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생활의 3대 요소 (잠 23:26-28)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7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 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이 시간에 “경건생활의 3대 요소”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건한 노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의인 노아가 된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까요?
1.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26절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여기 네 마음을 내게 주라는 것은 맹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부모의 지혜를 존중하라는 뜻이며, 내 길을 즐거워하라는 것은 부모가 제시한 말씀과 훈계의 길을 기쁨으로 따르라는 말입니다.
여기 부모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주고 하나님의 길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뜻을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그런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비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그 마음이 비어 있었습니다.
마15:7-9에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요5:41-42에도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유대인들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고 하나님을 사랑함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다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곳에 마음이 가 있어 하나님께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빈 마음으로는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타서 일반인보다 더 악해집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께서 빈집의 불행을 잘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43-45절)
귀신 일곱이란 일곱이라는 숫자라기보다 밑바닥까지 타락한 완전한 타락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물론 일말의 양심조차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타락한 것입니다. IS 이슬람국가 얼마나 악합니까? 혹은 온갖 거짓말에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이비이단들도 그렇습니다. 사탄이 깊이 들어가면 조금의 양심조차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처럼 마음에 예수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은 어떻게라도 틈을 타서 악으로 채웁니다. 우리가 예수 공로로 죄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초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죄악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독일 라인강 기슭에 있는 로렐라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위에서 물의 요정이 머리를 빗으며 노래를 부르면 그 목소리가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워 뱃사공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난파당했다는 전설로 유명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아름다운 용모와 노래로 남자들을 미혹하여 파멸시키는 요정 싸이렌(Siren)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은 처녀이고 반은 새인 요정 싸이렌의 노래 소리를 듣고 무사히 통과한 배는 신화 속에 딱 두 번밖에는 없었습니다.
오르페우스가 탄 아르고호(號)가 그것입니다. 이 배는 싸이렌의 노래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오르페우스의 노래 덕분에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배는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돌아가던 오디세우스의 배였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의 충고대로 자신과 부하들의 귀를 틀어막고 몸을 배에 묶어놓았기 때문에 무사히 싸이렌섬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전설입니다.
이 이야기는 비록 전설이지만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귀를 막든지 마음에 다른 것으로 채우니까 승리할 수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사는 길입니다.
2. 경건하게 사는 길은 하나님이 두려운 분인 줄 아는 것입니다.
27절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여기 음녀나 이방 여인은 유혹의 대명사입니다. 그리고 깊은 구덩이와 좁은 함정은 야생동물을 포획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가진 보화 다 빼앗기고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구렁이나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죄가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땅은 물론 지옥에까지 끌고가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죄가 두렵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국가의 법이 두려워서 범죄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에 범죄할 수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범죄하는 것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몰라서 그래요.
마5:29-30에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그만큼 죄가 두렵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란 용서를 받아도 그 흔적은 남습니다. 왜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자국의 흔적이 있을까요? 용서해 주셨어도 흔적은 남았습니다. 이처럼 용서를 받아도 흔적은 있습니다. 게으름을 용서 받았어도 게을러 공부 못해 무식하거나, 일하지 않아 가난하고 고통 받거나, 자기 몸을 함부로 하여 망친 질고는 자기가 갖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낭비한 허송세월 회개한다고 다시 옵니까? 그러므로 지혜로운 마음을 갖기 위해 늘 성경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잠언이 모두 31장인데 왜 31장일까요?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부자학 31장’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 스티븐 K. 스캇이라는 사람이 “왜 31장일까?”라는 의문으로 오랫동안 고민합니다. 부와 31이란 숫자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그 때 그는 이런 권유를 받게 됩니다. “한 달은 31일이고 잠언서가 총 31장인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잠언서를 한 장씩 읽게. 30일 밖에 없는 달에는 두 장을 읽게나. 매일 제대로만 한다면 자네는 2년 안에 그 어떤 사장보다 똑똑하게 될 것이고, 5년을 하면 엄청난 부자가 될 거라고 내가 장담하지”
이 말을 들은 스티븐은 그 조언대로 매일 잠언을 한 장씩 읽었습니다. 2년 사이에 스티븐은 솔로몬의 조언대로 사업 파트너를 찾아 함께 마케팅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들의 회사는 몇 달 만에 한 주 매출이 백만 달러에 이르렀고 스티븐은 갑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부자만 되겠습니까? 자기가 몸담은 세계에 가장 앞서가는 정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 때문에도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워주어 보혜사 성령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오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자에 대해서 죄를 멀리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 했는데 이 둘은 상호 비례합니다. 얼마나 말씀을 묵상하느냐에 따라 죄를 더 멀리 할 수 있습니다.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더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 주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죄의 어리석음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모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고전10:5-11).
그래서 딤후3:15-17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3. 대상의 외형이 아니라 본질을 보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28절 “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여기서 강도를 비유로 음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도가 매복하는 것은 선한 의도 없이 처음부터 악한 의도를 가졌듯이 음녀와 이방 여인들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접근하지 않아요. 돈을 노리고 우리 영혼을 노리고 접근합니다.
잠5:3-6에도 경고했지요.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영적으로도 죽는 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이 말씀은 음녀가 자기 혼자만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의 풍조를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죄인 만들 것이라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생존을 이유로 이런 일을 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것이 산업이 되어 있고, 이런 세속의 풍조는 온갖 상품선전에 빠짐 없이 이용되고 있으며, 메스콤에서까지 시청률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두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국의 수상이나 대통령 국회 시장 유엔총장까지 나서서 동성애를 지지하고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온갖 악한 문화들이 우리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뻔뻔함이 소돔 같다고 했는데 죄를 보편화하는 이 악한 세대를 볼 때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눅17:26-30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런데 롯의 눈에는 소돔이 여호와의 동산처럼 보였습니다. 죄가 죄로 보이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도 자신이 영적으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면 문제는 쉽게 풀립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눈을 가지고 악한 영들을 분별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우리 주님께서 있으리라고 하는 바로 그 때를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을지라도 예수 공로로 승리에 설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비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선한 생각으로 가득히 채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선을 선으로 보고 악을 악으로 보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지혜롭고 거룩하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