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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누가복음 2:1–20 (참조: 미가 5:2, 이사야 1:3, 고린도후서 8:9, 빌립보서 2:6–8)
핵심 명제: 로마 제국의 호적령이라는 세속 권력의 칙령은 미가 5장 2절의 메시아 탄생 예언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도구에 불과하며, 여관에 머물 처소가 없어(우크 헨 아우토이스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 짐승의 밥통인 말구유(파브네)에 뉘이신 그리스도의 극단적 낮아지심 앞에서, 마리아는 목자들의 증언과 하늘의 계시를 흥분으로 소비하지 않고 심장 깊은 곳에서 조각을 맞추며 보존하는 침묵의 묵상(쉰에테레이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을 통해 참된 성도의 내면적 영성을 완성한다.
1. 서론: 제국의 칙령과 메시아의 탄생길
누가복음 2장은 세계 역사의 거대한 축과 구속사의 가장 낮고 은밀한 지점을 극적으로 교차시키며 문을 엽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에게네토 데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 엑셀덴 도그마 파라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온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카이 에포ρευ온토 판테스 아포그라페스다이 헤카스토스 에이스 텐 헤아우투 폴린)" (눅 2:1–3)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옥타비아누스).
그는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키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열었다 하여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아우구스투스)'라는 신적 칭호를 얻은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내린 칙령(도그마)은 제국의 군사력을 정비하고 식민지 백성들의 세금을 가혹하게 쥐어짜기 위한 인구 조사 명령이었습니다.
황제의 옥새가 찍힌 칙령 한 장에 지중해 세계 전체가 요동쳤습니다.
그리고 그 제국의 명령에 따라, 갈릴리 나사렛에서 만삭의 몸으로 진통을 겪고 있던 처녀 마리아와 목수 요셉 역시 다윗의 혈통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장장 140km가 넘는 험악한 겨울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했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에이스 폴린 다위드 헤티스 칼레이타이 베들레엠)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우세 엥퀴오)" (눅 2:4–5)
제국의 황제와 구속사의 하나님 섭리 대조
[ 가이사 아구스도의 시선 (세속 역사) ] ──> "내 제국의 부와 세금을 늘리기 위해 온 천하를 내 발아래 등록하라!"
자신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군주적 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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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도구로 전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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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능하신 하나님의 시선 (구속사) ] ────> 700년 전 미가 선지자의 예언 성취 (미 5:2)
"가이사의 칙령을 통해 나사렛의 만삭 여인을 베들레헴으로 이동시키신다!"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눈에, 로마 황제는 ‘만삭의 마리아를 구약 선지자가 예언했던 베들레헴 땅으로 운반하기 위해 쓰임 받는 일개 마부’에 불과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700년 전 선포했던 예언을 기억하십시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마리아가 나사렛에 그대로 머물러 아이를 낳았다면 구약의 예언은 파기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국의 가장 강력한 황제의 칙령을 동원하셔서라도 당신의 1점 1획의 성경 말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해 내셨습니다.
제5강은 호적령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절대 주권,
여관에 머물 곳이 없다는 원어 우크 헨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οὐκ ἦν τόπος ἐν τῷ καταλύματι)의 영적 실상,
짐승의 밥통인 말구유(파브네)에 뉘이신 메시아의 극단적 비하,
가장 천대받던 밤샘 목자들에게 임한 천상의 낭보,
그리고 복음서 최고의 영적 성숙을 보여주는 마리아의 묵상(쉰에테레이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을 심층 해부합니다.
2. 닫힌 문들과 거절의 밤: 카탈뤼마(κατάλυμα)의 비극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여정은 만삭의 산모에게는 지옥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요단 계곡을 지나 여리고를 거쳐 해발 770m의 베들레헴 고원지대로 올라가는 길은 뼈마디가 탈골되는 진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당도했을 때, 산모의 양수가 터졌습니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테케인 아우텐)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카이 에테켄 톤 휘온 아우테스 톤 프로토토콘 카이 에스파르가노센 아우톤 카이 아네클리넨 아우톤 엔 파브네)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디오티 우크 헨 아우토이스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 (눅 2:6–7)
“디오티우크헨아우토이스토포스엔토카탈뤼마티!”
“대저그들을위하여는여관객실(카탈뤼마)안에‘머물공간(토포스)’이전혀없었음이러라!”
(1) 카탈뤼마(κατάλυμα)의 역사적·문화적 실체
한글 성경은 '여관'으로 번역했으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 나오는 상업용 여관인 '판도케이온(눅 10:34)'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카탈뤼마: 고대 팔레스타인 민가에서 손님들을 위해 마련해 둔 ‘손님방(Guest room / 다락방)’을 뜻합니다(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유월절 객실'과 동일한 단어, 눅 22:11).
당시 베들레헴은 호적 하러 몰려든 다윗 가문의 친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방마다 돈 있고 세력 있는 친척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2) 우크 헨 토포스 (공간이 없음)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의 살갗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으나,
그분이 발을 디디고 누우실 ‘단 한 평의 공간(토포스)’조차 내어주지 않았던 타락한 인류의 비정한 현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0–11절의 비극적 요약:"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산모 마리아는 진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락한 잠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만삭의 여인을 문밖으로 밀어냈습니다.
3. 핵심 원어 발음 강해: 파브네(φάτνη) — 짐승의 밥통에 뉘이신 생명의 떡
손님방에서 쫓겨난 요셉과 마리아가 찾아 들어간 곳은, 고대 유대 가옥의 아래층이나 동굴 벽을 파서 만든 ‘짐승들의 외양간’이었습니다.
소와 나귀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고, 쥐와 파리가 들끓으며, 축축한 냉기가 감도는 축사 바닥에 마리아는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의사도 없었고, 산파도 없었습니다.
오직 거친 손의 목수 요셉만이 떨리는 손으로 탯줄을 잘랐습니다.
그리고 7절의 눈물겨운 장면:
“카이에스파르가노센아우톤,카이아네클리넨아우톤엔파브네!”
“그녀가아기를포대기(강보)로꽁꽁싸매어,‘짐승의밥통(파브네)’안에뉘었더라!”
'파브네(구유)'의 3대 구속사적 신학
[ 1. 이사야 1:3의 준엄한 고발 성취 ]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파브네)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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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베들레헴(떡집)과 생명의 떡 ] ────> 베이트-레헴(בֵּית לֶחֶם, 떡집)의 말구유(밥통)에 뉘이신 아기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떡이니(요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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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기 비하(케노시스)의 극치 ] ─────>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짐승의 밥그릇 밑바닥까지 내려앉으신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낮아지심
(1) 파브네 (φάτνη): 짐승의 먹이통
고대 팔레스타인의 구유는 나무 상자가 아니라, 석회암 바위를 대충 파내어 짐승의 여물과 풀을 담아두던 거칠고 축축한 돌 밥통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는 비단 요람에 눕지 않으셨습니다.
침과 오물로 얼룩진 짐승의 밥그릇 속에 당신의 거룩한 몸을 뉘이셨습니다.
(2) 스파르가노오 (σπαργανόω): 강보로 싸다
가난한 자들이 아이의 체온을 유지하고 뼈가 굳도록 천 조각으로 꽁꽁 싸매는 방식입니다.
영원하신 말씀(로고스)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거친 천 조각에 온몸이 결박당한 채 울부짖는 무력한 갓난아기의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이유: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복음적 선언:"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이 짐승의 밥통까지 낮아지셨기에,
짐승처럼 살다가 지옥으로 곤두박질치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식탁에서 영원한 생명의 떡을 먹는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지게 된 것입니다!
4. 첫 번째 하객: 밤을 지새우던 목자들과 천군 천사의 찬송 (눅 2:8–14)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의 탄생식에, 하나님은 로마 황실의 사절단이나 예루살렘의 귀족들을 초청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장은 베들레헴 들판의 가장 비천한 노동자들에게 날아들었습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포이메네스 에산... 퓔랏손테스 퓔라카스 테스 뉵토스 에피 텐 포임넨 아우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에포베데산 포본 메간)" (눅 2:8–9)
당시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목자들은 성전 제사법상 항상 부정하다고 여겨져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법적 권리조차 박탈당했던 극빈층 천민들이었습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밤,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퓔랏손테스 퓔라카스) 목자들.
바로 그 칠흑 같은 흑암의 들판 위로 하늘의 문이 찢어지며 주의 사자가 복음의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유앙겔리조마이 휘민 카란 메갈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에텍데 휘민 세메론 소테르 호스 에스틴 크리스토스 퀴리오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카이 투토 휘민 토 세메이온, 휴레세테 브레포스 에스파르가노메논 카이 케이메논 엔 파브네) 하더니" (눅 2:10–12)
“투토휘민토세메이온!휴레세테브레포스에스파르가노메논카이케이메논엔파브네!”
“이것이너희에게주어지는메시아의결정적‘표적(세메이온)’이니,너희가강보에싸여‘구유에누워있는갓난아기(브레포스케이메논엔파브네)’를보게되리라!”
황금 관을 쓴 아이가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대리석 침대에 누운 아이가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짐승의 밥통에 뉘어 있는 가장 초라한 아기’가 온 우주의 구원자(소테르), 기름 부음 받은 자(크리스토스), 만유의 주재(퀴리오스)이심을 알리는 천상의 역설적 표적(세메이온)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하늘의 군대(천군)가 동원되어 밤하늘을 가르며 터뜨린 우주적 대합창: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독사 엔 휩시스토이스 테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카이 에피 게스 에이레네 엔 안드로포이스 유도키아스)!" (눅 2:14)
5. 핵심 원어 발음 강해: 쉰에테레이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눅 2:19)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마구간 문을 열고 들어가,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목도했습니다(16절).
목자들은 자신들이 천사에게 들었던 그 엄청난 계시의 말씀들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낱낱이 쏟아놓았습니다.
마구간 곁에서 이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 목자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놀랍게 여겼습니다(에다우마산, 18절)’.
그러나 성경은 그 가벼운 호기심과 일시적인 흥분(에다우마산)을 보인 대중과,
어머니 마리아의 거룩한 내면적 태도를 칼로 자르듯 대조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헤 데 마리암 판타 쉰에테레이 타 레마타 타우타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눅 2:19)
“헤데마리암판타쉰에테레이타레마타타우타,쉼발루사엔테카르디아아우테스!”
“그러나마리아는이모든말씀들을(타레마타타우타),자기심장(카르디아)깊은곳에온전히간직하여지켜내며(쉰에테레이),그의미의조각들을하나하나맞추어깊이묵상하였더라(쉼발루사)!”
마리아의 침묵의 영성을 구성하는 2대 핵심 원어 발음 해부
[ 1. 쉰테레오 (συντηρέω): 보존하고 지켜내다 ] ──> 단순한 기억(Mneme)이 아님
외부의 소음과 의심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금고 속에 넣듯 철통같이 지켜냄 (미완료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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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쉼발로 (συμβάλλω): 조각들을 맞추어 묵상함 ] ─> '쉰(함께)' + '발로(던지다, 놓다)'
과거의 수태고지, 엘리사벳의 찬송, 구유의 비참함, 목자들의 찬양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구속사의 조각들을 서로 맞추어(Puzzle) 깊이 사색함
(1) 쉰테레오 (συντηρέω): 미완료 과거 시제의 지속성
마리아는 이 감격을 하룻밤의 추억으로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헬라어 미완료 과거형(Imperfect tense)이 쓰였습니다: "그녀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그 말씀들을 심장에 품고 보존하고 있었다(She kept continually guarding all these words)!"
사탄이 와서 의심의 부리를 쪼아 먹지 못하도록, 마리아는 심장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했습니다.
(2) 쉼발로 (συμβάλλω): 구속사의 퍼즐을 맞추다
쉼발로: 서로 다른 파편들을 한데 모아 대조하고 비교하며 의미를 종합해 내는 고도의 지적·영적 묵상 행위입니다.
마리아의 머릿속에는 모순된 퍼즐 조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조각 A: 천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요 다윗의 영원한 왕위를 이을 자"라 선포했다.
조각 B: 그런데 현실은 여관방에서 쫓겨나 짐승의 똥 냄새 나는 말구유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다.
조각 C: 그런데 저 비천한 목자들은 천군 천사의 하늘의 찬양을 듣고 달려왔다고 증언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더니 왜 내 꼴이 이 지경인가" 원망하거나 실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불평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조각들을 ‘하나님의 구속사의 거대한 그림 안에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맞추어가며(쉼발루사)’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가장 깊은 경지인 ‘침묵의 묵상의 영성’입니다.
6. 구속사적 절정: 성육신의 말구유와 갈보리의 십자가 사형대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베들레헴 말구유의 밤을, 장차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겨진 채 버림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압축해 놓은 구속사의 거룩한 요람으로 해설합니다.
누가복음의 구조를 관통하는 장엄한 구속사적 수미쌍관을 보십시오:
베들레헴 말구유와 갈보리 십자가 사형대의 대조적 일치
| 구속사적 범주 | 공생애의 시작: 베들레헴 구유 (눅 2장) | 공생애의 완성: 골고다 십자가와 무덤 (눅 23장) |
| 강보와 세마포 | 아기를 강보(포대기)로 꽁꽁 쌈 (에스파르가노센) | 시신을 세마포로 꽁꽁 쌈 (에네튈릭센 시도니) |
| 뉘이신 자리 | 사람의 침대가 아닌 짐승의 구유에 뉘이심 (아네클리넨) | 한 번도 사람을 매지 않은 바위 무덤에 뉘이심 (에데켄) |
| 거절의 비극 |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 쫓겨남 (우크 헨 토포스) |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
| 함께한 자들 | 가장 천대받던 베들레헴 들판의 목자들 | 사형선고를 받은 십자가 좌우편의 두 강도들 |
| 증언의 주체 | 하늘 문이 열리며 천군 천사가 영광을 찬송함 | 하늘이 어두워지고 휘장이 찢기며 백부장이 의인이라 고백함 |
베들레헴의 말구유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십자가의 서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누울 자리가 없어 짐승의 밥통으로 쫓겨나셨고,
생애 내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8)" 탄식하셨으며,
마침내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조차
나무 십자가 위에 두 손과 두 발이 대못에 박힌 채 공중에 매달려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짐승의 밥통에 누우셨기에,
오늘 우리는 하늘의 영원한 왕궁에 들어갈 권세를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강보에 싸여 자유를 박탈당하셨기에,
오늘 우리는 죄와 사망의 사슬에서 영원히 풀려나 참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그 밤에 눈물로 응시했던 그 연약한 아기의 살갗은,
장차 저와 여러분의 모든 추악한 죄악의 형벌을 대신 받아 찢기실
‘하나님의 흠 없는 대속의 어린양의 거룩한 육체’였던 것입니다!
7.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내 안락함의 손님방(카탈뤼마)의 문을 열고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라
당신의 인생의 방에는 지금 누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 재물의 염려, 분주한 비즈니스, 자녀의 장래라는 손님들로 꽉 차서,
정작 내 영혼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는
"당신이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우크 헨 토포스)!"
문전박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의 방문을 활짝 여십시오!
세속의 욕망을 비워내고, 비천한 마구간 같은 내 심령 한복판에
주님께서 좌정하실 거룩한 처소를 내어드리십시오.
주님을 영접하는 그 비천한 마음에,
하늘의 평화와 영원한 생명의 빛이 환하게 비추어질 것입니다.
(2) 환경의 열악함(말구유) 앞에서도 원망을 멈추고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를 신뢰하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달려왔는데,
내게 주어진 현실이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냄새나는 마구간 구유일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하나님, 내가 주를 위해 헌신했는데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입니까? 왜 여관방 하나 주지 않으십니까?"
원망과 불평의 독을 쏟아내고 있지 않습니까?
마리아를 보십시오!
그녀는 축사의 바닥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구유는 하나님의 버림받음의 증거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사랑의 요람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의 자리가 비천한 구유 같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척박한 마구간에서 가장 찬란한 성육신의 기적을 완성하십니다.
(3) 가벼운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씀을 심장에 품어 조각을 맞추는 '쉼발로의 영성'을 회복하라
오늘날 수많은 신자가 은혜를 즉흥적인 감정의 불꽃놀이로 소비해 버립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 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세상의 수다와 소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 빼앗겨 버립니다.
마리아의 내면적 깊이를 배우십시오:
"쉰에테레이 판타 타 레마타 타우타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말씀을 귀로만 흘려듣지 말고, 당신의 심장 금고 속에 철통같이 보존하십시오(쉰테레오).
고난의 순간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말씀을 펼쳐 들고
삶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하나하나 맞추어가며 깊이 묵상하십시오(쉼발로).
묵상하는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심장에 새긴 자만이,
장차 닥쳐올 갈보리 십자가의 거대한 칼날 앞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8. 결론: 네 마음을 찌르듯 하는 칼을 향하여
베들레헴 마구간의 거룩한 밤이 지나고,
아기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천사가 일러준 대로 ‘예수(구원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눅 2:21).
그리고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요셉과 마리아는 젖먹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제물인 ‘산비둘기 한 쌍’을 손에 쥐고
성전 문을 들어서던 젊은 어머니 마리아.
그곳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평생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백발의 노선지자 ‘시므온’이 떨리는 두 팔로 아기 예수를 건네받아 품에 안았습니다.
시므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터져 나온 천상의 찬가: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러나 황홀한 축복의 기도가 끝난 바로 그 순간,
노선지자 시므온은 어머니 마리아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녀의 심장을 서늘하게 베어버리는 피 묻은 종말론적 묵시를 선포합니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흥하거나 패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카이 수 데 아우테스 텐 프쉬켄 디엘레우세타이 롬파이아)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영광의 아기 예수의 품에 안겨진 날카로운 칼날!
장차 갈보리 언덕 십자가 아래서
아들의 찢기신 살과 쏟아지는 피를 바라보며
어머니 마리아의 심장이 쪼개져야 할 처절한 수난의 예고!
제6강: 네 마음을 찌르듯 하는 칼 — 시므온의 비극적 예언과 성전 봉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