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블랙야크 100대명산 18좌를 위해 찾은 예산 가야산
오늘은 어게인을 위해 다시 찾았습니다.
대전을 출발한지 약 1시간 20여분 만에 도착한 예산군 상가리 주차장
이곳을 차를 주차하고 오릅니다.
가야산의 하루 라는 카페를 검색해서 찾아도 되고
남연군묘를 목적지로 설정해서 찾아갈수도 있습니다.
산행길은 이렇게 마을길로 시작합니다
우측의 호두나무가 아름다리 해 보이네요
좌측은 가야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우측은 석문봉이나 옥양봉으로 가는 길인데요^^
우측으로 가다보면 또다른 갈림길이 나옵니다.
오늘은 옥양봉을 경유하여 석문봉~가야봉으로 향하기에
우측으로 향합니다.
옥양봉으로 향하다 보니 또다른 갈림길이 나옵니다.
상가리 미륵불은 하산 후 보기로 하고
옥양봉으로 오르다 보면 또다른 갈림길..
옥양봉과 석문봉 갈림길이 나옵니다.
저 능선위로 보이는 곳이 바로 옥양봉 입니다.
오래된 고택이 있는데 사람이 살지는 않은듯 합니다.
내부 개조를 하면 참으로 운치있는 집이 될듯 한데요^^
석문봉으로 오르는 길도 산세가 아름답지만
옥양봉으로 오르는 길도 나름 괜찮은 숲길입니다.
약 1.8km정도(35분)오르니 이런 모노레일이 보이네요
이 모노레일은 200m위에 있는 관음전의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장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측의 소로길을 이용하여 관음전을 향해 가봅니다.
42분(2.1km)만에 도착한 관음전
산속에 있는 작은 암자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가야사가 있을때 중수한 암자인지도 모릅니다.
관음전에서 바라본 예산군 덕산면 일대의 모습입니다.
아마 이곳에서 기도하시는 스님은 저 아름다운 풍경을
매일 감상하시면서 정진을 하고 계시겠죠?
관음전 좌측으로 돌아 다시 원래 등산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옥양봉까지의 약 500m 오르막과
가양봉에서 주차장으로 하산 또는 등산하는 약 600m의 구간이
가야산 산행의 묘미입니다.
1시간 10분(2.7km)만에 도착한 쉬흔길바위
'쉰질'은 쉬흔 길(50길)의 충청도 사투리로
매우 높다, 혹은 매우 깊다 는 뜻으로 매우높고 우람한 바위를
대부분 쉰길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쉰질바위는 일명 장수바위라고도 한다.
옛날 큰 장수가 이곳 쉰질바위에서 뛰어내린 발자국이
상가리 주차장 인근 바위에 찍혀 장수발자국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간직하고 있다.
쉰질바위보다 좌측의 다이아몬드 같은 바위가 더욱 아름답다.
1시간 20분(2.8km)만에 도착한 옥양봉
구슬옥에 큰 바다 양 이면 구슬같은 큰 봉우리란 뜻인가?
이제부터 금북정맥을 타기 시작한다.
석문봉에 위치한 돌탑이 석문봉을 알린다.
돌이 많아서 석문봉이라 일컫는가?
2시간 07분(4.6km)만에 도착한 석문봉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린다.
바위가 많아 석문봉이라 한듯 하다
저 멀리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가야봉이 보인다
이곳 석문봉에서 가야봉까지는 약 1.6km거리이다.
석문봉과 함께한 사자바위이다.
저란 사자바위 같은 바위들이 많아서 석문봉이라 부른듯 하다.
등산로에 우뚝 선 소원바위
이곳까지는 약 5.1km(2시간 27분) 걸었다
거북바위라 한다.
거북이가 긴 목을 내밀고 있는 듯 하다.
드디어 가야산 정상에 도달한 듯 하다.
이 계단을 오르면 가야산의 최고봉인 가야봉이다.
3시간(6.2km)만에 도착한 가야산
가야산 [伽倻山]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백제 때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는데, 신라통일 후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세운 뒤 가야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가야산은 충청남도 북부지방을 북·남 방향으로 뻗어 있는
소규모 가야산맥에 속하며, 규모는 작지만 주변에 많은 문화유적을 간직한
명산이다.
주봉인 가야봉(677.6m)을 중심으로 원효봉(677m), 옥양봉(621.4m),
일락산(521.4m), 수정봉(453m), 상왕산(307.2m) 등의 봉우리가 연결되는
다양하면서도 어렵지 않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노약자 및 여성,
어린이도 쉽게 산을 오를 수 있다. 또한, 정상에서는 서해가 아련하게 보이고
봄철에는 철쭉과 진달래 등 각종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등
사시사철 경치가 수려해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백제 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 개심사, 일락사 등이 가야산 자락의 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국보 1점, 보물 6점, 기타문화재 4점 등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내포문화권의 핵심지역이며,
그 자체가 거대한 문화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유서 깊은 문화유적과 오염되지 않은 자연경관을 찾아
매년 5십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덕숭산(德崇山, 495m)과 함께 1973년 3월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블랙야크 100대명산 어게인 23좌 성공!!
석문봉 방향으로 이동하다 주차장으로 하산할까 하다가
그냥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한다.
정상에서 약 600m의 구간은 이런 너덜길을 통과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너덜길이 끝나고 아름다운 소로길로 이어진다.
바로 이러한 아담한 오솔길이 말이다.
남연군 묘 위에 위치한 상가저수지
호수에 비친 수목들이 아름답다.
저 멀리 가야봉도 보인다.
흥선대원군이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하사했다는
궁중식 상여라고 한다.
원래의 상여는 훼손되고 복원한 것이라 한다.
대원군은 가야사 금탑자리가 2대 천자가 나올 자리라 하여
가야사 절을 폐하고 남연군 묘를 썼다.
흥선군은 이 자리에 남연군 묘를 쓴 지 7년 만인 1852년에
둘째 아들 재황(載晃, 아명은 命福)을 얻었고 그로부터 11년 뒤인 1863년에
이 아이가 고종이 되었으며 그 아들이 순종이 되었으니
2대 천자를 본 것만큼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두 임금을 끝으로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맥이 끊기고,
남연군 묘는 오페르트라는 독일 상인이 파헤친 바 되었으니
과연 그런 수난을 당하고 2대 천자의 결말이 그렇게 난 자리가
결과적으로 명당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묘지 우측에 있는 묘비의 글씨가 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남연군 묘의 산도
흥선대원군이 폐해 버린 가야사는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수덕사보다 앞에 들고 있어, 수덕사보다 큰 절이었던 듯하다.
형승(形勝)조에 설명한 ‘금탑’(金塔)은 “그 윗머리는 구리쇠로 씌우고
네 모서리에 철사를 꼬아 만든 줄을 걸어 늘어뜨리고 풍경을 달았다.
그 형태가 웅장하고 만든 법이 기이하고도 교묘하여 다른 탑과 다르다”고 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공주 마곡사에 있는 라마교 방식의 탑처럼 탑 상륜에
구리쇠로 보개를 씌웠는데 빛을 받으면 반사하여 번쩍이므로 금탑이라 한 듯하다. 그렇다면 고려 말기에 건립되었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도
공민왕 7년(1358)에 나옹화상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고 적고 있다.
또 가야사 보웅전에는 철불 세 분이 모셔져 있었는데 불에 타 녹아서 쇳덩어리가
되었다. 철불이었다면 신라 하대 또는 고려 초중기의 것일 수 있다.
뒷날 봉산면의 대장장이가 파묻혀 있던 쇳덩이를 녹여 쓰려고 했으나
가루가 되었다고 한다. 남연군 묘 아래쪽의 넓은 절터는 지금 논밭으로 변해
버렸는데 군데군데 깨진 석등, 부도, 탑비 조각이 있었으나
더러는 묻히고 더러는 캐 가서 건물 자리와 주초석이 남아 있다.
이곳에 있던 석등 화사석은 보덕사에 옮겨져 있다.
탑을 깨부수고 절을 폐한 것이 마음에 걸린 흥선대원군은
고종이 즉위한 몇 달 뒤에 가야골 아래 상가리에 한양에서 목수를 보내어
은덕을 보답한다고 지은 절이 보덕사(報德寺)이다.
장남 재면(載冕)의 이름으로 지은 이 절은 왕실의 원찰이 된 셈이다.
규모로는 보잘것없어서 가야사의 영화를 재현하지는 못했던
이 절에 있는 가야사 석등 화사석은 그나마 가야사가 어떤 절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팔각의 몸돌에는 돌아가며 창이 넷 뚫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귀신을 밟고 있는 형상으로
갑옷이 정밀하고 천의 자락이 날리는 품이 예사 조각과는 다르다.
석등의 몸돌만도 높이가 87㎝나 되니 전체 크기는 꽤 컸을 듯하며
형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도 129번째 클린산행과 함께^^
남연군 묘에서 보아 왼쪽 산기슭에 돌부처가 한 분 있다.
풍채도 자그마하고 생김도 그만저만한 민불인데,
재미있는 것은 골짜기 앞쪽이 아니라 골짜기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그 내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남연군 묘의 풍수에서 보면
그쪽이 좀 비어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골짜기로 빠져나가는 기를
막느라 부처를 세웠다는 말이 있다.
또 하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돌부처는 원래 거기에 있었는데
흥선군에 의해 가야사가 불타 버리자 그 모습이 보기 싫다고 돌아섰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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