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를 보기 위해 추석 연휴를 몽땅 서울에서 보낼 계획을 싸운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아기는 안아 볼 수도, 만져 볼 수도 없다. 그저 유리 너머로 보여 주는 대로 볼 뿐이다.
그것도 조리원에서 정해주는 시간에 잠시만 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세균이라도 옮길까봐 그러는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좋은 점도 많다.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에겐 세균 덩어리인 우리가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딸집에서 보내고 있다. 조리원 시스템이 산모와 배우자에게만 숙식과 세탁 등 모든 편의가 제공 되기 때문에 사위는 회사 출퇴근도 조리원에서 한단다.
한강뷰가 그대로 펼쳐지는 빈집에서 남편은 TV를, 나는 읽은 책을 목차별로 정리하고 있다.
딸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호사롭다. 호캉스도 이런 호캉스가 없다.
요즘에 바캉스는 호캉스가 대세라고 한다.
더운 여름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교통체증, 불친절하고 예의없게 구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팍팍 받기보다는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진 좋은 호텔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의 바캉스, 즉 호캉스라고 한다.
그렇게 치면 남편과 나는 최고의 호캉스를 즐기고 있다. 한강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딸의 집에서 먹고, 자고, 간혹 심심하면 입었던 옷을 다림질도 한다. 한껏 어질렀던 자리도 가끔 청소 한다. 마치 여행을 와서 호텔에서 묵다가 이것저것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일거리를 만들어 해보는 것과 같다.
둘이서 간간히 이야기도 나누고, 빠뜨리지 않고 언쟁도 벌이면서.
어제는 목동 사는 동생이 수유하는 산모 먹이라고 갈비찜과 토란국, 잡채까지 만들어 한 보따리 주고 간다.
그래서 냉장고 재고조사를 해서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저녁상을 차렸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놓고 조리원에 있는 딸 내외를 불렀다.
조리원 음식이 입에 착 달라붙지 않아 거의 밥을 안 먹는 딸도 오랫만에 배부르고 맛있게 과식을 했단다.
서울 사는 김길자선생님은 전통무명으로 아기 배냇저고리를 지으셨단다.
목둘레는 스티치를 놓고, 저고리의 섭에는 비단실로 머리를 땋듯이 묶음 고리를 했다.
저고리 끝단에는
손수 자수까지 놓으시고.
역시 마이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