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 수요일.
무더위와 소나기가 예보되었음에도 우리들은 걷기모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6월 모임을 건너 뛰고보니
친구들 안부가 궁금해서 얼굴이라도 보자고들 한다.
장소는 비가 와도 상관없는 이촌역 근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정했다.
이촌역 무빙워크 의자에서 충희와 혜숙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 이야기로는 가족들이며 이웃들이 이 복더위에 동기들 모임을 하냐며
대단들하다고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말들을 듣고 왔다며 벙글벙글 웃는다.
만나니 그냥 즐겁다는 듯.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우리들 뿐이랴.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어른들이 뒤섞여 법석거리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우리는 늘 그러했듯이 우선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그래야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고
눈도 초롱초롱 해야 잘 볼 수 있을 터이다.
비빔밥 한 그릇씩 맛있게 비우고 디저트(수박, 초콜릿, 과자 등)까지 먹고는
박물관이 아닌 카페로 향했다.
무더위에 지친 몸을 더 식혀야 하는 듯 했다.
그런데 카페에 우리 9명 대식구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결국은 전시실 근처
휴게쉼터를 독차지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 사이에 재인이와 옥숙이가 합석을 하면서 자연스레 아나바다가 진행되었다.
오랫만에 만난 옥숙이는 얼마전에 수술을 해서인지 좀 야윈 모습이었다.
그 많은 병고를 꿋꿋이 견디면서 웃음과 유머를 던지며 우리들을 깨우는 존경스런 친구로서
가깝지 않은 거리에 살면서도 자주 함께 걷기에 동참하는 친구다.
옥숙이는 우리 걷기 모임의 기념비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걷기 모임은 오래 된 친구들이 보고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한 곳으로 모여들면서
이제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숭고한 박물관 내에서 거래를 하게 되어 숨을 죽이며 아나바다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조상님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일 먼저 충희의 스카프가 등장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오신 손님으로 부터 받은 것인데 색깔도, 부분적 악세사리도 범상치 않은 것으로
약간 도톰해서 가을에 쓰면 좋을 듯 했다.
오늘의 바람잡이ㅡ선숙의 표현을 빌려서ㅡ는 메리 포핀즈처럼 긴 우산과 보따리를 들고 나타난 재인이.
"이 스카프로 말 할 거 같으면 미쿡에서 온 것으로.. " 하면서
분위기를 띠우기 시작했다.
모두들 눈이 동그래지면서 만져보고 둘러보다가 혜숙이와
혜순이가 경쟁을 하다가 결국 혜순이가 득템을 했다.
이렇게 시작을 해서 악세사리, 티셔츠, 식료품에서 냅킨까지의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우리들 손에서 자기 주인을 찾아갔다.
아나바다는 두번 째인데 모임할 때마다 가벼운 물건들을 가져와서
경매를 해서 그 수익금은 모두 동창회비 회계에 들어간다.
오늘의 수익금은 60,500원.
아나바다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직원 한 분이 우리를 보고 탁자에서 내려 오라고 했다. 평상인 줄 알고 앉았던 곳이 탁자였던 것이다.
아이고
이런 실례가 어디 있나?
후다닥 치우고 박물관을 돌아보자 했더니 카페로 가자는 아우성에
실내에서는 역시 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실외 카페로 발을 돌렸다.
다행히 우리 11명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담소했다.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었다는 누군가의 말에 내년에는 멋진 칠순 잔치를 차려보겠다는
경희 회장의 선언에 모두 박수를 치면서 환영했다.
다음 달 걷기에는 북한강을 끼고 팔당을 향해 걷는 하남위례 둘레길을 맨발로 걷자고 하는데
옥숙이가 맨발걷기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를 알려주었다.
게다가 충희는 벌써 그 곳에 몇 번 가보았다고 해서 안내를 부탁했다.
차를 다 마시고는 집으로 가겠다는데
우리들 카페에 오늘의 걷기모임 소감에 박물관 사진 몇 장이라도 남겨야 할거
같아서 몇 명은 발길을 돌려 다시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은 남녀노소 내외국인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이런 무더운 날씨에 한국의 역사가 담긴 박물관에 탐방하러 온 외국인들을 보며
최근에 거론되는 한류에 대한 위력을 느껴 볼 수 있었다.
충희는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요기조기 다니다가 혜순이가 먼저 가야겠다고 하다가 집안에 의외의 일이 생겼다고 운을 떼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다는 걸 그때까지 참을 수 없다면서 우리들이 붙잡고 이야기를 재촉했다.
전시관 한 구석 마련해 놓은 작은 의자에 앉아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듣고보니 기쁜 소식, 기적같은 신앙간증이었다. ㅡ궁금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들어보시기를 ㅡ
이런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니..역시 숭의에서 함께 자라온 숭의의 딸들이기에 서로 이해하고 축하해 줄 수 있는게 아닐까?
혜순이가 귀가한 후 우리들은 세종 시대 박연이 만든 *편경을 마지막으로 구경하고 전시관을 나와 전철로 향하면서
다른 친구들과는 유별나게 끈끈한 여고동창생들과의 정에 대해서 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마침내 세 갈랫길에서 손을 흔들며 뿔뿔이 헤어져야 했다.
무더운 날씨에 몸은 피곤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들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원희, 경희, 명희, 충희, 혜숙, 혜순, 향순, 재인, 옥숙, 영자~~
치자꽃처럼 곱고 향기로운
친구들아~
오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음 달도 또 함께 하자~~
*편경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편경은 세종 시대 1425년 경기도 남양에서 경돌이 발견되어
1427년 악학별좌인 박연의 감독 아래 12매 짜리 편경 1틀이 완성되었다.
그 이전에는 중국에서 수입을 하였다고 한다.
1428년까지 16매 짜리 편경 33틀이 제작되어 여러 제향에 시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세종은 박연이 편경을 시연할 때 그중 이칙의 음정이 맞지않음을 지적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칙음의 경 뒤에 먹줄이 남아 있어 먹줄을 갈아 바른 음정을 얻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께서 음악에 대한 조예와 애정이 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전시 중인 편경의 한 경이 떨어져 나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경은 어디로 갔을까?
첫댓글 영화를 보듯이 그날의 순간 순간을 자세히 적어 놓은 명자의 글을 읽으니 마치 걷기모임의 날을 복습하는 기분이 드네~^^
폭염에도 불구하고 원근각처^^에서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 얼굴 보니 반가웠고 특히 옥숙. 혜숙. 혜순도 오랜만에 본 듯 하여 많이 반가웠네!
그리고.. 녹슬지 않은 옥숙의 수준 높은 유우머 참 멋지십니다!
글 쓰느라 수고한 명자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여러 친구들의 마음이 모아 모아져서 걷기모임이 이어져 오고 있네.
덕분에 친구들 만나는 즐거움과 심신의 건강을 덤으로 선물 받고 있어.
적극적으로 자리를 채워주는 길벗들에게 감사를 전하네~
특히 사진 찍는 수고를 도맡아 해주는 충희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