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달진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지훈상 등
뜨거운 돌/ 나희덕
움켜쥐고 살아온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놓고 펴 보는 날 있네 지나온 강물처럼 손금을 들여다보는 그런 날 있네 그러면 내 스무살 때 쥐어진 돌 하나 어디로도 굴러가지 못하고 아직 그 안에 남아 있는 걸 보네
가투 장소가 적힌 쪽지를 처음 받아들던 날 그건 종이가 아니라 뜨거운 돌이었네 누구에게도 그 돌 끝내 던지지 못했네 한번도 뜨겁게 끌어안지 못한 이십대 火傷마저 늙어가기 시작한 삼십대 던지지 못한 그 돌 오래된 질문처럼 내 손에 박혀 있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 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나를 춤추게 한 詩 한 수] 정도리에서- 나희덕
-------------------------------------------------------------------- 2009-10-20 08:24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정도리에서
-나희덕
모난 돌은 하나도 없더라 정 맞은 마음들만 더는 무디어질 것도 없는 마음들만 등과 등을 대고 누워
솨르르 솨르르 파도에 쓸리어가면서 더 깊은 바닥으로 잠기는 자갈들 그렇게도 둥글게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안개는 출렁거리지 않고도 말한다 저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조각배는 뭍에 매어져 달아나지 못한다 묶인 발을 견디며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그건 아니다
타오르지도 녹아 흐르지도 않은 안개 너머로 막막한 어둠의 등이 보이고 종일 돌팔매질이나 하다 돌아가는 내가 거기 보이고
☞출전: <그들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시집, 창비시선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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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전남 완도 정도리 구계등에 간 적이 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게 치는 그날의 정도리 풍경은 둥근 갯돌의 교향악이었다. 각기 다른 크기의 돌들로 구성된 악기가 바람소리에 맞춰 내는 음악처럼. 돌들의 크기는 수박크기에서부터 배, 참외, 감, 그리고 작은 것은 바지락 크기까지 각기 달랐다. 파도의 물결 따라 조약돌 굴러내리는 소리가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지금도 그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하다. 또르르 쏴, 또르르 쏴, 쏴 또르르, 쏴 또르르. 마치 쌀함박(바닥이 울퉁불퉁한 쌀 씻는 그릇) 위를 구르는 고둥소리 같다.
그 정도리의 갯돌을 오늘 새벽 나희덕 시인의 시 '정도리'로 다시 만난다. 시인은 조약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다. 흔히 조약돌은 원만함의 상징으로 얘기된다. 그러나 시인은 조약돌이 둥근 형상에 대해 '그건 정맞은 마음들만, 더는 무디어질 것도 없는 마음들만'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도 '등과 등을 대고 누워'. 이 시에서 '안개'와 '조각배'는 화자를 체념에 휩싸이게 하지만, 화자는 '아니다, 그건 아니다'고 절규한다. 정체된 현실 너머에 자리한 절망을 보고, '종일 돌팔매질이나 하다 돌아가는' 무기력한 자아를 직시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을 옥죄고 있는 '타오르지도 녹아 흐르지도 않는 안개'는 결국 안개처럼 한순간에 스러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빠진다. 그리하여 마음이 멍들고, 그 감정의 불순물은 마음 밑바닥에 모래알갱이처럼 응어리진다. 나희덕 시인은 우리를 일깨운다. 때로는 자신을 자책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하게 놓아두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직시해야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나희덕 시인의 이 시를 접하게 된 건 우연이다. 어제 오후 귀사하던 길에 회사 부근 횡단보도에서 '김수영 전집'을 팔에 안고 가는 여학생을 보았다. 때마침 내가 소장하고 있는 '김수영 전집 시 ·산문' 두 질중 여분의 한 질을 저 학생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해받을 각오를 하고, 그 여대생에게 제안을 하여 동의를 얻어내었다. 그리하여 김수영 전집을 챙기던 중, 역시 두 권이라서 따로 빼놓은 나희덕 시인의 시집을 넘기다가 '정도리'시를 발견한 것이다.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나희덕의 ‘와온에서’ 하늘·바다·뻘 세개의 해..
그네의 시는 대체로 아늑하고 따뜻해서, 혹은 슬퍼서, 어두워지는 골목길을 돌아 십오 촉 전구가 깜박거리는 누옥으로 들어서는 느낌이다.
거기, 헐겁고 지붕이 낮은 그 집에 ‘일몰’이 산다.
그네에게 일몰이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스름’이란, ‘소멸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의 발소리’를 듣는 그 저녁이란, ‘시간의 연대기적 순서에서 해방된’ 영원한 찰나이기도 하다.
나희덕의 시에서 이 일몰의 풍경은 여러 번 변주되거니와 최근에 내놓은 다섯 번째 시집 ‘야생사과’에 수록된 ‘와온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진화된 늠름한 일몰이다.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 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 지는 해를 품을 때,/ 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 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 해는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도솔가를 부르던 월명노인아,/ 여기에 해가 셋이나 떴으니 노래를 불러다오/ 뻘 속에 든 해를 조금만 더 머물게 해다오”(‘와온에서’ 부분)
신라 경덕왕 시절 어느 날, 해가 둘이나 나타나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는 변괴가 일어나자 월명노인이 도솔가를 불러 다시 해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설화가, 와온에서도 되풀이된다. 일몰의 와온에, 하늘과 바다와 뻘에 해가 셋이나 떴으니 월명노인을 불러 도솔가를, 그것도 한참 길게 정성을 들여 부르게 할 일이다.
일몰의 낙조 풍경으로 소문난 전남 순천시 해룡면 와온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온(臥溫)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름만으로도 시적이다. 이곳 와온의 일몰을 보기 위해 오후 4시 무렵, 나희덕(43) 시인과 순천역에서 만났다. 그 시간에 곧바로 와온에 가면 해가 지기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시인은 여수 방향 이정표를 보더니 향일암에 들렀다가 와온으로 돌아오는 건 어떤지, 물었다. “다친 발목을 끌고 향일암 가는 길/ 그는 여기 없고/ 그의 부재가 나를 절뚝거리게 하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동안/ 절,뚝,절,뚝,”으로 이어지는 시편도 이번 시집에 나온다. 순천과 여수가 그 정도로 가까운지는 미처 몰랐다. 그러니까 그네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멀었던 향일암까지 갔다가 어둑한 와온 해변까지 돌아오는 그 긴 시간의 차 안에서, 그것도 내내 운전석의 시인에게 조수석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방식이었다.“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뿌리에게’ 부분)
불과 스물셋의 청춘에 웅숭깊은 뿌리의 정서로 시단에 나선 나희덕은 이후 모성과 단정함과 절제된 이미지로 평가받는 시를 써왔다. 젊고 싱싱한 그이에게서 쏟아지는 시는 아늑하지만 성찰의 기운이 지배적이고, 따뜻하지만 쓸쓸해서 깊은 것들이었다. 시를 제쳐두고라도, 심지어 어떤 시인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돌아다니다가 “박완서 할머니와 지낸 것 같다”며 그를 보냈다고 했다. 무엇이 그를 일찍 깊게 만들었을까.
그는 지금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살고 있는데, 전화 한 통만 받고 광주역에서 이력서를 작성해 면접장에 간 뒤 교수로 ‘취직’했다고 한다. 국내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투명하고 공정한 교수 선발 방식이 나희덕에게 적용된 경우였는데, 그 당시 그네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이겨나가는 중이어서 더욱 빛을 발하는 미덕이었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조직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그네는 낯선 사람들이나 조직에 적응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보육원에서 태어나 대학에 갈 때까지 2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는 말을 듣고서야 내 질문이 부적절했음을 알았다. 나희덕의 엄마는 그네가 태어날 때부터 보육원을 관리하는 총무로 일했다. 어머니는 보육원의 수많은 고아들과 자신의 딸을 동등하게 대했다. 그래서 “자식이 너무 많으신 우리 어머니/ 나의 어머니라고 고집부리고 나면/ 웬지 미안해지는 우리 어머니”였다.
“뿌리뽑힌 줄도 모르고 나는/ 몇줌 흙을 아직 움켜쥐고 있었구나/ 자꾸만 목이 말라와/ 화사한 꽃까지 한무더기 피웠구나/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弔花인 줄도 모르고// 오늘밤 무슨 몰약처럼 밤비가 내려/ 시들어가는 몸을 씻어내리니/ 달게 와닿는 빗방울마다/ 너무 많은 소리들이 숨쉬고 있다// 내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진물이/ 낮은 흙 속에 스며들었으니/ 한 삼일은 눈을 뜨고 있을 수 있겠다// 저기 웅크린 채 비를 맞는 까치는/ 무거워지는 날개만큼 말이 없는데/ 그가 다시 가벼워진 깃을 털고 날아갈 무렵이면/ 나도 꾸벅거리며 밤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 고맙다, 비야. …고맙다. …고맙다.…”(‘몰약처럼 비는 내리고’ 전문)
터지는 비명이 그대로 시가 되었다는, 세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 수록된 시편이다. 그네가 아무리 힘들어도 낮은 자세로 포복하며 자학적으로 비를 맞으며 고맙다고 되뇌일 수 있는 태도의 근인은, 낮고 외로운 자들과의 동류의식에다 어머니의 기독정신이 합류한 결과 같다. 시인의 엄마는 일찍이 부산사범학교를 다니던 수재였는데 기독교에 심취해 산속의 공동체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방 앞에 널려 있는 빨래가 어찌나 눈부시게 희던지 거기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어쨌든 그런 부모 밑에서, 그것도 낮은 보육원에서 성장한 시인이었기에, 그네의 시에서 헌신과 모성과 따뜻함을 감추기는 힘들었을 테다. 물론, 나희덕의 시를 그의 성장배경으로 이리 간단히 해명하는 건 폭력일 수 있지만 그네의 시를 형성한 큰 밑그림으로는 유효하다.
여수가 지척인 줄 알았는데 정작 향일암은 한참 멀다. 이미 들어선 길, 돌아가자니 아쉽고 향일암까지 갔다가 와온으로 가자니 해는 이미 져버릴 것 같아 난감하다. 시인은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렇다”고 자조했고, 조수는 짐짓 “괜찮다”는 말을 연발했다. 우리는 숨 가쁘게 향일암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내려와 와온을 향해 다시 달려나갔다. 지는 해를 따라가는 형국인데, 빨리 가서 떨어지는 해를 받아내기에는 도로가 너무 막힌다.
5년 만에 새 시집을 내면서 그는 인터뷰할 때마다 “이제는 달라지겠다”고 선언했는데, 어느 매체는 이를 받아 “범생이 스타일에서 벗어나겠다”고 썼다. 하지만 그네는 “나는 절대로 범생이는 아니다”며 “남들이 그렇게 보았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사실, 어떤 선배는 20대 때 자신의 별명을 ‘전도부인’이라고 지어주었다고 했다. 까만 가방을 들고 까만 구두만 신으면 영락없는 전도사처럼 보일 거라고 놀린 거였다. 그네의 시가 윤리적이고 희생적인 내용인 데다, 구조나 정서적으로 일탈과 파괴가 아니라 수용하고 반듯하게 정리하는 세계여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했다. 시는 그러할지 모르지만, 그네 자신은 절대 범생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드를 흡입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 하교길에 우연히 동참한 이벤트였다. 그런가 하면 여학생 남학생 분리된 방에 들어갔다가 남녀의 다리가 합쳐진 침대도 일찍이 보아버렸다. 수돗가에서 달밤에 병을 깨뜨리며 싸우는 보육원 아이들도 자다가 일어나 보았다. 나희덕에게 이러한 체험은 어둠을 껴안게 만드는 동력이기는 할망정, 스스로 어둠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계기는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독정신, 그들의 사랑이 품어낸 온기의 힘이었을까. 그네는 “사유의 질서가 너무 완강해 우연이 끼어들 틈이 없는 거는 명징해지는 장점도 있지만 다른 데로 튀어나갈 틈이 없다”며 “내 시가 읽힐 수 있고 소통하는 힘이 거기에 있었던 건 사실인데 이제 실패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에서 일탈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윤리적 자아가 완강하고, 서정시 전통에 너무 익숙하게 길들여져 쓰기만 하면 시가 그럭저럭 되는 상태를 깨뜨려야 하는 게 과제”라며 “남들은 20대에 좌충우돌하면서 모험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안정된 세계로 나아가는데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어렵게 와온에 당도했지만 해는 이미 사라졌고, 뻘에는 밀물이 가득해 석양의 정조는 애당초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시인은 미안해하면서 예전에 와서 찍은 와온의 석양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다. 미안할 것 없다. 그네가 가져간 해만 내놓으면 될 일이다.
“저녁마다 일몰을 보고 살아온/ 와온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기꽃을 꺾어 바치지 않아도/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번은/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쪼개져도 둥근 수레바퀴,/ 짜디짠 내 눈동자에도 들어와 있다/ 마침내 수레가 삐걱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한다// 와온 사람들아,/ 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선생님, 저예요, 저는요, 배를, 너무, 타고 싶었어요, 항해사가 되어, 먼, 아주 먼, 바다에 나가, 영영,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오그라든, 왼손 때문에, 항해사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손이, 다시 펴질 수도, 없잖아요, 기억나세요, 제가 늘,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거, 그래도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차렸죠, 제 손이, 다시 펴질 수, 없다는 걸,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제 손을, 가만히, 꺼내어 잡아주셨지요, 선생님, 죄송해요, 인사도 못, 드리고 와서, 그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먼, 길, 떠난다는, 말이라도 전할 걸, 그래도, 바다에 오길, 잘, 했어요, 붉은 흙 대신, 푸른, 물이불을 덮으니까, 꼭, 요람 속 같아요, 그러니 제 걱정, 마세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세상이, 여기서는 그냥, 출렁거려요, 잡을 필요도, 없어요, 선생님, 제가, 보이세요, 유리도, 깨질 때는, 푸른, 빛을, 띤다잖아요, 부서지고, 부서져서, 나중엔, 저, 모래알들처럼, 작고, 투명해질, 거예요, 흰 물거품을 두 손으로 길어 올렸지만 손 안에 남은 것은 한 줌의 모래
아, 이 모래알이 저 모래알에게 갈 수 없다니!
시집 <야생사과> 중에서
< 대화 >
무당벌레와 나밖에 없다 추위를 피해 이 방에 숨어들기는 마찬가지
방바닥을 하염없이 기어가다 무료한 듯 몸을 뒤집고 버둥거리다 펼쳐놓은 책갈피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갑자기 기억이라도 난 듯 뒤꽁무니에서 날개를 꺼내 위이잉 털기도 한다
작은 전기톱날처럼 마음 어딘가를 베는 날개소리
겨울 햇살이 점박이등을 비추고 그 등을 바라보는 눈가를 비추면 내 속의 자벌레가 네 속의 무당벌레에게 말을 건넨다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는 어떤 것일까
냄새를 피우거나 서로의 주위를 맴돌며 붕붕거리는 것? 함께 뒤집혀서 버둥거리는 것? 암술과 수술을 드나들며 꽃가루를 헛되이 일으키는 것?
구석진 창틀에서 말라가기 전까지 조금은 벌레인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온기는 어떤 것일까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햇살 한 줌
< 심장 속의 두 방 >
― 나를 좀 지워주렴.
거리를 향해 창을 열고 안개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안개는 창을 넘는 순간 증발해버렸다
― 나를 좀 지워주렴.
짙은 안개를 들이키고도 사물들은 여전히 건조한 눈을 비비고 있었다
― 나를 좀 채워주렴.
바다를 향해 열린 창으로 안개가 밀물처럼 스며들었다 안개는 창을 넘는 순간 몸 속으로 흘러들었다
― 나를 좀 채워주렴.
의자가 젖고 거울이 젖고 사물들은 어느새 안개의 일부가 되었다
심장 속에 나란히 붙은 두 방은 서로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두 방을 오가는 것은 소리 없이 출렁거리는 안개뿐
上弦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다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月蝕
월식을 구경하러 숲으로 간 사람들 많지만 창문 하나 없는 수술실 복도에도 하룻밤 사이 수십 개의 달이 이운다
불이 환하게 켜진 수술대 위에서 점점 여위어가는 달
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이 해에서 가장 가까운 달에게로 걸어가고 있다 달 속의 해와 해 속의 달이 만나고 있다
저토록 밝은데 이토록 어둡다니, 네 얼굴이 차츰 여위는 것은 내 그림자 때문이다 미안하다, 너를 비껴가지 못했다
열리지 않는 수술실 유리문에서 컹, 컹, 컹, 절망의 개가 달을 잡아먹고 있다
-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2001) 중에서
門이 열리고
한 개의 門이 열려 며칠째 눈발이 천지를 메우더니 천 개의 門이 닫히고 발들은 모두 묶이고 말았네 마른 풀대도 시린 발목을 눈에 묻고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네 소리들도 갇혔네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가장자리는 얼어가지만 흐르는 물만이 門을 닫지 않아 나는 물소리 앞에 쪼그려 앉았네 천 개의 門이 닫히고 당신에게로 흐르는 水門만이 남았네 눈송이를 낚으려 하나 물에 닿는 순간 사라져버리네 젖은 눈 속에 젖은 눈, 그 열린 門으로 나도 따라 들어가네
조찬(朝餐)
깃인가 꽃인가 밥인가 저 희디흰 눈은 누구의 허기를 채우려고 내리고 또 내리나
뱃속에 들기도 전에 스러져버릴 양식을, 그러나 손을 펴서 오늘은 받으라 한다
흰 밥을 받고 있는 언 손들
묵튤립 마른 열매들도 꽃봉오리 같은 제 속을 다 비워서 송이송이 고봉밥을 받고 있다
박새들이 사흘은 쪼아먹고 가겠다
- 시집 <사라진 손바닥>(2004) 중에서
주옥 같은 영화음악 그리고 "팝 명곡" 피아노 선율..
우연히 창가 너머로 아름다운 피아노의 선율이 들립니다. 잠시나마 피아노의 선율에 빠져 봅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추억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주옥 같은 영화음악 그리고 팝 명곡을 피아노 선율로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