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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일(목) 새벽설교 마태복음 12:31~37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새찬송가 186장 영화로우신 주 성령 오늘은 마태복음 12:31~37 말씀을 중심으로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시면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하시며, 또한 사람이 하는 말로 의롭다 함을 받거나 정죄함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말을 조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에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이 말이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권면합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조심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31,32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늘 악의적인 말을 합니다. 이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는 용서하심을 얻습니다. 구약의 다윗왕도 간음과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교회를 잔멸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사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를 귀신의 재주로 왜곡하고, 하나님의 성령을 귀신의 왕이라고 모독하는 그러한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모독하고 구원을 훼방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죄에서 저희들의 입술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우리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주님의 용서와 사하심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끝까지 하나님의 용서를 거부하고, 그 분의 구원을 가로막으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적용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사하심을 얻는 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나와 내 이웃의 죄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33~35절). 예수님은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고, 나무가 좋지 않으면 열매도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가 나쁜데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무는 좋은 데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요, 진리입니다. 그러면서 33절에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죄를 지어도 주신 말씀을 듣고 회개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겉으로는 착해보여도 회개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아닌 ‘자기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겉으로 선한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선한 말을 하려면 먼저 나의 마음에 가득한 악을 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34절에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하는 말이지만, 내가 바로 ‘독사의 자식’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마음에 선이 쌓이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배척하고 성령을 모독하고 주님의 의가 아니라 나의 의를 쌓고자 열심을 내는 것은 마음에 악을 쌓는 것입니다. 선한 말을 하려면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르며 선을 마음에 쌓은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적용) 요즘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말로 나타납니까?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자 어떤 회개와 어떤 적용을 하시겠습니까? 셋째로, 내가 하는 말로 심판 받음을 알아야 합니다(36~37절). 36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주님을 모르기 때문에, 생명과 관계 없는 무익한 말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를 귀신의 장난이라고 말하는 바리새인들의 말은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7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거듭난 자들도 마찬가지로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옳고 그름의 말이 아니라, 생명과 구원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하나님은 100% 옳으십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나는 100%죄인입니다”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나보다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십니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한 그 생각을 말로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늘 감사와 찬양이 우리의 입술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런 말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을 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0-21)
박재석님의 큐티인 간증인 ‘좋지 않은 열매’라는 글입니다. 저는 현재 중장비 수출 전문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7년 정도 회사의 경리를 성실히 맡아오던 한 직원이 사직 의사를 밝혀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 직원에게 많은 대우와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따로 불러서 사직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던 그 직원은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 그리고 저의 차가운 지적과 불호령이 너무 힘들어서 이직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직원의 말로 인해 제가 좋지 못한 열매를 내는 좋지 않은 나무임을 인정하고 그 직원에게 바로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직원은 사직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저의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제가 교회에서는 비교적 온유한 척하려고 노력하지만, 가정과 회사에서는 차가운 말로 가족이나 직원들에게 상처를 주고, 내 뜻에 맞지 않을 때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이중적인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우울과 불안이 건드려지면 나도 알 수 없는 혈기가 올라와 폭발하곤 했고, 신경정신과에서도 ‘강박증과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는 진단도 받았습니다. 이런 저의 영향으로 둘째 딸이 소아 우울증 진단을 받아 현재 심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강박증과 완벽주의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수를 만났어도 나는 왜 늘 이런가’라는 자괴감과 더불어 ‘주님을 전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낙담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야 말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사하심을 얻지 못할 죄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저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증거하고 전하는 것이 가장 의롭다 함을 받는 일임을 믿고 스스로 더욱 겸비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적용 1) 저의 강박과 완벽주의라는 연약함은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솔직히 나누겠습니다. 적용2) 회사에서 먼저 말씀을 묵상한 뒤에 직원들과 대화에 임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나의 가정에서, 또한 나의 직장에서 나의 말은 어떠합니까?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낸다고 하신 말처럼, 내 마음에 선한 것을 쌓아두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늘 감사와 찬양과 자족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남을 더 먼저 배려하고 관용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쌓이기를 원합니다. 정죄하고 판단하는 마음보다는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자리 잡아서 우리이 ‘감사의 말, 사과의 말, 사랑의 말’로 변화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