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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 화.
-산내면에서 11시에 국수를 먹고 출발 백무동에 차를 대고 11시30분에 출발. 올라가다 참샘에서 쉼(상처 때문에 물을 못 묻혀서 조금 찝찝했다). 4시30분에 장터목산장에 도착. 짐이 조금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올라와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취사장에서 밥을 해먹고 대피소에 들어가려하는데 인원에 착오가 생겼다. 쌤 두 분과 나 그리고 어진이는 취사장에서 밤을 새려다가 감시 때문에 그러기가 힘들어서 대기하다가 결국 나랑 어진이는 대피소에서 허락을 해줘서 들어가고 쌤 두 분은 알아서 하신다고 하셨다. 워낙 강하신분들이라 큰 문제는 없겠지만 살짝 걱정은 되었다. 김담현.
-어제의 혼란스러운 날 하루가 지나 고 새벽에 큰맘을 먹고 일어났다. 정신을 겨우겨우 차려서 아침밥을 7시 쯔음 에 먹고 갈 준비를 한 뒤 뒷정리를 하자 해서 모여 출발하기 전에 브리핑을 했다. 잘다 녀 오자는 마음으로 각 자손을 붙잡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짐과 몸을 차에 실고 출발했다.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잠을 깬 뒤 내려서 남원시 산내면 (살래)에 도착했다. 그곳의 한 국수집으로 들어가서 국수 1그릇을 시키고 기다릴 때 쿠키를 주셨는데 나는 먹지 못했다 아쉬웠다. 그런 마음으로 국수라도 많이 먹어야겠다. 했지만 국수는 맛이 별로였다. 차라리 비빔국수를 시킬 걸 그랬었다. 제일이의 국수가 없었는데 십시일반으로 열 명이 한 그릇씩 보태주어서 한 그릇이 나왔다 국수를 다 먹고 나서 식당 안에 글씨들이 써져있었는데 저번에 순례를 같이 했었던 은서가 흔적을 남기고 가서 왠지 모르게 반가웠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차를 근처에 세워 두고 짐을 각자 메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발을 했다. 배낭이 참 무거웠다. 무거워서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였다. 올라가다 물소리가 들려와 발걸음을 옮겨 물을 마시고 물통에 물을 채우고 몸을 적셨다. 물싸움도 했다. 삼촌샘이 다른 사람들에게 물을 뿌려서 복수를 했을 때 정말 고소하고 시원했다. 시원한 몸으로 올라가는데 난 지리산에 4번째로 오는 것이라 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내가 다닌 코스에 반대로 가서 계속 내려갔던 길을 계속 올라갔다. 오랜만에 지리산을 봐서 반갑기도 했다. 허겁지겁 겨우겨우 올라가서 장터목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서 저녁준비를 한 뒤 테이블에서 먹으려고 했지만 빈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메트를 깔고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대피소 예약이 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게 시작부터 뭐하는 짓인지 했다. 그래서 나와 어진 그리고 담현, 재일, 삼촌샘은 비박을 하려했다. 겨우겨우 직원을 설득해서 재일이는 올라오면서 만난 형들과 끼어서 자기로 하고 나랑 어진이와 담현이도 들어가서 자게 됐다. 나는 이상하게 계속 심장 쪽이 아파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참다 참다 안 돼서 직원들에게 물어 보니 체했다고 했다. 평생 체 한 적이 없던 내가 별의 별 경험을 다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저녁을 급하게, 잘못 먹었거나 무리한 등산을 해서이다. 손을 누르고 안마을 해가며 혈액순환을 하고 가스 활명수를 마셔서 차차 회복해 갔다. 안은 덥고 힘들어서 대피소 복도에서 담요를 덥고 영석이 형과 잠을 잤다. 박사능.
-8시에 출발한다는 소리에 일어났다.
어제 언니와 이야기를 했는데,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와 밥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안경을 안 써 서 안보였지만, 대충 파리들이 신문지 위에 붙어 있는 걸로 안다.
(나중에 갔다 와서 보니, 쥐 잡는 용이였지만...)
밥을 보니 신선한 채소로 뒤덮여 있었다.
와^^
아침을 먹은 후 일행과 함께 노란차에 탔다.
언니와 맨 뒤에 앉았는데, 가방이 언니를 공격했다.
결국 어떤 오빠가 중간에 앉게 됐고, 나는 언니랑 친해질 시간이 줄어들었다.나중에 살래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했다.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백두대간 일정이 끝나기 전에는 말 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친해졌다.
언니는 처음에는 도도하고 낯가림이 심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 사촌언니 같았다.
차가 멈췄고, 우리는 내렸다.
가방을 메고 산을 오르는데.. “헐!”
내가 생각한 것과 차원이 다른 오르막길이 펼쳐졌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힘들어서 멈췄다.
그런데 갑자기 가방이 붕~ 떠서 뒤돌아보니, 밥풀샘이 내 가방을 들고 계셨다.
감동^^
선생님도 힘드신데 내색을 안 하셨다.
언니를 기다리다 보니 저 밑에서 언니가 끝말 잊기를 하며 오고 있었다.
‘안 힘드나??’할 정도로 쌩쌩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언니한테 말 걸기가 요즘에 무서웠다.
어제 분명 존댓말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진짜 안 쓰면 어색할거 같아서 말을 안했다.
그런데 말을 또 안하니까 답답했다.
에휴...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든지 처음 알았다.
백두대간이 힘들어서 그런지 내가 점점 실성해갔다.
나도 모르게 몽유병처럼 말을 하는가 하면, 잘 때 언니와 이야기 하다가 웃곤 했다.
내가 원래 미쳤나보다.
드디어 계곡이 나왔다!물을 뜨는 분위기가 어느새 물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삼촌샘께 물을 맞은 후 다시 출발했다.가다가 생강나무를 발견 했다.밥풀샘왈 “이 나무는 봄에 꽃이 제일 빨리 펴!”가만 보니 여태껏 산에서 많은걸 배운 것 같았다.
흠.. 휴대폰 없는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가다가, 휘파람새가 우는 소리도 듣고, 동물원 가는 것 보다 더 운치 있었다.
밥풀샘은 자연에는 척척박사인 것 같았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밥을 했다.
물을 뜨기 위해 밑까지 갔다 와야 하는 모험도 있었지만, 덕분에 물의 소중함을 알았다.
물 뿐 만 아니라 첫날이지만, 집의 소중함도 있는 것 같았다.ㅎ
여기서는 씻지도 못했다.
나는 못 씻을 줄 알고 있었으나, 치약이 없는 줄은 몰랐다.
결국, 나는 교정 중에 충치가 생겨야 할 판이였다.
산행 중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섭취 한다고 단것을 너무 많이 먹는 경우에 충치라니!
언니도 교정중이라 우리 신세가 말이 아니였다. 흑흑..ㅋ
나중에 대피소에 들어갈 때는 자리가 부족해 선생님께서 비박을 하셔야 했다.
그때, 내가 남자였다면 나도 비박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ㅋㅋ
오늘은 첫날이지만, 재미있는 하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낀 것이 많았다. 전진현.
-시간이 엄청 빠르다. 분명 잠시 생각해보면 백두대간을 간다고 하는 날이 벌써 지나가 버렸다. 나는 산티아고를 재밌게 갔다 와서 백두대간도 분명 재밌고 감동적이고 멋진 경험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펜션도 많고 후반부에는 강릉 바닷가 등 동해 바다도 볼 수 있고 속초 리조트도 있어 매우 기뻤다. 내가 가장 높게 올라가본 산이 치악산이다. 그래서 처음 가보는 천왕봉 엄마가 가장 힘들게 갔다는 대청봉등 태어나서 처음 올라가보는 봉우리들이 있어 매우 기대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핸드폰을 압수한다고 해서 좀 그랬다.
백두대간 가서 내 핸드폰으로 사진만 좀 찍고 싶었는데 학교 측에서 반대해서 얼떨결에 사진담당이 되었다. 난 개인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학교 사진을 찍으라 해서 마음에 걸렸다. 너무 우리를 못 믿는 듯하다. 학교에서 밥을 먹고 지리산으로 출발하니 벌써 백두대간을 한다는 생각에 흥이 났다. 게다가 첫날이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장터목 산장이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지리산을 걸으면서 역시 지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우리집 근처에 있는 인왕산이나 북한산 밖에 안 가본 내가 과연 지리산을 등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발 1915m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지리산을 올라간다니 너무 설렜다. 내가 죽기 전에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한 산이었다. 경치가 너무 좋았다. 나는 그 동안 산이 아닌 그냥 땅위의 자라나는 식물들만 보고 산이나 땅이나 피어나는 똑같겠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리산에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지대가 높아질수록 식물의 크기 식물의 종류가 달라지니 풍경 또한 매우 달라져 풍경에 대한 지루함은 없었다. 오히려 신기하였을 뿐이다. 백두대간을 걸으면 샘이 많지 않다고 당당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참샘에서 물을 가득 담고 장터목까지 계속 갔다. 아쉬운 점은 백두대간을 가을에 하였으면 시원해서 지치지 않고 잘 갈 수 있었을 것 같다. 그게 좀 아쉽다. 여름이니 땀이 나고 갈증도 많이 났다. 그래도 수련이니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나는 지리산 둘레길의 경험이 있어 큰 두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둘레길 보다는 훨씬 힘들었다. 지리산을 등산하는데 나는 너무 나를 자만한 것 같았다. 둘레길 때는 친구랑 같이 뛰어다녔다. 그 생각을 가지고 내가 지리산에서 지치지 않고 그냥 뛰어다닐 수 있다는 자만감에 그만 체력을 너무 많이 소진하였다. 가다가 성원이가 가방 무게에 지쳐 내 가방하고 바꿔 주었다. 성원이의 가방이 내 가방보다 무겁다. 하지만 나는 모두가 같이 가자는 생각에 나의 편함을 잠시 포기하고 조금 더 무거워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봉사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낳아졌다. 나의 편함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보면 성원이는 성원이이고 나는 나인데 나도 힘든데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은 짜증날 수 도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성원이가 편함을 느껴 공동체가 더 편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통해 상대방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의 편함을 포기한다는 것이 공동체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더 증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터목에 도착했을 때에는 너무 기뻤다. 첫 일정이기도 하고 내가 장터목 산장 까지 도착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산장 주변은 숲이 아니고 뻥 뚫려있다. 그래서 인지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오고 저 아래로 보이는 피아골 계곡도 너무 멋있었다. 잠시 장터목 넘어 저 멀리 있는 구름을 보았을 때는 내가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평소 같았으면 구름을 올려다보고는 저 구름은 너무 높이 있어 내가 만질 수 없다고 만 생각하였는데 막상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을 때는 구름쯤이야 나도 만질 수 있네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고는 난 생각했다. 구름을 올려다보는 사람들과 구름과 같은 높이에 있거나 구름을 내려다보는 사람들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구름을 내려다본다. 얼마나 놀라운 가 구름은 하늘 위에 높이 있다는 편견을 깨고 조금만 노력하면 구름을 내려다본다. 구름의 윗부분을 볼 수 있고 구름 아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세상도 높은 위치에 올라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저곳은 올라가기 힘든 곳이야 나는 그 위치에 올라갈 수 없어라고 만 생각하지 조금만 노력하면 산을 올라가듯이 노력하면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위치에 올라가면 세상을 내려다보고 구름을 내려다보고 나도 벌써 그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에 그 위치를 잠시 즐겨보았다. 첫날 장터목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역시 산 아래에서 먹는 저녁과 산 위에서 먹는 저녁은 전혀 다른 맛이었다. 게다가 그날 저녁은 단지 된장찌개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된장찌개가 음식 프로그램에 나오는 다른 음식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안개가 껴서 경치가 잘 안 보여 많이 아쉬웠다. 박세진.
-백두대간 첫날이다. 좁은 차에 끼여 타서 백무동으로 출발했다. 무게가 꽤 나가는 배낭이 적응이 안 되서 그런지 처음부터 땀이 줄줄 났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는데 막막하다. 정신없이 걷다가 처음 만난 계곡에서 세수하고 물을 채우며 쉬었다. 이때부터는 힘이 덜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점점 다리에 힘이 안 들고 어깨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말없이 오르기만 하니 재미가 없어 흥얼거리기도 해보고 끝말잇기도 해봤지만 결국 간식 먹는것 외엔 재미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간식이라
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과자나 사탕부터 시작해서 견과류, 땅콩, 오징어, 미숫가루까지.. 좀 많이 먹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면이 있지만
많이 걸으니깐 상관없겠지.
그래도 끝은 있다고 지겹도록 걸으니 저 너머에 구름에 싸인 대피소가 보였다. 장터목대피소는 탁 트인 곳에 있어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올라온
직후에는 시원하다고 느꼈으나 점점 추워져 옷을 꺼내 입었다. 삼촌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는데 나는 옷을 가져온게 없어 그냥 바람막이만 걸쳤다. 뭐 어차피 애들도 그렇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다 같이 손잡고 마음나누기를 한 후 밑에 수돗가에서 물을 떠와 코펠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는 휴지로 대충 닦기만 하
는데 환경이 이렇다보니 요리하는 것도 힘들고 뒷정리도 찝찝하다.
저녁을 먹고 대피소로 들어가려하니 뜬금없이 6명밖에 예약되지 않았다고 못 들어오게 한다. 대피소 측에서 무슨 착오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쪽에서 배짱 좋게 6명밖에 예약을 안 한 거였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해결해야겠다. 6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저 밑으로 내려가 비박을 하고 오는 데까지 이야기가 됐다. 나도 그 밑으로 내려가는 운 없는 인원에 꼈는데 삼촌이 어떤 형들 팀을 소개
해줘서 그 형들 틈에 끼어서 자게 되었다. 4명이었는데 스물에서 서른 정도의 형들이었다. 그 중에 같은 동네에 사는 형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얘기를 했다. 추웠지만 얘기도 재밌고 맥주도 권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권하셔서 좋았다.
땀을 흘린 다음에 씻질 않아 찝찝하다. 대충 손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고 형들 이불 틈에 끼어서 잤다. 이렇게 피곤한 날이 계속 될 거라 생각하니
막막한 감이 없지 않다. 김재일.
-새벽 8시 학교에서 살래 국수집까지 가서 밥을 먹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하고 삼촌샘과 밥풀샘은 없어졌다. 윤성원.
-학교에서 8시에 출발해 지리산권역초입에 도착 후 장터목산장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사히 장터목산장에 도착 후 예약한 곳에서 자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선생님 두 분은 비박하셨다. 이어진.
-출발하려는데 칫솔을 안 가지고 왔다. 시간이 없어서 가져올까 말까 하다가 안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말았다. 손으로 하면 된다고 하는데 손으로 하면 찝찝하다. 결국엔 담현이 형이 줘서 다행히 손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보지 않았다.
아무튼 8시에 차타고 출발했다. 멀미가 조금 났지만 토할 정도는 아니어서 참았다. 원래 멀미는 잘 안 했는데 크면서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한다. 살래국수 집으로 갔다. 메뉴는 2가지였다. 물국수하고 비빔국수. 비빔국수를 먹었는데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음식점에서 먹는 비빔국수와는 다른 맛이었다. 맛있기는 했지만 양이 적었다. 하지만 그때는 배부른 상태였기 때문에 더 먹고 싶지는 않았다.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하고 차타서 백무동으로 갔다. 오이를 나눠줬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오이를 싫어했었다. 근데 백두대간 해보니까 오이가 맛있는 걸 알았다. 이제 배낭 메고 출발했다. 처음 5~10분 정도는 할 만 했다. 그 이상 가니까 다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힘들게 6km를 가고 나서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걱정 안 하고 무작정 온 백두대간 종주가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대피소에서 저녁을 먹고 선생님들과 대피소 직원과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가 12명인데 6명만 예약한 것 때문에 그렇다. 결국 선생님들은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무셨고 우리는 대피소에서 잤다. 내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그다지 잘 자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못 잔 건 아니다. 잤으니 됐다. 김재호.
6.25 수.
새벽12시.
언니와 나는 대피소에 불이 켜져 있어, 아침인줄 알고 일어났다가 생쇼를 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땐, 일출을 볼거란 사람들이 없어졌다.
나와 언니는 랜턴을 가지고 각방에 5번씩 왔다 갔다 했지만, 가방도 못 찾고 나왔다.
설마 우릴 버리진 않겠지..설마 설마 하다보니
저 위에 산위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삼촌샘!! 2분 늦었다고 가버리다니!!일출을 못 봐서 아쉬웠다.나중에 원 없이 보게 될 일출을 잊은 채..
오늘은 천왕봉 가는 날이다.
천왕봉!!기다려라!
천왕봉 가는 길은 산 넘고 물 건너다.
돌을 타는게 제일 재밌었다.ㅎㅎ
령과 치의 차이점도 배웠다.
산을 타다 보면, 구릉이 있는데 그 위가 좁으면 치, 넓으면 령이라고 했다.
까먹지 않게 노트에 적어두고 다시 출발했다.
생각보다, 간식을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돼지인 줄 알았다.
먹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는데, 산에서 더 찐 것 같다.
언니는 화장을 아이라인과 비비밖에 안했는데 예뻤다.
그래도 산에서까지 썬크림과 화장품을 들고 오다니, 언니의 노력이면
여신이 되고 남을 것 같다. 파이팅!
천왕봉에 도착해서 삼촌샘 말대로 머리를 울렸다.
가지 말라고 했던 엄마 말을 들었으면, 후회 할 뻔했다.새석산장에 도착한 뒤, 머리를 감는데 물이 두피가 얼 것 같이 차가웠다.
언니한테 덜덜 떨며 손수건을 받은 뒤, 울면서 올라왔다.
물이 오염 될까, 비누도 치약도 없는 곳에서 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그 뒤로, 사우나를 가거나, 절대로 계곡에서 머리를 감지 않았다.
밤에 언니와 망고를 먹으며 잤던 일이 지금은 되돌리고 싶은 추억이 되었다. 전진현.
6.26 목.
5시에 일어났다. 5시에 잠에서 깼다기보다 자다가 두 번이나 깨서 두 번째 깼을 때 이후로 잠이 잘 안 들었다. 그래서 피로가 안 풀리는 느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피로는 있지만 오히려 많이 늦게까지 자는 것보다 덜 졸리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거리가 10km정도가 돼서 여러 번 쉬면서 가도 조금 힘들었다. 힘들긴 했지만 여럿이 얘기도 하면서 가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가니까 재밌기도 했다. 4시30분에 연하천에 도착해서 모두 모여서 식사당번을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정했다. 나와 사능이 그리고 성원이와 아정이누나, 진현이가 같이 저녁을 만들기로 정했다. 짜장을 만드는데 자신은 있었지만 하다보니까 내 실력도 그렇고 재료종류와 재료양 조절을 잘못해서 처음엔 맛이 잘 안 나왔다. 나중에는 있는 재료를 최대한 많이 넣었더니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애들과 쌤들이 맛있게 먹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8시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김담현.
6.27 금.
새벽아침 연하천 대피소에서 나랑 성원이는 많이 피곤해서 그런지 늦잠을 잤다. 밥풀샘이 깨우셔서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나왔다. 아침밥을 먹으려고 나왔는데 반찬이 거의 남은 게 없어 난 밥 한주먹 먹고 끝냈다. 그래서 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쓰지 않아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모이려고 하는 데 뒷정리와 정리가 좀처럼 쉽게 되지 않아서 모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침조회를 열고서 공지사항을 듣고서 출발했다. 단지 노고단에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서 쉬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했다. 중간 중간에 엄청난 계단들이 나타나서 내 다리와 어깨들과 애들을 괴롭히고 혹사시키고 부려먹었다. 1자로서서 영상도 찍었다. ‘예전에는 내려간 길이었는데’란 말도 해가면서 올랐다. 또 선두가 스피드가 붙어서 빠르게 간 적도 있었다. 적당한대에서 쉬어가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드디어 노고단에 왔다. 이토록 노고단이 반가울 수가 있나 지리산에선 제일 좋은 대피소가 있는 곳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노고단 정상에는 올라가지 못할 뻔했으나 삼촌샘의 말로 인해서 짐들을 다 놔두고 올라갔다. 처음엔 무작정 뛰었다. 하지만 체력이 안 되서 중간부턴 걸었다. 정상에 오르고서 사진을 찍고 다시 뛰어 내려가서 잠시 쉬다가 대피소로 내려갔다. 대피소에서도 쉬다가 저녁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히말라야 1차 모임이 있고 해서 저녁은 간단하게 먹었다. 출발 전에 밥풀샘은 히말라야 애들을 데리러 우리보다 먼저 출발하였다. 맛있는 것을 사온다는 말에 우리는 저녁을 간식처럼 먹었다. 히말라야 애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애들이 오고서 고기를 사왔는데 우린 훈제2개를 받고 또 애들이 식기도구가 없는 애들이 대부분이어서 빌려주기도 했다. 식사준비는 애들이 하지 않고 우리만 움직였다. 난 죽어라고 왔다 갔다 하면서 뛰었다. 조금 그랬다. 삼촌샘이 차별대우 하는 것 같았다. 애들이 남긴 고기를 먹고 정리를 한 뒤 서로 모여서 소개 시간을 갖고서 끝낸 뒤 어떤 아저씨와 영석이 형과 나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삼촌샘이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해서 안에 들어가서 침낭을 깔고 잤다. 박사능.
6.28 토.
산수유 펜션에서 학부모 1차 모임을 했다. 산수유 펜션에서 잠을 잤다. 윤성원.
6.29 일.
산수유펜션에서 잔 후 생태영성학교로 출발했다.
이번에는 차로 이동해 빨리 도착했다. 그 후 선생님과 애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브리핑 받고 앞으로의 식단도 짰다. 그 후로는 계속 놀았다. 매우 편하게 지낸 것 같다. 이어진.
6.30 월.
이틀째 아무것도 안 하고 삼 일째 쉬는 날이다. 다리 쭉 뻗고 푹 잤다. 오늘은 덕유산 입구인 장수하늘소마을까지 가는 일정이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밥풀쌤과 짐을 챙겼다.
새로 보급된 사탕, 견과류, 육포, 쥐포, 과자, 인스턴트 햄 등 간식들이 많았다. 그 중에 스팸을 몰래 숨겼지만 나중에 영석이 형한테 걸려서 둘이 먹었다. 생태영성학교에서 지내는 다솜이 누나도 같이 갈 뻔했지만 손님을 맞이해야 해서 취소되었다. 덕유산 2박 3일 동안 먹을 쌀과 식량들을 싸고 텐트까지 쌌다. 덕유산엔 대피소가 없기(또는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텐트는 꽤나 무거웠지만 결국 쓰지는 않았다. 다솜 누나가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모르지만 전투식량 두개와 메이드인유에스에이 하나를 먹으면 무려 삼일 치 열량이 보충된다는! 에너지바를 주었다. 짐을 다 싼 후 점심까지 먹고 나서 장수하늘소마을에 있는 육십령휴게소로 이동했다. 노란 단무지차를 타고 덜덜거리면서 가는 차 안은 덥고 등에 땀이 가득해 찝찝했다. 가는 도중에 밥풀쌤의 지인을 만나서 같이 갔다. 삼촌쌤을 대신해 덕유산을 같이 타실 분이다. 장대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성함은 모르겠다.
육십령휴게소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널찍한 공간에 있었다. 한적하고 적당히 선선해서 좋았다. 우리는 휴게소주차장 구석에 있는 2층짜리 정자에서 자기로 했다. 지붕까지 있어서 매트리스와 침낭만 깔고 자면 되었다. 휴게소에서 물을 떠와 밥과 찌개를 끓였는데 물에서 고무맛이 나서 그 날 밥은 '고무밥'이 되었다. 그래도 찌개는 괜찮았다. 먹고 나서 갈증을 해결해야 하는데, 고무를 마시기는 싫어서 안 마셨다. 다행히 장대장님
이 수박 한통을 가지고 오셔서 나누어 먹었다. 근처에 사시는 이우길 선생님과 다 같이 통화도 하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정자 기둥을 중심으로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다 쓴 박스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베개가 없어서 불편하다. 내일 새벽에 산으로 오를 것이다. 금방 잠이 들었다. 김재일.
7.1 화.
삼촌샘은 인터뷰 일정 때문에 덕유산권은 밥풀샘이 맡았다. 나는 차라리 할 거면 다하지 중간에 빠지고 하는 것이 좀 걸리긴 하였다. 누나와 진현이는 잠시 휴가를 갔다. 둘이 너무 부러웠지만 그래도 참고 덕유산 일정을 시작 하였다. 이제 덕유산이다. 육십령에서 야영을 하고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육십령에서 서봉까지의 구간은 덕유산과 백두대간 일정에서 가장 힘든 곳이다. 6km를 계속 올라간다고 하니 엄청 겁이 났다. 그리고 등산을 해보니 엄청 힘들었다. 할미봉까지 올라가는데 진짜 다리가 후들 거렸다. 게다가 육십령의 물에서 고무 맛이나 물도 담지 않았던 탓에 물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할미봉을 지나면 계속 능선이라고 해서 편할 줄 알았는데 더욱더 힘들었다. 진짜 투덜대면서 서봉까지 걸었다. 그리고 걷는데 앞에 영석이 형이 계속 방구를 껴서 기분까지 짜증이 났다. 서봉에 올라 근처 샘에서 물을 마시니 진짜 살 것 같았다. 잠시 쉬고 다시 힘을 내어 남덕유산을 지나 동엄령까지 야간산행까지 하여 도착했다. 원래 야간산행은 불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을 위해 불법을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야간산행을 처음 해보았는데 졸리고 벌레들의 공격 때문에 다시 하기는 싫다. 그렇게 비박을 했다. 박세진.
7.2 수.
어제 산을 많이 탄 덕에 오늘도 꽤 많이 갔다. 아침을 먹고 향적봉으로 갔다.
사진 찍고 백련사로 내려가는데 너무 가파른 길이어서 무릎과 발목에 무리를
많이 줬다. 무릎 아픈 영석이 형과 장대장님과 같이 내려갔다. 어쩔 때는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보다 더 힘들 때도 있다. 오늘 같은 날 말이다. 무사히 백련사에 내려가서 무주구천동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그 길이가 너무 길어서 막막했지만 다행히 어떤 분께서 차를 태워주셔서 영석이 형과 휴게소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안 탔으면 사람들이 라면을 다 먹고 정리했을 때 왔을 뻔 했다. 라면을 먹고 또 걸어서 덕유산국립공원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이제 덕유산 권역도 끝이다. 짐을 풀고 쉬었다. 씻고 하루종일 TV만 봤다. 원래 집에서는 TV를 잘 안 보는데 백두대간 하니까 TV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밤에 ‘어거스트 러쉬’를 보기로 했었는데 수면제같은 밥풀쌤의 안마를 받고 바로 자버렸다. 김재호.
7.3 목.
언니와 나는 3시쯤, 소백산에 출발했다.
차에 가는 내내, 우리의 앞날에 걱정하며 훌쩍 댔다.
도착할 때 쯤 통나무 집을 못 찾아서 뺑뺑 돌았다.
드디어 도착하니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에 깨는
언니를 데리고 통나무집으로 갔다.
통나무집이 한마디로 쓰레기 장처럼 지저분했다.
그래서 뻥잘치는 삼촌샘이 오늘 옮긴다고 청소를 시킨 후
나중에 한밤 더 잔다고 했다.
언니와 나는 귀신 이야기를 봤다.
숨 넘어 갈 뻔했다. 정말 무서워 죽겠다.
다행히 오빠가 여권사진 찍는 관계로 나가야했다.
사진을 찍을 때 충격적인 모습을 봤다.
사람의 머리스타일이 중요한지 처음 안 순간이었다.
말은 안 해야겠다.
맨날 빗질 하는 사람이다.
돌아와서 저녁을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씻고 보니, 나방인지 뭔지 날개달린 곤충이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세진이 오빠가 잡아줘서 천만다행이었다.
생명의 은인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전쟁을 하러 김 포대기를 들고 나비와 싸웠다.
곤충은 몰라도 날개는 질색이다.
나방천국인 대피소 화장실을 보고 내가 얼마나 기겁 했는지 모른다.
언니의 심정을 알 수 있을것 같았다.
결국, 재호가 휴지로 조용하게 잡았다.
그리고 안 될것 같은 사냥감은 힘 안 쓰고 포기했다.
하지만 나중에 언니방에 들어가 깩깩 소리를 지르면서 밖으로 나왔다.
재미있는 소동이었다. 전진현
7.4 금.
일어나서 공동짐을 분배하고 차를 타고 소백산으로 갔다. 죽령부터 출발해서 주목 감시초소 까지 가서 잘수있는곳인지 살펴봤다. 잘수있다는 걸 파악하고 몇사람은 물을뜨러 왕복2km거리로 가고 몇사람은 남아있는 물로 요리를 했다. 물이 많이 부족해서 일단 기다렸다. 물 무게가 있어서 물떠온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보였다. 떠온 물로 미리썰어둔 야채를 넣고 짜장을 만들었다. 맛있기도하고 많이 기다려서 그런지 정말 많이 먹었다. 다치우고 실내에서 대분분자고 3~4명은 밖에서 비박을 했다. 김담현.
7.5 토.
주목감시 초소에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서 뒷정리를 하고 출발했다. 여기고 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오 르락 내리 락 왔다 갔다 했다. 어느 한곳에 도착해서 미숫가루를 마시고서 누워 있다가 출발했다. 가다가 넘어질 뻔 했다가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계속 걷다가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쉬다가 왕게임을 했다. 완샘이 왕이고 영석이형이 졸병이다 난 하지 않았다. 왕이 졸병에게 일을 시켜서 완수하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면 왕이 되고 지면 다시 해야 한다. 왕게임을 끝내고 다시 선택을 했다. 고치재를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 당연이 가지 않았다. 연하 동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밥풀샘은 왜 쉬 운길을 놔두고 어려운길을 가냐면서 옆으로 빠졌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그 길로 갔어야 했음을 힘들게 겨우겨우 내려가다가 성원이가 사라져서 있다가 다시 찾아서 같이 내려가서 입구에서 밥풀샘을 만나서 내려가 라면을 끓여먹으려 했는 데 버너가 없어서 못 먹고 내려갔다. kt건물 앞에서 있다가 애들이 오자 바로 준비를 해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다 먹고 치운 다음 텐트를 치고 자다 일어나서 계곡물에 씼고 나와 저녁밥으로 꽁치찌개를 끓여먹고 이번엔 찌개에 어묵이 들어갔다. 좀전에 저녁을 먹기전에 입가심으로 훈제를 먹는데 입가심은 입가심이다. 소스가 나아서 이것을 어떻게 하지 하다가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찌개 안에 있는 어묵을 소스에 찍어 먹자고 했다. 확인 하자 아이디어가 짱 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텐트안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박사능.
7.6 일.
-삼촌샘이 오셔서 강릉까지 가서 한 살림게스트하우스에서 잤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윤성원.
7.7 월.
무지 편하게 잔 한살림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강원도 대관령까지 차량이동 후 등산을 시작해 목적지 반절인 선자량에 도착해 자리를 깔았다. 전망이 좋아서 매우 좋은 곳이었다. 이어진.
7.8 화.
자기 매트리스는 내버려두고 내 매트리스에 올라와있는 세진이와 밑에서 올라와 깨무는 개미들 때문에 일찍 깼다. 아직 해가 다 안 밝아서 매
트와 침낭을 들고 저쪽에 선자령 비석 밑에서 마저 잤다. 한 한시간쯤 자고 일어나서 텐트를 걷고 갈 준비를 했다. 아침을 안 먹는 게 마음에 들
었다.
거대 선풍기 같은 풍력발전기가 웅웅거리는 길을 걸었다. 오르막이긴 하지만 길이 넓고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았다. 그런 길을 끝없이 걸었다.
점심도 안 먹었지만 간식을 엄청 먹어서 그런지 배도 안 고프고 힘도 안 들었다. 마지막쯤에 삼촌쌤 배낭을 든거 빼고는 괜찮은 산행이었다.
마지막에 대피소로 가는 길은 불법으로 막아놓았지만 우리는 담을 넘어 통과했다. 이번 종주에는 산행불법을 몸소 보여 (줄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불법행위를 많이 한 것 같다. 일일이 따지자면 인당 백만원은 넘어갈 것 같다. 안 걸려서 다행이다. 설마 이 글을 통해 신고받지는.. 않
겠지? 도착한 노인봉대피소 내부는 경악스러웠다. 기분 나쁘게 어둡고 좁은 공간에다가 널브러진 쓰레기 그리고 퀴퀴한 곰팡이오줌냄새. 쓰레
기들은 알고보니 대피소 관리자(인가)의 식량들이었다. 우린 그 중에 게토라이와 컵라면, 참치캔 등 몇몇을 같은 '산사람'의 명분으로 빼먹었다.
그리고 그 답례랍시고 천대취급을 받는 볶음곡식을 두고 나왔다. 정말 좋은 마인드이다.
어찌됐던 대피소에서 잘 수는 없겠다 생각이 들어 비박을 하기로 했다. 안그래도 원래 비박을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삼촌이 태풍온다고, 밖에
서 자면 밤에 날아다닌다고, 그래서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다. 항상 같이 비박을 하던 영석이형과 세진이와 같이 텐트를 쳤다. 총 3개를 쳤는데,
텐트 3개로는 전 인원을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안타까운 몇명은 안에서 자게 되었다. 나는 이 때 텐트에서 처음 자보았는데 답답할 것만 같
았던 텐트 안은 꽤나 쾌적하고 편안했다. 확실히 비박할 때랑 비교해서 따뜻하다. 상쾌한 느낌이 없고 하늘도 못보지만 괜찮은 것 같다. 그래도
비박이 더 좋긴 하다. 텐트를 다 치고 하자를 발견해서 밤까지 라이트를 켜고 수리를 했다. 실질적으로 내가 한 건 없지만 눈부시고 힘들다.
백두대간 일정이 벌써 일주일밖에 안 남았다. 처음엔 마냥 끝나는 날을 기다렸는데 아쉽다.
영석형과 세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김재일.
7.9 수.
원래 코스는 길었는데 백숙 먹으러 가자고 해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했다. 엄청 길었다. 그리고 계속 비슷한 길로 가서 지루했다. 아무리 걸어가도 내 옆은 항상 계곡이다. 그래도 길은 좋았다. 길이 힘든 길이면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다. 하산을 하고 백숙 먹으려고 했는데 그 백숙집이 삼촌샘이 생각하고 있던 곳에서 20km를 더 가야해서 포기했다.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어졌다. 이번 일뿐만 아니다. 다시는 아무도 안 믿는다는 말은 아니고 음... 아무 말이나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나를 위한 거짓말을 한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괜히 기대만 부풀어 오른다. 백숙 대신 해물파전을 먹었다. 그냥 밥도 거기서 해결했다. 삼촌샘은 차가지러 갔고 우린 700m 아래로 더 내려가서 오대산국립공원 화장실에 가려 안 보이는 주차장에서 야영을 했다. 삼촌샘이 차 가지고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다.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냥 잤다. 김재호.
7.10 목.
일어나니 관리공단 직원에게 걸렸다. 그래도 저번에 인사를 하여 벌금은 피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참 불법을 많이 하였다. 그래도 인생이 불법이 난무하는데 뭐가 문제인가 안걸리면 합법 이라고 합리화를 시켰다. 또 그렇게 오대산이 끝났다. 이제 바닷가에 간다. 주문진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오랜만에 보는 동해바다였다.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데 마법같이 빠져들었 다. 동해바다의 출렁거리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걸으니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시원한 바닷물에 손을 담그니 여유가 찾아왔다. 그러고 빨래를 돌리고 찜질방에서 목욕을 하고 나니 너무 좋았다. 박세진.
7.11 금.
아침에 씻고, 차를 타고 고마리학교로 갔다.
언니가 배가 아픈데, 내가 자다가 언니를 깔아뭉겠나보다.
“미안해ㅠ”
언니한테 나는 도움이 못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다가 트렁크 문이 열렸다.
설마했는데, 사능이 오빠 가방을 잃어 버렸다.
산에 가기싫은 오빠가 “그렇지! 이렇게 시간을 끌어서 안가는거야!” 했다.
그나저나, 사능이 오빠가 부러웠다.
내 가방이 없어지진 못할 망정!!
오늘 저녁에 히말라야 모임이있었다.
호연이도 오겠지??
귀여운 호연이♥♥
아니나 다를까, 호연이가 있었다.
와~~~~ 호연아!!
“어허헝?? 언니!!”
10년만에 만난 사람처럼 좋아해댔다.
나랑 놀다 헤어지기만 하면 울고 불고 난리 치는 지형이랑 닮았다.
그런데 거기엔 장난꾸러기 남자애들도 있었다.
초4쯤 되어보이는 아이들 이었다.
내가 내키는 대로만 할수 없다느낀 나는 이번엔 좀 제대로 자기소개를 해보기로 했다.
밥을 하는데 언니가 마법으 스프를 끓이고 있었다.
“언니!! 김치넣자”
“그래~”
“너무 많나? 좀 뺄까??”
“괜찮아~ 우리먹을꺼아니잖어??음하하”
역시 쿨하다.
“그래, 우리는 고기 먹자”
어쩌다 이런 똥심보를 갖게 됬는지 모른다.
밥을 먹고 숙소에 가는데 해리포터가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진짜 잘쳤다.
나도 피아노 배울까 할정도록 재밌게 쳤다.
덕분에 해리포터는 삼촌샘덕에 달명상 시간에 또 쳤다.
크루즈에서 음악 밴드로 쳐도 될것같았다.
대단하다라는 말밖에 안나왔다.
뒤테가 폼이 났다.
그렇게 명상은 끝났고, 그 기분을 아직도 있을수 없었다.
차분하게 생각하며 날 되돌아보며 미안함을 느낀 기분.
왠지 울컥하게 감정이 살아난다.
그리고 14살이 된 나에게 동생들이 그럴수있나 싶었다.
반어법이 심한건가... 애들 놀아주려고 했을 뿐인데, 괜히
미움만 샀다. 억울한 순간이다. 전진현.
-오션스파 찜질방에서 일찍 일어나서 나와 차에 타서 애들이 늦게 나왔다. 그리고 출발해서 길을 올라가는데 트렁크가 열려있는 것이 발각 되고 가방이 없어져서 다른 것은 다 찾았지만 내것은 보지 못했다. 고마리 학교로 내려가서 짐을 풀고서 여자 둘은 남고 우리들은 올라갔다. 올라가서 길을 잃어버리고 개한테 쫒기고 해서 낭패였다. 그래서 작전변경으로 지옥같은 곳을 오르락내리락 한 뒤에 어느 계곡에 머물러서 빠질 사람은 빠지고 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 빠져나와 차를 타는 데 할머니에게 혼나고 출발해서 돌아와서 난 계속 우물쭈물 하다가 날씨가 좀 좋아 진 뒤 에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없었고 히말라야 애들이 왔다. 그러고서 고기파티를 하고 정리한 뒤 쉬다가 지성이의 피아노 실력에 놀라고 피아노를 8년이나 배웠다고 한다. 모이는 시간을 가져서 명상을 하고 서로 소감을 발표한뒤 들어가서 잠자리를 피고 대화의 장을 열어서 대화를 계속하다가 잠이 와서 잤다. 박사능.
7.12 토.
일어나서 배낭을 싸고 방정리,청소를 끝내고 나갔다. 짐을 차에 다 실고 자리가 없어서 여자들은 택시를 타고 남자들은 모두 프래지오를타고 지수네폔션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고 이번엔 폔션 주인아저씨께서 운전을하시고 모두 프래지오에 타서 산앞에 까지 이동했다. 자주자주 쉬면서 산행을 하고 행동식을 수시로 먹었다. 내려와서 조금 기다리니 폔션주인아저시께서 다시 차를타고 대리러 와주셨다. 지수네폔션으로 돌아가보니 세진이네 어머니가 벌써 와 계셨다. 간식으로 몽쉘을 먹고 씻고싶은사람은 방에들어가서 씻었다. 초코파이 종류를 먹고싶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몽쉘이 정말 맛있었다. 일단 몇사람만 텐트를 치고 안한 사람들은 나중에 요리를 돕기로 했다. tv를 보면서 쉬다가 소세지를 굽고 옥수수를 굽고 저녁파티가 시작됬다. 고기와 여러 가지 맛있는반찬을 먹고 어른들은 늦게까지 파티를 즐기시고 어른분들이 들어오실때까지 tv를 보다가 텐트로 갔다. 이번에 휴식과 파티 같은것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게됐다. 김담현
7.13 일.
오늘 지수네 펜션에서 일어나서 아침을 먹은 다음에 아빠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해서 아침 먹고 출발한다고 했다. 히말라야 애 갈 애와 부모님을 뒤에 태우고 작별인사를 하고 출발하셨다. 하나둘씩 히말라야 애들이 가고 난 원래 숲에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가질 않아서 가다가 돌아왔다. 그동안에tv를 보다가 점심을 먹을 때 즈음이 돼서 점심을 남은 반찬에 먹고 쉬다가 세진이 어머니하고 재일이 부모님을 마중하고서 밥풀샘이 오셨는데 밥풀샘이 낮술을 드셨는지 정신이 이상해지셨다. 눈도 풀리고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이 생겼다. 난 허 그도 만 이하고 해먹에 들어가서 맞기도 하고 해먹에서 회전해서 떨어지고 아예 내팽겨지기도 했다. 텐트도 개고 정리를 하고서 또 각자 짐을 겨우겨우 배분하고 저녁도 겨우 먹고 쫌 있다가 이야기를 하고서 잠자리를 깔고 tv를 보다가 잤다. 박사능.
7.14 월.
하루 푹 쉬면서 월요일 날 설악산 지역에 있는 차타고설악산지역 중청대피소에서 네 시에 도착을 했다. 중청대피소에서 잠을 잤다. 윤성원.
7.15 화.
아침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다시 대청봉에 가서 일출을 보고 이대로 쭉 내려가서 하산했다. 그 후 동덕여대수련원이라는 곳에서 묵었다. 나는 박그림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가 늦게까지 놀다 걸려서 혼났다. 이어진.
7.16 수.
-아침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 했지만 너무 늦어져서 삼촌쌤의 꾸중을 들으며 출발했다. 그 후 대략 9시간의 주행을 마친 후 학교에 도착했다. 대략 20일간의 백두대간의 끝이었다. 이어진.
-어젯밤에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와서 아침에 늦잠을 잤다. 갈 준비를 최종적으로 하고 아침을 먹었다. 씻고 이제 산행은 없다, 생각하니 기분이
약간 이상하다. 학교로 가지 않는 영석이 형은 우리와 헤어져 대중교통으로 집에 갔다. 항상 수고해주는 연로하신 단무지차에 모든 짐과 사람을
꾸겨넣고 정읍으로 출발했다. 도중에 휴게소를 네 번 들렀고, 장장 아홉 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한 학교는 나름 오랜만이었지만 어제도 여기 있었
던 것처럼 익숙했다. 끝난 줄 알았더니 이제부터는 종주 일지를 써야한다고 해서 다같이 강당에서 일지를 쓰며 지루하게 하루를 마쳤다. 나는 2
시간 동안 열줄밖에 안써서 자발적으로 강당에 남아 한 시간 가량 쓰다가 (이때도 노래만 듣고 별로 쓰지 않았다) 졸다 깨서 옆방에 들어가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이 아닌 막힌 방 안일 것이다. 아쉬워진다.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도 오늘이 되면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어차
피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마무리나 잘 해야겠다. 김재일.
-오랜만에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수련장에서 정읍중심터 까지 10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빨리 출발했다. 가는데 휴게소를 4번이나 들렸다. 점심도 느긋하게 먹고 가서 9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냥 바로 갔으면 7시간 30분 정도 걸렸을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해 여러 얘기를 했다. 드디어 끝났지만 히말라야가 남았다. 별 느낌 없다. 김재호.
- 전날 나는 혼자서 밤바다를 산책하였다. 아무도 없는 밤바다를 보며 백두대간에서의 일정을 되짚어 보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부정적인 마인드로 백두대간을 걸었었다. 불만만 쌓인 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웃긴 상황이었다. 지금 백두대간을 되짚어 보면 참 좋은 기억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음식만 빼면 산티아고 때 처럼 잊혀지지 않는 기억인데 말이다. 너무 뿌듯 하고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재대로 백두대간에 참여할걸 이라는 마음에 좀 아쉬웠다. 이번 백두대간을 종주함으로써 나의 커리어는 높아졌다. 박세진.
-설악수련장에서 모기한테 뜯겨 안에서 자다 일어나서 침구를 개고 짐을 싸서 내놓고 푸짐한 아침밥상에 다 먹지 못하면 설거지를 걸어서 열심히 먹어서 미션을 완료하고 씼고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은 다음 작별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가다가 휴게소를 들러 사먹고 또 들려서 햄버거를 사먹고 3번째로 들린 곳에서 점심을 먹는데 아무거나 시키라고 해서 비싼 돈까스를 먹고 점심이 한 3시20분에 먹고 그러고 다시 출발해서 마지막 휴게소를 들리고 고속도로를 나와 정읍에 와서 태영샘을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시가서 학교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정리를 한 뒤에 저녁밥을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늦어서 빨리 올라가서 혼나고 스케줄을 적고 분위기속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백두대간일정을 적으라고 해서 적었다. 한번 에 다 적진 못했다. (겸사겸사 해서 집에서 끝낸 타이핑 올림)
-아침에 밥을먹고 10시반의 출발을 했다. 휴게소를 가고 7시의 도착을 했다.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