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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찌아찌아’族에 이어 볼리비아 ‘아이마라’族
남미 볼리비아 원주민 아이마라(Aymara)족의 공식 문자로 한글 ‘가나다라’가 사용될 전망이다. 지난 2일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는 최근 볼리비아의 투팍 카타리 아이마라 인디언대학(Universidad Indigena Bolivianno-Aymara Tupak Katari)과 한글문자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서울대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아이마라족에 한글을 보급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고, 최종적인 목표는 으며, 볼리비아 국민 중 아이마라어(語)를 쓰는 210만 명의 아이마라족이 찌아찌아족처럼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채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7월 훈민정음학회가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주(州) 부톤섬에 위치한 소도시인 바우바우市와 한글문자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지 3년만의 쾌거로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때 보다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 한층 더 진화된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한글문자 세계화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글 표기 사업 대상 원주민 ‘아이마라족’은 210여만 명에 달해 2009년 한글을 공식 표기 문자로 정한 첫 사례인 찌아찌아족(6만 명)보다 34배나 많다. 단지 수가 많다는 것만이 유일한 주목거리는 아니다. 찌아찌아족이 인도네시아의 수 많은 섬 중 하나인 부톤섬에 위치한 소규모 도시에 살고 있는 소수부족이라면 아이마라족은 볼리비아 중서부에 위치한 티티카카호수 주변의 폭넓은 지역에 걸쳐 거부하며 250여만 명에 달하는 께추어 부족에 이어 볼리비아에서 둘째로 큰 부족이다.
찌아찌아족의 경우는 소규모 자치정부가 공동사업 파트너지만 아이마라족의 경우는 현지 대학이 공동사업 주체로 나섰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중앙정부의 관심사가 되기 어려웠지만 볼리비아의 경우 현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다비드 초케완카 외교부 장관을 배출한 부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중앙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양해각서 체결에 앞서 중앙정부가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점은 특히 고무적이다.
볼리비아의 인구의 55%(508만여 명)를 차지하고 있는 36개 원주민 인디언 부족들은 고유 문자가 없이 스페인어로 발음을 표기하고 있는데 정확한 발음을 표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차에 한글 표기의 우수성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아이마라족에게 한글을 가장 먼저 알렸던 김홍락 전 볼리비아대사에 따르면 작년 6월부터 볼리비아 라파스주 아차치칼라 공동체 원주민 100여명에게 매주 두 시간씩 한글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수업 두 시간 만에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되면서 '한글은 쉽고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김 전 대사는 처음에는 직접 한글 교재를 만들어 썼지만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서울대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번 사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요청을 받은 서울대 측은 지난 2월부터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1차 아이마라어 음소(音素) 분석을 진행해왔다.
연구소 측에 따르면 아이마라어는 자음이 ㄱ, ㅋ, ㄲ처럼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로 나뉘는 등 한글 표기에 적합한 반면, 한글과 달리 모음의 수가 적어 ㅏ, ㅜ, ㅣ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ㅗ, ㅔ 정도만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현지 사정에 맞추기 위해 모음 숫자를 줄이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으며, '아래 아'나 '된이응' 등을 부활시키거나 모음과 자음을 합쳐서 쓰지 않고 영어 알파벳처럼 나란히 이어서 쓰는 방법 등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또한 연구소 측은 이르면 내년부터 현지 언어 전문가를 초청하여 한글을 배우도록 하는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며, 현지에 한국문화원을 설치하는 계획도 추진키로 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한글문자보급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배경에는 원주민들에 대한 한글문자 보급 사업에 대한 볼리비아 정부의 호의적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며, 우리나라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찌아찌아족 때보다 훨씬 커 보인다.
▲ 볼리비아 한국대사관이 개최한 한글 교육 종강 기념식장에 아이마라 원주민들이 모여 있다.
/김홍락 전 볼리비아대사 제공
아울러 앞으로 문자가 없는 여러 남미 원주민에게도 한글을 보급하는 목표까지 고려되고 있다. 이번 사업대상인 아이마라족이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페루 남부에까지 걸쳐 있는 티티카카호를 따라 볼리비아와 페루 양국을 생활기반으로 하는 다국적 부족이라는 점과, 남미에는 이런 유사한 부족들이 무수히 많으며, 각국 정부가 이들 부족들의 문맹률 저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글문자 세계화 사업에 최적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글문자보급 사업은 한국어를 공용어나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의 토착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도입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한글 학계가 중심이 되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유역의 오로첸족(族)이나 태국 치앙마이의 라오족, 네팔 체팡족 등에게 한글을 전파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현지의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 등의 반대나 비협조로 성하지 못하던 차에 3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작은 가능성을 보게 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 바톤섬에 위치한 바우바우시의 소수부족(인구 6만여 명) 찌아찌아족이 독자적 언어를 갖고 있지만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훈민정음학회 관계자들이 바우바우시를 찾아가 한글 채택을 건의했고, 2008년 7월 바우바우시와 훈민정음학회 양측이 한글 보급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학회가 교과서를 제작, 보급함으로써 2009년 7월 21일부터 역사적인 한글문자 교육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쾌거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민족 외에 한글을 공식문자로 받아들인 첫 민족이 나오면서 과학적인 표음문자인 한글의 우수성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되었으며, 한글세계화 프로젝트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였다. 당시 바우바우시는 소라올리오 지구에 `한국센터' 건물을 착공하는 한편, 한글ㆍ한국어 교사를 양성해 한글 교육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아울러 지역 표지판에 로마자와 함께 한글을 병기하고 한글로 역사서와 민담집 등을 출간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이렇게 시작됐던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한글화 실험이 성공하게 된다면 이 섬은 세계 속의 '한글 섬'으로 변모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가장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자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민족문자'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한글이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에 진출한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에 한글의 세계화에도 가속이 붙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이어졌다.
2009년 당시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 사업을 추진했던 김주원 교수(당시 훈민정음학회장, 서울대 언어학과)는 “이번 사업으로 사라져가는 언어와 문화를 실제로 살려낸다면 인류 문화사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최종 목표는 지구상 최초의 한반도 밖 ‘한글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라 5년 정도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처음부터 우호적으로 출발했기에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시 찌아찌아족의 한글교과서 편찬을 주도한 이호영 교수(서울대 언어학과) 역시 “소수민족의 언어는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이 없어 100년도 안 돼 대부분 사멸하고 만다.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우수한 글자인 한글이 다른 민족을 돕는 데 쓰일 수 있어 기쁘다”며 한글이 문자가 없는 민족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인 바 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의 한글채택은 한글학회 등이 오랫동안 추진해온 한글세계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열매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소중이 키워갔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러지를 못했다. 당시 보급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김주원 교수는 “이들 민족이 한글로 전통과 문화를 후세에 남긴다면 훈민정음을 창제한 선조의 본뜻과 같은 것이라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이런 민족을 더 찾아 한글 보급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보무당당했었다.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길인 동시에 '문맹 타파'라는 세종대왕의 창제 이념을 받들고 더욱 발전시키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 지금이나 그때나 한결같은 한글 관련 학계의 입장이다. 2004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앞으로 100년 내에 인류 언어의 90%는 새로운 통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할 것이고, 세계는 11개의 지배적 언어로 종속될 것이라고 한 바 있는데, 한글이 11개의 지배적 언어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한국어를 보급하는 것보다는 문자로서 한글을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3년 전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서도, 그리고 지금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었듯 문자 없는 소수 민족어를 표기하기 위한 공식문자로서 한글의 진가는 이미 많은 외국인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자가 없는 민족들이 한국어와는 별개로 표음문자인 한글표기법만 배워서 자기 말을 읽고 쓰도록 하는데 있어서 한글은 영어나 스페인어 등 다른 어떤 세계어보다 기능적으로 우수하다. 특히 IT에 있어서 한글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자음과 모음의 간단한 조합만으로 영어보다 쉽고 빠르게 통신할 수 있는 것이 IT시대 한글의 장점이다. 고유 문자로는 휴대전화나 컴퓨터 자판 입력과 변환이 느려 알파벳을 응용하는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달리 한글과 한국어는 21세기에 더욱 통용되는 첨단과학 언어여서 한국의 IT 강국 도약에 든든한 초석이 됐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문자를 갖지 못한 소수민족 언어가 대부분 사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상 두 가지 사례를 적절하게 활용한 한글문자의 해외 전파는 소수민족들이나 우리에게나 모두 이익이 될 것이다. 한글문자의 세계화를 통해 한국어가 세계어로, 한국이 세계 속의 한국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앞으로 세계 곳곳에 '한글마을'이 퍼져 나갈 것이라는 기대도 높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한글문자는 특히 우리에게 다양한 실리도 함께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글을 일단 문자로 사용한다면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유례없는 새로운 방식의 국제협력을 통해 해당 지역과 깊은 유대가 형성되고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가 늘면서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나라 말을 우리가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며, 현지인들의 경우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니 문자와로 서로 사맛게 되어 소통이 쉬워질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도 말했듯 현지 정부나 지도층의 반감이 클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정부와 민간이 다각적인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한글관련 학회나 국제협력단 등 민간단체나 NGO가 중심이 되어 한글의 세계화를 꾸준히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한글문자 보급에 주력해온 훈민정음학회도 애초 대상 민족을 선정할 때부터 한류 영향권에 있고 한국과의 경제교류를 원하는 지역에 주목하여 2009년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적인 한글화 실험을 안착시켰던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년 전 그때는 그걸로 끝이었다. 정부 지원이나 국민적 관심사는 그해 한글날까지만 반짝하다가 그렇게 사라져 버렸고, 지난 2년 동안 그 이상의 특별한 진전 없이 찌아찌아족은 우리 뇌리에서 사실상 잊혀져가고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그때보다 더 큰 규모로 시작된 아이마라족의 한글표기 프로젝트만은 정부와 국민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 그리고 새롭게 일고 있는 한류열풍을 배경으로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은 물론, 크게 확산될 것을 기대해본다. 한글날을 앞둔 개천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뉴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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