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 나태주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소리,
찌르레기 울음소리에도
뒷모습은 있을까?
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
산길을 내려가는
야윈 슬픔의 어깨가
희고도 푸르다
살아갈 이유 - 나태주
너를 생각하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다 힘이 솟는다
너를 생각하면 세상 살 용기가 생기고 하늘이 더욱 파랗게 보인다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나의 가슴은 따뜻해지고 너의 목소리 떠올리면 나의 가슴은 즐거워진다
그래, 눈 한 번 질끈 감고 하나님께 죄 한 번 짓자! 이것이 이 봄에 또 살아갈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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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나를 보고
나태주
가을이 나를 보고
고백할 것이 있으면 고백하라 한다.
죄진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빛진 것이 있으면 부채 명세서를 공개하라
한다.
고백할 것이 있으면서 고백하지 안히고
죄진 것이 있으면서 회개하지 않고
빛진 것이 있으면서 공개하지 않으면
청진기르 들이대겠다고
사뭇 으름장이다.
가을은 돋보기 안경알 너머
나를 관찰하는 누군가의 눈,
껌벅이지 않는 눈,
너무나 맑고 비정적이고
이지적이다.
가을 앞에서 나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한 마리 곤충
가을아,
잠깐만 너의 눈을 감아 주지 않으련 …
11월
詩/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마즌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 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가을도 저물 무렵
-나태주
낙엽이 진다
네 등을 좀 빌려주렴
네 등에 기대어 잠시
울다 가고싶다
날이 저문다
네 손을 좀 빌려주렴
네 손을 맞잡고 함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다
괜찮다 괜찮다
오늘은 이것으로 족했다
누군가의 음성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