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학자 동록(東麓)선생의 우조운묘遇朝雲墓(暮),조운모우(朝雲暮雨)>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동록(東麓) 선생의 문집 中, ‘우조운묘(遇朝雲墓)’라는 7언 시(詩)에 대해 살펴보자. 선생은 중국 고전 한시와 고사성어에 아주 박식하시어, 우조운묘 한시(漢詩) 속에 차운하고 인용한 중국 문인이 수십 명이나 된다. "소식(蘇軾), 두보(杜甫), 온정균(溫庭筠) 조맹부, 두목(杜牧), 장손좌보(長孫佐輔), 원교(袁郊), 고저(高翥), 백거이(白居易), 許渾(허혼), 방간(方幹), 王安石(왕안석), 이섭(李涉), 임제(林悌), 주부자(朱子), 안기도(晏幾道), 남효온, 사공서(司空曙), 이백(李白), 장중양(張仲陽), 육구몽(陸龜蒙), 이하(李賀), 이상은(李商隱), 황보염(皇甫冉), 위응물(韋應物), 설능(薛能), 유우석(劉禹錫)" 등이다.
선생은 이 많은 분들의 글귀를 인용하고, 때로는 문장 구성을 위해 직접 글귀를 짓기도 하며, 찬찬히 선생의 느낌을 표현하셨다. 이렇게 글귀를 많이 차용하여 쓴 문장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그 이유는 아마도 "옛것을 빌려서 지금 것을 비유하고 사물을 비유하여 인사를 징험한다"의 묘법을 강조 한 듯하다. 봄날에 밀려오는 만물의 생동과 자연의 풍경을 조목조목 꺼집어 내어 자연의 이치와 음양의 조화, 남녀의 원초적인 사랑을 멋지게 표현했다. 글을 번역하는 동안 몇 번이나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으나, 막상 다시 끝까지 읽어보니 최소 만권의 책을 읽어보지 않고는 이러한 퍼즐 같은 세밀한 묘사를 꿰맞추어 내기란 불가능했으리라 짐작된다. 시 절구마다 음율적으로 시구를 배열하여 시가 지닌 장단의 음악적 성질을 절묘하게 나타낸 선생의 감수성과 치밀함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 동록(東麓)의 우조운묘[遇朝雲墓(暮)] 조운모우의 뜻을 얻어
우조운모우(遇朝雲暮雨)는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라는 뜻으로, 남녀(男女)의 언약(言約)이 굳은 것, 또는 남녀(男女)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이고, 집구(集句)는 글의 한 귀, 라부왕선고(羅浮王仙姑)는 매화의 하늘나라 신선 할미. 容(용)
家注錢塘東復東 그대 집 앞에 흐르는 전당강이 동으로 다시 동으로
隅來江外寄形踪 모퉁이로 돌아온 강 밖에서 몸의 흔적 부친다
三湘愁髮逢秋色 삼강에서 흰머리 생겨나니 가을빛을 만났는데
半壁殘燈照病客 절벽에 둘러싸인 희미한 등불 병객을 비추네
艶骨已成蘭麝土 고운 인품 이미 이루고 난초와 사향의 향내 나는 땅인지라,
露華偏濕蕋珠宮 빛나는 이슬이 젖은 곳에 구슬로 꾸민 집이 모였구나
分明記得還家夢 분명히 기억하는 바, 꿈꾸듯 집으로 돌아가는데
一路寒山萬木中 한 줄기 뻗은 길, 우거진 숲속의 쓸쓸한 산(山)일 뿐
亦本錢塘江上女 또한 본래부터 전당 강가의 여인은
缺(修表)別淚越江邊 품행이 방정하여 이별의 눈물 강변에 드날린다
鶴歸華表添祈塚 학이 되어 돌아와 화표에 앉아, 무덤에서 기원하는데
燕蹴飛花落舞筵 제비는 흩날리는 꽃잎을 차서 그 꽃잎이 춤추는 자리에 떨어지네
野草拍霜霜拍日 들풀은 서리를 사랑하고 서리는 태양을 사랑하니
月光如水水如天 달빛은 물 같고 물은 하늘 같도다
人間俯仰成今古 인간세상 살다보니 이제가 옛날 되나니
只是當時已惘然 그저 그때부터 이미 망연하였다
三生石上舊精魂 삼생 돌 위의 옛 넋이여
化作陽臺一片雲 사랑한 남녀의 정교(情交)도 한 조각 뜬 구름인걸,
詞客有靈應識我 사객(문사)이 신령이 있어 나에게 응당 알리는데
碧山如畵又逢君 푸른 산이 마치 그림 같아, 또 그대를 만났구나
花邊古寺翔金雀 꽃 옆의 옛 절에 누른 참새 빙빙 날고
竹裏春愁冷翠裙 대숲 속 봄철 시름에 짙푸른 치마 낯설다
莫向西湖歌此曲 이 노래를 부르니 서호(西湖)로 향하지 말라
淸明時節雨紛紛 봄날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네
東望望春春可憐 동쪽으로 망춘궁을 바라보니 봄이 아름다운데
江籬漠漠行田田 막막한 강가 울타리 가다보니 줄지어 이어있네
繞籬野菜飛黃蝶 울타리 주위 들 나물에 노랑나비 날고
糝逕楊花鋪白氈 버들 꽃이 길에 가루같이 뿌려져 흰 모포를 펼친 것 같다
雲近蓬萊常五色 봉래에 가까운 구름 언제나 오색 빛이네
鶴歸華表已千年 학이 되어 돌아와 화표에 앉은 세월이 이미 천년이다
夢回明月望南浦 밝은 달에 선잠 깨어 남쪽 갯가 바라보니
血淚染成紅杜鵑 흘리는 피눈물 진달래 물들이네
浮雲漠漠草離離 떠도는 구름 막막하고 풀 무성한데
氊濕春(祝)䰌脚毛 축축한 담요가 봄을 맞으니 다리털이 흐트러진다
秋水爲神玉爲骨 가을 물처럼 맑은 정신과 옥처럼 고귀한 뼈대를 가졌고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귀비의 얼굴 같고 버들은 그녀의 눈썹 같다
鍾隨野艇回孤棹 종소리 따라 성 밖의 거룻배 외로이 저어며 돌아오는데
蟬曳殘聲過別枝 매미는 소리 지르며 딴 가지로 가는구나
靑塚路邊南缺盡 풀이 무성한 무덤 옆 도로변을 따라 남쪽 땅 끝 다다라
問君何事到天涯 그대는 무슨 일로 하늘 끝(변방)에 왔는고?
身前身後事茫茫 전생과 내생의 일은 아득하여 알 수 없는데
缺缺蘇州刺史猿 소주의 자사 벼슬 (구름 탄 원숭이 노리개 같은 것),
玉環歸後洞君泫 옥고리 돌려준 뒤에 마을 장정이 눈물 흘리며
白馬缺缺缺鶴聲 빛나는 백마 타고 기쁜 소식 전하네
長繞三珠樹花氣 언제나 세 개의 구슬 두르고 꽃향기 막으니
渾如百和香慙愧 온갖 것 섞어 만든 향이 부끄러워라
情人遠拜訪爲郞 사랑하는 이를 멀리서 절하고 낭군을 애타게 찾는데
憔悴却缺缺缺郞 이에 낭군이 도리어 초췌하게 되어 있구나
孤月無情掛翠巒 무정한 외로운 달, 푸른 산봉우리에 걸쳐 있고
金爐香燼漏聲殘 금향로 향불은 꺼져 가고 물소리 잦아드네
雲收雨散知何處 구름 걷히고 비 개이니 어디로 갔는가?
鬂亂釵橫特地寒 비녀 비뚤고 머리는 흐트러졌으나 두드러진 서늘함을 맛보리라
去日漸多來日少 지나간 날들은 너무 많고 올 날은 적은데
別時害易見時難 헤어질 때는 쉽지만 만날 때는 어렵다네
明朝爲約誰先到 내일 아침 맺은 약속, 누가 먼저 도착할까?
靑鳥殷懃爲揮秀 파랑새만 은근히 높이 날아 오르네
杏花踈雨入黃昏 살구꽃에 가랑비 내리니 황혼이 드리우고
奎屋無人見復痕 인적 없는 글 짓는 집에 언제 다시 자취 보일까
短䰌弄星愁有效 흐트러진 머리털에 별이 희롱하며 흉을 봐도 근심엔 효과가 있네
此身雖異性長存 이 몸은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身前身後事茫茫 생전에도 사후에도 일은 아득하여
欲話因緣恐斷腸 인연을 얘기하자니 애간장이 끊어질 듯
吳越溪山尋己遍 오·월의 계곡과 산은 두루 돌아보았으니
却迴烟棹上瞿塘 뱃길을 돌려 구당협(瞿塘峽)으로 올라가야지
그로부터 삼년 뒤에 이원은 간의대부에 제수되었고, 다시 이 년 후에 죽었다
関門不鎖寒溪水 관문도 차가운 시냇물을 잠그지 못해
環珮空歸月夜魂 옥패물 두른 채로 달밤에 헛되이 돌아온 넋이 되었네
倚柱尋思却恍惚 기둥에 기대어 깊이 생각하니 황홀함은 피했는데
夜寒皺玉倩誰溫 밤의 한기에 아름다운 주름, 따뜻하게 할 어여쁜 이 뉘더냐
萬紫千紅摠是春 가지각색의 꽃이 만발하니 이 모두가 봄이로세
登該天度一思君 자연을 헤아려 맞추어 산에 오르나 오로지 그대 생각뿐,
舞低楊柳樓心月 춤추는 누대아래 버들에는 달이 비치는데
香心梨夢裡雲風 향기로운 마음 생겨도, 배나무 꿈속에서 구름과 바람인 것을
景蒼蒼多少限陰 짙푸른 햇살 다소간 그늘을 만드는데
陰蟲切切不堪聞 슬픈 벌레 소리 차마 들을 수가 없네
思君以村應缺扷 시골에서 그대 그리워 하나, 헤아려 생각하니
書破羊欣白練裙 양흔의 흰 치마에 그린 글씨를 지웠구나
零落殘魂倍黯然 영락하여 잔약해진 내 마음 더욱 암담하여라
一身憔悴對花眠 일신은 초췌하여 꽃을 보고도 잠이 온다네
南園綠草飛蝴蝶 남쪽 동산 푸른 풀밭에 나비들이 날아다니는데
落日深山哭杜鵑 깊은 산 해 지니 두견새만 슬피 운다
天若有情天亦老 하늘도 정(情)이 있다면 사람과 같이 늙어 갈 것이고
月如無恨月長圓 달 또한 한(恨)이 없었다면 달은 길이 보름달로 있었을 것이다
此聲腸斷非今日 사람 애간장 끊는 이런 소리는 오늘날에는 없으니
風景倚俙似往年 이런 풍경은 어슴푸레하게도 옛날과 같도다
[주1] 전당(錢塘) : 전당강(錢塘江) 천하의 으뜸으로 꼽히고 신선의 소유처라 할 수 있다. 중국(中國) 절강성(浙江省)을 북동으로 흘러 항주만(杭州灣)으로 흐르는 강 삼각형(三角形)으로 열린 어귀는 만조(滿潮) 때에 해소(海嘯)를 일으켜 볼 만하며 경치(景致)가 좋음 옛이름은 점수(漸水) 절강(浙江) 길이 460km.
[주2] 삼상(三湘) : 중국 동정호 부근의 세 강, 소상, 자상, 원상강.
[주3] 병객(病客) : 늘 병(病)을 지니고 있는 사람. 포병객(抱病客)
[주4] 주궁패궐(珠宮貝闕) : 진주나 조개 따위의 보물로 호화찬란하게 꾸민 대궐
[주5] 화표학귀(華表鶴歸) : 옛날에 정령위(丁令威)가 죽어서 학이 되어 화표에 돌아옴. 화표(華表)는 묘지 앞에 세우는 것으로 망주석같은 것을 말한다. 고고한 신선의 자태를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며, 또한 인간 세상의 변천을 감탄하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주6] 백화향(百和香) : 여러 가지 향(香)을 합해서 제조한 향을 말한다.
[주7] 雨散雲收(우산운수) : 情事(정사)가 이미 끝남을 비유, 또는 서로 헤어짐을 비유.
[주8] 석상정혼(石上精魂) : 당(唐) 나라 때의 고승(高僧) 원택(圓澤)이 그의 친구 이원(李源)과 함께 삼협(三峽)에 이르러 어느 물 긷는 부인을 보고 이원에게 말하기를, "저 부인이 바로 내 몸을 의탁할 곳이다" "앞으로 12년 뒤에 항주의 천축사 뒷산의 삼생석(三生石)에서 서로 다시 만나자" 하고는 그날 밤에 원택이 죽었는데, 그 후 12년만에 이원이 약속한대로 그곳을 찾아가 보니 과연 원택이 재생하여 목동이 되어 노래하기를,"⌈三生石上舊精魂 賞月吟風不要論 慙愧情人遠相訪 此身雖異性長存⌋"삼생석 위의 옛 정혼이 풍월을 읊는 것은 논할 필요도 없네,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주니, 부끄러워라. 이 몸은 달라졌지만 본성은 길이 그대로라오." 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윗글에 소개한 노래는 바로 그가 처음에 천축사 앞에서 부른 것이다. 또 그가 떠나며 부른 노래는 이러했다.
[주9] 양흔(羊欣) :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헌지(王獻之)가 오흥태수로 있을 때 일이다. 그 고을의 양흔(羊欣)이라는 열두 살난 소년이 글씨를 잘 썼다. 왕헌지가 양흔이 보고 싶어 그를 찾아갔다. 그때 마침 양흔이가 새로 산 비단 옷을 입고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천진스레 잠을 자고 있는 소년을 보고 장난끼가 발생해 그 흰 치마에다 글씨를 써 놓고 돌아갔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스승의 글씨를 보고 감격해 더욱 글씨 공부에 정진해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다. 후세는 이일을 "서군(書裙)"의 고사로 기렸다. 위 시는 정혼성 선생이 거제 시골에서 글씨에 정진하며 " 서군(書裙)"의 고사를 인용해 안타까운 자신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나부선도(羅浮仙圖) / 서거정 (문집 外)
羅浮山下梅花樹 나부산 아래 크나큰 매화나무 밑에서
縞袂相逢思轉迷 소복 여인과 서로 만나 생각이 황홀했는데
惆悵酒醒人不見 서글퍼라 술 깨고 나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參橫月落翠禽啼 삼성 기울고 달 지고 비취새만 울었네.
[주1] 나부선도(羅浮仙圖) : 중국 수(隋)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조사웅(趙師雄)이란 사람이 일찍이 광동산 나부산(羅浮山) 송림(松林) 사이의 술집에 들렀다가, 말쑥한 소복(素服) 단장의 한 여인으로부터 영접을 받았는데, 때는 이미 황혼인 데다 아직 남은 눈이 달빛을 마주하여 약간 밝은 빛을 띠는지라, 조사웅이 매우 기뻐서 그녀와 더불어 얘기를 나누어보니 꽃다운 향기가 사람을 엄습하고 말씨 또한 매우 맑고 고우므로, 마침내 그녀와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는 그대로 쓰러져 자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그곳이 바로 큰 매화나무 밑이었는데, 위에서는 비취새가 짹짹 울어대고 사람은 보이지 않으므로 달빛 지고 삼성 기우는〔月落參橫〕 광경을 맞아서 서글피 탄식만 할 뿐이었다는 전설에서 온 말로, 나부선은 곧 그 매화의 여신(女神)을 가리킨 말이다.
[주2] 조운모우(朝雲暮雨) :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초(楚)의 회왕(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놀 때, 꿈에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무산(巫山) 남쪽에 사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모시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깨어보니 과연 운우(雲雨)가 있으므로, 무산에 조운묘(朝雲廟)라는 사당을 세웠다는 고사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