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동물, 야채, 광물이 예술계에 등장했다 -
1960년대 후반에 제노바, 밀라노, 볼로냐에서 만큼, 주로 Turin과 로마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업을 함께 보여주기 시작했다.
결연히 기호적인 스타일을 피하고 모순된 생각이나 논리에 어긋나는 말을 긍정적인 가치로 격려하는 이 예술가들은
조각, 사진, 설치, 그리고 퍼포먼스에까지 이르는 작업을 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그들과 비슷한 경향을 가진 대지미술, antiform, 포스트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과 같은
다른 국제적인 예술가들을 포함하여 한 흐름을 형성한다.
이 작업이 ‘Arte Povera'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불쌍한 미술‘ 이 되지만 재료의 빈곤함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과 아메리카의 예술가들에게 Arte Povera의 영향은 즉각적이고도 깊숙이 미쳤고
그것의 위력은 아직도 전세계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움직임과 가장 깊게 관련된 예술가들 -
Giovanni Anselmo, Alighiero Boetti, Pier Paolo Calzolari, Luciano Fabro, Jsnnid Kounrllid, Mario Merz, Marisa Merz, Giulio Paolini, Pino Pascali, Giuseppe Penone, Michelangelo Pistoletto, Emilio Prini and Gilberto Zorio -
은 예술과 삶, 자연과 문화를 가로지르는 교차점에 주목했다.
그들은 재현, 이데올로기나 성문화된 언어를 통해 조정되지 않은, 직접적인 생명이 표출되는, 삶의 모든 형태로 나타나는 ‘최초의’ 에너지를 경험하는 데 따른 질료와 공간의 주관적인 이해에의 창조를 시도했다.
이 에너지는 한편으로는 기본적인 자연의 물리적인 힘[중력이나 전기와 같은]에 부합하도록,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본성의 기본적인 요소[생기, 기억, 감정과 같은]를 나타내도록 의도되었다.
때때로 아르떼 포베라와 관련맺은 다른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업또한 이런 관계를 맺었다)
Mario Ceroli, Claudio Cintoli, Piero Gilardi, Paolo Icaro, Eliseo Mattiacci, Aldo Mondino, Hedetoshi Nagasawa, Luca Patella and Gianni Piacentino 였다.
‘아르떼 포베라‘ 라는 용어는 1967년 9월에 젊은 제노바인 비평가 Germano Celant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처음 전시 카탈로그 에세이에서 ’Artepovera - Im spazio',라고 썼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일상적인 것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왔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시작했다. - 사실, 그것은 그것자체를 속여왔다. 물질적인 존재와 습관이 예술이 되었다. [...]
영화, 연극과 비주얼 아트는 반허위로서 그들의 권위를 주장한다. [...]
그들은 새로운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모방의 반영과 재현이나 언어의 관습으로 보이는 것들을 그들의 탐구로부터 제거한다.
그 새로운 예술을 Grotowsky의 연극에서 따온 용어로 ’poor' 이라고 부를 것이다.‘
Celant는 처음으로 아르떼 포베라를 소비자 사회를 거부하고
예술가를 ‘공급자‘로서 보지 않는 예술이지만 ‘인간활동의 자유로운 자기 객관화를 위한 개인전용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불쌍한 미술은 우연성, 이벤트, 역사에 무관심함, 현재[...] 인류학의 전망, “진짜” 사람[마르크스] 그리고 모든 시각적으로 단조롭고 조리있는 화법[...]을 버리는 희망[지금은 확실한 일]에 관계된다’는 것을 직시했다.
그래서 그것의 다양한 징후들과 관련된 사본들로 인해서 창조의 최초의 큰 파도로부터 30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아르떼 포베라를 뭐라고 규정하긴 어렵다.
그것의 풍부함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에 기초한다 ;
개념적인 동시에 감각적이고 문자적인 동시에 은유적이기고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현재의 자연적인 과정들과 기억을 통한 과거의 나타남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과 가까운 얘기이다.
기본적으로 현대 미술의 언어를 변형함에 있어서 아르떼 포베라는 문화적 관습의 정의를 넓히는 것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서양 예술사의 전제들을 바꾸었다.
개방성, 유동성, 주관성의 중요성의 뜻과 연결되는 부정과 복잡성의 수용이 아르떼 포베라를 모더니즘 위에 위치시키며, 우리의 지속적인 아르떼 포베라에 대한 이끌림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아르떼 포베라는 예술과 삶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미술 비평가 Tommaso Trini - 1960년대의 흐름에 동참하게 된 사람 - 는 아르떼 포베라를 다음과 같이 위치시켰다.
‘ “자연-인공“ 사이의 관계는 기술적인 테마이다.
인류학은 오히려 자연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그들은 동일한 구조들을 드러낸다. 문화의 생산물들은 본래, 자연적인 생산물들과 구분되지 않는다.’ 아르떼 포베라 작가들은 자연과 문화를 세속적인 제조된 요소들[네온관, 유리, 옷]과 유기적인 자연적 재료나 요소[채소, 살아있는 동물, 땅, 불, 물]를 통해 병렬적으로 연결했다.
이것들은 진짜 경험의 조정되지 않은 언어를 위한 새로운 알파벳을 제공했다-시각적으로나 언어로써나 구상적이지 않은, 형상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은. 비록 많은 아르떼 포베라 작가들이 화가로서 시작했지만, 그들은 캔버스 위에 그리는 그림을 넘어서 이동했다.
아래의 두가지 이유 때문에 -> 그것은 표현의 특정한 종류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과 인식을 위한 주요한 전달수단으로서 시각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적인 테크닉을 거부하진 않았다.
이러한 ‘전통에 반하는 전쟁’은 이미 피에로 만쵸니와 이브 끌렝을 포함하는 이전시대의 작가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전통적인 페인팅이 아르떼 포베라에 의해서 의존되고 사용되었을 때, 마리오 메르츠의 작업에서처럼 직접적이든지 안셀모나 파올리니에 의해 환유적으로 암시되었든지 간에, 그것은 과정지향 작업의 가능성과 그것을 결합시킴으로써 페인팅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으로 완결되어졌다.
모던 문화는 시각에 의해 규정지어져 왔고, 눈은 힘의 표상과 본부의 상징이 되어졌다. ‘수직선’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를 응시한다.
반면에 아르떼 포베라는 인식의 ‘수평적’인 개념에 위치하여 다른 지각에 의한, 감각적인 특질을 탐험한다.
야니스 쿠넬리우스가 커피를 사용했을 때, 예를 들면, 혹은 마리오 메르츠가 밀랍과 신선한 과일을 사용했을 때,
그들은 냄새의 감각에 초점을 맞춘다. 유사하게, 만짐의 느낌은 가끔 잘 가공된 질감의 물질들의 합성으로 인해 일깨워진다.
예를들어 피노 파스칼리의 작품 안에 있는 흙이나 철과 물, 지오반니 안셀모의 [숨 Breath] 에서의 구멍이 많은 스폰지와 무거운 금속, 루치아노 파브로의 [발 Feet] 에서는 거품과 유리와 실크를 사용한다.
그리고 마리사 메르츠의 소금 담은 그릇이나 차가움의 느낌을 만들어낸 피에르 파올로 칼조라리의 얼음 만드는 ice-forming 조각들도 있다.
1. 1960년대 중반 - 1970
2. 초라한 미술
3. 대개 일상적인 재료 사용한 3차원적 미술
4. 시멘트, 나뭇가지, 신문지 등
5. 자연이나 역사 또는 현대사회에서 추려낸 은유적 이미지들을 즐겨 사용
6. 현재 거의 이탈리아 미술에만 국한되어 사용
7. 이탈리아 국적이 아닌 프로세스 미술가들의 작품도 포함
8. 모두 비전통적인 재료와 형태 사용하여 자연, 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은유적으로 표현
Mario Ceroli -1949~55년 로마 미술원에서 공부한 조각가 마리오 체롤리Mario Ceroli(1938~)는
포장 사자에서 얻은 거칠고 두꺼운 판자로 도시나 사람들의 이미지를 만드는
‘사물-조각’을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아르테 포베라 경향을 좇아 거친 목재와 포장 상자로 전화기와 같은
공산품을 확대한 복제품을 조립했다.
또한 안과 겉을 모두 볼 수 있는 새장과 같은 구조물도 제작했다.
Mario Ceroli - La Cina (1966)-중국
10월6일부터 12월2일까지 로마 Palazzo delle Esposizioni 열리는 Mario Ceroli 전시회.
다른 메이져급 2개의 전시회보다 소규모이고 구석에 위치하다 보니 찾기가 어려워 지나치기 쉽지만, 로마 곳곳에 보이는 광고판의 강렬한 이미지가 떠나지 않아 굳이 찾아서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운 재료(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거의 쓰레기화 되어진)들의 질감과 공간감의 표현이 새로운 양상을 빚어내며 나름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학시간에 배운 화학기호들과 재료학 시간에 배운 자연소재들이 작품의 재료로 쓰여져 그것들을 찾는 재미에 빠져 나도모르게 만져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security의 빠른 경고에 무안하긴 했지만 그만큼 흥미롭다는 얘기.
염료들이 색깔별로(강렬한 색-원색이라기 보다는 채도가 높으면서 묵직함을 주는 색?) 바닥에 편쳐진 모습을 보노라면, 색에 무척이나 관심많은 나같은 사람들은 빨려갈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구석구석 공간활용을 이용하기도 하여 정해진 동선을 따라가야 하는 지루함을 없앤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지기도.
Mario Ceroli - Senza titolo 1938-무제
Mario Ceroli - Le ombre-그림자
이 작가는 여러 자연 재료를 사용하였는데 특히 나무를 이용하여 자르고, 조각하고, 레이어드 해서 붙이는 작업이 많았다.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
Mario Ceroli - Al negativo (1968) -부정적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