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 開花
1
거품 부풀린 탕 속의 물뿌리 깊게 흘러 넘쳐 가장자리 섬세한 물결을 이룬다 배관(配管)의 낡은 통로로 오래 묵은 때들이 배설(排泄)된다 탕 안 가득 자연 향내 하수구로 흐른다 동트는 날마다 게워지는 향내 뒤 아픔 서성이는 물살이 소리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탕 안 가득 움츠린 사람들 종일 지쳐 때묻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자랑스럽게
아들의 때를 밀어주는 아버지, 어깨동무 나란히 거품 부풀려 한 올 두 올 얽어가는 때 타월의 심심한 액체 요란한 방울 소리로 흘러내린다 세월 따라 흐르는 어르신들의 걸죽한 입담 탕 안 곳곳 가득 메우고 절제된 수증기 절제된 온도 그리고 절제된 사랑. 까르륵 소리와 함께 흘러 비워져 가는 마음 창문으로 들어찬 어둠이 내내 흐렸던 하루를 잠재운다
2
소리 없이 아침이 들어찬다 텅텅 빈 탕 안 가득 한 주름의 물결이 맑은 마음 주르륵 배수구로 흐른다 밤새 헤어진 꼭지 틀어 새해는 콸콸콸 넘쳐 흐른다 한 줄기 햇살 물줄기 맑게 비추어 아름다운 탕 안,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조용하다 밤새 움츠렸던 사람들 비로소 기지개를 켜면 소복하게 내리는 눈 지붕 곳곳을 덮어가고 희망 가득 안은 인사 나누는 얼굴에 미소 가득하다 거품
사라진 탕 속의 물뿌리 흘러흘러 야위었던 시간이 채워져 간다 새로 흐르는 물결이 힘찬 포효로 일어선다 껄껄껄 걸죽한 웃음소리 절제되어 탕 안 가득 번진다 세월이 매만진 자리 새로 쌓인 때들이 물뿌리에 실려나간다 아침은 용기 있게 상처 있는 사람을 어루만지고 새해를 축복하며 내리는 눈은 자랑스러운 아이와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同床異夢이다
3
새해에 내리는 저 눈, 밝은 미소 가득 머금고 걱정 가득한 아버지에게 눈인사를 한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하루종일 굴려댄 눈사람 함께 번진다 드디어는 녹아나는 마음이 하늘 향해 양팔 벌린 사람들 환상 속의 무지개, 빛을 이루고 햇빛에 사라지는 눈처럼 녹는 마음. 탕 안의 비좁은 창가 겨우 비집고 힘차게 뻗은 하얀 줄기 비로소 햇살을 인식할 때쯤 떠오르는 아아 한 줄기, 저 강한 마음.
물살에 부풀은 새해가 힘찬 포효로 일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