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휴대전화부터 시계, 전기자동차,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배터리는 필수죠. 그런데 지난달 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 엄광섭 교수팀이 전기 저장 용량을 크게 높인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어요.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과학계에서 활발하게 개발 중인 대표적인 차세대 배터리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정식명칭 소듐)이 어떻게 배터리 소재로 사용되는 걸까요?
◇화학 반응을 전기로 만드는 배터리배터리는 화학 반응으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배터리는 크게 음극, 양극, 분리막, 전해질(배터리액) 등 구성 요소 4개로 나눌 수 있어요. 전해질 속에 금속판이 두 종류 들어있는데, 그 두 금속판이 전해질과 화학 반응을 하면서 전기를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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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안병현
금속판의 한쪽은 전자를 받아들이는 양극(+)이고, 다른 한쪽은 전자를 내보내는 음극(-)입니다. 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는 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고,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면 불이 나기 때문에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 배터리는 이렇게 두 금속판이 전해질을 통해 반응해 전자를 얻거나 잃는 '산화·환원 반응'으로 전기를 만들어내지요.
보통 배터리는 건전지처럼 한 번 쓰고나서 버리는 '1차전지'와 충전을 해서 계속 쓸 수 있는 '2차전지'로 나뉩니다. 납 축전지, 니켈 카드뮴 배터리, 리튬 이온 배터리 등이 2차 전지에 속해요. 과거에는 주로 니켈이나 납으로 2차전지를 만들었는데, 너무 무거운 게 흠이었어요. 이 때문에 충전으로 운행하는 전기차나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는 쓰기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안정적이지만 발화 가능성 우려 리튬 전지지금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2차전지는 리튬을 소재로 한 '리튬 이온 배터리'입니다. 무게가 니켈 배터리의 반밖에 되지 않아 가볍고, 같은 무게라면 배터리 용량도 3배나 많아요. 성능이 오래 유지되는 장점도 있지요. 전자를 쉽게 내놓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변환 효율도 좋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가 많이 쓰이는 가장 대중적인 제품은 스마트폰이에요. 스마트폰을 전원에 연결하면 양극(+)에 있던 리튬 이온(Li+)이 전해질을 통해 전자와 함께 음극(-)으로 향합니다. 양극의 리튬 이온과 전자가 음극으로 다 옮겨가면 충전(전력 저장)이 끝난 거예요. 반대로 음극(-)에 있던 리튬 이온이 전해질을 통해 양극(+)으로 가면 전류가 흐르고, 전부 양극으로 이동하면 방전(전력 사용) 상태가 됩니다.
다만 발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민거리입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강한 충격을 받거나 고온에 노출되면 액체인 전해질과의 화학 반응으로 불이 날 가능성이 있어요. 비행기에서 리튬 이온 보조 배터리를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 없는 것도 이런 점을 우려해서죠. 서울시에 따르면 2016~2018년 휴대전화나 전동킥보드 등의 리튬 이온 배터리가 폭발한 사고는 100여건에 달해요. 또 리튬은 아메리카 대륙과 중국, 호주 등 지구촌 일부 지역에서만 나오는 금속이기 때문에 희귀하고 값이 비싸서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어요.
산업계에선 이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리튬 이온이 오가는 통로인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만든 2차전지예요. 이 때문에 발화 가능성이 낮지요. 다만 고체 전해질은 액체보다 전도성이 낮고, 여전히 희귀한 금속인 리튬을 쓴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나트륨으로 만드는 배터리 주목과학계는 값비싼 리튬 대신 나트륨을 활용하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도 지난 201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앞으로 리튬 대신 나트륨을 배터리 소재로 사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나트륨 이온은 리튬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하기 때문에 리튬 이온 배터리를 구성하는 재료와 호환이 가능해요. 또 가벼운 데다 소금(염화나트륨)의 주성분이기 때문에 바닷물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가격도 리튬의 10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저렴하게 고성능 배터리를 만드는 데 유리한 거죠. 하지만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저장 용량이 작다는 게 단점으로 꼽혀요. 용량을 높이려면 전극을 두껍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경우 전기 저항이 커져서 배터리 수명이 짧아진다고 해요.
최근 지스트 연구팀이 개발한 나트륨 이온 배터리는 이런 나트륨의 단점을 해결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양극재(+)로 나트륨 화합물의 일종인 불화인산바나듐나트륨을 사용했어요. 불화인산바나듐나트륨은 일반 나트륨보다 전기를 많이 저장할 수 있지만 전기 저항이 크다는 한계가 있었던 소재였죠.
연구팀은 불화인산바나듐나트륨 양극재의 크기를 수백㎚(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로 만든 다음, 이 물질을 신소재인 그래핀(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전기가 잘 통하는 얇은 막) 표면에 균일하게 입혀 기존 나트륨 전극보다 두께를 5~10배 늘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전극의 두께가 두꺼워지더라도 전기가 잘 통하는 그래핀 성질 때문에 전기 저항이 커지지 않아요. 즉, 저장 용량도 크고 성능도 오래가는 차세대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인 거예요. 리튬 이온 배터리 못지않은 용량과 성능, 가벼운 무게를 가진 나트륨 이온 배터리 기술을 확보했다는 게 가장 큰 의의라는 평가입니다. 조만간 나트륨 이온 배터리가 상용화되는 날을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