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 신청자들이 늘자 이들에게 사채를 빌려준 악덕업자들이 계약서를 교묘히 작성, 피해자들을 두번 울리고 있다.
계약서의 채권자 명의 · 거래날짜 수정 … 판결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
최근 과도한 채무를 이기지 못한 서민들의 개인파산이 폭증하고 있다.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지난해 연말 10만명(10월말 현재 9만6200명)을 훌쩍 넘어섰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어딜 가나 개인회생제도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면책제도 확대에 대한 요구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이렇게 사회 전체가 해답 없는 논쟁에 정신을 쏟는 사이, 법망을 맘껏 비웃으며 신용불량자들을 더욱 깊은 나락에 빠뜨리는 악덕 사채업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사채 거래 과정에서 불완전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언제든지 내용을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계약서상 거래 날짜나 채권자란을 공란으로 남겨 두는 게 일반적 행태. 향후 채무자가 개인파산 등 면책 선고를 받더라도 계약서를 임의로 바꿔, 효력을 상실하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들의 경우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거나,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최근 이 같은 피해를 겪은 윤모씨(47)는 “파산선고를 받으려고 빚까지 내가며 변호사 선임비를 마련해, 6개월 이상 법률사무소와 법원을 왔다갔다 했다”면서 “빚을 갚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린 사채업자에 의해 두 번 죽은 기분”라고 호소했다.
사채업자들은 채무 발생일이 3개월 이내 시점이면 개인회생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계약서상 날짜를 파산 선고일과 근접하게 작성해, 판결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법원 판결 며칠 전 이 같은 내용으로 공증을 받아 두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또 채권자 명의를 수정해, 거래 당사자를 바꾸는 수법을 악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개인파산 전문 법률사무소에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이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 전화가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은현 유비로(UB LAW) 종합법률사무소 법률팀장은 “최근 채권을 회수하기 위한 사채업자들의 수법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며 “불완전한 계약서 한 장 때문에 파산 무효를 호소하는 사람들의 문의가 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업체와의 거래에서 가장 많은 피해가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경고한다. 불법 사채업자들의 경우 계약서를 의도적으로 한 장만 작성해 자신만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서를 쌍방이 공유하지 않을 경우 거래 금액을 바꾸는 악질적 사기 수법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정 팀장은 “계약서는 모든 거래나 법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된다”며 “반드시 계약서를 챙기고 일일이 대조해 보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감·증명, 신용카드처럼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중요한 물건들은 절대로 내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