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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9강 10:19 ~ 11장 2절 아들의 희생 제사에 기초한 성도의 삶 ~ 10장 희생 영윈성
26.07.07(화)
히브리서 9강 10장 22절에서 25절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0:19 ~ 39절 아들의 희생 제사에 기초한 성도의 삶
에 기초한 성도의 삶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저희들이 살펴볼 주요 포인트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첫째는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는 성도의 특권을 저희들이 살피겠습니다.
둘째는 배교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살피겠습니다. 끝으로 수신자들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서 권면하는 현재와 미래 삶의 주제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우리가 다루게 되는 본문은 히브리서 전체 구조 속에서 8장 1절부터 10장 18절까지 진행되었던 희생제사 주제의 귀결로서 권면 및 인사의 첫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을 오늘 저희들이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교리적 내용에 대한 목회적 적용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고요.
이 단어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10장 19절부터 25절까지 지성소에 들어가는 담대함을 주제를 다루고 있고요.
26절부터 31절까지 넷째, 경고 단락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10장 32절부터 39절까지는 희생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보상 주제가 다루어집니다.
특히 마지막 단락 희생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보상 단락에서는 믿음과 인내 두 개념을 연결하여 제시하는데요.
이로써 다음 단원인 11장의 주제를 내다보는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에 결론이자 앞으로 뒤이어 전개될 11장 내용에 도입을 하는 연결고리의 기능을 한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하게 됩니다.
그러면 먼저 첫 번째 단락으로요 지성소에 들어가는 담대함 19절부터 25절까지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단락은 하나의 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부분은 분사 에콘테스라는 분사로 시작을 하고요.
이 분사는 두 개의 목적어를 갖습니다.
그래서 에콘테스는 가지다 라는 의미인데요.
첫째는 담대하며 두 번째는 위대한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의 중앙부에 들어가면 그리스도인의 세 덕목이 소개가 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핵심 주제어로 등장을 합니다.
자 그러면 19절을 우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제가 성소를 지성소로 바꾸어 읽었습니다.
이 단락을 시작하는 접속사는 그러므로입니다. 헬라어로는 우라는 접속사인데요. 이 접속사는 이 단락의 목회적인 권면이 지금까지 교리적 논의의 귀결이다. 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형제들로 지칭되고 있는 수신자들은 지성소에 들어감을 위한 담대함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담대함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내적 자질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확신 있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 담대함은 지성소에 들어가는 그 일을 위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지상의 지성소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고 이제 우리에게도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20절을 우리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구약시대의 지상의 지성소는 휘장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가는 길은 단지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흘림으로써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휘장을 통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직접 인도하는 사는 길입니다.
6장 19절 20절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휘장 안으로 앞서 들어가신 선두주자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제 개인 번역을 한번 보겠습니다.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이 특권이 선두주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곳에 앞서 들어가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지게 됐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도 그분을 따라서 휘장 안으로 들어갈 가능성을 시사해 줍니다. 선두주자이기 때문에 앞서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그분의 뒤를 따라 갈 수 있게 된다는 점이죠. 그런데 바로 이 시사점이 명확한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휘장은 그분의 육체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길을 열어준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휘장이 둘로 갈라진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에서 보면 15장 37절부터 38절에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기신 것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짐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육체가 휘장과 일치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21절을 좀 보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제사장은 위대한 제사장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19절에 갖고 있다의 두 번째 목적어는 위대한 제사장입니다.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참된 하늘 지성소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왕적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지금 그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영역은 어디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셔서 교회 공동체를 보존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자 그러면 이제 22절부터 24절까지 믿음 소망 사랑과 관련된 삼중적 권면을 보겠습니다.
먼저 22절에서는 참된 마음과 믿음의 충만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얘기합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의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을 온전히 살리는 것 곧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20절이 그러한 사실을 밝혀줍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그분께 나아가는 일은 자신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나아감이라는 표현은 문맥상 단순히 예배적 영역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감은 당연히 공동체적 예배를 포함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진 삶의 전 영역도 연관된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23절에 보면 개역개정은 믿는 도리의 소망이라고 하였는데요. 원문에 좀 더 가깝게 번역하자면 소망의 신왕 고백을 흔들림 없이 붙잡자 라는 권면입니다.
여기서 신앙 고백은 소망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소망은 주관적인 태도가 아니라 언제나 객관적인 내용을 뜻합니다.
즉 소망의 목표를 뜻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목표는 다름 아닌 구원입니다. 수신자들이 붙잡아야 할 신앙 고백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 그들이 현재에 누리고 있고 앞으로 완성될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랑과 관련된 권면입니다.
24절에 사랑과 선한 일들을 위해 서로를 보살피자 라고 권면합니다.
저자는 수신자들이 구원의 목표를 공동체적으로 이루어 가야 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수신자 공동체가 다각적인 위험에 대처해 나가려면 서로가 긴밀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를 보살피는 목표는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다양한 박해 상황에서 서로를 위한 사랑의 지원과 관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덕목 곧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와 관련된 권면이 마무리가 됩니다.
25절을 보면요 24절의 권면이 25절에서 서로 연관된 두 분사를 수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들의 모임을 저버리지 말고
두 번째는 오히려 권하자라고 하는 그런 분사입니다.
먼저 첫째 분사구문은 수신자 공동체가 직면한 구체적인 위험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임을 포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이들의 위험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모임은 공동체를 위한 정규모임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왜 정규적인 모임에 나온 것을 포기했는가는 명확하게 밝혀주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박해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생업에 관련된 관심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공동체적 관심과 격려가 필수적인데 이는 예배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9~2강
26절부터 31절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거절하는 것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 단락 히브리서 안에서는 네 번째 경고 단락이 주어집니다.
이 단락을 시작하는 접속사가 있는데요.
가르라는 접속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역개정에는 생략돼 있습니다마는 이 접속사는 이 경고 단락이 앞에 권면 단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배교의 문제가 지금까지 교리단원에서 논의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비추어 훨씬 더 구체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앞서 우리가 살펴봤던 경고단락이 하나 있었죠. 6장 4절부터 8절입니다. 그곳에서는 경고가 3인칭 복수로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그러나 여기에서는 1인칭 복수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해서 이러한 사실은 이 경고가 수신자들의 실제적인 위험의 한 요소다 라는 점을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26절을 보면 죄를 위한 제물이 더는 남아있지 않다 라고 경고합니다. 지금까지 저자는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속제 제사에 대해서 반복해서 설명해왔습니다.
9장부터 10장까지 누차에 걸쳐서 9장 26절 10장 10절 12절 14절에서 유일하고 최종적인 속제제사의 중요성을 밝혀왔습니다.
그런데 그 속죄제사를 거부한 자에게는 더 이상 속죄제사가 없다라는 점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29절을 좀 우리가 보겠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자 29절은 배교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배교자의 모습은 세 분사 구문에 의해서 주어지고 있는데요.
첫째는 배교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다 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는 앞선 경고단락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그분을 욕되게 하는 그런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6장 6절 하반절에서 앞선 경고 단락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입니다.
두 번째로 자신을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이미 단번에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10장 10절이 그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수신자들은 다시 동물의 피를 통한 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리스도의 피에 결정적인 효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라는 언급을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세번 째로 배교자는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다 라고 얘기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9장 14절에서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라고 설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은혜의 성령을 모욕한다라는 이 문제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연관된 문제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 예를 들면 마가복음 3장 29절에서 말씀하신 그러한 죄를 또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세 번째로 32절부터 39절까지 희생을 감내하는 것에 대한 보상 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경고단락의 신랄한 경고 이어서 이 단락은 긍정적인 격려의 말로 권면을 마무리합니다.
경고에 이어서 격려의 권면을 하는 이러한 방식은 저자의 정형화된 권면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이러한 방식에 유념할 그러한 좋은 모범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락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요.
32절부터 34절은 수신자들의 모범적인 과거의 경험을 다룹니다.
그리고 이어서 35절부터 39절까지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권면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수신자들의 모범적인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겠습니다.
수신자들은 개종 후에 고난의 힘든 싸움을 인내했던 그러한 공동체입니다
33절부터 34절을 보면 이 절들은 수신자들이 인내했던 고난의 구체적인 성격을 기술해주고 있습니다.
이 절들은 두 종류의 경험 자신들의 직접 경험과 다른 공동체 일원들의 경험에 동참하는 경험 달리 말하면 공감을 교차대칭구조로 제시해 줍니다.
우리가 보겠습니다. 먼저 직접 경험이 1과 2가 있고요. 공감이 1과 2가 있습니다. 근데 서로 간에 대칭으로 돼 있죠.
먼저 직접 경험 1은 비방과 환란이고요.
직접 경험 2는 재산을 빼앗기는 것도 기쁨으로 감수하였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직접 경험했던 그런 고난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또한 다른 이들의 고난을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공감은 다른 이들이 고난에 직면했을 때 그들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로는 갇힌 자들을 동정하였다.
자기들은 갇히지 않았지만 갇혀 있는 자들을 동정하는 그러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은 언어적인 폭력과 육체적인 폭행과 그리고 경제적인 손실을 감내했던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갇힌 자들을 동정하기까지도 했습니다. 여기서 동정한다 라고 하는 말은 단순히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라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에 더하여 갇힌 자들을 직접 방문해서 그들에 필요한 음식이나 의복을 직접 제공해주는 그러한 섬김의 모습입니다.
특히 1세기 당시에 굶주림과 헐벗음에 노출되었던 열악한 수감자들의 상황을 우리가 염두에 둔다면 그리스도인들의 돌봄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였을 것입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로 35절부터 39절까지 현재와 미래의 삶에 대한 권면을 살펴보겠습니다.
36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라고 합니다.
수신자들이 약속 곧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시작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나서 37절부터 39절에 교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내가 수신자들에게 왜 그처럼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하박국 2장 3절 4절을 70인역 형태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자 보면 오실 그분이 오실 것이며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런데 만일 뒤로 물러나면 나의 영혼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인용합니다.
나의 의인이 여기서 언급이 되는데요.
나의 의인은 두 가지의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겐 두 가지의 반응이 열려있는 그러한 상황인데요.
첫째는 믿음에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그들은 살 것입니다.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는 반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에 그들은 마침내 심판의 운명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단락의 믿음과 인내 주제는 다음 단원인 11장의 핵심 주제로 확장 발전되어 나아갈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요
이제 오늘의 강의의 내용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몇 가지 적용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는 특권을 얼마나 실감하고 감격하며 예배드리고 있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항상 하나님의 보좌 앞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늘 기억을 해야 됩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데 반해서 이제 우리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단번에 휘장을 열어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셨고 이제 우리가 그 길을 따라 들어가서 지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이 특권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도 우리가 공동체적인 예배를 드리는 그 모든 자리가 하나님의 보호자 앞에서 예배하는 삶이다.
라는 이 사실 그것을 우리는 얼마나 실감하고 있는가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실감했을 때 모든 우리의 삶의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적인 제의적인 의식적인 예배의 자리도 훨씬 더 하나님 앞에 경외롭고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하고 또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로 오늘날 교회는 모이는 일에 너무 인색하지 않은가 라는 점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 우리나라의 교회는 모임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배와 그 다음에 저녁 찬양 예배가 있었고 수요 예배도 있고 금요 기도회도 있고 그리고 새벽 기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했습니다. 늘상 교회에서 예배하는 삶을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과연 얼마나 자주 모이고 얼마나 열심히 모이는가 얼마나 신실하게 모이는가 저는 그러한 모임의 모습이 옛날에 비해서 그리고 초대교회에 이러한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에 비해서 너무나 소홀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을 우리 모두가 함께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인내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자들인가 나의 의인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열려 있다 라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반응이요. 하나는 져버리는 반응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반응을 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는 그러한 경각심을 가지고 믿음의 길을 가서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해서 마무리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이라고 하죠. 그 믿음장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저의 강의를 들으시느라 수고 많으셨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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