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시나이 산(Mount Sinai, 히: הר סיני - Har Sinai)
시나이 반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역삼각형의 반도로
동서의 최대 너비는 210km, 남북의 최장 길이는 385km이다.
서쪽으로 수에즈만 및 수에즈 운하와 동쪽으로 아카바만 및 네게브 사막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및 가자 지구와 인접해 있고
북쪽은 지중해, 남쪽은 홍해와 접해 있다.
시나이 반도는 1967년 ‘6일 전쟁’때 이스라엘군에게 점령당했다가
1979년의 평화조약 규정에 따라 1982년 이집트에 반환되었다.
시나이 반도는 아프리카 북부지역과 아시아 남부지역을 가로지르는 광대한 건조지대에 속하며
토지의 높낮이가 완만한 북부의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겨울에 비교적 많은 125㎜의 강우량을 보이고, 여름은 건조하고 몹시 덥다.
남부 산악지대는 겨울에 비가 조금 내리며 얼음으로 덮이기도 한다.
여름엔 타는 듯한 뜨거운 햇살이지만 밤이 되면 서늘해진다.
시나이 반도에서 농업은 지중해 연안과 오아시스 주변을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나이 반도의 산악지대와 메마른 내륙에서 유일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베두인들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낙타나 양, 염소를 치며 유목 생활을 하고 있다.
남부 고산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산으로는
카타리나 성녀의 시신이 발견된 가장 높은 카타리나 산(2,642m)이 있고
모세가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2,285m)이 있다.
시나이 반도가 인류 역사 안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기원전 1260-1220년 사이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구원 역사의 핵심 장소로 시나이 산이 선택된다.
탈출 19,1-2 :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피딤을 떠나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
파라오의 딸에게서 자라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인이 한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는 미디안의 광야로 피신해 갔다.
모세는 광야에서 치포라와 결혼하고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생활을 하게 된다(출애 2,18; 3,1; 4,18; 18,1).
모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
(히브리어로 황량한 지역, 사막, 광야를 의미)으로 갔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불꽃 가운데에서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신비로이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집트의 손에서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출애 3,1-12).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을 아뢰어 “있는 나”라는 이름을 계시 받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하게 된다(출애 3,13-15 참조).
탈출 3,2-6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모세는 야훼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 바다를 건너
주님께서 약속한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이곳 시나이 산으로 와 머문다.
그리고 우리가 구약(舊約)이라고 부르는 하느님과의 사랑의 언약을 이곳 시나이 산에서 맺게 된다.
하늘 가장자리에 닿을 것만 같은 시나이 산의 최고봉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게 된 것이다.
탈출 19,20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갔다.”
탈출 31,18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말씀을 다 하신 다음,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돌로 된 두 증언판을 그에게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고 선언
(탈출 19,5-6 참조; 레위 26,12; 에제 36,28; 로마 9,26; 2코린 6,16; 히브 8,10)하신 곳이 바로 시나이 산이다.
탈출 19,3-6 : 모세가 하느님께 올라가자,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집안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려 주어라.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 줄 말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탈출 24,7-8 :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이리하여 메마르고 황량한 시나이 광야는 거룩하고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역사가 아만토스(K.Amantos)는 고대 세계에서 “시나이반도처럼 아무런 보잘 것 없는 곳이
이처럼 거룩하고 전설적인 곳이 된 곳이 없었다.”고 언급한 바로 그 장소가 된다.
이후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돌아서서 반역할 때 항상 예언자들을 보내어
‘광야’로 돌아오라고 하는 그 광야의 중심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상기시켜 주는
시나이 산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호세 2,16 참조)
이스라엘 신앙의 핵심적인 체험은 바로 출애굽 사건(탈출 20,2; 신명 5,6; 26,8; 여호 24장; 다니 9,15)이며
모세 오경의 중심 사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구약성경의 핵심 신학이 흘러나오는 원천이 되는 곳이 바로 시나이 산의 계약에 있다.
시나이 체류 이야기는 출애굽기 19장 1절부터 레위기 전체와 민수기 10장 10절까지 연결되는
모세 오경에서 가장 방대한 분량이기도 하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탈출 20,1-17)을 받고 다시 부름을 받아
시나이 산에서 사십 주야를 머무르며(24,12-18)
성소와 예배에 관한 계약의 법(20,22―23,19)을 받았다.
탈출 20,1-17 :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인류 역사상 모세만큼 위대한 사람도 없다.
모세는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탄생하도록 이끈 하느님의 중개자였다.
모세의 위대함은 야훼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듯이
‘많은 예언자들은 꿈과 환시 속에서 야훼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되겠지만
야훼 하느님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모세 단 한명 뿐이었다’(민수 12,6-8참조).
그러한 모세도 40년 동안의 광야 여정을 마치고 약속의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예리코가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에서 생을 마감한다.
외형적으로는 므리밧 카데스 샘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물이 솟아나게 한 사건
(민수 20,11-12; 신명 32,51 참조)에 있지만 약속의 땅은
모세를 포함한 출애굽 세대에게 허락된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보고 사귀시던 모세와 같은 예언자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신명 34,10 참조).
신약성경은 예수를 모세와 대조시키면서 예수는 새로운 법을 가르치는 제2의 모세로 묘사하고 있다.
모세는 광야에서 구리뱀을 들어 죄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지만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이며(요한 3,14-15),
모세는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백성에게 주었지만
예수는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주었다(요한 6,22-59).
모세는 계약을 맺으며 짐승의 피를 뿌렸지만
예수는 단 한번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완전한 제사를 바쳤고(히브 9,19-28),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비롯되었다(요한 1,17).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예수님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서에서 예언한 인물이며
수난을 통해서 그 예언을 완성할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느님의 산’의 위치에 대한 학자들 간의 몇 가지 주장들은 있지만
전통적으로 아랍어로 ‘에벨무사’라고 부르는 시나이 산을 모세의 산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초기 전승들에 기인하는데 3세기경부터 이집트에서 온 은수자들이
불타는 떨기나무 주위에 정착하면서 수도생활을 하였고,
4세기경에 이곳을 순례하면서 순례기를 남긴 에제리아 수녀의 기록
그리고 헬레나 성녀가 세운 성당과 그 후 유스티누스 황제의 성당 등이 그것이다.
지리적인 요인으로는 델타지역에서 탈출해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나이 반도 남단에 있는
구리와 터키옥 광산에 이르는 옛 이집트 도로를 따라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카데스에서 이곳까지는 가는데 거의 열하루가 걸린다(신명 1,2).
이스라엘 전승에서는 모세가 계약을 맺은 장소를 ‘하느님의 산’(출애 24,13; 3,1참조)이라고 하며,
북쪽의 전승(E-엘로힘계·D-신명기계)에서는 호렙,
남쪽의 전승(J-야훼계·P-제관계)에서는 시나이 산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시나이 산과 호렙 산은 서로 다른 산이 아니라 동일한 산이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기원전 9세기의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인 일 때문에 이제벨이 죽이려고 하자
브엘세바를 떠나 ‘사십일’(오랜 세월이라는 뜻)을 밤낮으로 광야를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당도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곳에서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1열왕 19,1-18 참조).
1열왕 19,8 :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시나이’라는 이름은 사계절을 다스리는 신인 메소포타미아의 ‘달 신’(Sin)에서 유래되었다.
이 산은 일찍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야훼의 산’이라고 불렸고,
아랍사람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이라고 하여 ‘에벨무사’(Jebel Musa)라고 부른다.
화강암과 바위투성이의 첫눈에 위험스럽고 접근하기 어려운 산맥으로 이루어진 불모의 이 산은
마치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산을 뒤흔들며 주님이 불 속에서 내려오실 것만 같다.”(탈출 19,16.18 참조)
구약성경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시나이 산이 세 번 언급된다(무으민 23,20; 뚜르 52,1; 틴 95,2).
메카에서 계시되어 유일신론과 메시지 그리고 부활을 다루고 있는 제23장 ‘무으민’ 20절에서는
모세가 창조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은 축복받은 산에서 축복 받은 나무 올리브가 자라나는 것을 이야기 한다.
무으민 23,20 : 시나이 산에서 나무를 자라게 하여 이것으로 올리브 기름과 식용 양념을 생산케 하였노라.
메카에서 계시된 이슬람의 기본 원리인 유일신과 메시지 및 부활과 보상을 다루고 있는 제 92장 ‘뚜르’에서는
뚜르 52,1 : 뚜르 산으로 맹세하사 (여기서 ‘뚜르’는 일반적인 산 또는 시나이 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그리고 메카에서 계시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푼 은혜와 부활에 대한
믿음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제 95장 “틴”에서 시나이 산을 두고 맹세함으로써
모세를 위대한 예언자로 믿고 있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에서도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틴 95,2 : 시나이 산을 두고 맹세하며
같은 뿌리인 야훼 하느님을 믿으면서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상념에 젖게 된다.
서로 다름을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함께 바라보는 동일한 것에 대해 나눌 수는 없을까?
같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저주하는 세상이 아니라
같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축복해주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신학이나 이념이 아닌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인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 내어주고 헌신하며 일치하는 모습 속에서
각자가 믿는 증거하는 신앙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해발 2285m의 시나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일반 순례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꼬불꼬불한 낙타길(정상까지 약 4.4km)이 있는데
이 길은 산 정상 근처까지 낙타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길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손전등을 밝히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십계명을 받은 곳이라고 해서 모세의 산이라고 부르는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낙타에서 내려 750여 돌계단을 더 올라가야 한다.
한라산(1950m)보다 훨씬 높은 시나이 산의 높이에 처음부터 기세가 꺾일 수도 있지만
카타리나 수도원이 해발 1500m의 위치에 있음을 상기한다면 충분히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높이이기도 하다.
평소 운동을 한 사람들에겐 2시간 반 정도면 걸어 올라갈 수 있다.
다른 길은 카타리나 수도원 뒤편에서 3700여개의 돌계단이 놓여 있는 직선거리의 길(약 2.6km)이다.
수도원에서 아론과 엘리야 예언자가 머물렀다는 샘까지는 약 1.6km이고
이곳에서 1km를 더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땀 흘리며 이 계단길을 만들었을 초세기의 수도자들은 천국으로 안내하는 계단이라고 믿었을듯하다.
실지로 카타리나 수도원의 아빠스였던 ‘성 요한 클리마코’는 수도생활과 성화를 위해 필요한 가르침으로
600년 경에“천국의 계단”(Ladder of Paradise)을 남겼다.
천국의 계단은 예수의 30년 숨은 생활에 맞추어 30개의 층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수도생활로 불림을 받은 이들을 천국의 문까지 인도하는 계단이 될 것이다.
마지막 30장은 정화·조명·일치를 다루는데 수덕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소 무욕에 있으며
수도생활의 최고 단계는 외적인 평화를 누리는데 있다.
가파르고 좁은 이 계단길은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오르는 길(주님, 자비를 베푸소서!)이기도 하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능선의 정상에 ‘고백의 문’이 있다.
초세기 순례자들은 이곳에 이르면 시편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하였다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다른 문이 하나 더 있는데 은수자 스테파노 성인은
이곳에서 순례자들에게 고백성사를 주었다고 한다.
시편 24,3-4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
숨을 헐떡이며 조금 더 오르다 보면 정상에 조금 못 미쳐 작은 평지에 사이프러스 나무와 샘,
작은 경당이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전승에 의하면 모세는 이곳에 아론과 원로들을 남겨놓고 홀로 산 정상으로 올랐다고 한다.
탈출 24,1-2 :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을 데리고 주님에게 올라와, 멀찍이 서서 경배하여라.
너 모세만 주님에게 가까이 오고 다른 이들은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백성은 아예 산으로 올라와서는 안 된다.”
또한 엘리야 예언자가 피신했던 곳이라 엘리야의 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이 엘리야가 피신했던 동굴, 하느님을 만났던 동굴이라고 한다.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은 산전수전 다 겪고 난 후의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1열왕 19,11-13 :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그러자 그에게 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야,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곳에서 다시 750여 계단을 더 올라가면 모세가 야훼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최고봉이다.
이곳은 카타리나 수도원으로부터 716m 높이 그리고 엘리야의 샘에서 157m 높이이다.
이곳에는 모세를 기념하여 4세기경에 기념성당이 들어섰고,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유스티아누스 성당은 산 정상에 길이 21m, 폭 11.50m로 상당히 큰 규모로 지어졌다.
14세기에는 회교사원도 산 정상에 지어졌었다.
삼위일체에게 봉헌된 현재의 작은 경당은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은 성당 터의 폐허위에
1933년에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상주하는 수도자는 없고
다만 정교회 수도자들이 기도를 위해 찾아오는 특별한 날에만 개방한다.
383년 시나이 산을 순례한 에제리아 수녀는 시나이 산을 방문한 느낌을 이렇게 남기고 있다.
“한가지 기묘한 것은 ― 이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섭리로 생각됩니다만,
하느님의 영광이 내려왔던 중앙 봉우리가 그렇게 높다 해도 산 밑에서는 그것을 느낄 수 없고
절정에 올라가 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곳을 구경하고 내려와서는 올라가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다르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하느님의 성산 시나이의 절정에 도착했습니다.
이 산이 구름에 덮혔던 그날 주님의 영광이 내려와 법을 주었던 곳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넓은 장소가 없기 때문에 작은 성당이 하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매우 아름다운 성당이었습니다.”
성녀 카타리나의 시신이 발견된 성 카타리나 산 위에는 성녀 카타리나에게 봉헌한 경당이 서있다.
시나이 산 정상에서 멀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부터는 시나이 산의 일출 모습
사막의 배-낙타
시나이 산을 순례하는 순례자들에게 아주 친근한 벗이 있는데 바로 ‘낙타’이다.
낙타의 힘을 빌려 하느님의 산에 오를 수 있는 것도 크나큰 은총이자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낮 시간에는 걸어 올라갈 수 있으면 좋지만 어두운 밤길에
그것도 초행인 시나이 산을 걸어 올라가기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낙타를 타고 정상 근처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
낙타에 앉아 졸음은 절대 금물이다!
장시간의 여행에 지친 나머지 안락한 낙타 등에 오르면 어느 사이에 잠이 들 수 있다.
가끔 낙타에서 떨어지는 사고들이 발생하는데 대부분은 졸음 사고라고 한다.
졸다가 언뜻 깨어났을 때 낭떠러지 쪽으로 가는 낙타를 보고 놀라서 허둥대다가 떨어지는 경우라고 한다.
넓은 안쪽 길로 가지 않고 낭떠러지 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면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낙타의 입장에서 보면 평생(?)을 오르내린 길이니까
그냥 믿고 편안하게 앉아 밤 풍경을 구경하며 오르면 된다.
낙타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아브람과 관련해서 이다.
기근이 심하여 이집트로 나그네살이하려고 내려간 아브람은 이집트인들이 두려운 나머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자 파라오의 대신들은 사라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녀를 파라오의 궁전으로 불러갔고
아브람은 그 때문에 선물을 받는 장면이다.(창세 12,10-20 참조)
창세 12,16 :“파라오는 사라이 때문에 아브람에게 잘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의 아내를 고향의 친족 중에서 데려오기 위해 종을 보내었을 때
종은 성 밖 우물곁에 도착하여 ‘낙타들에게 물을 먹여 주는 소녀가
하느님께서 이사악의 배필로 정해주는 표지’로 알겠다고 할 때
레베카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종과 온갖 선물을 실은 열 마리의 낙타 떼에게 물을 길어다 주었고
이사악의 아내가 되었다(창세 24,1-67 참조).
야곱은 20년 동안 장인 라반의 집에서 일 한 후 본고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나누어 태웠고,
이 때 라헬은 아버지의 수호신을 훔쳐 낙타 안장 속에 숨겼었다(창세 31,34 참조).
스바의 여왕은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의 솔로몬에게 찾아 왔었다
(1열왕 10,1-3 참조).
성경의 지정학적인 위치에 의해서 낙타는 이처럼 구세사의 시작에서부터 중요한 짐승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낙타는 하느님의 풍성한 축복을 가리키는 재산(욥 1,3 등)이기도 했지만
낙타는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아 부정한 짐승으로서 먹을 수 없는 짐승이었다
(레위 11,4; 신명 14,7).
신약성경에서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었고(마태 3,4),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 19,24)는 비유의 말씀을 하셨고,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하여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라고 책망하면서 낙타가 언급된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낙타가 여러 번 등장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눈에 익은 짐승이었던 것 같아.
어쩌면 성가정이 이집트로 떠난 머나먼 피난길과 돌아오는 길에
낙타가 성가정을 도운 길동무였었는지도 모르겠다.
낙타는 기원전 1800년 경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사이의 사막을 횡단하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다.
낙타는 특별히 건조하고 척박한 사막에서 적응하도록 창조된 생명체이다.
거친 모래 바람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긴 2줄의 속눈썹을 가지고 있고 콧구멍은 열고 닫을 수 있으며
긴 다리에다가 넓고 물렁한 발굽은 뜨거운 모래 위를 걷기에 적합하다.
두꺼운 가죽과 털은 한낮의 작열하는 햇살과 추운 밤을 견딜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낙타의 탁월성은 물을 마시지 않고도 3-4일
심지어 길게는 1주일 정도를 견디어 낼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낙타가 등에 난 혹에 물을 저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낙타는 등에 1개(아라비아) 또는 2개(중앙아시아)의 육봉을 가지고 있는데 육
봉은 평균 45kg의 지방을 저장하고 있어서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더라도 이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낙타는 가시 식물이나 건초 같은 사막의 형편없는 먹이로도 살아갈 수 있다.
낙타는 수분이 부족해지면 다른 조직으로부터 물을 흡수해 보충하는 특수한 순환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체중의 25%까지 물을 잃게 되더라도 견딜 수 있으며
조직 안에 잃은 물을 보충하기 위해서 10분 안에 100리터 정도의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낙타는 몸의 여러 기관 등에 평소 15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는 37도를 항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땀으로 온도를 조절해서
더워지면 더 많은 땀을 흘리게 되지만 낙타는 34도에서 41도까지
넓은 체온의 범위 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땀으로 소모되는 물의 양이 훨씬 적게 된다.
또한 소변에 요소의 농도를 높여 소변으로 배출하는 물의 양을 줄이고 있다.
낙타는 다리가 길며 양쪽 다리가 함께 움직이는 독특한 걸음걸이로 하루 45km 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
낙타는 적당히 길들이면 온순하나 귀찮으면 침을 뱉거나 발로 차거나 물기도 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암컷 낙타는 보통 12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으며 낙타 우유는 비타민 C와 D가 매우 풍부하여
유대인들이 우유나 치즈로 가공하여 상품화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너희와 함께 살아가면서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레위 26,12).
시내산 1부 - 이강근 박사
첫댓글 시내산 성지 순례지 설명 감사합니다.
형제 님~
자료 감사합니다.
주님의 날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