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에 자리한 조선 시대의 5대 궁궐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 이다. 조선 후기의 중요한 궁궐이였다.
경희궁이 창건된 것은 1617년(광해군 9)으로, 당시 광해군은 창덕궁을 흉궁(凶宮)이라고 꺼렸다.
정원군(定遠君)의 옛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창건당시에는 경덕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결국 왕위는 정원군의
장남에게 이어졌으니 그가 곧 인조이다.
인조가 즉위하였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은 인조반정과 이괄(李适)의 난으로 모두 불타 버렸기 때문에, 인조는 즉위 후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된 뒤에도 경덕궁에는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이따금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즉, 제19대 숙종은 이 궁의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났고, 승하한 것도 역시 이 궁의 융복전(隆福殿)에서였다.
제20대 경종 또한 경덕궁에서 태어났고,
제21대 영조는 여기서 승하하였다.
제22대 정조는 이 궁의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였고,
제23대 순조가 회상전에서 승하하였으며,
제24대 헌종도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1760년(영조 36)경덕궁이던 궁명을 경희궁으로 고쳤는데, 그것은 원종의 시호가 경덕(敬德)이므로 음이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창건 때 정전·동궁·침전·제별당·나인입주처 등 1,500칸에 달하는 건물이 있었고
그 뒤 1693년(숙종 19) 수리가 있었으며, 1829년(순조 29) 큰불이 나 회상전·융복전·흥정당(興政堂)·정시각·집경당·사현각 등 궁내 주요 전각의 절반 가량이 타 버렸다.
경희궁은 일제강점기에 건물이 대부분 철거되고, 이곳을 일본인들의 학교로 사용하면서 완전히 궁궐의 자취를 잃고 말았다.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로 380년된 느티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