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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4:21-41 감동주는 사람
어느 음식점에 한 여덟 아홉 살 쯤 되는 여자 아이와
또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가 음식점에 들어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인이 거지인줄 알고
아직 개시도 안했는데 왜 벌써 얻으려 왔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와 그 아버지는 그냥 문을 열고 음식점 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는 식당의 중앙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먹어려 온게 아니라 식당의 손님으로 왔구나
생각하고 거기는 예약이 되어 있으니까 저 쪽으로 가라고 이야기를 하자
그 여자 아이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끄집어 내면서
저희가 금방 국밥을 먹고 나갈 것이니까
빨리 음식을 좀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오늘 우리 아버지의 생신이라고 하자
식당주인이 시킨 국밥을 두 그릇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그랬더니 여자 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소금 쳐 줄게..
그러면서 소금은 안 쳐주고 자기 숟가락을 들어서
국밥에 있는 고기를 자기 아버지 그릇에다 건져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으니까 딸은 자기 아버지 생일을 잘 쉐게 해 주려고
소금을 쳐 준다고 하면서 자기 국밥에서 고기를 건져서
자기 아버지의 국밥 그릇에다 넣고는 아빠 이제 다 됐어 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여자 아이를 보면서 주인이 큰 충격을 먹은 거예요.
저런 아이에게 내가 함부로 이야기 하고 나가라고 했고
아직 개시도 하지 않했는데 왜 얻어 먹어러 왔느냐고 이야기를 했을까
바로 하나님이 저런 것을 보게 하려고 저 사람들을 보내 주셨구나 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식당 주인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면서 눈물이 눈에 가득 고였습니다
그래서 먹으려는 순간 눈물이 밑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 딸이 그렇게 거짓으로 소금을 쳐준 것을 느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감동스럽겠습니까?
그 딸이 손을 잡고 가서 얻어 먹고 지금 살아온 과정 속에서
그날이 아버지 생신이라고 국밥을 사서 아버지 대접해 드리려고 하는데
자기 먹기도 부족한데 아버지에게 좋은 것을 드리려고 소금 준다고 하면서
고기를 다 퍼주면서 아버지를 눈물 나게 했던 그 딸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와 다른 사람들을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을 비유하면서 먼저 등불 비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등불은 말 아래 있지 않다. 등경 위에 둔다고 하시면서
주위를 밝혀주어야 될 것을 이야기 하고
그 다음에는 씨앗을 뿌리는 비유를 가지고 땅에 씨를 뿌리면 점점 더 자라서
그 씨앗이 점점 더 켜져서 삭이 이삭이 되고 충실한 곡식이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물보다 더 커지는 겨자씨 비유를 이야기 하고는
그 다음에는 주님이랑 같이 제자들이 배를 따고 건너가는데
풍랑이 불어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우리 주님에게 죽게 됐다고 이야기할 때
주님이 바람을 꾸짖어서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시자
바람이 그치지고 풍랑이 잔잔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제자들이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고 라고 하면서
우리 주님을 고백하며 바로 감동을 주는데
주님이 간절한 말씀으로 천국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하시며
우리 주님과 같이 가는 그 길에도 풍랑이 있는데
주님으로 해결하고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우리에게 부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이 말씀하시면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일에서 주님이 하셨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감동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 앞에 성가신 사람이나
또 골치 아픈 사람이나 또 많은 어려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감동주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줘서
내가 갈 때에 옆에 사람이 참 편안한
그런 사람이 정말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21절 22절을 보면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어떻게 해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첫 번째는 진리의 말씀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1절에 보면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등불 비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등불이 있는데 큰 말통으로 등불을 덮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정미소가 없어서 잘 모르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한말 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다섯 말이 되면 한 가마니 즉 80키로그램이 됩니다.
그래서 등불을 놓고 말통을 그 위에 올려 놓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등불은 환하게 비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등경 위에 둔다고 말을 합니다.
22절에 드러 내려고 하지 않으면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말은 참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이 말은 그런 말입니다.
드려내려고 하지 않아도 숨겨진 것이 없이 다 드려난다는 것입니다.
나타내려고 하지 않아도 감추인 것은 다 드러 난다고 합니다.
등불이 비추는데 등불은 진리의 말씀을 이야기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곧 등불이 되어서 다른 곳을 환하게 비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내가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내가 이해하고 깨닫고 주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내가 이해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내가 그 말씀을 따라서 살다보면 내가 염색된 만큼 내가 이해한 만큼
내가 깨달은 만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등불은 기름이 태워지면서 환하게 빛를 발하여
그 옆에 많은 것들을 환하게 비추어 주듯이
우리도 진리의 말씀으로 내가 무장되어졌고
우리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가 되어지고 깨달아지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적인 말로 이야기를 해서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사체로서 우리가 빛의 근원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빛에 근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사체로서 우리 주님에게 받아서 나는 드러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빛을 내가 받아서 내가 주님을 깨달으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감동을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이 과연 그렇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래요 나도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면 그런 결과가 되게 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정말로 좋은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빌립보서 2장 16절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생명의 말씀을 밝혀 그 말입니다. 복음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해서 그 말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서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잘 깨닫고 알아서
다름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하므로
내가 한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아서 언제가 우리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
그래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 아이고 저 사람은 골치 아픈 사람이야.
저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자기 말만 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보고 싶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말을 들어 보고 싶어요.
이번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줄 것인가.
이 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고
하는 말을 듣고 싶어야지 그 사람이 말을 하려면
슬슬 피해 버리고 그 사람이 말을 하면 골치 아프니까
왜 잔 소리로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등불이 아닙니다.
우리는 등불 같은 역할을 해서 캄캄한 세상을 환히 비추어 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바울도 자기 식의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였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죽은 스데반의 옷을 갖고 있던 사람도 바로 이 바울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 바울은 완전히 깨어졌습니다.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그 때야 깨닫고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그대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 바로 바울이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바울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 주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마가복음 4장 27절 28절을 보면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어떻게 해서 감동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두 번째는 복음이 마음에 뿌려져 성장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26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의 씨는 복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땅은 세상을 말하는데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삯이 나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다.
그래서 열매가 익으면 추수를 한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땅에다가 씨를 뿌리면 삭이 나고 자라서 충실한 열매를 맺으면
거둬 들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천국의 성장 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성장하는 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아침에 충실한 곡식이 절대 되지 못합니다.
씨를 뿌려야 되고 그 다음에는 삯이 나야 되고
그 다음에는 꽃이 피야 되고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고
처음에는 곡식이 충실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햇볕 쐬고
많은 시간이 경과하여 충실한 곡식이 되어서 나중에 때가 되어서
그것을 전부 거두어 들여서 나중에 곡식으로 사용하려고
창고 속에다 집어 넣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얼 말하느냐면 믿는 자에게 복음의 씨가 뿌려져서
이 마음에서 처음에는 못 받아들었고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고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삶 속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고 이해하고
말씀을 듣다가 깨달아서 바로 씨가 가슴에 뿌려 졌는데
그것이 점점 삯이 나고 더 점점 켜지고 꽃이 피어지고 열매가 맺고
열매가 여물어서 충실한 곡식까지 여기에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앙이 성장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마음 밭에 뿌려져서 성장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기쁨을 주고 감동스럽겠습니까?
아이고 이 놈이 이렇게 켰구나! 이 놈이 이렇게 켰구나!
어저께는 5살 희원이가 저에게 오더니
내 입에 넣어 주면서 요것 먹어! 저 한테 갖다 주는 거예요.
또 조금 있으니까 또 갖고 왔어요.
또 갖고 와서 저 입에 넣어주고 가는 거예요. 감동을 주고 있지요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기가 어른스러워지니까 점점 커가는 것을 보고 감동스럽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어떤 때 감동스럽겠습니까?
내가 점점 더 어른스러워 질 때 감동스럽습니다.
우리는 복음이 마음 밭에 뿌려져서 그 뿌려진 씨앗인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해되어 진만큼 우리는 성장을 합니다.
깨달아진만큼 성장을 합니다.
내가 만나고 또 우리 주님의 역사를 이해한 만큼 나는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성장을 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4장 15절에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전심 전력하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바울은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전심전력하여
점점 더 신앙이 성장해야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2009년도 보다는 2010년도가
2010년도 보다는 2011년도가 더 복음이 이해가 되어지고
마음에 씨앗이 뿌려져서 그것이 하나 하나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에게 드리면 하나님은 감동스러울 것입니다.
우리도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진보를 나타내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모라고 하는 사람은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이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것을 훔쳐서 도망을 갔다가
로마 감옥에서 아마 바울과 만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는 바울에게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오네시모는 신앙이 점점 성장해서 바꿔졌습니다.
전에는 무익했지만 지금은 유익한 사람으로
전에는 도둑놈이였지만 이제는 사역에 동역자로서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라고 사랑받는 형제라고
이야기 하면서 빌레몬에게 바울이 부탁하며
자기와 함께 동역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허락해 주라고
오네시모를 칭찬을 하면서 혹시라도 갚을 것이 있으면
내가 대신 갚아 준다고 하면서 오네시모를 받아들이고
인정을 해서 감동스러운 그런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도 날마다 우리가 잘 못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오네시모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어떠할 때 기쁨을 줍니까?
변화되었을 때나 성장했을 때나 우리는 잘못하는 속에서 바꿔지고
또 바꿔지고 또 바꿔져서 점점 더 성장되었을 때나
바로 곡식을 거둘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오네시모는 성경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바울을 많이 도와서 많은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오네시모는 이렇게 복음이 마음 밭에 뿌려져서 성장하므로
말미암에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고 감동을 주고
또 바울에게도 감동을 주고 하나님에게도 감동을 주었듯이
우리도 오네시모와 같이 하나님에게도 감동을 주는
그러한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40절 41절입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어떻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세 번째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고백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5절 보면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래서 갈릴리 호수 저편으로 지금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주님이 배에 타시고 계시는데도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38절 보세요."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는데도 제자들이 이 광풍만 보고
걱정이 되어서 죽게 된 것을 돌아 보지 아니하십니까?"라고
주무시고 계셨던 예수님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39절 예수님께서 바람아 잠잠하라 바다야 고요하라고 합니다.
바람을 꾸짖습니다. 바다를 꾸짖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잔잔합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가 잠잠하는고!
저가 뉘기에! 누구를 지금 고백하고 있어요. 예수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연 법칙을 마음대로 하신 분이십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하는고. 주님을 고백하고 있지요?
그럴 때 주님께서 얼마나 감동스럽겠습니까?
제자들은 풍랑이 일어날 때 주무시고 계시던 주님을 깼습니다.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어요
제자들에게 왜 믿음이 없느냐고 꾸중하시자
41절에 저가 뉘기에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 하는고 하였습니다
자연을 이기신 주님을 고백하여 주님께 감동주는 제자들이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고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고
어려움만 해결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누구를 고백해야 되는냐면 주님을 고백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그러잖아요. 어려움만 해결하면 할렐루야! 하면서
주님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애기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더 어른스러워져서 어려움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 때 이렇게 하셨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수고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우리는 어떠 합니까?
고맙잖아요. 그렇죠? 고마워요.
그리고 그 일을 한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감동스럽잖아요.
우리도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신 그 주님을 우리는 우리 가슴 속에서
깊이 깊이 고백을 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2장 17절 18절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주님이 대제사장이 되어서 백성의 죄를 구속하시려고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시련 속에 고난당하셨으므로
시험받는 우리들을 능히 도우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들을 왜 이렇게 하셨는가를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이 주님을 감동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말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는 그것은
각자 각자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우리 주님을 고백해서
감동을 주는 그런 우리 모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실로암 소경은 예수님이 침을 밴어서 흙을 이겨서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소경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눈이 떠졌습니다.
그래서 이 실로암에서 눈이 밝아진 소경은
유대인들이 어떻게 눈이 떠졌느냐고 물어 보니까
망설이지 않고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음에는 그 부모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는데 그 부모는 혹시라도 출교를 당할까 싶어 누가했는지 모른다고
우리 아들한테 가서 물어 보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 아들에게 가서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이상한 사람들이네
내가 예수님이 고쳐 주었다고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데 왜 또 와서 또 물어요.
실로암 소경은 우리 주님을 만났어요. 그러니 물불이 두렵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 받았어요. 그러니까 주님을 그대로 고백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부모는 자기가 직접 만나 보지 않했기 때문에
출교 당할까 싶어 무서워서 누가 하였지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 감동을 줍니까? 부모가 감동을 줍니까?
눈을 뜬 실로암 소경이 감동을 줍니까?
우리는 비겁하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만나면 믿음으로 담대하게 주님을 고백해서
주님께서 우리가 한 말을 듣고 감동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가신 사람이나 골치 아픈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어떻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첫 번째는 진리의 말씀으로 타인에게 영향을 주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복음이 마음에 뿌려져 성장해서 감동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주님을 고백해서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감동주는 사람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