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작사 하중희, 작곡 이복윤)은 1975년 "「박상규」
스테레오 제1집" B면에 실린 곡으로, 대박 히트로 「박상규」를
일약 스타로 발돋움 시켰으며,
그는 전국의 "야간 업소 (나이트 클럽)"는 모조리 접수하는
수준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75년 당시 앨범만 100만 여장이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그는 전용 차량을 손수 제작 디자인하여 "《상규(쌩큐) Very much》
라는 구호를 내걸고 그 차로 전국을 누볐습니다.
「박상규」(1942~2003)는 인천 출신으로 연세대 국문과를 중퇴
하고, 1963년부터 KBS 방송국에서 전속 가수로 데뷔하여 활동
하였습니다. 미8군 무대 등에서 갈고 닦은 노래 솜씨는 곧바로
동료 선후배들의 인정을 받았으나, 대중적으론 인기를 얻지 못해
10여년간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가수 장 우', '김상국'과 "송아지 코메츠" 로 활동하다가,
1970년엔 가수 '김 준' 과 함께 "코코 브라더스" 로 활동하고,
1974년에는 '김 준', '장 우', '차도균'과 「Four Dynamocs」를
결성하여 활동 했습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재미있고 '위트' 있는 입담이 알려져,
'스탠딩 코미디(개그)'를 잘하는 초대 손님으로, 고영수, 임성훈,
정광태 등과 함께 재담식의 개그가 먼저 꽃을 피웠으며,
본인 말로 유머 "참새 시리즈"의 원조이기도 했죠.
「박상규」는 이후 ‘친구야 친구’ ‘둘이서’ 등의 노래를 잇달아 히트
시켰고, 1980년대 이후엔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의 단골
사회자로 활약 했습니다. '게스트' 들을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재치와
유머로 웃음을 자아내는 그의 진행 솜씨는 발군(拔群)이어서,
그를 영입하려는 방송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하며,
특히 MBC가 가족 시청자를 겨냥해 일요일 낮에 방영했던 오락 게임
프로 그램‘일요 큰 잔치’ 는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1987년부터
10여년간 혼자서 진행했는데, 당시만 해도 한 사람이 방송 프로그램을
그렇게 오랫동안 진행한다는 것은 경이적(驚異的)인 일이었습니다.
외환 위기가 닥쳤던 1997년에 「박상규」는 ‘일요 큰 잔치’의 진행
에서 물러났고, 이후엔 '교통 방송 개국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습니다.
「박상규」는 자신의 인기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라디오 방송 진행과 해외 교포 위문 공연 등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0년엔 예기치 않게 '뇌졸증' 으로 쓰러지는 불운을 겪어야 했으며,
결국 그렇게 소원하던 무대에 다시 서보지 못한 채, 2003년 4월1일
향년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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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고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어디 가나
이슬이 눈물처럼
꽃잎에 맺혀있고
모르는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는구나
여름 가고 가을이
유리창에 물들고
가을 날의 사랑이
눈물에 어리네
내 마음은 조약돌
비바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리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