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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8-14(나사로야 나오라-사랑하는 자의 소리)
성경본문 : 아가 2:8-14
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나로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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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43-44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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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목사
할렐루야! 먼저 이러한 이야기를 옮겨 봅니다. 어떤 목사님이 무슨 병으론가 오랫동안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왜 그랬던지 화장하기로 결정이 되어 그 유해가 화장장으로 옮겨졌습니다. 종결 예배를 마치고 관을 화구안으로 밀어 넣는데 느닷없이 관속에서 똑똑 노크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주변 사람은 모두 긴장하였고 "관을 끌어내시오" "빨리 뚜껑을 베끼시오" 라는 누군가의 선창으로 급히 관 뚜껑을 열었더니 놀랍게도 죽은 목사가 벌떡 일어나 어정 어정 걸어나오지를 않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는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은 아니고 이 설교를 증언하는 김 목사가 오래전 어느날 밤에 꾼 꿈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때때로 나의 신앙 생활에 신비한 체험으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 그 죽음의 권세를 폭파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기와 기운이 이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의 동산에 충만하여 신비한 중생의 체험이 있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나는 최근 아가서를 공부하면서 그 말씀속의 오묘한 신비를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이 증언을 전개하기 위해 먼저 성서 속의 아가서의 의미를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서는 남녀의 애정관계를 담은 일련의 연가(사랑의 노래)입니다. 성서의 정경(66권)에 편입되지 않은 외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사랑의 연가인 아가서가 정경(正經)에 편입될 수 있었나? 이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가서는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나? 아가서는 저 원대한 구속사의 장(場)안에서 구원의 주체와 객체사이 곧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선민),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성도가 나누는 사랑의 관계와 그 관계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의 교감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는 실로 성서의 일관된 사상이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솔로몬 왕(신랑)과 술람미 여자(신부)와의 열정적인 사랑의 노래로 교창하는 장엄한 오페라 가극이라 하겠습니다.
이 아가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에 대하여 우리는 먼저 성경의 전체 주제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 이를 요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의 역사와 그 원리를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성경은 신 구약 전체를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전개된 구속사의 원리를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하여 우리 인간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초청하는 계시의 책이라 하겠습니다.
만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적인 의미가 배제된다면 성경은 도덕 교과서요, 역사의 책이요, 문학 작품은 될 수 있어도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말씀이 그러한 것처럼 아가서도 하나의 구속사적인 예언서로 읽어야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 본문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 시작됩니다. 신랑이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선민)을 찾아 오셨습니다.
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님이 이 산, 저 산을 넘어 달려 찾아왔다고 합니다.
성경안의 알려진 산들은 모두 신앙과 구원에 관계지어 있습니다. 아담의 에덴동산, 노아의 아라랏산,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모세의 시내산과 호렙산 엘리아의 갈멜산,
그리고 예수님의 헬몬산,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 언덕은 모든 인간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을 찾아 오시는 노정이 산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 노루와 어린 사슴으로 묘사된 "사랑하는 자"는 유순과 평화를 상징하는 속죄 주 그리스도의 영상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의 눈에 비쳐진 신부의 현실, 신자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거기에는 벽으로 가려져 있고 창살이 처 있었습니다. 그 영혼의 속박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벽이란 불신과 죄로 주님께 등을 돌린 상태요, 창살은 회개와 감사, 기도와 찬양, 희생과 봉사, 용서와 나눔등 그 열린 마음을 가로막는 증오와 정죄, 교만과 독선, 부귀와 영화, 시기와 분노등의 장애물이랄 수 있습니다. 신부를 찾아온 신랑, 인간(선민, 신자)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이 벽과 마음의 창살 때문에 들어오시지 못하고 창문 밖에 서 계십니다.
지금 신부인 술람미 여자가 은총을 입은 선민(신자)이 시련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자만에 빠지고 가야할 길, 지켜야 할 자리를 헛디디고 있습니다. 신랑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벽과 창살안에 있는 가련한 인생을 애타는 사랑의 심정으로 주시하고 계십니다. 스승과의 관계를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베드로를 돌이켜 보신 것처럼 말입니다. 벽과 창살 안에 갇힌 인간, 그 속박된 영혼은 바로 내 영혼의 실상은 아닙니까? 우리는 벽과 창살 안에 갇혀있는 죄인 나의 실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자는 그 큰 은혜와 사랑을 잊고 한눈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눈은 네 몸의 등불이라"(마 6:22)고 말씀하셨는데 눈은 그 사람됨의 품성을 잘 나타내주는 곳이랄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돈 주머니에 눈이 쏠려 그리스도를 팔았고, 다윗은 밧세바에게 눈이 쏠려 큰 죄를 범하였고, 베드로는 넘실대는 파도를 보고 겁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그 눈의 향배가 흐려지면 헛디디게 됩니다. 눈의 초점의 향배가 한 인간의 생애를 조정해 줍니다.
내 마음의 눈, 여러분의 마음의 눈은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주식입니까? 정치입니까? 스포츠입니까?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이기에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 쳐도 여기에 빠지면 안됩니다. 예수에게 눈을 맞추세요. 그리고 아파하는 이웃에게 눈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나눠야 합니다.
저 지난 날 기드온이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치켜들었던 것처럼(사 7:19) 그 막힌 벽과 창살을 탈출하여 가려진 마음의 등불을 높이 치켜드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 신랑되신 주님의 음성을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벽과 창살안에 갇혀 있는 죄인, 그 속박된 영혼이기에 "은혜와 사랑의 배신자"라고 책망하심 직한데 오히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 나의 비둘기"라고 호칭하여 "일어나 함께 가자"고 강하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말씀은 공동번역으로는 "어서 일어나요, 일어나 나와요"라고 되어있는데 "어서 일어나 빨리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 벽과 창살 안에서 탈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11절의 말씀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하며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반복하여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율법시대가 물러가고 신약, 은총의 복음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가동되는 자연의 실상을 느끼며 그 생동하는 생명의 기운은 내 영혼을 흥분시켜 주곤 합니다. 동면에서 깨어나 기지개 펴고 꿈틀거리는 동물과 곤충들, 휴식에서 벗어나 싹트며 윤기를 뿜는 식물들을 마음에 느끼며 아마 이때 쯤 펼쳐지는 산과 들의 봄나들이를 하게 되면 꼭같은 영혼의 흥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어 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계속됩니다."아름다운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부드러운 네 음성을 듣게 하라"고 주문하십니다.
아름다운 얼굴은 어떠한 것인가?
불 신앙이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었다면 신앙은 주께로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믿고 눈과 눈,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얼굴이 바로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또 부드러운 음성은 어떠한 것인가?
저주와 비방, 조소와 모욕이 난무하는 암담한 현장,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라고 소원한 이 신앙의 한마디 말은 고난 당하시는 십자가상의 예수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실로 노도와 같이 광란하는 군중속에서 필경 은방울 소리 같이 들렸을 것입니다. 이 신앙의 음성, 회개의 간증이 곧 부드러운 음성입니다. 이 아름다운 얼굴, 부드러운 얼굴로 화답하시기 바랍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였느니라(말 3:16)" 하였고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마 10:32)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택받은 자의 고백과 증언을 경청하고 계십니다.
5장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또 들려옵니다.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야, 문 열어다오" 하며 문을 두드려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하여도 하나님은 사람을 멀리 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며… 우리의 영혼, 우리의 출입을 영원히 지키신다"(시 121:4-8절 참조)고 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열정이 식어 자족함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시어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하시었습니다. 그리고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6장 13절을 보면 또다시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의 합창소리로 들려왔습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초청입니까? 이 초청은 인간(선민)을 향한, 그러므로 나를 향한, 당신을 향한 우리 주님의 초청입니다.
오페라에는 그 이어지는 교창에 멋이 있고 흥이 있습니다. 초청에는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바로 우리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열심을 내십시오. 회개하십시오.(계 3:19 참조)
마음 문 활짝 열고 신랑 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 드리세요. 그 부드러운 음성을 들려드리시기 바랍니다.(아 2:14참조)
그리고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며 아가서와 요한 계시록 마무리 말씀처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이 우리 모두의 간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으로 오늘 증언의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잠든 영혼, 병든 영혼, 갇힌 영혼, 죽은 영혼을 지켜보시며 울고 계십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신 것처럼 "아무개 목사야 나오라" "아무개 장로야 나오라" "아무개 교인아 나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계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기적, 요셉 동산의 기적이 우리의 영혼 부활의 기적으로 이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끝으로 318장을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1,2절은 설교자가 3절은 성가대가 4절은 모두 같이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는 감사와 회개가 없는 예배, 용서와 나눔이 없는 사랑, 기도와 희생이 없는 봉사로 짐짓 자기를 세우고 높이려 하였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우리의 오만과 위선을 용서하시옵소서.
주여, 우리를 도우사 속죄와 부활의 은총으로 거듭나는 신비한 신생의 체험이 있게 하옵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