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촌토성은 1916년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으나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1980년대에 이 일대가 서울올림픽 경기장 부지로 확정되고서야 비로소 체계적으로 조사가 시작했다. ‘88올림픽'을 준비하던 1983년부터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적심석을 갖춘 지상건물, 움집, 저장구덩이, 연못, 목책 등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출토유물로는 각종 토기, 말 족쇄를 비롯한 각종 철기, 뼈로 만든 비늘갑옷 등이 있다. 특히 중국 남조(南朝)에서 들여온 동전무늬 도기와 금동제 허리띠 장식은 몽촌토성이 도성이었음을 알려준다. 몽촌토성은 당시의 이름은 알 수 없고 성안에 "곰말(꿈말)" 곧 몽촌(夢村)이라는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몽촌토성은 올림픽공원내 서쪽에 있다.
▲ 몽촌토성 목책
▲ 몽촌토성의 동,북,서쪽으로는 토성을 감싸고 도는 해자가 있다.
▲ 현재 몽촌토성은 산책로로 되어있어 많은 시민들이 애용하고 있다.
▲ 백제집자리전시관은 몽촌토성 동문 남쪽 성벽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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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에 발견된 4개의 움집터와 저장고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 저장구덩이안에서는 원통형그릇받침대 등의 토기류와
철제무기류, 뼈로 만든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 지금도 발굴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 몽촌토성과 풍납동토성에서 발굴된 유물은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볼수 있다.
서기 475년, 고구려 3만 대군이 백제왕도 한성을 공격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군이 먼저 한성의 북쪽 성을 7일 밤낮으로 공격해 함락시키자 남쪽 성에 있던 백제 개로왕이 성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도망치다가 잡혀 죽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백제왕도 한성이 북성과 남성 2개의 성으로 구성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대개 북성이 지금의 풍납토성, 남섬이 몽촌토성이라고 믿는다.
자료출처 : 한성백제박물관. 몽촌역사관, 올림픽공원. 백과사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