장악함
Q. 율리우스 2세는 열세의 무력으로 페루자와 볼로냐를 어떻게 점령할 수 있었는가?
- 그것은 “포르투나(행운)” 포르투나를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난폭하고 거칠게 (남자답게, Virtus) 포르투나를 낚아채야 한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났던 해(1512년)부터…” 율리우스 2세의 후원을 받던 메디치 가문이 프라도 전투에서 피렌체 군대 섬멸 마키아벨리는 반역혐의로 체포되어 22일간 바르젤로에서 고문당함 1513년부터 1527년까지 15년 동안 실업자 생활
메디치 가문의 첫 번 째 교황 레오 10세(1513년 취임) 마키아벨리를 사면함
? -참새를 잡으러 다니던 마키아벨리의 시(1513년 4월 6일)
“만약에 내가 웃거나 노래하고 있다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네. 만약 내가 그것마저 할 수 없다면, 나의 쓰라린 눈물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지.”
- 마키아벨리가 친구에게 쓴 편지(1513년)
“나는 오늘도 우리 시골 마을의 촌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네. 어떤 놈도 내가 왕년에 피렌체의 공직자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내가 뭔가 근사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놈은 하나도 없어. <중략> 하지만 이런 생활도 얼마 가지 못할 것 같으이. 집을 나가서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무데나 가서, 가정교사나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네. 우리 식구들은 내가 그냥 죽은 사람이려니, 생각했으면 좋겠어. 아무짝에서 쓸모 없는 내가 생활비만 축내고 있으니, 우리 식구들은 내가 없는 편이 더 나을 거야.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키케로의『의무론』에 대한 반대 의견을 담고 있다!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유익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의무론』 2장 10절
“우리 로마 공화국 가 이러한 파국에 봉착하게 된 것은 우리가 국민의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 즉 경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더 원했기 때문이다.”
키케로의 의무론 제 권 절 "자신이 남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공포로 몰아넣은 자들을 두려워하여 벌벌 떨게 될 것이다.” 『키케로의 의무론』2 24절
◎ 키케로는 『의무론』 1 권 11 장 34절부터 13장 41절까지 힘에 의한 해결 방식을 비판한다. 힘에 의한 문제 해결은 기만을 하거나 아니면 완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여우에게, 그리고 후자는 사자에게 합당한 방식이다.
→마키아벨리가 “사자와 여우”로 반대한 것은 키케로의 구태의연한 도덕주의였다.
친구 베토리에게 보낸 1513년 12월 10일자 편지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 서재로 들어간다네.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 흙과 먼지가 묻어있는 일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지. 그리고 나는 옛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의 정원으로 들어간다네. 그 분들은 나를 정중히 맞아 주시고, 나는 혼자서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지혜의 음식을 그 어르신들과 나누게 되지. 나는 그 옛 지혜의 음식을 먹으며 다시 태어난다네. 나는 옛 시대를 사셨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지. 내가 그 분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드린다네. 왜 그 때, 그런 식으로 행동하셨는지를. 그 숨겨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럼 옛 성현들은 내게 대답해 주시지. 매일 옛 시대의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 네 시간 동안 나는 아무런 피곤을 느끼지 못한다네. 내 삶에 주어진 모든 시련과 고통도 다 잊어버리지. 나의 가난도 두렵지 않아. 내게 닥쳐올 죽음조차도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1514년 2월 4일, 산탄드레아의 유배지에서 절망의 끝자락에서, 마키아벨리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그러므로 나의 친구여, 즐겁게 지내게나. 두려워하지 말고 운명과 당당히 맞서며, 하늘의 운행과 시간의 흐름, 인간의 상황이 자네 앞에 어떤 것을 펼쳐놓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말고 그것과 힘써 싸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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