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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으신 하나님(사55:8-9) 박권수 목사
부산중앙교회 안식일 예배 (2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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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이사야 55장 8절과 9절에 있는 말씀 보겠습니다.
성경 찾으셨으면 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서로 글자가 서로 성경 버전에 따라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용은 같으니까 그렇게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한 선교사가 선교사 모집 광고를 보았습니다. 한 곳은 아름다운 휴양의 도시 사이판에서 선교사를 모집하고 있었고, 한 곳은 아프카니스탄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내전이 일어나고 또 이슬람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그런 곳에 선교사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느 곳에 선교사로 지원하고 싶습니까?
이왕이면 휴양지에 가서 선교도 하고 또 즐기고 싶겠죠.
그런데 이 선교사는 거기를 선택한 게 아니라 아프카니스탄을 선택했답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왜 아프카니스탄을 선택했냐고 그리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지금 가정 환경도 안 좋은데 이왕이면 좀 쉬고 좋은 곳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럴 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방인들! 도무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어떻게 변화가 될지가 상상이 되는 순간 어느 곳에 가고 싶어요?
그 아프카니스탄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도전적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우리의 마음의 이기심을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생각을 따라 선택하는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정말 하나님을 담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니까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너의 생각과 다르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감동시켜주는 생각, 그 다음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에 빠지는 그런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더 귀하고 좋은 결과를 얻게 해주는 생각 저희는 천원 얻기를 원했는데 주고 싶은 사람 얼마를 주기를 원해요?
100만 원을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야 겨우 그거 천 원 원하는 거야 그러면 만 원만 만 원 올려도 되겠습니까?
겨우 그러면 10만 원 겨우 그러면 한 30 겨우 그냥 주고 싶은 대로 주십시오.
얼마를 줘요?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않은 금액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보면 내 길은 너의 길과 다르며 그랬습니다. 나의 가는 길이 너가 가고 싶어 하는 길과 어떻다고요?
다르다. 이 다르다라고 하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히브리어 로라고 그럽니다 로 로 그런데 그 의미가 뭐예요?
아니다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 같이 좀 큰 소리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감사합니까?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어야 변함이 없는 하나님,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경험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23장 9절에 우리가 눈여겨볼 말씀이 있습니다.
23장 19절 중간 부분에 보시면 인자가 아니시니 하나님은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하나님은 뭐가 없으시다고요? 후회가 없으시다.
여러분 후회와 반성의 차이가 뭘까요? 반성은 뭐고, 후회는 뭘까요?
사람들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후회는 과거에 집착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반성은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바꾸어 가는 것을 나타낸다고 그랬어요.
後悔(후회)는 과거형이라서 불가능한 일에 대한 미련이지만, 反省(반성)은 미래형이라서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그러니까 후회는 어디에다 중점을 두고요. 과거에다가 반성은 미래에다가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뭘 해야 될까요?
회개를 해야죠. 회개를 여러분 이번 교과 1과가 어떤 겁니까?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뭐 하라고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뭐 하라고 그랬습니까?
이제 회개하라 회개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러분 뭐 하라고요? 회개하라 그리고 뭘 믿어라 복음을 믿어라.
여러분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뭐라고요?
회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회개라는 것은 뭐라고 하였습니까?
죄에서로부터 돌아서는 것 여러분 돌아서서 어디로 가는 거예요?
불순종하던 우리가 순종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불순종을 계속하잖아요. 그러면 뭐만 남아요?
후회만 남아요 마태복음에 보면 24장에 땅을 치고 이를 갈며 통곡한다고 그랬습니다.
후회한다는 것이죠. 뭐하게 뭐 하며 살면요 불순종하며 살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서 뭐가 없으시다고 이야기하십니까?
결코 후회가 없으시다. 이 후회라고 하는 말은 [나함]이라고 하는 히브리어인데 이 뜻이 유감스럽다 또 안타깝게 여기다 이런 뜻이래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가 없다고요? 그런 후회가 없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뭐 하십니까?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노아 홍수 직전에 우리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6절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이게 나함이라고 돼 있어요.
히브리어로 그러니까 후회라는 말하고 같아요. 틀려요.
같아요. 그래서 후회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요?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시다고 그랬는데 여기는 뭐 하고 계세요?
후회하고 계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입니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6장 5절과 6절에 나오는 이 나함이라고 하는 뜻은 후회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라고 하는 것인데, 출애굽기 사사기 사무엘상에 한탄하사라고 표현돼 있는 말씀입니다.
변화된 그 상황과 좋아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시는 하나님은 뭐가 없으시다?
후회가 없으신데 여기서 말하는 후회하사라고 하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할 때 여러분 잘 보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교재의 관계를 징계의 관계로 바꾸신다.
하나님은 교재의 관계를 뭘로 바꾸신다고요? 저희가 불순종하게 되면 교재의 관계에 있던 우리가 순종으로 교재의 관계에 있던 우리가 어떤 관계로 바뀌게 된다고요?
징계 관계로 바뀌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나의 생각은 너희를 향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뭐 하는 것이라 사는 것이다. 평안을 갖는 것이다라고 성경 예레미야 에스겔서에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하는 저 [나함]이라고 하는 말은 그렇게 관계가 바뀌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결코 변함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신실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리 예레미야 18장에 있는 말씀을 좀 보면서 말씀을 정리해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18장입니다. 예레미야 18장 8절과 10절 같이 좀 읽겠습니다.
큰 소리로 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8] 만일 내가 말한 그 민족이 그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9]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렘 18:8-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너희가 성령의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그다음에 뭐 한다고 그랬습니까?
이 세상에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 그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일까요? 품성에 대한 증인입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이요? 품성 하늘에서 이슈가 된 게 뭐예요?
하늘에 사무친 죄가 뭡니까? 하나님은 사단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기만 높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인생의 삶을 통하여서 교육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 주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비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인가에 대해서 배우고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 지구는 우주의 교과서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이 지구의 삶을 통하여 하늘을 준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지구에서의 삶에서 유일하게 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야 되는가?
첫 번째는 죄가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버리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뭘까요? 하나님께서 이 죄인을 사랑하시어 무한히 사랑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믿는 자에게 멸망치 않을 삶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 하나님은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 뭐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다.
제가 한 예를 좀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요즘 대학가에 한참 이렇게 사업이 잘 되는 대학가에 유명한 체인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뭐죠? 혹시 아시는 분 계십니까? 송정희 대표가 뭐 하는 분이신지 아십니까?
와플대학을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뭐 하는 분이요?
여러분 와플대학 들어보셨습니까? 가보신 적 있습니까?
요 체인점이요. 분점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이분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느냐면 캠퍼스가 하나씩 늘어난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일 캠퍼스 제 10 캠퍼스 200 캠퍼스 이제 조금 있으면 미국으로 진출한다고 그래요.
이분의 시작은 호떡 장사에서 시작했답니다. 붕어빵 장사에서 시작했던 구루마 아주 한적한 곳에 팔리지도 않는 그런 곳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거의 중소기업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송정희 대표가 간증하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너무너무 어렵고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사기를 당해서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답니다.
전세 500에 50짜리 월세를 살 정도로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받을 돈만 다 받으면 갚을 것은 순식간에 다 갚을 수 있는데 받을 돈을 안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갚아야 할 그 채권자들은 법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때에 그 집의 큰 딸이 하나님을 열심히 믿게 되었답니다.
우연찮게, 그래서 하루는 새벽에 눈을 떴는데 아이가 안 보이는 거예요.
어디 갔나 봤더니 그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인데 베란다에 가서 그 캄캄한 새벽에 기도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너 왜 여기서 뭐하고 있니? 물었더니 교회를 가고 싶은데 교회 새벽기도회를 가고 싶은데 차비가 없어서 차비가 아까워 가지고 베란다에서 기도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너무 가슴이 뭉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대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사업 실패로 인해서 희미해졌던 그 신앙이 딸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 매어달리기 시작하게 되었고, 집을 아예 차비가 안 드는 그 교회 옆으로 월세니까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월세는 월세 아닙니까?
월세를 옮겨서 교회 가까이로 집을 옮기고 신앙을 하게 되었답니다.
딸아이가 가는 것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따라갔다가 나중에는 말씀의 은혜를 입어서 이분도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었는데 이제 예배드리는 날이 되면 하루 종일 교회에 있게 됐대요.
그런데 이제 시간 시간 사이 사이가 있잖아요. 그럴 때 이분이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마음으로 식당에 가서 식사하는 설거지 도와주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화장실을 뺀질 뺀질하게 청소를 해주기 시작했대요.
그러니 마음이 기뻐요 안 기뻐요. 성도들이 좋아할까요?
목사님이 좋아할까요? 너무 열심히 하는 그분의 사연을 이제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딸 아이에게는 교회 반주를 시키고, 장학금을 주고, 그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봉사하시는 것에 대해서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잘 이렇게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오래 다닌 한 집사님이 대뜸 그 송 대표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니 화장실 청소를 좀 하면 휴지도 좀 갖다 놓지 휴지도 안 갖다 놓고 뭐 하는 거냐?”고 좀 바딱바딱 좀 이렇게 갖다 놓고 그렇게 하지.
이 분이 정식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섭섭해 섭섭하지가 않아요.
너 내가 너무 가난하고 내가 힘드니까 이렇게 내가 무시를 받나 그래서 뒷마당에 가서 하늘을 보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한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내가 너를 다 안다’ 이러더래요. 그리고 난 다음에 이제 목사님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알고는 그 송 대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집사님! 교회에는 주인이 있고 손님이 있습니다. 집사님은 교회의 주인이세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손님인 사람이 있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지 않아도 주인인 사람이 있습니다.
집사님은 제가 볼 때 주인이십니다. 손님은 불평하고 요구합니다.
주인은 불평을 듣고 필요를 채워줍니다.
집사님 이제부터는 집에 가실 때 안녕히 계세요.
하지 말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왜요?
집이니까 이렇게 좋은 집을 두시고 계시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갈 때 섭섭해가지고 안녕히 계세요 하고 빠이빠이 하지 마시고 뭐 하라고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뭐라고 인사한다고요?
다녀오세요. 그 뒷 이야기는 제가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하고 중요한 사실은 그 후에 이분이 교회에 1천 번제를 드리기로 하게 되었대요.
딸 아이가 어느 날 교회에다가 어떤 분이 엄청난 금액의 감사원금을 냈는데 그게 교회 지남에 소개가 됐나 봐요.
그래서 이 딸도 어머니에게 가난한 어머니에게 저도 그렇게 좀 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래 기도해 보자 기도를 하는데 응답이 없는 거예요.
근데 어느 날 들리기를 그걸 왜 한꺼번에 내려고 그래 천만 원이면 1만 원씩 몇 번 내면 돼요?
예 천 번 내면 되지 않냐? 그때로부터 너무 교회 가는 게 재미있고 좋았대요.
왜냐하면 헌금 봉투도 너무 아까워서 문방구에 가서 노란 봉투를 샀대요.
번호를 남바링을 했답니다. 1번부터 천번까지 점점점점 번호가 올라가는데 그것도 너무 미안하니까 모르게 그냥 단상 위에다가 살짝 얹어놓고 가고 살짝 얹어놓고 가고 하루에 예배가 다섯 번 있으면 세 번 두 번 계속 그렇게 하니까 너무 재밌더래요.
그게 끝나고 그 교회를 떠나게 됐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거예요.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자기가 먹던 붕어빵에다가 도시락으로 싸간 고구마를 집어넣어서 찬 고구마를 따뜻하게 먹으려고 붕어빵 속에 넣었는데 그게 대박이 난 거예요.
거기에다 여러 가지 다른 소스를 넣어가지고 그래서 와플대학이라고 하는 게 만들어졌답니다.
우리나라에 붕어빵 들어온 지 100년이 아마 그 해였던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스포츠 신문 KBS에서 방송 타기 시작하고 그게 체인점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지금은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집사에서 이제는 뭐가 됐어요? 장로가 됐대요.
그러면서 이분이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택하신 것을 후회하지도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믿게 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라고 고백을 하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과 다릅니다. 인간의 생각은 비통함과 소외로 물들어져 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능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많고 인재가 풍부하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공의하시고 자비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우리는 교재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으로 우리의 신앙이 바뀌어지게 되면 징계의 관계로 바꿔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관계에서 신앙하기를 원하십니까?
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계로 살아가게 되기를 원하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발락과 발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거의 이르러서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나고 이제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모압 평지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모압의 왕 발락이 불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요? 순종하고 후회 없으신 하나님과 동행한 그들에게는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성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누가 싸웠습니까?
하나님께서 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아갔을 때는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그 모압 왕이 듣고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발락 왕이 어떻게 압니까?
미디안의 복술가인 발람을 초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찾아가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저주하지 말라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부자 선지자 451쪽에서 452쪽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민수기 24장에 있는 말씀을 좀 먼저 보겠습니다.
민수기 24장 17절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민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그다음 같이 있습니다.
시작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라.
누가 이 이야기를 합니까? 발람이 그 모함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별이기 때문에 증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들의 최후의 멸망을 노래하였습니다.
모압과 에돔, 아말렉과 가인 족속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모아 왕에게 일류의 희망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서 보세요.
발락왕은 몇 번 이렇게 거절하고 막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서 그가 하나님 기별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놓으니까 인간적으로 발락왕과 하나님께 뭘 잃은 것처럼 생각을 했을까요?
신의를 잃은 것처럼,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가 선택했던 사명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민수기 24장 25절에 보시면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그 이후에 25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스팀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여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죠.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능력이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누가 떠나갔다고요? 성령님이 이제까지 저지되어오던 그의 탐욕만이 그를 지배하였다.
저와 여러분들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치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누가 떠나버려요?
성령이 떠나버렸습니다. 성령이 떠나니까 뭐가 남았어요?
이 탐심이 슬슬 스물스물 자기 욕심과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발락이 약속한 보상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발람은 최후로 모압과 에돔, 아말렉과 가인 족속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여 모압 왕에게 일루의 희망도 남기지 않았다.
부귀 영달의 소망과 왕의 총애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산 것을 알고 실망한 발람은 자기 스스로가 선택했던 사명을 마치고 돌아왔다. 발람이 집에 도착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능력이 그를 떠나고 이제까지 제지되어 온 그의 탐욕만이 그를 지배하였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발락이 약속한 보상을 얻고자 하였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데 달려 있고 그들을 죄에 빠뜨리지 않고는 그들을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모압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가 내리도록 하는 방법을 따르도록 조언함으로 발락의 환심을 사기로 결심하였다. ”(부조, 451)
언제 이렇게 생각했다고요?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난 다음에 계시록에 있는 말씀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절입니다. 우리가 민수기만 읽으면 그다음의 이야기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런데 여기 계시록에 보면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절에 그 뒷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느 분 큰소리 좀 읽어주시겠습니까?
그럼 다 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작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
여러분 발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뭘 알고 있었어요?
교재의 관계가 징계의 관계로 바뀌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발함은 알고 있었어요. 이 징계의 관계가 어떤 관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교재의 관계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여러분 마지막 때에 마가복음 1장 14절 15절에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불순종의 삶으로 해서 순종의 삶으로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찝찝할 때가 있죠.
교회는 안 가서 편하긴 한데 내일 봐서 좋긴 한데 좀 마음이 껄끄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 가 있어야 되는데 교회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럴 때는 이 양심이 성령님이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관계에서 순종의 관계로 바꾸기를 원하는 거예요.
발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떠난 그 마음에 탐심이 지배하는 그 마음에 누구를 찾아가기로 반락을 찾아가기로 아니 다 마무리 잘해놓고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꾸 뭐가 생각이 나요?
금은 부하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 높은 지위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풍요로운 삶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누굴 다시 찾아가요? 발락왕을 스스로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요한계시록에 이 글이 기록되어져 있지 않았다면 24장과 민수기 24장과 25장 사이의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발락이 어떻게 이렇게 됐지 분명히 발람이 축복을 선언했는데, 근데 거기에 누가 다시 찾아와요?
발람 선지자가 다시 찾아와서 그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발람은 즉시 모압 땅으로 돌아가 왕 앞에 자기의 계획을 아뢰었다. 모압인들도 역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실 것을 깨닫고 있었다. 발람이 제의한 계획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유인함으로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을 바알과 아스다롯의 음탕한 예배에 참석시킬 수 있다면 그들의 전능하신 보호자는 그들의 원수가 되실 것이며 그들은 곧 주위에 있는 맹렬한 호전 민족들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왕은 쾌히 이 계책을 받아들였으며, 발람 자신은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조력하였다. ”(부조, 451)
저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뭐 하고 있었어요? 망하는 꼴을 같이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부모 여러분들께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논문을 조금 특별한 걸 썼습니다. 대학원 때 가정폭력 가해자들을 가정폭력 가해자들을 어떻게 개가 천선 시키느냐 그런 걸 제가 연구를 했는데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동을 받게 하는 방법이 없어요.
근데 그거를 사회과학적으로 풀어서 이렇게 예배드리듯이 예배드리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일주일 내내 여기 부산 금정구에 있는 복지관에서 사회복지관에서 개신교회 사회복지관에서 제가 일주일간 제가 강의를 했습니다.
그 보호 관찰 대상자를 데리고 강의를 했는데 거기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요.
요즘 우리 청소년들이 사고를 많이 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키잖아요.
그 아이들의 식생활 습관을 조사를 해보니까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은 아이들이 엄마 아버지가 해주는 된장찌개 미역국 이렇게 해준 것을 먹은 아이들보다 훨씬 범죄율이 높을까요?
낮을까요? 높아요. 그래서 거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 어른들도 성격적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키게 만들려면 집밥보다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이면 된다.
그래서 학교에서 1 , 2등을 경쟁하는 아이가 있으면 조금 짜친다고 표현하면, 이상하고 부족한 아이가 잘하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면 그 집에 맨날 불러다가 피자 사먹이고 치킨 사먹이고 콜라 사먹이고 계속 그런 것만 계속 먹이고 그걸 좋아하게끔 계속 만들면 그 아이가 성적이 떨어질까요?
올라갈까요? 떨어진다고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뭘 하나 알게 됩니까? 순리대로 사는 게 순리대로 사는 게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굴이 벌게진다는 말은 뭐도 벌게진다는 걸까요?
우리 위도 벌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 잘 내는 사람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화 안 내는 사람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성질 급한 사람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성질이 느긋한 사람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성질이 느긋하신 분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성질이 막 예민하신 분이 위장병이 많을까요? 여러분 알면서도 잘 합니까?
잘 못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노래를 할 때에는 그렇게 살기로 결심을 많이 해요.
근데 한순간 성령님이 떠나가시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 뜻대로 살아요?
자기 자신 뜻대로 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재의 관계가 아니라 무슨 관계로 바뀌어버려요?
징계의 관계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이유가 뭡니까?
딴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하는 거예요. 딴 짓하다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매 순간 한순간도 경계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그의 마지막 그의 악마적 계획이 성공하는 것을 목적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과 위대한 백성 사이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원수 편으로 결정되었다. 발람의 운명은 유다의 운명과 비슷하였고, 두 사람의 성격에는 서로 유사점이 있었다.
“발람은 그의 악마적 계책이 성공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가 당신의 백성에게 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유혹자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셨다. 발람은 이스라엘과 미디안 백성 사이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다. 자신의 최후가 가까움을 예감한 발람은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고 부르짖었었다. 그러나 발람은 의인의 생애를 살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그의 운명은 하나님의 원수 편으로 결정되었다.
발람의 운명은 유다의 운명과 비슷하였고 그 두 사람의 성격에는 서로 유사점이 있었다. 두 사람이 다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려다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부조, 451-452)
“발람은 참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섬기노라고 공언하였다. 유다도 역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다고 공언하고 예수의 추종자들과 연합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부귀와 세속적 명예를 얻는 디딤돌로 삼으려 하였다. 여기에 실패하여 그는 비틀거리다가 넘어져 깨어지고 말았다. ”(부조, 452)
표면과 이면이 다른 거짓 선지자 누구예요? 발람 발람은 이후 발람이 주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다.
이스라엘을 유혹해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제가 아는 분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후배인데 돈 벌고 나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여러분 돈 많이 벌면 뭐가 좋을까요? 식당에 가서 음식값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손정희라고 하는 대표는요. 이제 부자가 되셨는데 뭐가 좋으세요?
그렇게 물었습니다.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교회가 필요할 때 마음껏 헌금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야 어쩜 이렇게 생각이 이렇게 다르고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
이사야 55장 8절로 10절에 하나님은 우리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여러분과 저가 이 부산 중앙교회에 출석하는 저와 여러분이 이 방송을 듣는 모든 분들이 그 하나님의 생각을 닮아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을 저와 여러분들의 생각이 되도록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좀 부족하고 좀 연약하지만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나아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머리가 되고 항상 존경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 타인보다 자기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판 발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이스라엘의 방패였던 삼손도 범죄하여 자기의 힘을 빼앗기고 블레셋 족속의 수중에 빠졌다. 이 점에서 다윗도 넘어졌다. 그리고 세 번이나 당신의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라고 불리웠던, 열왕 중에 가장 현명한 왕인 솔로몬도 정욕의 노예가 되어 동일한 매혹의 힘에 자신의 성실성을 희생하였다. ”(부조, 457)
역사는 반복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는 자연의 위치를 하나 보여드리고 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식물에도 뭐가 있다고요? 지능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 애벌레가 식물을 갉아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어떻게 방어를 할까요? 영국의 에든버른 대학에서 연구를 했는데 두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는 저 에벌레가 자기의 식물을 갉아먹을 때 뭐라고 표현을 하느냐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는 자체적으로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섭리적으로 복구하려는 능력이 있다.
약물이나 수술 없이 항상성 원리를 근본으로 몸과 마음의 질병을 예방하는 과정이다.
그걸 갉아먹는 순간 그 벌레가 이상이 생기도록 이물질을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내가 너를 떨추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먹어봐라.
한번 어떻게 되나 다시는 먹고 싶어지게 생각한다.
먹고 싶지 않게 한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게 만드는.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난 다음에 후회합니까?
안 합니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뭐가 생각나세요?
가사가 생각납니까? 제가 요새 이 가을 옷은 조금 이 품이 넓어요.
오래전에 사가지고 근데 여름 옷은 요즘 옷이라서 품이 자꾸 좁아요.
저녁에 먹으면 안 되는데 배가 고프면 자꾸 먹고 싶어요.
안 먹고 싶어요. 먹고 나면 이게 점점점점 단추가 안 잠겨요.
이제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배가 나와가지고 여기가 이렇게 벌어지기 시작해요.
후회합니까? 후회하지 않습니까? 후회하는 대신에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세요 두 번째는요.
저기서 향을 피웁니다. 이 에벌레의 천적인 말벌을 부르는 향을 내게 한답니다.
그래가지고 뭘 잡아먹어요? 애벌레를 잡아먹게 돼요.
그래서 다시는 못 먹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뭐 하지도 못하게 만들어요.
얼씬도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은 저와 여러분들의 눈에 눈물도 흘리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육체를 아프게도 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을 쓰라리게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양심에 호소를 하십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우리 모든 부산중앙교회, 또 이 방송을 시청하는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울타리를 쳐주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친히 동행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도록 축복으로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눈을 주님께 고정하여야 하지만 주님께 고정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주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한 번 은혜의 시간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님의 임재로 우리 모두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계명을 따라, 주의 선교 사명을 따라 우리의 삶을 온전히 헌신하며 희생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자로 이 교회가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그런 자들로 이 교회가 하나님의 그 품성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리스도 예수의 넓으신 은혜와 성령님의 감동 감화하심이 함께하여 주옵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