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성령강림주일)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삶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5. 28.
본문 : 갈라디아서 5:16-18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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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신앙생활은 나의 노력으로 나를 발전시키는 수양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갖추어도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순종치 않는 삶은 참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영혼 안에 거하시는 것은 어떤 기적보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솔로몬 왕은 성전 봉헌식에서 하늘도 하나님을 담을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내 안에 성령 하나님이 거하시니까 얼마나 놀랍고 기적적인 일입니까? 찬송가 191장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가 나의 찬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째,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
본문 16절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행하라’는 계속적인 현재 시제입니다. 삶의 현장에 기준과 방향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나의 나 됨을 알고 현재 나의 상태를 진단해야 합니다. 바위는 크고 모래는 작고 차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물에 가라앉는 것은 바위나 모래나 조약돌이나 똑같습니다. 이는 작은 죄든 큰 죄든 같은 죄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때는 큰 죄 작은 죄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것은 큰 죄가 아니니까 괜찮겠지”라며 안심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크든 작든 그 죄는 나의 인간성이며 본성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부에 이런 타락한 본성이 다 감추어져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 육체의 소욕이 대표적으로 열다섯 가지나 등장합니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 말씀에 굴복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은 인간에게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반대로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여 죄와 사망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을 때 가능합니다. 에스겔 11장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3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완전하게 심판하시는 모습입니다. 14-25절은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셔서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어 주셔서 온전한 백성으로 회복하게 하시려는 뜻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11:19-20). 신약시대에는 성령님을 통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게 하십니다.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는 말씀을 실천하게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말씀의 도전이 살아 있습니다.
둘째, 성령님으로 육체를 대적하는 사람
본문 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인간은 육체의 소욕을 가지고 출생합니다. ‘소욕’은 욕망, 강력히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서로 투쟁하는 두 본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본능은 영적인 것을 갈망하고 육체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반면 육적인 부분은 육적인 부분을 갈망하며 영적인 것을 배척합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라는 말씀처럼 타협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전투와 갈등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을 때 몰랐던 심각한 영적 투쟁과 갈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갈등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며 성장하기 위한 갈등이며 성화를 위한 갈등입니다. 이 투쟁과 갈등에서 승리하고 성장하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나님의 성령이 가득 채워주는 거룩한 기쁨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성령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투쟁에 있어서 싸우는 세력들은 육체와 성령입니다. 육체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사탄과 죄가 침투하는 루트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반면에 성령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심으시고 새로운 본성을 주시며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령은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본성을 가리킵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정욕’은 성적 욕망, 식욕, 지식욕, 명예욕을 가리킵니다.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과 반대됩니다. 타락한 본성인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굶겨 죽이는 것입니다. 육체의 흥미를 보이는 것이라면 자신을 유혹의 장소에 있게 하지 말게 해야 합니다. 피해야 합니다. 매월 초하루 미디어 금식, 성경 읽기, 새벽예배 참석하는 프로그램도 성령을 따라 살기 위함입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육체를 항복시켜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본문 18절에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습니까?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렸으면서도 전과 같이 힘을 쓰겠다고 하지만 이미 성령님이 떠났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구약시대 성령께서 역사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신약시대 오순절 날에 성령이 처음 오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구주로 영접하시는 순간 주님의 영, 성령님께서 한번 오시면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성령님은 우리에게 한번 오면 영원히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한번 들어온 사람이 죄를 범하면 성령님이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근심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은 죄가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하고 나도 불편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죄를 범하면 성령이 떠나신다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근심하고 나만 기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님 안에서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하를 받을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는 하나님의 칭찬 듣기를 소원합니다. 그때 가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하며 사명을 감당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감추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11).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예민하게 듣고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말씀의 도전이 살아 있기를 원합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씀에 도전하며 실천하겠습니다.
@ 성령님으로 육체를 대적하는 사람.
타락한 본성인 육체의 소욕을 굶겨서 항복시키도록 성령 충만 말씀 충만으로 영적인 것을 갈망하겠습니다.
@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를 거절했기 때문이었음을 보면서
내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을 근심시키지 않도록 말씀을 듣고 바로 가서 순종함으로 반응하겠습니다.
@ 성령님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면서 믿음과 사랑과 화평으로 따르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 하나님이 나의 맘에 항상 계셔서 또 한 주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동행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 저에게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마음을 주시고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함으로 살게 하시며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삶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
감사합니다.
@ 주님의 영이 언제나 나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욕심부리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님 내 안에 오셔서 나의 맘이 즉시 행동으로 옮겨지고
인도하심을 따라 밤낮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 영원토록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 꼭 붙들고 의지하며 따라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님께서 깨닫는 은혜를 주실 때 첫걸음을 내딛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육체의 더러움을 멀리하며 의와 평강과 희락을 구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 영원토록 나와 동행하여 주셔서 성령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성령님을 따라 행함으로 세상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성령님 함께 하심으로 밤이나 낮이나 기뻐하는 삶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주님께 기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제가 되길 결심하고 결심합니다.
@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님의 부르심에 더욱 민감한 그리스도인 되기 위해 6월 초하루 새벽예배 참여로
미디어 금식으로 아침큐티 댓글로 말씀에 참여하여 순종함으로 깨어있길 소망합니다.
@ 성령님을 따라 행함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기며,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함으로 성령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 성령님의 인도와 말씀에 즉각 반응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가길 원합니다.
@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살며
성령 안에서 살아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도록 육체의 소욕보다 영의 소욕을 배부르게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부요한 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말씀에 따를 수 있는 온전한 믿음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 주를 살아가겠습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 마음으로 생각하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사탄이 침투하는 루트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삶’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성령님으로 육체를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