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마을 고봉연 신부의 겨울 이야기
눈쌓인 대자연처럼 편안한 '털보 신부'
춘천교구 횡계본당 고봉연 신부는 요즘 무척 바쁘다.
신자라고 해봐야 엄마 등에 업힌 젖먹이까지 합해 100명이 채 안 되는 대관령 자락의 산골 성당인데도 토요 특전미사를 포함해 주일미사를 4대나 봉헌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 같은 스키철에는 사제관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값싸고 깨끗한 숙박장소 좀 소개해 주세요." "미사가 몇시에 있죠?" "스키 싸게 빌리는 데 아세요?" "주일학교 아이들 60명 데리고 가는데 식사를 준비해 줄 수 있나요?"
사무장도 없는 성당에서 이런 전화를 일일이 받다보면 귀찮을 법도 한데 고 신부는 그렇지가 않다.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용평리조트에서 '○○천주교회'라고 적힌 외지 승합차를 보면 안타깝죠. 저한테 먼저 연락하고 오면 이것저것 도와드릴 게 얼마나 많은데요. 여행객들이 찾는 좋고 저렴하고 독특한 것은 제가 얼추 꿰고 있거든요."
그는 한술 더 뜬다. 도시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몰려오면 같이 눈썰매를 타러 나가고, 스키 탈 줄 모르는 사람이 오면 스키강습 선생까지 자처한다.
구태여 눈썰매장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네 어릴 적에 그랬듯, 눈꽃마을 횡계는 비닐 비료부대 한장만 있으면 사방천지가 눈썰매장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스키 인파가 몰리는 횡계에서 사목을 하다보니 스키 실력도 예사롭지 않다.
그가 대관령 목장을 안내할 때 빼놓지 않고 보여주는 곳이 산등성이다. 이발사가 깎아놓은듯 크기가 똑같은 나무들을 가리키면서 자연의 상생(相生)에 대해 일러준다. 제 홀로 삐쭉 고개를 들면 바람에 쓰러지기에 똑같은 크기로 서서 매서운 겨울 바람을 이겨내는 나무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것은 사제이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도시생활은 단조로우면서도 빡빡하잖아요. 겨울 정취도 느낄 수 없고. 모처럼 큰맘먹고 겨울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눈쌓인 횡계의 대자연처럼 '휴식같은 신부'가 돼주고 싶어요."
그가 마음뿐만 아니라 성당 문까지 활짝 열어놓고 도시인들을 맞이하는 이유다.
횡계성당에는 담이 없다. 철제 대문도 없다. 3년 전 부임해서 그런 경계와 장벽을 모두 걷어냈다.
덕분에 사람들은 부담없이 성당에 찾아온다. 차를 몰고 가다 성당이 눈에 띄어 들어오는 신자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해 무작정 바람 쐬러 나온 경우다. 고 신부는 그들이 성당 경내를 서성이다 사제관 초인종을 누르면 용건을 묻지도 않고 문을 연다.
지난 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 보는 40대 후반 남성이 미사참례 후 면담을 신청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자살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미사에 참례하려고 왔는데 신부님 강론을 듣고나니까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고 신부는 그때 담과 철제 대문을 치운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화할 상대를 애타게 찾던 자살 직전의 남성이 행여나 철제 대문 앞에서 돌아섰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도시에서는 신자들이 신부님 면담하기도 힘들잖아요. 용건없이 만나는 것은 더 어렵고요. 이런 작은 성당에서는 시간을 다툴 일도, 사람을 막을 이유도 없어요. 우연히 들른 신자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돌덩이처럼 무거운 마음 속 근심을 내려놓고 가는 것을 볼 때가 제일 기뻐요."
고 신부는 사람을 좋아한다기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뭔가 아쉬운 게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한 예로 미사참례하러 오는 인근 군부대 장병들에게 사제관 전화는 공중전화다. '고무신 거꾸로 신으려는' 애인을 설득하느라 사제관 전화통을 붙들고 사정하는 장병이 그에게는 친동생 같다.
그는 사제와 수도자들에게는 사제관도 개방한다. 그동안 창고를 개조한 조립식 사제관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11월 새 사제관을 지어 입주했는데 2층에 잠자리가 넉넉하다.
"용평 횡계 일대는 사시사철 전국에서 여행객이 찾아오는 천혜의 휴양지입니다. 따라서 내 본당, 네 본당 구분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죠. 영적 휴식에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고 신부가 한마디 덧붙였다.
"스키장 왔다고 주일미사 거르지 마세요. 제가 매주일 오전 7시30분 용평스키장 내 타워콘도(사파이어실)에서 미사를 봉헌하니까 미사참례하고 나서 스키 타세요."
글=김원철 기자wckim@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heelen@pbc.co.kr
백색 설원으로 향하는 스키어들의 차량 행렬이 유명 스키장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지만 설원의 낭만에 취해 주일미사 참례까지 잊어서는 안되겠다. 유명 스키장 인근 성당을 안내한다.
◇ 강원도
▶용평리조트= 횡계성당(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033-336-1120)
▶보광휘닉스파크= 진부성당(평창군 진부면 하진부8리, 033-335-7202)
▶현대성우리조트= 둔내성당(횡성군 둔내면 둔방1리, 033-345-1215)
▶알프스리조트= 간성성당(고성군 간성읍 상리, 033-682-9004)
▶대명비발디파크= 양덕원성당(홍천군 남면 양덕원1리, 033-432-4034)
▶오크밸리= 문막성당(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033-734-5230)
◇ 수도권
▶양지파인리조트= 양지성당(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031-338-3374)
▶지산포레스트리조트= 이천성당(이천시 중리동, 031-635-0552)
▶베어스타운= 성토마스성당(포천시 가산면 마산리, 031-543-1267)
▶천마산스키장= 천마성당(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031-511-2011)
▶LG강촌리조트= 강촌성당(춘천시 남산면 방곡1리, 033-261-1004)
◇ 남부권
▶무조리조트= 무주성당(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063-324-0555)
▶사조마을스키장= 수안보성당(충북 충주시 상모면 온천리, 043-846-1351)
(사진설명)
▲꼬마 친구들과 신나게 눈썰매를 타는 고봉연 신부. 그는 외지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찾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고 같이 눈썰매를 타러 나간다.
▲눈꽃마을 횡계성당은 대문과 담이 없어 선뜻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고봉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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