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생애노정 - 5권 제2차 7년 노정
제6절 1973년 통일전선 수호 (2)
3. 참부모님 미국 영주권 획득과 승축일 제정 제4차 세계순회중
미국 영주권 획득과 세계적 착륙 1973.4.30.
1차, 2차 순회강연이 끝난 후 1973년 4월 30일에 영주권을 받은 것입니다. 영주권을 받지 않고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주권을 받아 놓고는 싸우는 거예요. 예수가 죽었기 때문에 예수가 생전에 당하던 입장을 재현시켜 가지고 그것을 민족, 국가, 세계의 기준을 총합한 기반 위해서 탕감을 해야합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을 제거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천리의 도를 순리의 기준에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버런 문은 섭리사적 운명을 짊어지고 미국을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973년 미국 땅에 내리게 될 때 레버런 문은 무명의 한 청년같이 내렸지만, 3년 만에 미국을 뒤집었다 놓아야 되고, 12년 이내에 하늘편으로 돌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을 지고 내리는 줄 누가 알았어요? 아무도 몰랐다구요. 내가 미국에 가 가지고 한 것은 뭐냐? 인류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누구보다도 아벨을 사랑한 것입니다. 실천노정에 있어서 승리적 패권을 쥐어야 됐어요.
하나님을 위해서, 땅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데는 나 이상 심정적 기도를 한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통곡시킬 수 있는 한 아들의 모습을 가지고 인류를 붙안고, 해원성사란 원한의 터전을 붙들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나라가 문제가 아니었어요. 미국의 추방이 문제 아니었어요. 미국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구요. 하나님 앞에 인류가 추방당할 수모를 두려워했고, 미국이 망하는 것보다도 인류가 망하는 걸 두려워한 거예요. 세계의 이런 무리들 앞에 개인적 핍박, 가정적 핍박, 종족적 핍박, 민족적 핍박, 국가적 핍박을 받고 전부 다 싸워서 탕감조건을 세웠습니다. 그 기반 위에, 1973년 미국에 착륙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적 착륙을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 섭리를 위한 내적정비 1973.6.30. 민주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재차 영육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준, 가인 아벨을 복귀함과 동시에 실체 복귀기준을 세워 안팎을 맞추자 하는 것이 지금부터의 미국에서의 섭리역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년간을 중심삼고 승패의 결정을 보았던 것을, 한국에서 3년간을 중심삼고 승패의 결정을 보았던 것을 영적으로나마 승리의 결정을 보자는 것이 미국에 있어서 1974년까지의 3년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3년간에 승패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2년째가 최고 문제입니다. 예수도 이 2년째의 절반을 잘 못 넘겼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기간에, 6월 30일을 넘기고 7월 초하루로 넘어가는 시점에 놓여 있다 이겁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선교사를 보내서 먼저 동부와 서부, 두 곳에 배치했는데 동부에는 남자를 배치하고, 서부에는 여자를 배치했어요. 그리고 서북부에 남자 한 사람을 배치했어요. 이것을 보면, 동부의 박보희는 아담형이요, 서부의 김영운은 해와형이요, 서북부의 김상철은 천사장형입니다. 그런 형들로 보냈던 거예요. 이것이 하나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겁니다. 천사장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고 보는 거라구요. 1960년도의 환난시대를 통해서 이러한 섭리의 뜻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작전 밑에서 미국에 사람을 보낸 거예요. 그런데 내가 미국에 상륙하자마자 '총진군이다!' 라고 명령할 수 있는 기반이 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상륙하자마자 전부 다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1972년은 전진적인 해가 못 되고 내적 정비의 해로 삼고 이것을 수습하는 일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금년 1973년 6월말까지는 그 수습이 끝났다는 것이 원리로 보는 관이다 이겁니다. 그래서 전번 회의 때 50개 주에 안팎으로 기동대와 내적 교회를…. 이것을 확대하게 되면, 이것은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요,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거예요. 횡적으로는 교회조직이고, 또 한 편으로는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두가지의 면을 가진다는 거입니다.
기동대는 외적이고, 교회는 내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영향을 마치고, 선전을 했던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전번에 최소한 넷 이상 여섯을 표준해 가지고 배치를 완료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오늘을 맞기 위한 준비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어요.
승축일 제정 1973.7.1., 미국 1973년 7월 1일, 미국에서 '승축일(勝祝日)이라는 역사적 기념의 날 을 제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기념의 날을 한국에서 정했지만, 세계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날을 제정한 것은 처음 입니다.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을 마련하는 날입니다. 승축일은 제2차 7년노정에 있어서의 3년(1972~1974) 중의 절반의 고비를 잘 넘었기 때문에 제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잘 넘었기 때문에 승리를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리 사탄이 반대하더라도 반대할수록 사탄이 무너져 내려갑니다. 옛날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반대하면 할수록 사탄이 무너져 내려가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도 이젠 기진맥진 했습니다. 미국 같은 교회도 앞으로 반대할 여력이 없습니다. 불원한 장래에 우리 통일교회가 전국에서 태풍 같은 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본격적인 미국 활동을 1973년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건너가 통일교회 확장운동과 더불어 승공연합 운동을 제기하는 데는 통일교회 요원이 없어 가지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승공이니 반공이니 하면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상상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통일교회 요원들은 통일교회의 모든 기반을 닦음과 동시에 그 배후에서 공산주의를 방어해야 될 문제와, 교회 재부흥 운동과 청소년 몰락을 방지하기 위한 내적 교육 운동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됨을 강조하면서 그 내적 교육을 서둘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50개 주를 중심삼고 기반을 닦음과 동시에, 그것을 외국 선교 기반과 확대해서 연결짓는 놀음을 서둘렀습니다. 7.4 기념 축제 1973.7.4., 이남입감일 및 미국독일기념일 미국 통일기념일이 7월 4일로 선생님이 옥중에 들어간 기념일도 됩 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적으로는 옥중에 들어간 기념을 하고, 외적으로는 우려먹자 해 가지고, 낮에는 우리 기념일을 축하하고 밤에는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자 해 가지고 불꽃놀이를 했습니다. 그러는데 하루 저녁에 한 7천 불 들어갔습니다. 7천 불이야 뭐 사칠은 이십 팔 한 2백 8십만 원, 이것은 도박장에 가서 한 번 할 것밖에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7천 불 들여 가지고 '우리 불꽃놀이를 하는 3일 동안 전부다 오소' 하며 전단을 만들어 뿌렸는데 얼마나 모여 들었느냐 하면, 5천여 명이 모여 왔습니다. 가까운 데서 사는 사람이 온 것이 아니라 먼 데서 차를 대 가지고 40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데서 몰려왔거든요. 선전이 그런 선전이 없는 것입니다. 차들이 수백 대 왔어요. 대개 평균해서 한두 사람씩 타고 왔어요. 그것을 어떻게 요리 했느냐? 그걸 다 미리 준비한 거예요. 파티하는 장소를 미리 계약해 놓고 공원을 계약해 놓고 전부 하릇밤을 멋지게 놀아댔거든요. 빵빠앙- 놀아댔다는 거예요. 햐, 그 미국 불꽃놀이는 참 멋져요. 한국에서 하는 것은 멋대가리도 없다구요. 이래 놓았더니, 시장도 그날 친해지고, 판사, 대법원장도 다 친해졌습니다. 선생님이 하룻저녁 초대해 가지고 한국 요리를 잘 해 가지고 아주 늘어지게 잘 먹였거든요. 그러면서 '미국 독립기념일에 이와 같은 행사를 벌이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이날을 기억해 가지고, 미국 국민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오늘 이와 같은 대회를 하는데 비를 멎게 해 주니 얼마나 고맙소' 했더니 하하…. 자기 나라 복받는다고, 하니까 좋아하드만요. 제4차 세계순회 귀환 일정 1973.7.7.~22.
7월 4일에 그 대회를 하고 거기서 7일에 떠나 가지고 상항(샌프란시스코)으로 갔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한 8개월 동안에 기적과 같은 실적을 쌓고 돌아온 거예요. 사실은. 여기에 들어오니까 영계에서도 승리를 축하한다고 말이 나오더구만요. 승축일이라는 것을 딱 정해 놓고 나왔다는 거예요. 미국에서 7월 7일에 떠났습니다. 1973년 7월 7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승축일을 정해 놓고 7월 7일에 미국을 떠나 왔고, 아시아, 일본에 7월 8일에 도착했습니다. 이 날은 재출발의 날입니다. 그때 '일본에서는 반드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내가 일본에 가면 환영의 좋은 보고가 있을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됐습니다. 이번에 자민당, 일본에서 도의원 선거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지요? 공산당이 의기양양하며 자민당은 내 밥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국가 전체가 그 위협에 휘말렸고, 자민당 자체가 위기일발의 심각한 입장에서 선거를 치렀던 것입니다. 만일에 공산당이 전부 도의원들이 되는 날에는 일본 동경도(東京都)내에다가 토치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경찰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행정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구요. 그렇게 되면 일본 내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앉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급한 때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기도를 해 왔던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구보끼 협회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생님, 이러한 때인데 우리가 자민당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전적으로 협조하라고 했습니다. 42석의 자민당 의석이 28석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 평가였는데, 이것을 어떻게 막아 내느냐 하는 것이 자민당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제승공연합이 가당함으로써 42석에서 43석으로 늘어난 것 입니다. 역전이 된 것입니다. 선거 역사상에 기적을 일으켰다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자민당에서는 알고 있지만 일반언론계에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거를 치르고 난 후에 통일교회에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자민당 총재 차를 보내서 구보끼 회장을 모시러 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민당 전체 간부 앞에 우리 통일교회를 소개할 수 있는 길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야 됩니다. 그러한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통일교회의 뜻을 이루어 맞추는데 있어서, 성진군을 축복해 주는 입장에서 안팎으로 모자협조가 됐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딱 맞았는지 몰라요. 통일교회와 자민당이 지금 현재 가인 아벨 입장에 있는데 누가 먼저 찾아왔느냐? 외적으로 가인이 아벨을 찾아와서 모셔갈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교회로 보게 된다면, 해와 국가인 일본이 모자협조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협조할 수 있는 기반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고 한국과 공동운명의 자리에서 천적인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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