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 당구(billiards)
고대 그리스서 야외 스포츠로 시작… 순종은 창덕궁에 당구대 설치해 즐겼어요
당구(billiards)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입력 2024.05.07. 03:00 조선일보
순종이 구입한 옥돌대(당구대) 두 대가 창덕궁 옥돌실에 설치된 모습을 담은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울산광역시에서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열렸어요. 전국 17개 시도에서 2만2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습니다.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는 당구 종목에 출전한 93세 김상호 선수였다고 해요. 벨기에의 국기(國技)이기도 한 당구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당구의 원형은 기원전 400년쯤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이때는 지금처럼 실내에 당구대를 두고 공을 치는 스포츠가 아니라, 야외에서 나무로 된 봉으로 공을 맞히는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이 야외 스포츠가 실내에서 하는 당구로 바뀌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설과 프랑스에서 시작됐다는 설이죠. 프랑스 왕 루이 11세(재위 1461~1483)는 실내 당구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또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재위 1542~1567)도 개인 당구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이런 기록들에 따르면 당구는 영국과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이 야외 잔디밭 위에서 공을 굴리고 치던 운동을 실내에서 하기 위해 고안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다만 당시의 당구대 모양은 오늘날처럼 직사각형뿐 아니라 정사각형, 타원형 등 다양한 모양이었다고 해요.
당구는 19세기를 거치면서 큰 발전을 거듭했는데요, 이 역시 영국과 프랑스의 역할이 컸습니다. 영국에서 큐(당구봉)의 끝에 초크를 칠해 공이 더 잘 회전하도록 하는 방식이 처음 고안됐어요. 또 프랑스에선 큐의 끝부분에 가죽을 붙이는 방법이 개발됐죠. 이를 통해 당구는 급속히 발전하고 확산됐습니다. 1928년 벨기에에서 세계당구연맹이 창설됐습니다. 벨기에는 1940년대에 당구를 국기로 지정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에 당구가 보급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아요. 다만 1898년 미국공사관 서기관이었던 윌리엄 프랭클린 샌즈의 회고록에는 동료와 당구를 즐겼다는 내용이 적혀있어요. 이를 통해 늦어도 1890년대에는 한국에 당구가 유입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당구는 옥돌(玉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요. 1912년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순종(재위 1907~1910)은 창덕궁에 옥돌실을 마련해 옥돌대 두 대를 설치했어요. 그리고 월요일과 목요일을 옥돌 운동일로 정해 당구를 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해진 날짜 이외에도 당구를 빈번하게 치는 등 순종은 당구에 많은 흥미가 있었어요. 고종(재위 1863~1907)이 거주하던 덕수궁에도 당구대가 설치돼 있었다고 해요. 기록에 따르면 고종은 밤 늦게까지 침실에 들지 않고 당구장에서 공을 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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