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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는 曼靑(만청)으로 평원군(平原郡) 염차현(厭次縣) 사람이다. 동방삭에 관련된 서적《한서》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에는 그의 저술로 "답객난(答客難), 전상백주(殿上柏柱), 비유선생지론(非有先生之論), 봉태산(封泰山), 책화씨벽(責和氏璧), 황태자생매(皇太子生禖), 병풍(屛風), 평락관부렵(平樂觀賦獵), 팔언칠언(八言七言), 종공손홍차거(從公孫弘借車) 등이 언급되어 있다.
《한서(漢書)》의 〈동방삭전(東方朔傳)〉 한나라 무제(漢武帝)는 동방삭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침식을 취하고 있는 대궐 처마에 구리 종(銅鐘)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상하게 한두 달 전부터 아무도 종을 치지 않음에도 스스로 울려 괴상망측한 생각이 드는데, 왜 우는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어 선사를 부르게 된 것이오." 라며 근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듣고 있던 동방삭이 임금에게 "그렇다면 종을 만들 때 그 구리는 모두 어디서 구하셨사옵니까?" 라고 묻자 한무제는 구리산이라는 곳에서 캐어다 만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방삭은 "구리종이 우는 것은 구리산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자 임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신하를 불러 구리산이 과연 무너졌는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그러고서, 한무제는 다시 선사의 말대로 구리산이 무너진 게 사실이라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
한무제는 "그러면 인간은 그 뿌리를 시조(始祖)라고 하는데, 산에도 인간과 같이 그런 뿌리가 있는 것이오?" 하고 묻자
동방삭은 "산이란 것도 우리 인간들의 혈맥과 같이 풍수학(風水學)에서 용(龍)이라고 일컬어 부르는 혈(穴)이란 것이 있어서 산에는 가장 근본이 되는 조종산(祖宗山)이란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주산(主山)이 있사온데 그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인간의 혈맥과 조금도 다름없사옵니다."라고 하였다. 한무제는 동방삭에게 "그러면 선사께서 말한 대로 인간이나 땅이 한결같이 그 근본(뿌리)이 있다면 온 천하(세계)에도 반드시 그 근본 뿌리가 있을 텐데 천하의 뿌리는 어디가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방삭은 "세상 모든 사물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온 세상이 만들어진 과정도 반드시 시작 즉, 발원성지(發源聖地)가 있사온데, 바로 그 발원성지는 이웃나라 해동국(海東國)이옵니다." 라고 간단하게 설명하자
한무제는 "왜 하필이면 해동국이란 말이오?" 하고 묻자 동방삭은 "주역에 시어간 종어간(始於艮終於艮)이라고 적혀있는데, 그 뜻은 모든 만물의 시작과 끝이 간방(艮方)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간방은 지구 중심부에서 볼 때 바로 해동국이 있는 위치라고 하였다.
공자는 주역周易 계사전에서 괘상을 풀이하면서 간(艮)은 동북지괘야(東北之卦也)니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일새 고(故)로 왈성언호간(曰成言乎艮)이라‘고 했다.
‘간(艮)은 동북방을 가리키는 괘이니, 만물의 끝과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성인의 말씀이 간방(艮方)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간방에서 열매를 맺고 간방에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의 방위로 볼 때, 간방(艮方)이란 동북방 곧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곧 우리나라에서 인류 시원문명의 싹이 트고, 또 우리나라에서 문명의 결실을 이룬다는 것이다.
본래 지리학은 한(漢)나라 때 청오(靑烏)라고 하는 분이 처음 제창했다. 그 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전해졌으나 다만 국지적(局地的)으로만 얘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산지조종(山之祖宗)은 곤륜산(崑崙山)이요, 수지조종(水之祖宗)은 황하수(黃河水)라’고 했었다. 지구의 축(軸)이 곤륜산(崑崙山)이라는 말이다. 알기 쉽게 이 지구의 뿌리가 곤륜산이라는 말이다. 수레바퀴가 둥글어 갈 때 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구에서 수레바퀴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 히말라야에 있는 곤륜산이라는 것이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봐도 동,서양의 산이 곤륜산을 모태로 해서 갈려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맥이 구부러지고 틀어진 것이 그냥 우연히 그런 것이 아니다.
지리를 모르면, 산천(山川)이 제멋대로 구부러지고 틀어지고 길쭉하고 모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리(地理)를 알고 보면 글자 쓰는 것과 같다. 하늘 천(天)자를 쓸 때, 일정한 법칙에 따라 글자를 쓰듯, 지리도 그렇게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
산(山)의 줄기 하나 내려간 것도 조금도 어긋남 없이 글자 쓰듯이 나타난다.
들판이 생기려고 해도 들판이 형성되어 나온 주산(主山) 마디가 있다. 한 마디가 10 미터 되는 것도 있고, 100 미터가 되는 것도 있다. 마디가 있으면 반드시 들판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용절(龍絶)이라고 하는데 용절을 재어 보면, 어디쯤에서 들판이 생긴다는 그런 법칙이 나온다.
곤륜산에서 뻗은 여러 산줄기 중 하나가 우리나라로 뻗어 들어와 백두산을 일으켰는데, 그 중간에 큰 들판이 있다. 그것을 만주 요동 칠백 리라고 한다. 기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 보면, 워낙 들판이 넓어 하루종일 가도 갈대와 하늘이 맞닿아 있다. 지리는 워낙 호호탕탕하고 틀이 커서 오히려 천문(天文)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라서 옛날 사람들이 ‘난지자(難知者)는 지리(地理)라’ 알기 어려운 것이 지리라고 했다. 지리는 그냥 아무렇게나 생긴 것이 아니다.
세상만사가 다 순(順)해야 되는데 지리만은 역(逆)해야 된다. 서울의 청계천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역(逆)하여 흐르다 중랑천에서 합쳐져 한강 본류로 빠져 나간다.
북악산의 오른쪽에 친 인왕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사직터널에서 부터 산줄기가 내려와 서대문, 서소문이 생기고 남대문까지 와서 그 줄기가 남산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쪽 물은 청계천으로 빠지고 반대쪽 인왕산줄기 서쪽 물은 용산쪽으로 빠져나간다.
인왕산 줄기 안쪽 물과, 북악산과 남산 골탱이의 서울 장안의 안쪽 물은 전부 청계천으로 모여들어 거꾸로 치올라가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청계천 물이 흐르는 방향은 한강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과 정반대다. 한강은 동에서 서로 김포와 강화도 쪽으로 흐르지만, 청계천 물은 묘하게도 서에서 동으로 역(逆)하며 거꾸로 흐른다. 그러니까 서울에 도읍터 하나 만들기 위해 청계천 물이 그렇게 역(逆)을 했다는 말이다
북한강과 남한강 물이 양수리에서 합해져 서쪽으로 빠지는데, 서대문 서소문 남대문 남산 안쪽 물만 거꾸로 치올라간다. 지리는 이렇게 역(逆)을 해야 터가 생기는 것이다. 집터도, 묘자리도 다 그렇다. 그렇게 되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 이렇게 역(逆)을 하지 않으면 절대 자리가 안 생기는 것이다.
이런게 왜 생겼느냐 하면 한강물이 빠지는데, 중간에 중지도가 있어서 서울의 땅 기운이 빠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밤섬이 있다.
홍수가 밀려오면 잘잘한 밤섬같은 것은 그냥 쓸려가 버리고 말 것 같은데, 여러 천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또 그런가하면 그 밑에 여의도가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난지도가 있고, 강화도에 가면 ‘손돌목’이라는 곳이 있어서 강이 기역자로 구부러져 있다. 그것이 다 설기(洩氣)되는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손돌목이라고 이름을 붙쳤나?
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당시 천도(遷都)를 할 시에 도읍지를 계룡산 신도안으로 하느냐, 한양으로 하느냐, 공론이 분분했다. 신도안에 가보면 그때 나라의 사령탑을 짓는다고 깎아 놓은 주춧돌이 지금도 남아 있다. 터 닦던 데를 파 보면 볏짚 한 켜 깔고 다시 황토를 한 켜 깔고, 그렇게 정토(淨土)를 해 놓았다. 이성계가 거기를 내던지고 서울로 천도를 하고 나서 그 터에다 절을 지었는데 그 절 이름이 정토사(淨土寺)다. 그런데 높은 벼슬아치들이 거기를 버리고 한양으로 갈 때, 강경에서 배를 타고서 갔다.
그때 죽은 사공이 밀양 손(孫)가다. 장가도 못 간 손도령이 죽은 곳이라 해서 손돌목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또 그 사공이 죽은 날이 음력 시월 스무날인데, 조선 5백 년 동안 이날만 되면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그것을‘손돌이 추위‘라고 한다. 그래서 손돌이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도 해야 되고, 이엉을 엮어서 지붕 해 이는 것도 그 안에 다 해야 했다. 손돌이는 손도령이라는 말이다. 장가도 못 들고서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원한 때문에 그렇게 날이 춥다는 것이다. 물이 빠지는 곳을 학술용어로 파(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파(破)는 손돌목처럼 그렇게 되어져 있다.
알아듣기 쉽게 남자의 양물, 자지 구멍은 오줌을 눌 때나 조금 벌어지고 늘 붙어 있다. 또 분문(糞門)이라고, 똥 분 자, 문이라는 문 자, 똥 나오는 구멍 문이 있다. 그것도 항상 닫혀 있다.
또 여자한테는 구슬 옥 자를 붙여서 옥문(玉門)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아기를 잉태해서 기르는 궁전, 자궁(子宮)이 있다. 이 자궁도 필요에 의해서만 벌어지고 항상 딱 붙어 있다. 거기는 샐 설(泄) 자 기운 기(氣) 자, 설기(泄氣)가 되면 안 된다. 생물이라면 100%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파(破)를 설명하느라고 하는 말이다.
다시 좀 더 설명을 하면, 강원도 금강산의 중심이 비로봉이다. 거기서부터 비롯한 물이 한강으로 다 흘러내려 온다. 충청북도 속리산 남쪽 물은 금강으로 내려오고 속리산 서북쪽 물은 남한강으로 내려간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물과 합류를 하기 때문에 양수리(兩水里)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우리 나라 대세가 전부 위에서 아래로,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려 가는데, 이쪽 물은 거꾸로 남에서 북으로 거꾸로 오른다. 추풍령, 무주, 진안, 장수가 다 남쪽이다.
금강이 공주에 고마나루까지 물이 거꾸로 올라가서, 거기서 부터는 부여쪽으로 구부러져서 장항 군산쪽으로 순(順)하게 내려간다. 지구에서 자리가 이렇게 된 곳이 없다.
서울의 터는 대전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것이다. 대전이 서울터의 몇 백배에 해당한다. 속리산쪽에서 부터 장수, 진안, 무주로 해서 공주까기, 우리 나라 중심부 절반을 역(逆)을 한 곳이다. 지리학상으로 볼 때 지구의 혈이 바로 남북한을 통털어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 중에서도 오직 대전이 자리한 중부지방 이곳만이 지구의 혈이다. 본래 천지가 형성 될때 혈자리가 정해진 곳이다.
일본의 구주 같은 데는 부산 태종대에서 날씨 좋은 때 보면 어렴풋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은 외청룡(外靑龍)이고, 중국 대륙에서부터 싱가포르까지가 내백호(內白虎)다.
중국을 보면 아주 첩첩이 에워싼 만첩백호(萬疊白虎)다. 그것이 다 내백호다. 아프리카 대륙은 외백호(外白虎)다.
청룡은 비상飛上하고 즉 청룡은 나는 것 같이 보이고, 백호는 순복順服하고, 순하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아야 지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 뉴기니아 앞쪽은 우리나라의 안산(案山)이다. 기운이 빠지는 곳, 즉 물이 빠지는 파(破)는 대만해협이다. 언뜻 보면 구주에서 부터 대만까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연륙되어 있다. 다만 높은 데는 물로 드러나고 얕은 곳은 몇 백 미터씩 물밑에 잠겨 있을 뿐, 사실은 대만까지가 전부 다 붙어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점점이 이어진 섬을 유구열도(琉玖列島)라고 한다.
알고보면 구부러지고 틀어진 지구의 산천이 전부 혈穴자리를 옹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오대양 육대주가 전부 지구의 혈자리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곤륜산에서 부터 지맥이 뻗어 나와 우리나라 요동 칠 백 리 만주 땅에 결인(結咽)을 하고(결인이란 지리학상의 술어로 맺을 결(結)자, 목구멍 인(咽)자다), 백두산을 일으켜 들어왔는데, 백두산에서부터 금강산으로 해서 뻗은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이 사람으로 말하면 24척추와 같다.
우리나라의 산줄기가 백두산에서 비롯되는 산줄기 체계와 바다로 빠져나가는 강줄기 체계를 보게되면. 특이하게도 오직 금강錦江 줄기만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거의 절반을 역(逆)하면서 흐른다. 이렇게 크게 역(逆)을 하여 생기를 모으는 지세는 전세계를 통틀어 오직 태전(大田)을 에워싸고 있는 금강 수계 뿐이다. 사람에게도 앞뒤가 있듯, 산에도 앞뒤가 있다. 곤륜산 중에서 우리나라 쪽은 산 앞이고 곤륜산의 뒤, 구라파 쪽은 산 뒤다. 산 뒤는 덤으로 있는 것이어서 뒤쪽은 따질 것도 없다.
만유의 생명체란 알기 쉽게 말하면 다 군신좌사(君臣佐使)로 조직되어 있다.
꽃으로 말하면 꽃 이파리가 열 개고, 스무 개고 있지만 그게 다 꽃 속, 꽃 중심에 있는 화심(花心)을 위해서 붙어 있는 것이다. ‘탐화봉접(貪花蜂蝶)이라고, 꽃을 탐하는 벌과 나비를 보면 꽃 속 가운데 있는 화심(花心)에만 가서 앉아서 기다란 침을 꽂고서 꿀을 빨아먹는다. 그 중심, 핵核, 그게 화심이다. 지구가 한 송이 꽃이라면 우리나라가 바로 꽃 속 화심이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처럼 24절후가 똑바른 데가 없다. 춘하추동 사시가 똑바르고, 기후도 삼한사온으로 고르고, 물맛도 지구상에서 가장 좋다.
≪운기귀책 運奇龜策≫은 조선시대 말엽부터 계룡산으로 도읍이 확정될 때까지 일어날 중요 사건들을 연도별로 예시한 기록이다. ≪동세기 東世記≫는 이성계의 28대 후에 조선이 망한다는 것과 일본의 침략이 있다는 것, 남북 분단으로 민족의 비극이 생기며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계룡산에 도읍할 때까지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연대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조선왕조 다음에, 정도령(鄭道令, 正道令, 定道靈, 井道令)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며,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고 쓰여 있다.
“정감록의 핵심이 되는 정도령을 “격암유록에는 "先天秘訣 篤信마소 鄭僉只는 虛僉只라" 선천비결에 나오는 정도령은, 정씨(鄭氏) 성(姓)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씨(鄭氏) 성(姓)을 쫓지 말라는 것이다.
지구촌의 앞날을 예고한 분들은 신라시대 원효대사, 의상대사, 고운 최치원 선생등의 기록이 있고, 신라말 고려 초의 왕사인 도선국사가 남긴 기록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왕사인 무학대사, 북창 정렴, 격암 남사고, 토정 이지함, 서산대사,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겸암 류운룡, 서계 이득윤, 고산 윤선도, 반계 류형원, 강산 이서구 선생... 등, "열거한 분들은, 당대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승이거나 대학자들이다.
신라말기 도선국사는 그의 저서 도선비기에서 개성은 5백년 도읍지이고, 한양은 4백년 도읍지이며, 계룡산의 신도안은 8백년의 도읍지라고 하였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계룡산을 용세가 제 몸을 휘감아 제 꼬리를 돌아보는 회룡고조형국(回龍顧祖形局)을 이루었고, 상봉인 천황봉이 형제봉·중두봉(中頭峯)·종봉(終峯)을 이루어 이것을 제자봉(帝字峯)이라 한다. 즉 황제가 앉을 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는 조선시대 풍수지리상으로도 계룡산이 길지라는 결론을 내리고 궁궐 축조 공사를 시작했다.
조선 후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로 홍만종(洪萬宗,1643~1725)이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1736~ 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실려 있다. 1393년 음력 3월부터 계룡산 신도안에 천도(遷都) 사업이 한창이던 1393년 말, 문신 하륜(河崙)의 주장에 계룡산 천도 계획은 백지화되고 말았다.
임진왜란의 중심에서 조정공론을 이끌었던 영의정 서애(西涯)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형인 겸암(謙庵) 류운룡(柳雲龍)은
일찍이 계룡사부설(鷄龍四府說)을 주장했는데 동유의정부(東有議政府), 서유군부(西有軍府), 남유계룡부(南有鷄龍府), 중유궁내부(中有 宮內府)로 동쪽에는 정부종합청사, 서쪽에는 군사령부인 계룡대, 남쪽에는 계룡시가 들어서서 그의 예고가 적중했다.
말씀 중, 앞으로 중앙에는 새 세상의 황궁이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탄허(呑虛) 스님은 앞으로 다가올 후천세계에서는 계룡산을 주축으로 하여 새세상의 운세가 돌아가게 된다고 하였다.
풍수지리학의 원리로 신도안은 3백리 역룡진처(逆龍盡處)의 회룡고조맥(回龍顧祖脈)아래 산·수태극(山·水太極)에 자리한 명당 중의 으뜸은 제자봉(帝字峰) 아래에 있는 자미원국(紫微垣局)으로 전 세계를 다스릴 황제 정궁(正宮)으로 알려진 터다.
鷄龍石白 草浦舟行 大小中華偕矣 漢陽李氏三百年之地
계룡산에 도읍이 들어서는 시기는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무넘이고개로 물이 넘어가 초포(草浦, 현 노성현 하류)에 배가 드나들 때 알 수 있다고 했는데, 1990년 금강하구뚝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초포(草浦)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계룡산의 바위 또한 과거에는 검고 짙었던 바위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로 옅은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기말록(其末錄)』에서는 國都連山 黎民得所 鷄龍石白 艸浦行舟
연산(連山)을 나라에 도읍으로 정하면 일반 백성들이 살 곳을 얻으리라. 계룡산의 돌이 흰빛이 되고 초포(草浦)에 배가 다니고 모래벌 30리에 남문(南門)이 다시 열리고 초포 서쪽 나루는 배 탄 손님이 만리 정도 되고, 모래 언덕 남쪽 고을은 나라 걸음이 천재(千載)로다. ※「정북창(鄭北窓)」 선생(1506~1549)은 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 충청도 온양 사람으로『궁을가(弓乙歌)』는 북창 선생이 미래사의 전개과정을 가사형식에 담아 후세에 전한 것이다.
1.조국을 떠나지 마라
2. 인류 구원의 도통 군자가 나온다. 춘산채지가春山採芝歌는 전라감사 이었던 이서구는 조선 순조때의 문신으로 1754-1825년 의 인물로서 1774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리, 호조판서, 홍문관 대제학 을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정조때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와 더불어 한시 사대가四大家에 속한다. 언문 가사 형식으로 된 춘산채지가春山採芝歌는「남조선南朝鮮 」뱃노래 「초당草堂의 봄꿈」, 「달노래」, 「칠월식과七月食瓜」, 「남강철교南江鐵橋」, 「춘산春山노인 이야기」등 6편으로 되어 있다.
부모와 조상을 잘 섬기라.
똑똑하고 잘난 체로 주제넘게 배웠던가, 미신타파한다 하고 천지신명 무시하네.
천상공덕(天上功德) 선영신(先靈神)들 자손찾아 내려올 제, 춤추고 노래하며 나를 보고 반가와서 적선(積善)일네 적선일네 만대영화(萬代榮華) 적선일네. 백조일손(百祖一孫) 그 가운데 자손줄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고. 자손줄이 떨어지면 선영신도 멸망된다. 희희낙락 기뻐할 제 한 모퉁이 통곡이라 뼈도 없고 살도 없다. 영혼인들 있을쏘냐. (「달노래」)
선영신을 잊지 말고 부모공경 지극하라. 불효불충 저 사람이 장래희망 볼까보냐.
일심공부(一心工夫) 하올 적에 이 배 타기 소원일레. …어렵더라 어렵더라 이 배 타기 어렵더라. (「남조선 뱃노래」) ※ 신교총화神敎叢話
神敎之爲衆敎之爲祖, 爲母之理… 人情多私 忘本源 … 不究神市敎之本源如何也, 亦自失其源
從今以後, 世路尤險, 千私萬魔, 以亂天理矣
人皆滔滔, 自欺欺人, 天地光明失矣
人不知其祖先之道, 而只從他, 便是風麻漢
後世人心多邪曲, 故逕入邪道, 不知眞爲, 奈何! 三鮮九壬後, 人多鬼魔所使而如狂也
後天井有萬二千道, 有萬二千人 人能日行萬里, 飛揚天地如鳶飛, 處處生不夜城, 然後眞正大敎主出矣. 후천 벽두에 1만 2천 명의 도인이 출세한다. 이 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지를 날아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나는 모양 같다. 곳곳에 사람 사는 모습은 밤이 없는 성[不夜城]과 같다. 이러한 대문명이 열린 후에 참되고 올바른[眞正] 세계통일의 대교주(大敎主)가 출세하리라. (신교총화』 44쪽) [神市]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 而小女從之理 自然的? (동방신시(배달)의 신교 진리가 장차 천하에 밝혀지리라. 동방 장남[震長男]의 운이 다시 용솟음치게 되며, 미국[兌小女]이 이를 순종하게 되는 이치는 우주 자연의 변화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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