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09
판교 테크밸리, 지방 권역별로 왜 못 만드나
윤석열 대통령은 6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다.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수차례에 걸쳐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라는 모토로 국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른바 ‘공간적 정의’를 구현한다는 의미다. 균형발전이라고 해서 모두 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 살든 ‘기회의 균등’을 누리는 지방시대를 건설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자유와 시장의 원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철학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이와 같은 국정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지난 60년 동안 세계 최빈곤국에서 오늘날 선진국 문턱까지 이르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세계 경제개발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개발을 달성했다. 그 과정에서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중앙집권적 정책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특정 지역이나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은 지역적으로 고르게 발전하지 않고는 더는 발전할 수 없는 지경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더 계속되서는 안 되는 한계상황까지 이르렀다.
수도권이 비수도권 GRDP 앞질러
지역 내 경제활동과 소득 정도를 나타내는 지역내총생산(GRDP)의 비중이 2015년을 분기점으로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 후 문제가 개선되기보다 더욱 가파르게 벌어지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임금이 높은 인공지능·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최근 수도권에서는 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임금 불문하고 개발인력 모셔가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수도권 대학들의 정보통신기술 인력양성이 비수도권 대학보다 활성화되어 있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기업들은 인력 확보가 용이한 지역에 공장을 건설하기 마련이다. 최근 경북 구미에서 반도체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10년 동안 공장용지 무상 제공을 약속했는데도 공장 유치가 불발되었는데 이유가 고급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해 청년들의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비정규직 비율이 약 5%포인트 정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만큼 비수도권에 일자리가 적다는 의미다. 임금이나 소득 수준이 낮음은 물론이다. 이를 반영해 수도권의 취업자 비중이 2017년을 분기점으로 비수도권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2030 청년들은 연간 9만5000여 명이 수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 노장년층은 퇴직 후 경제력이나 귀농 등으로 오히려 수도권을 떠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는데 2030 청년들은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다.
수도권 인구, 2년 전 비수도권 추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러한 현상을 반영해 수도권의 인구 비중이 2020년부터 비수도권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수도권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수도권의 집값 상승 요인도 되고 결혼이 늦어지면서 저출산의 원인도 되고 있다. 2021년 전국 평균 합계 출산율이 0.81인데 비해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63으로 더욱 낮은 수준이다. 청년층이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출산율이 낮아져 인구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비중이 50%를 넘기 시작한 2020년을 분기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2030년대 초반에 5000만 명이 붕괴하고 2050년대 중반에는 4000만 명도 무너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이대로 가면 한국의 국력이 추락 일로일 것은 불문가지다. 지난해 정부는 226개 기초지방단체 중 89곳이 인구소멸 지역이라고 분류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10조원의 인구소멸 대응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역균형 발전을 추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자체가 추락할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인수위원회 단계에서는 처음으로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의 6대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대 약속과 15대 국정과제 76대 실천 과제를 마련했다. 17개 시도별로도 각각 7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15대 정책 과제도 설정했다.
효과 불분명한 산업단지 1249곳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역 불균형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이미 참여정부 시절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10개 혁신도시를 건설해 153개 공공기관의 이전을 단행해왔다. 4대 기업도시도 건설했다. 이 밖에도 경제자유구역·자유무역 지역·외국인투자지역·연구개발특구·첨단의료복합단지·과학비즈니스벨트·지역특화발전 특구·산학융합지구·규제자유 특구 등 15종의 각종 특구가 215개나 설치되고 산업단지는 국가산단 47개를 포함해 1249개나 운용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수도권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급기야 인구의 감소를 초래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가장 큰 원인은 그동안 ‘지방분산’은 어느 정도 추진됐지만 ‘지방분권’이 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수많은 분산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단체장은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등 기업 유치에 필요한 조치를 할 권한이 없다. 결국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천편일률적인 단지만 조성한 결과 빈 단지가 줄줄이 양산됐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지방분권을 강력히 추진해서 지역자치단체장이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등 권한을 갖고 지역 주도로 지역 특성에 맞는 지역경제 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권한이 이양되는 만큼 재정 분권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지역에도 첨단기업이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지방대학의 인재 양성시스템도 혁신해야 한다.
지방인력은 지방대가 공급해야
‘교육자유 특구’도 도입해 어린 시절부터 자유롭게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지역대학과 지역이 상생하는 대학 4.0 시대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역대학들이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지역 특성을 살리는 기업이 들어서고 그에 필요한 인재가 지역대학에서 양성되면서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도록 지역 권역별로도 규모의 경제가 되는 메가시티로 불리는 초광역 지방정부를 설치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특별연합협약은 이런 의미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 대경권·충청권·호남권에도 이와 같은 초광역 지방정부 또는 연합이 탄생하면 지방에도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경제권역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들이 첨단산업의 고임금을 좇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방 메가시티에도 수도권의 판교밸리와 같은 권역별 글로벌 혁신 특구가 조성되거나 기존의 각종 혁신 특구를 혁신해 재탄생시켜야 한다. 이 혁신 특구의 요체는 ‘규제 프리’와 더불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대학과 연구기관, 청년창업이 가능한 벤처기업, 그리고 벤처기업에 벤처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벤처금융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되는 곳이 영국의 테크유케이(Tech UK), 미 실리콘밸리, 스위스 크립토밸리 등이다.
영국 테크유케이, 미국 실리콘밸리
이런 환경 속에서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지역특화 고급 일자리가 창출되면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해소되면서 균형 발전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세계 유수 지역과 이와 같은 지역별 초광역 지방정부가 협력을 강화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발전해 가야 한다. 이를 지역 국가(region state)라고 한다.
이밖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년들이 살고 싶어 할 정도의 쾌적하고 안전한 정주 환경 조성이다. 이제 지역균형발전은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당면한 시대적 과제이며 역사적 소명이다.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자유시장연구원장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