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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과 인생 2
나의 문학과 인생
때 :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곳 : 전주시
1.
제가 김동수 교수님의 전화를 받은 게 지난 10월 25일이었습니다. 그날도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날 아침 가장 먼저 한 일은 은행에 가는 일이었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벙거지 쓴 놈이 차지한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집은 내각 책임제라서 연금은 집사람 통장에 넣어주고 나는 쥐꼬리만 한 용돈으로 살려니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저는 속으로 웃습니다. 그래, 너는 돈으로 살아라. 나는 글을 쓰며 살란다.
아내가 너무 인색하게 굴어도 미워하지 못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2001년이니까 24년 전 이야기입니다. 대학 안식 연구년 중국 연변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다 오니까 한 문인이 찾아와서 ‘문학사계’를 창간하는데 주간을 맡아달라고 해서 허락했지요.
그런데 그 발행인이 창간호 한 권 내고는 제작비를 댈 수 없다고 빠지는 바람에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완주군에서 태어났지만, 전주 문예가족 동인으로, 6·25 때 학도병으로 출전했다가 감옥 살다 나와서 김동리 추천으로 데뷔,「사형수 풀리다」라는 넌픽션으로 유명한 ‘이정환 특집’을 꾸미려고 천이두 이보영 오하근 등과도 약속한 상태라서 제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난이랄까, 즐거운 비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겨울호로 96호를 내었으니 2002년 봄 1호부터 24년이 걸렸습니다. K팝이 세계를 휩쓴다고자랑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책을 읽지 않아서 ‘문학사계’ 편집보다 제작비메우기가 더 힘이 듭니다. 그래도 100호까지는 내야겠지요. 초기에는 사명감으로 책을 내었지만, 요즘은 고집으로 책을 냅니다. 고집이라면 나쁜 선입관을 갖기 쉬운데, 문덕수 교수는 제 고집을 황희 정승 고집이라고 좋게 보아 주셨습니다.
문덕수 교수가 「黃松文 詩人」이란 제목의 시를 ‘문덕수 시집’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에 수록하셨는데, 그 시를 소개했습니다.
黃松文 詩人
文德守
그는 몰래 바위를 키우고 있나 보다
그 바위 속에
꽃을 가꾸고 있나 보다
그가 정치나 문단을 열심히 이야기할 때
어쩌다 그 바위 한끝이
슬쩍 비치곤 한다
(물론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이 가뭄 속에
꽃을 보고 며칠만 더 일찍 피라고 한들
좀 더 오므리고 그대로 있으라고 한들
산을 보고 방향을 조금 틀고
한쪽 줄기를 남쪽으로 더 열어
그 맑은 근원을 흘려보내라고 한들
남들은 고집이나 편견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보지는 않는다
그는 몰래 바위를 가꾸고 있나 보다
(文德守 詩集 『만남을 위한 알레그로』에서)
문덕수 교수는 “바위 속에 꽃을 가꾸고 있나 보다”리고 쓰셨는데, 저에게는 ‘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행사 팸플릿에 소개했습니다.
돌
불 속에서 한 천년 달구어지다가
산적이 되어 한 천년 숨어 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 들고
물속에서 한 천년 원 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신선봉神仙峰 화담花潭 선생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운무雲霧 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끓는 속계俗界에 내려와
좋은 시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이 시는 속도전 시대에 느림의 미학으로 표현한 시라 하겠습니다. 이 시는 연세대 한수영 교수가 「발효의 시학」이라는 ‘황송문론’을 썼습니다.
제가 1975년부터 77년까지 일본 남산대학에서 유학했는데, 돌아오니까 문덕수 교수가 찾는다고 해요. 홍익대학으로 찾아가니까 문덕수 교수가 『세계문예대사전』을 증보하는데 함께 집필하자고 해요. 그래서 홍익대학에서 사전을 집필했는데, 출판사 성문각에서 집필료가 나오면 둘이서 50%씩 나누어 가졌어요. 전라도에서는 ‘아심찮다’는 말이 있고, 함경북도에서는 ‘아심탠타’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안심찮다’와 ‘고맙다’는 뜻입니다.
집사람이 피아노 래슨으로 살았는데, 제가 유학 다녀와서 공 떠 있을 때 성문각 집필료 50%가 얼마나 황감합니까. 세월이 흘러서 문덕수 교수는 홍익대 교육대학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하시고, 나는 선문대 교수, 인문대학장으로 있을 때, 문덕수 교수를 3년 동안 대우교수로 모셨습니다.
제가 문학사계 사무실을 광화문 조선일보사 엎 건물을 쓰다가 지금은 종로에 있는 조태현 사장 사무실을 쓰고 있습니다. 조 사장은 ‘교육서관’과 ‘마당’ 출판사 사장으로 『세계문예대사전』을 내신 분입니다. 제가 가끔 감수하면 돈을 줍니다. 사무실을 무료로 쓰는데, 돈을 받겠습니까? 돈을 받지 않으니까 사전류로 좋은 책을 주셔요. 그 좋은 책들은 제가 받았지요. 제 책 『황송문문학전집』(20권)을 50%에 구입하는 분에게는 선물하려고 받아두었습니다.
신석정 스승도 전집이 다섯 권인데 어째서 20권이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시가 본업이지만, 소설과 수필, 평론, 대학교재까지 부업처럼 써왔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습니다. 제가 떠나기 전에 좋은 시를 쓰시려면 제 책을 구입하고,『세계문예대사전』이나『한국시대사전』등의 사전류를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신석정 스승에게서 시를 배웠고, 석사 박사를 신석정 시연구로 받았으며, 「신석정 시의 색채 이미지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문덕수 교수가 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승 복은 있는데, 제자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김동수 교수는 제자 복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그분의 은덕으로 제1회 전주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따라다니는 말은 고난과 감사, 그리고 지은보은知恩報恩입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려면 원망스러움을 감사함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의 ‘문학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데는 ‘까치밥’과 ‘간장’ 이 긴요하겠습니다. ‘까치밥’은 떫은 땡감에서 홍시가 되기까지의 성숙 과정을 그렸고, ‘간장’은 잘 발효된 메주의 부패를 막는 소금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여과하는 공생의 아름다움을 그렸습니다.
문학평론가나 학문하는 분들은 제 시를 향토정서와 문명비판, 절대사랑, 선비정신 등으로 가름하는데, 오늘은 이 두 편의 시를 해설하고, 제가 창출한 마음속 지정의知情意에 대해서 말함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2.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게 불변하지도 않고 영존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므로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불완전하고 불안전함을 알고 군형과 조화로 신을 찬미한 게 고전주의 예술입니다.
절대 행복은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종교와 예술을 통해서 절대 사랑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잡으려 하지만 무지개는 다시 저만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영원한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까치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까치밥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 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 감도 서리 맞은 뒤에 맛 들듯이
우리 고난 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 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구렁 바가지로 쪼아 먹히우고
이듬해 새 봄에 속잎이 필 때
흙 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殉愛하며 살아요.
이 시는 고난을 선량하게 극복하지 않고는 인격의 완성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하는 성숙의 각성이 종교적 철학적 차원으로 승화한 작품입니다. 인생이 재생이나 부활로 거듭나게 될 때 순애하는 삶 속에서 그 성숙한 인격의 완성으로 인하여 참된 삶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문학의 예술성과 영원성을 고양하고 있습니다.
. 간장
우리 조용히 썩기로 해요.
우리 기꺼이 죽기로 해요.
토속의 항아리 가득히 고여
삭아 내린 뒤에
맛으로 살아나는 삶,
우리 익어서 살기로 해요.
안으로 달여지는 삶,
뿌리 깊은 맛으로
은근한 사랑을 맛들게 해요.
정겹게 익어 가자면
꽃답게 썩어 가자면
속맛이 우러날 때까지는
속삭는 아픔도 크겠지요.
잦아드는 짠맛이
일어나는 단맛으로
우러날 때까지,
우리 곱게 곱게 썩기로 해요.
우리 깊이깊이 익기로 해요.
죽음보다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부활의 윤회,
사랑 위해 기꺼이 죽는
人生이게 해요
사랑 위해 다시 사는
再生이게 해요.
간장이 모든 음식에 들어가 제맛을 내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맛들게 하기 위해서는 잘 썩어야 하는 메주와 부패를 막는 소금의 정신으로 조화롭게 융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형상화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간장이 지닌 그 이미지를 통해서 사상으로까지 심화하고 있습니다.
3.
사람의 마음에는 지정의(知情意)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세 가지 요소가 기능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이 마음의 지시에 감응하여 언행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의 몸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의도나 지시에 감응하여 보이는 몸의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 지정의(知·情·意)의 감응체로서 진미선(眞·美·善)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지정의(知情意)가 내적인 마음이라면, 진미선(眞美善)은 외적인 몸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론에 흡사한 게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간에 본성적 인간, 즉 창조 본연의 인간상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고 보는 데 있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영혼과 육신, 무형과 유형, 무한과 유한 등의 종합적인 존재이며, 피조물인 인간은 사람으로 존재하게 한 에너지의 본체라 할까, 원인적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게 본래적 모습이라는 추론입니다.
이제부터는 ‘지정의(知情意)’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조지훈 시인은 “시란 지(知) 정(情) 의(意)가 합일된 그 무엇을 통하여 최초의 생명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영원한 순간에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지당한 말입니다.
이 지론은 내가 이제까지 말씀드린 지정의(知·情·意) 시론에 부합하거니와 ‘최초의 생명’과 ‘진실한 아름다움’, ‘영원한 순간’, ‘직관’, ‘형상화’ 등 모두가 좋은 시를 쓰는데 필수불가결의 것입니다. ‘최초의 생명’이란 문예 창작의 기본입니다. 최초의 독창성이 아니면 창작(創作)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서는 기어(綺語)를 떠올려 비교하면 이해가 빠르겠습니다.
기어란, 비단 기, 아름다울 기(綺)자에 말씀 어(語) 해서 기어(綺語)입니다. 불교에서는 10악(惡) 중의 하나로 꼽습니다. 진실이 없는 허식(虛飾)을 말합니다. 진실이 없이 교묘하게 꾸며 쓰는 말이라든지, 재미있게 수식한 말장난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글들이 시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쳇말로 “허울 좋은 개살구”나 “유치찬란”이라 하겠습니다.
구상 시인은 이러한 글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철학의 빈곤에 있다고 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며, 요행이나 잔꾀 등 정신과 물질의 전도 현상에 있다고 봅니다.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시뿐만이 아닙니다. 공기도 햇빛도 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그게 없으면 인류는 멸망합니다. 우리나라의 위기는 돈을 숭상하고 시(인문학)를 외면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시를 외면하고 돈밖에 모르는 돈과 시의 전도 현상에서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고 봅니다.
마음이 맑으면 말이 맑고, 마음이 흐리면 말도 흐립니다. 말이 거칠게 나오는 까닭은 마음이 거칠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대한민국 국민은 어찌하여 갈수록 언행이 거칠어지는지 안타깝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본연의 마음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에는 마지막 보루인 종교와 교육,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듯이, 시가 아름답지 않고 천박하면 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투르게네프는 “시란 신(神)의 말이다”라 했고, 볼테르는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라고 했으며, 릴케는 “시란 예술 속의 여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엔 어떠한가, 서사시는 소설이 차지했고, 서정시는 산문시라는 이름으로 운율을 말살했습니다. 실험 시는 동호인들끼리 독자를 무시했고, 독자는 그런 낙서 같은 푸념이나 잔소리의 나열을 외면했습니다.
물론 과학의 발달이나 생활환경의 변천에 따라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철학의 빈곤으로 인해서 대안을 찾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장르의 파괴와 문학 인플레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변화에 따르는 방법에도 불변과 가변을 가려서 해야 하겠는데, 이 문제는 앞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티븐스는 “시인은 번데기로 비단옷을 만든다”고 극찬했지만, 옛날이야기입니다. 윤오영 수필가는 「양잠설(養蠶說)」이라는 수필로 ‘문장론’을 썼지만, 시인들은 ‘삼다(三多)’도 지키지 않은 채 돈과 유희에 빠져 병든 누에처럼 아름다운 비단 실 같은 시어(詩語)를 뽑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국민과 배우기를 즐기지 않는 시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괴테는 “시인들이 잉크에 물을 많이 탄다”고 탄식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문단은 술에 물을 너무 많이 타서 자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왜 자꾸 물을 타겠습니까.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술에 물 탄 듯이 하면 작품 수준은 떨어집니다. 괴테는 잉크에 물을 탄다고 썼지만, 한국의 문단은 이미 물을 부은 탁주나 맥주에 또다시 물을 부은 꼴입니다. 술도 아니고 물도 아닌 이런 풍토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시(詩)라는 말 자체가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 한 글자입니다. 절에서 하는 말씀, 즉 종교적 차원의 언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시에서는 욕설 등 천박한 말은 통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는 삶의 질을 높입니다.
시가 시답지 않아서 독자가 외면하게 된 까닭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염된 페놀 강물을 약수라고 우기는 꼴입니다. 이런 문학 인플레를 청산하고 약수 같은 작품으로 정서의 갈증을 해소해야 하겠습니다.
시를 쓰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기독교건 불교건 모든 종교에서는 마음공부를 합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다스리고 크게 넓히는 공부를 합니다. 박애나 자비심, 측은지심은 시심과 통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시, 아름다운 시, 훌륭한 시를 쓰려면, 시를 사랑하면 됩니다. 시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과 역사입니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두루 살피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다 돌아보아도 자기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근사한 카메라가 있어도 그 속에 컬러필름이 들어있지 않으면 천연색 아름다운 풍경이 찍히지 않는 법입니다. 철학에는 논리학을 함께 해야 합니다. 마르크스 같은 학자도 감정에 치우치다가 논리의 모순에 빠진 것은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무산자는 선량하고 유산자는 악질입니까? 재화의 유무로 선악을 규정해도 됩니까? 그러니 철학에는 논리학을 동반해아 합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 대로 현미경적 눈과 망원경적 눈으로 보겠습니다. 마음에는 알고자 하는 욕망과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 절제 조절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게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적인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므로 학자 되기가 쉽습니다. 정적인 사람은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 예술가 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의지적인 사람은 선을 추구함으로 종교인이 되기 쉽습니다. 이 세 요소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게 인격자입니다.
세계 문예사조사를 살펴보면, 기독교가 풍미하던 때 고전주의가 나왔습니다. 선(善)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이야 절제라든지, 균형과 조화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일반인들은 재미가 없으니까 그 반동으로 낭만주의를 희구했습니다. 의적(意的) 고전주의자는 신(神)을 우러러 받들며 인간을 왜소하게 보았다면, 낭만주의자는 신(神)에 무관심한 채 인간을 최고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액셀러레이터는 밟을수록 잘 나가니까 신나지만 사고가 나고, 세계대전 등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등 다양한 시도를 보였으나 실험에 그친 셈입니다. 신본주의도 인본주의도 경험했습니다. 결국 고전주의(意)를 반동하고 낭만주의(情)가 나왔고, 낭만주의를 반동하는 주지주의(知) 즉 모더니즘이 나왔습니다만 이 모든 생각은 편협된 반동에서 나왔으므로 지속할 수가 없습니다. 인도에서 1대 부통령, 2대 대통령을 지낸 샤르베팔리 라라크리슈난 교수의 글(조금 알면 오만햐지고, 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 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을 상기하면서 제 말씀은 여기서 마치고, 시낭송예술협회 이혜정 이사장께서 저의 시를 여러 편 낭송하셨는데, 그 일부를 감상하시겠습니다.
4.
안녕하십니까? 이혜정의 시가 있는 해피톡입니다. 여러분, 발효란 말 아시죠. 효모나 세균 등의 미생물이 작용해서 원래의 성분이 더 이로운 형태의 새로운 물질로 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막걸리, 또 포도주, 된장 간장 치즈 등을 만들 때 이 발효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왜 갑자기 시작부터 발효 얘기를 하지? 하고 의아해하실 텐데요.
오늘은 문학을 하는 데 있어서 그 발효의 미학이라는 자세를 가지고 활동하시면서 멋진 시를 쓰시는 시인의 시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황송문 시인인데요, 황송문 시인이 주옥 같은 시를 많이 쓰셨는데,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시는 제가 예전에 낭송해서 올렸던 ‘망향가’가 있습니다.
황송문 시인의 문학의 모토가 바로 발효의 미학이며, 이 말은 곧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지요. 적절한 발효를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푹 익히고 삭혀야 제대로 맛이 우러나지요.
발효는 기다림이며 진실입니다. 거짓으로 발효를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오래도록 우려낸 곰탕 국물 같은 사람, 만나면 만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고, 감칠맛이 우러나는 사람, 한 삼년 묵은 묵은지의 맛과 향기가 나는 사람, 우리 삶도 그렇게 발효를 잘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잘 살아낸 삶이 아닐까요.
오늘 이혜정의 해피톡에서는 황송문 시인의 시 다섯 편을 엮어서 들려드릴 텐데요, 들으시면서 황송문 시인이 시속에서 삶을 어떻게 발효시켜 담았는지,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시래깃국 – 황송문
-*음악:영화 서편제 중 소릿길(김수철 작사, 작곡)
고향 생각이 나면 / 시래깃국 집을 찾는다. // 해묵은 뚝배기에/ 듬성 듬성 떠 있는 / 붉은 고추 푸른 고추 / 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뜨겁다. // 노을같이 얼근한 / 시래깃국 물 훌훌 마시면, / 뚝배기에 서린 김은 한이 되어 / 향수 젖은 눈에 방울방울 맺힌다. //시래깃국을 잘 끓여주시던 /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시래깃국을 끓이고 계실까. // 새가 되어 날아간 / 내 딸아이는 / 할머니의 시래깃국 맛을 보고 있을까. // 고향 생각을 하다가 / 할머니와 딸아이가 보고 싶으면 / 시래깃국 집을 찾는다. // 내가 마시는 시래깃국 물은 / 실향(失鄕)의 눈물인가. / 내 얼근한 눈물이 되어 / 한 서린 가슴, 빙벽을 타고 / 뚝배기 언저리에 방울방울 맺힌다.
아름다운 것 – 황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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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놓고 돌아와 / 틀어박는 쐐기는 아름답다. / 쐐기의 미학으로 / 눈물을 감추면서 / 피워내는 웃음꽃은 아름답다. // 기다림에 주름 잡힌 얼굴로 / 쏟아져 내리는 / 햇살의 만남은 아름답다. // 태양의 미소와 / 바람의 애무 / 눈짓하는 나무는 아름답고 / 지저귀는 새는 아름답다. // 아름다운 것은 / 눈짓하는 나무와 / 지저귀는 새, / 떠난 이의 뒤에서 헛웃음 치는 아픔이다. //보내놓고 돌아와 / 짜깁는 신경의 잔을 기울이며 / 하루를 천년 같이 기다리는 노을이다. // 노을 담긴 그리움이 / 한(恨)으로 괴이어 / 떠낸 시의 잔에 넘치는 술의 입술이다. // 아름다운 것은 / 산불로 타오르던 나무 / 뚫린 가슴에 / 울며 울며 쐐기를 지르는 / 망각의 술, 기다림의 잔이다.
샘도랑집 바우 – 황송문
-*음악:사랑의 춤(김영동 작곡)
-*배경 그림:구스타프 크림트 작 <키스>(이 그림은 1908년경 그린 유화)
가까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 탐욕의 불을 켜고 / 바라본 일도 없습니다. //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 옷을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 그저 그저 달님도 부끄러워 / 구름 속으로 숨는 밤 / 물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 죄가 있다면 / 그 소리 훔쳐 들은 죄밖에 없습니다. // 그런데, 그런데, / 그 소리는 꽃잎이 되고 향기가 되었습니다. // 껍질 벗는 / 수밀도의 향기…… / 밤하늘엔 여인의 비눗물이 흘러갑니다. // 아씨가 선녀로 목욕하는 밤이면 / 샘도랑은 온통 별밭이 되어 / 가슴은 은하로 출렁이었습니다. // 손목 한 번 잡은 일도 없습니다. / 얘기 한 번 나눈 적도 없습니다. // 다만 아슴푸레한 어둠 저편에서 / 떨어지는 물소리에 / 정신을 빼앗겼던 탓이올시다. // 시원(始原)의 유두(乳頭) 같은 /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로 유방으로 허리로 / 그리고 또…… // 곡선의 시야(視野) 굼틀굼틀 / 어루만져 보고 껴안아 보던 / 그 달콤한 상상의 감주(甘酒), / 죄가 있다면 이것이 죄올시다. // 전설 속의 나무꾼처럼 / 옷 하나 감추지도 못한 주제에 / 죄가 있다면 / 물소리에 끌려간 죄밖에 없습니다.
보리를 밟으면서 - 황송문
보리를 밟으면서 / 언 뿌리를 생각한다. // 아이들이 아비에게 대들 때처럼, 시린 가슴으로 / 아픔을 밟는 아픔으로 / 해동(解凍)을 생각한다. // 얼마나 교육을 시켜 주었느냐고, / 얼마나 유산을 남겨 주었느냐고, / 시퍼런 눈들이 대드는 것은 / 나의 무능임을 나는 안다. / 뿌리를 위하여 / 씨알이 썩는 것처럼, / 사랑할수록 무능해지는 것을 / 나는 안다. // 내 아이들이 대들듯, / 어릴 적 내가 대들면 / 말을 못 하시고 / 눈을 감으시던 아버지처럼, / 나 또한 눈을 감은 채 / 보리를 밟는다. / 잠든 어린것 곁에 / 이불을 덮어주며 / 눈을 감는 것처럼, /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 / 온종일 보리를 밟는다.
자운영紫雲英 - 황송문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 그러나, /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 세월이 가고 / 늙음이 왔다. //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 동그라미밖에 더 그릴 수가 없다. // 이제는 자운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 그녀의 풍문조차 들을 수가 없다. //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 나의 추억 속에 살아 있는 / 그녀의 미소, / 눈빛과 입술이다. //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바쳤고 / 그녀는 나에게 시를 잉태해 주었다
자운영紫雲英 - 황송문
나는 그녀에게 꽃시계를 채워 주었고 / 그녀는 나에게 꽃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 꿀벌들은 환상의 소리 잉잉거리며 / 우리들의 부끄러움을 축복해 주었다. / 그러나, / 우리들의 만남은 이별, / 보자기로 구름 잡는 꿈길이었다. / 세월이 가고 / 늙음이 왔다. / 어느 저승에서라도 만나고 싶어도 / 동그라미밖에 더 그릴 수가 없다. / 이제는 자운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 그녀의 풍문조차 들을 수가 없다. /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 나의 추억 속에 살아 있는 / 그녀의 미소, / 눈빛과 입술이다.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바쳤고 / 그녀는 나에게 시(詩)를 잉태해 주었다
황송문黃松文 시인 약력
전북 임실 오수 출생. 시인, 소설가, 문학박사.
전주대 국문과(학사), 일본 남산대 유학(1975∼77),
홍익대 교육대학원(석사), 전주대 대학원(문학박사).
선문대 교수, 인문학부장, 인문대학장, 명예교수,
선문대신문사 주간,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자문위원.
한국기독교문인협회 고문, 중국 연변대 객원교수. 숙명여대,
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세계문예대사전’ 집필위원.
국제승공연합 신문과장, 홍보부장, 국제승공보 편집국장.
『문학사계』 발행인 겸 편집인, 현재 편집인 겸 주간.
현대시인상, 홍익문학상, 전주문학상 등 5개 문학상 수상.
저서 『황송문문학전집』(20권) 『현대시창작법』 『소설창작법』
『수필창작법』 『문장강화』 『신석정시의 색채이미지 연구』
『중국조선족시문학의 변화양상연구』『師道와 詩道』 『샘도랑집 바우』
『영원한 한국의 명시』 『영원한 세계의 명시』 등 107권.
동아일보문화센터, 아이파크문화센터 출강 30여 년 후 종강.
*E-mail:songmoon1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