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상) 5-(1)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丁若鏞)/박석무 옮김
[본문 문단 내용 요약]
<과일·채소·약초를 재배하도록> (가) 시골에 살면서 과원(果園)이나 남새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 // 과수원, 남새밭 가꾸기의 중요성 (나) 나는 지난번 국상(國喪)이 ㉠ 나 바쁜 가운데도 넝쿨소나무 열 그루와 향나무 한두 그루를 심어 둔 적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는 수백 주가 됐을 거고 배도 몇 나무, 옮겨 심은 능금나무 몇 주와 감나무들이 지금쯤 밭에 가득 찼을 것이다. 옻나무도 남의 담장을 넘을 정도로 뻗어 나갔을 것이고, 석류도 여러 나무, 포도도 많이 가꾸었을 거고 파초도 대여섯 주는 심었을 거고, 유산(酉山)의 소나무도 이미 여러 자쯤 자랐을 거다. 너희는 이런 일을 하나라도 했는지 모르겠구나. // 글쓴이의 근황과 희망 (다) 너희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에게 몇 달 동안의 식량을 지탱해 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 ㉡ 한낱 꽃구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생지황, 저무릇, 천궁(川芎)과 같은 것이라든지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모두 마음을 기울여 잘 가꾸어 보도록 하여라. // 국화, 약초 등을 가꾸는 자세에 대한 당부 (라) 남새밭 가꾸는 일에는 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과 규격을 바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고, 흙덩이는 모래처럼 가늘게 부셔야 하고, 식물을 심을 때에는 아주 깊이 땅을 파는 일과 거친 흙을 분가루처럼 부드럽게 해야 하며, 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며, 모종은 아주 성기게 해야 한다. 아욱 한 이랑, 배추 한 이랑, 무 한 이랑씩 심어 두고 가지나 고추 등속도 마땅히 따로따로 구별하여 심어 놓고 마늘이나 파 심는 일에도 힘을 쓸 것이며, 미나리도 심을 만한 채소다. 또, 한여름 농사로서는 참외만한 것도 없느니라.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남새밭 가꾸는 일이다. // 남새밭 가꾸기의 중요성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마) 내가 벼슬살이를 못 하여 밭뙈기 얼마만큼도 너희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오직 글자 두 자를 ㉢ 정신적인 부적으로 마음에 지니어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거다. // 정신적 유산으로서의 '근검'의 의의 (바)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은 저녁때 하기로 미루지 않으며, 밝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천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하고, 어린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하고, 병이 든 사람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 길쌈을 하기 위해 밤중[四更]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집 안의 상하 남녀 간에 단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또 잠깐이라도 한가롭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 부지런함(勤)의 의미 (사)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나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까 여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옷을 만들게 되면, 당연히 곱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지 않고 투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 검(儉)의 의미-의복의 경우 (아)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술 안으로만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 삼키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 // 검(儉)의 의미-음식의 경우 (자)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함은 참됨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동료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 가난과 주림을 면할 수 있는 방법-입과 입술의 속임 (차)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주먹덩이를 삼키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구경하고는 “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 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 그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한 사람 및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자 아니고는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 // 검소한 생활의 중요성과 근검 생활의 당부
[개관 학습] ▷ 문종 : 편지글(서간문) ▷ 성격 : 설득적, 논증적, 예증적 ▷ 문체 : 산문체, 번역체 ▷ 제재 : 과수원과 남새밭 가꾸는 일, 근검의 생활 자세 ▷ 주제 :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
[표현] 1) 일상 생활의 사례를 통해 논지를 구체화하였다. 2) 글쓴이의 경험을 제시하여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3) 곡진하면서도 강건한 사대부의 기풍을 느낄 수 있는 어조와 문체를 사용하였다.
[전체의 줄거리] <첫째 편지> 나는 늘 과수원과 남새밭 가꾸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너희도 마찬가지로 남새밭 가꾸기에 힘쓰기를 바란다. 남새밭 가꿀 때는 흙을 잘 골라야 하고, 씨 뿌리기와 모종에도 유의해야 한다. 어렇게 남새밭을 잘 가꾸면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편지> 내가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부지런함이란 누구든지 자기의 처지에 맞게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검이란 의복이나 음식을 실용적으로 입고 먹는 것이다. 이처럼 근검하는 생활은 가난한 살림을 극복하는 방편일 뿐 아니라 비록 유복한 사람이라도 잡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이다.
[요지] <첫째 편지> 과일, 채소, 약초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요긴한 것으므로, 본농사를 힘쓰면서 부업으로 부지런히 가꾸어야 한다. <둘째 편지> 해야 할 일을 마루지 않는 것이 부지런함이요, 의복이나 음식을 실용적인 목적으로 충실하게 소비하는 것이 검이다. 이러한 근검은 모든 사람이 자키고 살아야 할 덕목이다.
▷ 주제 : <첫째 편지> 과일, 채소, 약초 재배 <둘째 편지> 근검의 실천
▷ 구성 <첫째 편지> 서두 - 과수원과 남새밭을 가꾸도록 권유함 본문 - 남새밭 경작의 필요성과 경작 방법 결말 - 남새밭 경작의 의의 <둘째 편지> 서두 - 근검 두 글자를 유산으로 물려줌 본문 - 근검의 의미와 검의 실천 방법 결말 - 근검의 중요성
[제재의 내용 구성] <과일채소약초를 재배하도록> - 선비의 식량이 될 수 있게 남새밭을 가꾸도록 권유 - 남새밭을 가꾸는 방법과 키울 만한 작물 소개 - 남새밭을 가꾸는 의의 <근검(勤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 정신적 유산으로서 근과 검을 제시 - 근(儉) :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한가롭게 보내지 않는 생활태도 - 검(儉) : 사치와 허영을 멀리하는 생활태도 - 경제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근 검'의 의미 재강조
[학습 활동] 1. 이 글은 편지글이다. 누구에게 왜 쓴 글인지 말해 보자 => 이 편지는 아버지인 정약용이 아들에게 남새밭을 기르면서 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얻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또한 양반이라는 신분을 따지지 말고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경고하면서 호화로운 의식(衣食)을 탐하지 않는 검소한 생활을 명심하라고 한 것으로 보아 생활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2. 필자은 어떤 이유에서 '과일, 채소, 약초를 재배하도록' 권장하고 있는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든 예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 정약용은 첫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부업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남새밭 가꾸는 일이다.'라 하여 가난한 선비가 취할 생활 태도를 말하고 있다. 국화를 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화가 단지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느끼게 하는 완상용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선비의 몇 달 동안의 식량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국화는 여러 가지 약효와 풍미를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생활 속에서 실학적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도록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아욱, 배추, 무, 가지, 고추, 마늘, 파 등을 골고루 기르도록 권하여 부를 탐하지 않는 선비의 청렴한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였다.
3. 이 글을 쓸 당시 정약용이 처해 있던 상황은 어떠했는지 조사하여 발표해 보자. => 정약용 :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襲翁) ·태수(苔戒)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안.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 출생. 1776년(정조 즉위)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李家煥) 및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功西派)의 탄핵을 받고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持平)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周文謨)사건에 둘째 형 약전(若銓)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副司直)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寅)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茶山) 기슭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4. 이 글은 약 200여년 전에 쓰여진 글이다. 이 글이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는지 말해 보자. => 이 편지는, 유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지녀야 할 경제적인 방책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으면서 그 결실을 얻는 보람을 느끼고 부지런함과 검소함으로 정신적 자세를 바로잡으라는 깨우침을 주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여유 있는 가정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항구적인 생활 규범이다. 또한 요즘과 같이 물질 만능의 시대에 물질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취해 자칫 나태해지기 쉽고 물자를 낭비하거나 사치하기 쉬운 우리들에게 근본적인 생활 태도를 바로 잡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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