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품의 농장이야기
김선희
연 날리기
아들아
연이 힘들어 내려오면
줄을 탁탁 쳐서 올려주렴
우리가 지쳤을 때
어깨를 쳐주면 힘이 나는 것처럼
네가 잡고 감당할 수 있다면
이 가느다란 실을 한 번 더
믿어봐도 좋겠다.
네가 꿈꾸는 세상이
하늘을 나는 연처럼
자유롭기를.
-김선희-
어렸을 때부터 나는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 길을 가다가도 꽃만 보면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꽃과 이야기 하는 것이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더 신났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까지 내가 집에 가지 않으면, 엄마는 나를 찾으러 아이들이 모여 노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으로 갔다. 산에 가면 반드시 꽃을 보고 있는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과하게 좋아하셨다. 농사를 짓는 농부였지만 술을 마시느라 농사일은 늘 뒷전이었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 농사짓는 것임에도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으시니 그 많은 일을 엄마가 해야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 대신 늘 일만 하는 엄마의 고생스런 모습이 안타까워서 엄마를 도왔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 고생하는 엄마. 그런 모습이 싫어서 어렸을 때부터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올라가 들꽃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나는 예쁜 것들 속에서 살길 원했지만 내가 처한 현실에는 예쁜 것이 꽃 밖에 없었다. 꽃을 보면서 어린 나는 다짐했다. 어른이 되면 꽃처럼 그렇게 예쁘게 살 것이라고.
스무 살이 되던 해에, 1년 동안 꽃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고, 21살에 대출을 받아서 화원 을 차렸다. 화원 안에서 꽃과 함께 하는 나는 세상 모든 것이 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꽃이 사람보다 더 좋았다.
32살에 38살인 남편(김태현)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하남시의 꽃 도매시장에서 화원을 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어머니는 혹여 내게 상처가 될까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며 나 스스로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임신하자 이번에도 힘들게 일하다 뱃속의 아이를 잃을까봐서인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화원 일을 도와주었다.
남편 덕분에 몸을 쉴 수 있던 탓에 무사히 아들을 낳았다. 시댁과 남편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 또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그때서야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게 보였다. 아들이 내게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하남시에서 살 때, 임대하여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3년 마다 이사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임대하여 있는 곳에 아파트 짓는다고 해서 보상도 거의 못 받고 쫓겨나다시피 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었으니 막막하고 너무 힘들었다.
여주에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흥천면에 화훼 생산 단지가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남편과 상의하여 여주로 오게 되었다. 여주에 정착한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나는 농촌에서 자란 터라 자연 속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기에 즐거운 추억이 많다. 하지만 서울사람인 남편은 시골로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여섯 살인 아들에게 자연이 주는 모든 혜택을 주고 싶었다. 결국 남편은 내 뜻에 따라 여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현재 문장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농촌에서의 삶을 100% 이상 만족한다. 6학년 학생 전체가 7명인데, 유치원부터 함께 한 아이들이라 모두가 가족처럼 지낸다. 아들은 화원집 아들답게 잡초도 뜯어다 심을 정도로 식물을 좋아한다. 그뿐 아니라 공작에 쓰는 공구도 따로 있을 만큼 공작도 잘한다.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화초를 가꾸는 내 옆에서 공작물을 만든다. 참 행복하다.
여주로 내려왔을 때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현재는 걱정 없이 산다. 강소농 교육 2년차인 올해는 농민후계자가 되었다. 좋은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다.
시설원예는 시설관리를 일 년 내내 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없다. 겨울철에는 난방과 화재에 신경 쓰느라 다른 계절보다 더 어렵다. 식물은 더우면 안 되기 때문에 여름에는 외차광망 시설이 되어 있어서 일반 하우스보다 시원하지만 그만큼 시설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여행도 남편과 교대로 다녀야 할 만큼 자유 시간도 없고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서로 예민해 질 때가 많은데, 원예 관리를 하느라 힘든 남편에게 스트레스 줄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래서인지 서로 싸울 일이 별로 없다.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흐를수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다.
서울문화에 익숙했던 남편은 여주로 와서 테니스를 치면서 건강이 좋아졌다. 요즘은 시골이 서울보다 더 좋다고 할 만큼 만족하니 여주로 내려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꽃에 관한 일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께 꽃 한 송이 안겨 주지 못하는 것이다. 꽃을 못 팔아서가 아니라 스승님의 은혜에 대한 마음의 전달마저 차단되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나의 모든 관심은 여전히 꽃과 식물에 있다. 내게 최고의 선물은 역시 꽃이다. 제 철에 피는 꽃의 아름다움은 형용하기 어려운 빛을 발한다. 예쁜 꽃을 남들은 돈을 주고 사는데 나는 꽃과 놀면서 돈을 버니 그 이상의 직업과 행복도 없다. 돈을 가치 있게 벌고 쓸 수 있게 해준 것은 꽃이 내게 준 선물이다.
좋아하는 꽃으로 직업 살고 꽃과 함께 하는 일상이 너무 소중해서 다른 일은 생각한 적도 없다. 꽃을 가꾸는 틈틈이 시를 쓴다. 시를 쓰는 농부가 되고 싶다. 그것이 꽃을 가꾸며 사는 나의 또 다른 꿈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
장다리꽃
긴 겨울을 지낸 빈 밭에는
농부들도 게으름이 한참인데
기척 없이 쑥쑥 올라와서
바람 따라 춤을 추던 장다리 꽃
햇님 멀어져도 괜찮은지
흰 눈 찾아와도 반가운지
때도 모른다는 소리에도
한들한들 잰 몸을 흔들어 주었지
느릿하게 가던 겨울 끝에
마지못해 답장하듯
밭을 갈던 울 아부지
지금은 네빛깔 옷을 입고
오래오래 누워만 계신다
농부로만 살았던 그 삶이
핑계대지 않고 왔다 가는
너와 같은지
좋은 거 없어도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