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유산 삿갓봉(1,418m) 산행은 오를 때와 하산할 때 모두 계곡과 함께 하는 전형적인 계곡산행이다. 흰 포말의 작은 폭포와 어른들도 수영이 가능한 소(沼), 선녀들이 목욕을 했을 법한 타원형 욕조모양의 웅덩이, 소와 폭포를 둘러싼 주변의 단애와 급사면의 울창한 숲이 이어져 과연 산행을 왔는지 유람을 왔는지 헷갈릴 정도다.
얼음물 같이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근 채 점심을 먹고 있자면 그냥 영원히 이 자리에 남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에다 곳곳에 밧줄을 타고 오르는 암벽과 철계단, 대표적 여름꽃인 원추리 나리꽃 초롱꽃 산수국 그리고 정상에서의 장쾌한 조망은 한 순간도 무료함 없이 일사천리로 산행을 즐겁게 해준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산행이 되리라 확신한다.
산행은 거창군 황점매표소 입구에서 10m 못간 오른쪽 아스팔트 길. 입구에 '삿갓골 대피소 3.4㎞' 팻말이 서 있다. 20여분 걸으면 덕유산국립공원측이 만든 주탐방로 안내판이 보인다. 나무다리를 지나면서 본격 삿갓골로 진입한다. 계곡물의 냉기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물살이 세고 소리 또한 시원하다.
'삿갓골재 대피소 1.7㎞' 팻말을 지나면 곧 쉼터바위. 이름 그대로 성인 30여명이 너끈히 앉아 더위를 식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반석이다. 산행도중 일부러 계곡물 쪽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산길에 몸을 맡기면 멀어졌다 다시 가까이 다가가고, 이따금씩 계곡을 건너는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계곡 쪽으로 쓰러진 나무에는 버섯이 자라고, 주변에는 덩굴들이 뻗어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산수화다.
들머리에서 1시간30분 정도면 마지막 계곡에 닿는다. '우수 위험'이란 팻말과 함께 밧줄로 계곡사이를 연결해 놓았다. 이후부터 산길산행. 삿갓골재 대피소까지는 800m 남았지만 심한 오르막길이라 만만찮다. 대피소로 향하는 마지막 긴 계단은 나무를 통으로 잘라 만들어 놓았다. 우측 샘터를 지나면 삿갓골재 대피소.
지금부터는 백두대간. 오른쪽으로 가면 무룡산(1,492m) 동엽령(1,320m) 향적봉(1,614m), 왼쪽으론 삿갓봉(1,418m) 월성재(1,240m) 남덕유산(1,507m) 방향. 대피소를 등에 지고 정면엔 월봉산 누룩덤과 그 뒤로 거망산 황석산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다가온다. 왼쪽 오르막길을 택한다. 쇠줄을 연결한 난간을 지나고 바위를 에돈다. 때론 밧줄을 잡고 오를 정도로 길이 재미있다.
이렇게 30여분 오르면 마침내 삿갓봉. 장쾌한 조망에 앞서 온 사방이 고추잠자리떼라 우선 놀란다. 오른쪽에 보이는 낙타봉처럼 연결된 잇단 봉우리가 산행방향이고 그 뒤쪽이 월성재. 오른쪽 길로 하산한다. 삼거리가 나오면 왼쪽길을 택한다. 산죽이 길따라 도열해 반긴다. 오르락 내리락의 반복. 난간도 지나고 밧줄을 잡고 바위도 오른다. 갑자기 주변이 노랗다. 원추리꽃 군락지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온통 원추리다.
월성재가 오른쪽에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서 지금까지 넘은 작은 봉우리가 대략 예닐곱개였음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3, 4분 후 마침내 남덕유산과 삿갓봉 사이의 안부인 월성재에 닿는다. 직진하면 남덕유산이고 좌측으로 가면 월성계곡을 거쳐 들머리인 황점매표소.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원점산행으로 가능한 코스다.
무룡산(無龍山 1,491.9m)전경
◈ 무룡산(舞龍山 1,491m)은 전형적 육산으로 남덕유 쪽에 약간 더 가까운 덕유 종주 구간의 중간쯤 되는 봉우리다. 용이 춤을 춘다는 의미의 무룡산은 아마도 이 산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수 차례의 굴곡이 요동치는 무룡산 주변의 봉우리를 총칭해 명명되지 않았나 싶다. 무룡산에 서면 동쪽으로 '돌불꽃' 가야산과 수도산 금원 황석 거망 월봉산, 서쪽으로 팔공산 구봉산 장안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행은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황점탐방지원센터에서 삿갓골(황점계곡)로 올라 백두대간을 내달리다 칠연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여름철 계곡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황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50m 전방에 위치한 '남덕유산 황점가든'을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입구엔 '삿갓골 대피소 4.2㎞'라 새겨진 이정표가 서 있다. 15분 뒤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물소리가 시원한 삿갈골로 접어든다.
완경사 숲터널 오름길인 데다 새소리 물소리가 한데 조화를 이뤄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삿갓골 대피소 1.7㎞' 팻말을 지나면 이내 쉼터바위. 적어도 20명이 너끈히 쉴 수 있는 반석으로 눈 앞에는 규모는 작지만 3단 와폭이 힘차게 흐른다. 생각보다 삿갓골은 말끔하게 정돈돼 있지 않다. 태풍이나 폭우 탓인지 바윗돌과 쓰러진 수목이 널브러져 있고 나무덩굴이 건들건들 몸을 가누지 못한다.
'우수 위험'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면 이제 계곡이 끝난다는 의미의 '마지막 계곡'이라 적힌 지점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70분. 이후부터 계곡을 뒤로하고 산길로 올라선다. 비록 삿갓골재 대피소까진 800m에 불과하지만 심한 된비알이라 산꾼들 간의 간격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마지막 100m는 급경사 나무계단. 계단 주변엔 지천인 보랏빛 벌깨덩굴과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가 눈에 띈다. 벌께덩굴은 이번 산행 내내 발견된다. 계단 중간쯤 우측엔 샘터가 있다. 급경사 계단의 종착역은 백두대간길이자 삿갓골재 대피소. 덕유 종주 산꾼들이 주로 1박을 하는 곳이다. 잠시 뒤돌아 보면 11시 방향으로 금원산을 기준으로 우측으로 수망령 황석 거망 월봉 괘관산 등이 산의 물결을 이룬다.
왼쪽으론 삿갓봉 월성재 남덕유, 산행팀은 오른쪽 무룡산 동엽령 향적봉 방향으로 오른다. 이때부턴 사방팔방으로 시야가 확 트이는 미세한 굴곡이 있는 능선길이라 조망의 산행이 시작된다. 정면 1시 방향으로 무룡산이, 뒤돌아 보면 두 개의 봉우리 중 좌측이 삿갓봉이다. 금강애기나리 애기나리 삿갓나물 개별꽃 등 발밑의 야생화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헬기장을 지나 25분이면 아주 긴 나무계단 앞에 선다. 멀리서 봤을 땐 무슨 산성처럼 보였지만 막상 다가가면 주변이 덕유평전 못지 않은 광활한 개활지다. 토사 유출 방지를 위해 완만한 사면을 그물로 씌운 다음 등산객을 위해 나무계단 설치라는 고육지책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무룡산(舞龍山) 정상표지석
해발고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이제 등로 좌측 저 멀리 무주땅이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은 나무계단이 끝난 지점에서 12분이면 닿는다. 대피소에서 2.1㎞, 하산 지점인 동엽령까지 4.2㎞ 남았다. 북쪽인 정면 안테나가 서 있는 곳이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이고 그 우측으로 중봉, 송계삼거리인 백암봉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이어지고 동쪽으론 수도산과 가야산이 보인다.
줄곧 외길에다 이정표가 서 있어 별 고민 없이 반대쪽으로 내려선다. 이번엔 늘푸른 산죽길이 기다린다. 잠시 뒤돌아보면 삿갓재 쪽에서 금원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기백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45분 뒤 전망 좋은 돌탑봉. 이정표 뒤로 보이는 저수지는 진안 구봉산 인근의 용당댐이며 남쪽으론 백운산 무룡산 삿갓봉 남덕유 서봉 장안산이 다른 각도에서 확인된다.
돌탑봉에서 19분 뒤 안부. 동엽령은 이제 1㎞. 우측으로 보해산, 금귀봉, 오두산, 비계산, 별유산 등 거창의 명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무룡산도 대간길이 무척 길어 길손들이 약간 무료해 함을 알았는지 암봉으로 등로를 막아 왼쪽으로 우회한다. 다시 시야가 트이면서 향적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전히 봉우리가 덕성스럽고 부드럽다.
마침내 동엽령. 우측엔 전망대 겸 쉼터인 덱이 조성돼 있다. 덱 아래로 내려서면 거창 북상면 병곡리. 하지만 이 길은 비법정 등산로로 묶여 있다. 산행팀은 왼쪽 무주군 안성면 칠연계곡 쪽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동엽령에서 20분 거리인 동엽령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안성탐방지원센터 쪽으로 하산했는데 지난 1997년부터 이 계곡길이 개방됐다. 안성탐방지원센터는 4.5㎞, 참고로 향적봉은 4.4㎞.
산죽을 따라 목재 덱과 계단이 조성돼 있지만 어설프고 불편하다. 이후 수 차례 계류를 건너 아름드리 수목들이 곧게 뻗은 숲길을 따라 거닐다 무지개 다리를 지나면 산을 벗어난다. 동엽령에서 1시간15분. 그 유명한 칠연폭포는 산을 벗어나 좌측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20분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