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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지인(知人)으로
기억할 이름들.
유난히도 사고와 사건이 많아서 가끔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여러분은 잘 지내고 있으신가요?
공무원 장원급제가 시작된 지도 3년이 되어 갑니다.
노량진에서 밤을 낮삼아 새벽의 고요함과 친해진 시간이기도 합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공무원 시험에서 합격을 기다리며 저처럼 밤을 새우는 분이 거기 또 계시겠지요.
카페를 운영하며 글로나마 많은 분들은 아닐지라도 수험생들과 소통할 수 있어 그리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문득, 연말(年末)이 되니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험생이 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아서 몰래 공부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직업이 되었고 어쩌면 소명(召命)처럼 생각하며 나름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수험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영어 한 과목으로 시작한 수험생과의 강의가 이제는 21과목으로 늘었습니다.
한 과목 공부하기도 힘든데 무슨 이렇게 많은 과목의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는지 많이들 의아해 합니다.
저 역시 힘이 들고 지치며,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글쎄요, 너무 많은 수험생을 만나봐서 일 것 같네요.
어림잡아 천여 명의 수험생들을 만났습니다.
상담을 위해 새벽차를 타고 오신 분들도 있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몸이 불편한 친구와 온 장애인 수험생 두 분, 주말마다 특강을 듣기 위해 매주 기차를 타고 오신 수험생분까지.
많은 사연들을 접하며 공무원 수험생으로 살아가고 계신 분들을 만났습니다.
저를 찾아온 수험생의 모습은 하나 같이 합격하고는 거리가 먼 현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할 줄 모르고, 공부를 한 적도 많지 않았으며, 시험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초보 수험생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들을 합격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남이 모르는 길을 찾아야 했으며, 남이 모르는 길을 제가 선택해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합격생을 만들었습니다. 잠을 두 시간 자면서 교재를 집필하고, 졸음을 쫓기 위해 머리를 9번이나 감으면서 새벽수업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이제 3년이 되어 갑니다.
공무원 장원급제를 만들고, 학습지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것이 어느 새 3년입니다.
그동안 하루도 장원급제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지하 서재는 저의 보금자리이며 공부 놀이터였습니다.
꿈을 만드는 공장처럼 누군가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공간이었으며, 저의 노력과 땀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험생 3년이면 조금은 지칠 시간입니다.
저 역시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뎌낸 시간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모두가 합격을 해서 떠나는 그 빈공간을
저는 지키고 있었으며, 새로이 만날 어느 수험생을 위하여 준비를 하곤 했습니다.
2014년, 추운 겨울 교실은 온기가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난방기구 하나 제대로 없이 시작한 열악함 속에서도 현진이와 단 둘이서 수업을 한 적도 기억이 나고, 한 명의 수강생을 앞에 놓고 행정법을 강의한 일도
기억이 납니다.
식당 주인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저를, 누가 알겠으며, 누가 저를 믿고 수업을 들었을까요.
그래도 믿고 따라와 준 수험생들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강사는 수강생이 있어야 강사인 것이지요.
그래도 바람이 하나 있다면, 공무원 장원급제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져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그들의 시간을 좀 덜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수험생이 잠이 들 때도 저는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수험생이 집에 갈 때도 저는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내하고 포기하며 장원급제를 위해 일하였습니다.
제가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증거가 되고 싶었습니다.
길을 안내하고 그들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장원급제의 주인은 수험생이며 저 역시 수험생의 삶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기적같은 합격으로 인도된 이들이 원하던 합격으로 인해 지금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러나, 꼭 그들이어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만이 선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게는 선택권이 없었으며 그저 인연(因緣)의 이끌림으로 우리는 만나게 되었을 테지요.
수험생의 상황은 천차만별입니다.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수험생도 있지만, 힘들고 어려운 역경 속에서 수험생활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부는 더불어 함께 합격으로 인도하고 끌어주는 교실이었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바다와 같아서 저만 잘 살고, 저만 배부르면 남의 고통은 잊는 법인가 봅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받고 세상의 역경에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도 저는 이곳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지하에 위치한 제 서재는 예전에는 수험생으로 북적이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넓고 쾌적한 장소에서 강의를 하고 수업을 듣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꿈을 키우던 곳이었지요.
대형학원의 틈바구니에서 억새풀처럼 살아남았습니다.
라면 한 끼 사먹을 돈이 없어도 책을 썼고, 원서사진 찍을 돈이 없을 때도 수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견디고 버틴 시간이 3년입니다.
무얼 위해 그리도 악착같이 살아왔는지 문득 돌아봅니다.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저의 초심(初心)은 저와 같은 젊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꿈을 접고 포기했으며, 아파하며 방황하던 스물 아홉의 제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노량진에서 만난 수험생들의 처진 어깨와 불안한 눈빛에서 젊은 날의 제 모습을 본 것이지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제가 직접 깨달은 바를 전하기 위해 아무도 하지 않는 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공무원 장원급제입니다.
초창기에 저를 도운 많은 분들이 그래서 참 고맙습니다.
수빈이, 세현이, 한근이, 완기 그리고 몽실이
그들이 있어 2017년도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2018년을 맞이합니다.
꿈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분들은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살아본 시간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공직(公職)을 수행합니다.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일하지만 결국 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을 위해 일하는 사명감과 보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천에서 많은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마(火魔)에서 인명을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한 공무원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끈 직업으로서의 공무원은 이 세상 어떤 직업보다도 소중하고 멋진 일들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해서 남용(濫用)하지 말기를 기원합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할 줄 아는 겸손함을 갖추기를 기원합니다.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하지 말고, 약자를 위해 봉사할 줄 아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늘 이야기하듯이 멋있는 삶을 살아야 할 시간에 공무원 수험생으로 살았던 날들을
잊지 말고 그때의 인내와 고민속에 성장하고 성숙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공무원으로 입문하기 위한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고 이처럼 귀한 시간에 공무원 장원급제가 같이 한 것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 장원급제는 가장 빠른 길로 합격을 인도했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겸손한 사람을 가르치겠습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을 가르치겠습니다.
공무원으로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귀한 분들을 가르치겠습니다.
하나도 지식이 없다고 찾아오는 분들도, 오랜 공부로 지친 수험생도 누구든지 가르쳐
합격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지 않으며,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권세에 의존하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수험생도
합격생으로 인도하였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섭리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아주 쉽게 저를 만나 합격을 하는 일도 만들었습니다.
저를 알리는 수험생은 많지 않습니다만 저는 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공무원 장원급제를 만나 2018년에 합격할 수험생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들을 애써 찾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어렵고, 조금은 겸손한
그래서 제가 해 줄 것이 있고 밤을 새우며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 시간이 그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힘이 들 때 자주 보던 어느 소방관의 기도입니다.
2001년 3월 홍제동 화재에 인명을 구하기 위해 화마와 싸우다 목숨을 잃고 순직한 어느 소방관의 책상에 있던 구절로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지요.
이 시는 A.W. “Smokey” Linn이라는 미국의 소방관이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어린이 세 명이 있음을 창문으로 확인했으나, 건물주가 설치한 안전장치 때문에 결국 구출하지 못한 일을 겪고 나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1958년에 쓴 시입니다.
When I am called to duty, God
whenever flames may rage,
Give me the strength to save some life
Whatever be its age.
Help me to embrace a little child
Before it’s too late,
Or some older person
from the horror of that fate.
Enable me to be alert
And hear the weakest shout,
And quickly and efficiently
to put the fire out.
I want to fill my calling
and give the best in me,
To guard my neighbor
And protect his property.
And if according to Your will
I have to lose my life,
Please bless with Your protecting hand
My children and my wife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집중하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제천 화재로 고통받는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을 소방대원들의 노고에 진심어린 존경을 표합니다.
첫댓글 항상 불철주야 고생이 많은 원장님. 감사합니다. 마음에 큰 도움이 되어준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힘내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원장님의 노고, 가치관,철학, 따스함을 늘 들어 알고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따뜻하신 원장님~~
멀리서 얼마나 위로가되는지 감사감사 또감사합니다
원장님곁에서 공부하는 딸이 돈주고도 살수없는 많은것들을 함께 배우고 느끼고 깨우치며 값진 시간을 보네고 있음에 감사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2018년 장원급제 학원생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바라며, 원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제가 드리고픈 말씀을 베이비돌님께서 해주셔서 그것 또한 감사하네요~ 신랑 눈에 반짝임을 선물해주셔서 감사드려요^^하루하루 지칠만도한데 원장님께서 잘 끌어주신다며 늦게와서도.. 제게 꼭 말해준답니다~그런 원장님이 계셔서 따뜻한 수험생활이되고있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