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남 시인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2018년 제26회 전태일문학상 「방아쇠수지증후군」 외 2편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우리 독서지도사로 공부방을 운영하였으며, 고려대국제어학원(인천 논현캠퍼스) 국어논술 강사로 재직하였다. 시와 비평전문지 『포엠피플』 편집위원, 전태일문학상 시분과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 민예총 김포지부 문학분과 회원,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시분과 이사,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성남 시인이 정성껏 빚은 다양한 와인의 색과 맛 지닌 몽환적인 시들
200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후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가 2018년 제26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다시 시작했던 강성남 시인이 데뷔 15년 만에 첫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76번으로 출간하였다. 강성남 시인의 첫 시집 『당신과 듣는 와인춤』은 특이하게도 ‘와인’을 책 제목에 넣고, 각 부를 와인의 종류/특징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와인춤’이라는 생소한 시어의 연상과 상상 그리고 그 춤을 추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닌 ‘듣는’ 행위를 통해 다소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녀의 숨비소리를 이미지화한 표제시 「당신과 듣는 와인춤」에서 ‘와인춤’은 “가장 깊은 음역의 시(詩)”를 쓰는 행위이면서 “그가 그녀(의) ‘파’ 건반을 지그시” 누르자 물속과 수면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묘사된다. 와인을 따르거나 마시는 행위는 해녀가 바닷속에서 유영하거나 수면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다시 ‘와인춤’을 추는 것과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중첩된다.
ㅡ 김정수 시인의 시집 해설 중에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스위트와인
나비 · 13 물의 뜰 · 14 은행나무 제본소 · 15 물방울무늬 액자가 있는 방 · 16 나를 수선하다 · 18 블루오션 · 20 우리 집 시계들은 시간이 저마다 달라요 · 22 교보문고에서 당나귀를 기다림 · 25 이메일 · 26 빌려 쓴 이름 · 28 푸른 귀 · 30 빵과 골목 · 32 현대해상 · 34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소녀 · 36 안경이 왔다 · 39
2부 레드와인
임산부 배려석 · 45 0시에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 46 당신과 듣는 와인춤 · 48 냄비 속의 여자 · 50 DMZ 평화생태공원 · 52 소문난 경북집 · 54 화가 K · 56 봄비 · 58 여름, 만화경 · 60 타워리프트 · 62 오동나무가 있는 골목 · 64 봄날, 그들은 낚시를 다녔다 · 66 노란 담장이 있는 벽돌집 · 68 모자보건센터 607호실 · 70 만월(滿月) · 72
3부 로제와인
황구렁이 · 75 왕관을 쓴 파랑새 · 76 작약도 · 78 내가 바르고 싶은 색은 빨강 · 80 저기 불이 켜지네 · 82 녹음(綠陰) · 84 희망으로 와요 · 86 부자론(富者論) · 88 한글학교 가는 길 · 90 라식 · 92
괴어놓은 돌이 자주 흔들리는 정릉동 산허리, 새 교실 맨 앞자리엔 고향에 두고온 책상이 따라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광화문 앞에서 내리면 종로소방서가 보일 거야 청진약국을 끼고 한옥 담장을 따라가 서울 지리에 깜깜한 나는 아담한 ‘아담’이라는 요정을 용케 찾았다 커다란 나무 대문 안에 연못, 수면에서 반짝이던 물비늘이 일제히 나를 비추었다 마루엔 속저고리만 걸친 여자들이 화투를 치고 세상의 꽃들은 모두 모여 피고 있었다 주인 마담은 내 이름을 안다고, 빳빳한 지폐 한 장을 쥐여주었다 진홍색 모란처럼 온몸이 물들어 나오는 내 귀엔 드르륵 장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열세 살 분홍 원피스엔 자꾸만 꽃가루가 달라붙었다
봄이 그려준 약도 한 장 들고, 봄 속의 봄을 건너고 있다
구름도서관
나는 햇살 눈부신 들판 한가운데 서 있다 왼쪽 서가는 벼가 익는 논이고, 오른쪽 서가는 잔잔한 호수다 길 양편엔 오동나무 고목들이 줄지어 서 있다 헤르몬산에서 흘러들어온 눈 녹은 물일까 물빛이 투명한 에메랄드 빛이다 이곳은 주홍글씨가 사는 강물일까? 어쩌면 용이 사는 바다인지도 모른다 오징어와 감성돔, 왕새우가 자유롭게 헤엄쳐 다닌다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생명의 보물창고 배고픈 자에게는 빵을,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준다 서정(抒情)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는 인문학의 용사들 시집 한 페이지를 열자 나비와 새들이 날아오른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포도주와 빵을 진보시키는 것 아름답다는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할까 언어가 가슴을 대신할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빵의 행적을 따라가볼까 중세로부터 비단실을 뽑는다는 스테디셀러 몇몇 책들은 진주를 품은 듯 묵묵하다 거목들과 키가 나란한 젊은 벽오동 한 그루 봉황이라도 깃들기를 기다리는가 햇빛 속으로 뿌리를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