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기다리고 계실 그 길의 끝으로…
집 밖으로 나가면 늘 다니던 길이 저를 맞이합니다. 그 길로 걷다 보면 익숙함이랄까요, 편안합니다. 낯익은 길이고 내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한 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 산티아고 길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허다합니다. 길을 알려주는 화살표가 잘 되어 있지만 간혹 아리송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다른 길로 접어들면 앞길을 예측하기 어려운, 마치 미로처럼 낯선 길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가장 두려운 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잠시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맬 때도 이리 막막해지는데, 우리 인생길에서 생을 다하고 죽음을 맞이할 땐 얼마나 막막할까요.
노환이든 병고든 사고든 한 생을 다하고 하느님께 가야 할 때, 우리는 그동안 걸어온 익숙한 길에서 전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옮겨가야 합니다
함께 살던 소중한 이들과 이별하는 슬픔도 크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하기에 더 두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의 평생을 살피고 이끌어주신 하느님께서 두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실 그 하늘 길 역시 우리에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이니까요. 산티아고 길처럼 화살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섭다고 누구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길도 아닙니다. 빈손으로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 길이 우리가 걷던 익숙한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임종을 앞둔 분들을 만나면 함께 기도해주며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져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됩니다. 발병 초기부터 인연을 맺고 함께 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급박한 부탁으로 임종 때만 만나 뵙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래 전, 힘든 투병생활을 한 적이 있는 저로서는 병상에 있는 환자와 임종을 준비하는 분들이, 가까운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겪어 봐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도 그간 걸어왔던 익숙한 길에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낯선 길로 접어들었던 겁니다. 한 발을 내딛으면 거기에 더 큰 고통이 있을까봐, 얼어붙은 듯 오도 가도 못하고 세상 원망만 했었지요.
눈만 뜨면 눈물이 나서 내가 왜 이러나, 가슴 한 구석이 공허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눈물의 이름은 바로 외로움이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외롭고 두려웠던 길 위에서 정말 많은 분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서 가로수 같은 존재였고 천사였습니다. 알고보니 투병의 삶은 나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었고, 하느님과 하늘의 성인들과 천사들, 그리고 지상의 천사들이 함께 걸어준 길이었던 겁니다. 세상이 이토록 따스한 곳임을 그때 온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막막한 길 위에서 말이지요.
위령성월만 되면 파비올라 언니가 떠오릅니다.
9개월 동안 함께 기도하며 언니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사는 동안 상처입고 상실했던 것들과 화해하고, 관계 안에서 묶인 매듭을 함께 풀어나갔습니다. 주님께서 낫게만 해주신다면 남을 위해, 특히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아쉽게도 10월 2일 수호천사의 축일에 떠났습니다. 가보지 않았던 그 길의 터널을 지나며 언니는 알았을 테지요. 하느님께 가는 길이, 결코 혼자 가는 길이 아니었음을, 그 길의 끝에는 두 팔 벌리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요. 저는 그리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렇게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의정부 교구 주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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