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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이인상, 서투른 붓질로 담백함을 얻다
무진당 추천 0 조회 386 10.10.06 13:43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이인상, 서투른 붓질로 담백함을 얻다>

 

:소나무에 뜻을 담다-능호관 이인상 탄신 300주년 기념 전시회, 2010년 9월14일-12월5일, 국립중앙박물관  

 필자미상, <이인상>, 지본담채, 51.1×32.7cm, 국립중앙박물관  

 

가을입니다. 무엇을 해도 좋고, 어디를 가도 좋은 계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좋고, 나 홀로 외로움을 즐겨도 좋은 계절입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한 계절에 사방에서 문화행사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잠시 마음을 내려 놓고 전시회 한 번 다녀오시지요. 저는 지난 주 수요일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혼자 갔습니다. 왠지 이인상의 그림은 혼자 조용히 들여다봐야 그 참뜻을 알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그림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그 지식을 자랑하고 있더군요. 소음이 싫어 박물관 갈 때마다 들르는 1층 까페에 가서 차 한 잔 마셨습니다. 다행히 넓은 홀에 손님이라고는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한 팀의 사람들만이  앉아 있어서 저는 창가에서 따뜻한 카모마일을 마시며 외로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창밖으로는 정원에 구절초가 한창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담한 주택에 살면 마당가에 구절초를 수북히 심을 생각입니다(지금으로서는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어보입니다). 차를 마신 후 다시 전시장에 올라가 보니, 다행히 그곳에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감상하는 착한 관람객들만이 있더군요. 저도 착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함께 이인상 작품을 감상해볼까요? 

  

 이인상, <설송도>,18세기,지본수묵,117×53cm, 국립중앙박물관  

 

한겨울에 눈덮인 소나무를 그린 이 <설송도>는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대표작으로 매우 낯익을 것입니다.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는 이인상이 즐겨 그린 소재인데 지나칠 정도로 결벽증이 심하고 꼿꼿했던 이인상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듯한 작품입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소개해드린 적이 있지요. 화면은 바위틈을 뚫고 나와 직선으로 자란 굵직한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두 그루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 소나무는 그 자체로 온전히 고고한 모습입니다. 도대체 작가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이런 작품을 그렸을까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어떤 신념을 지녔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작은 의문이 실마리가 되어 그의 생애를 찾아보고 시대적 배경을 조사하고 작품을 더 알아보는 궁금증. 이런 것을 교양이라고 하던가요?  어제 읽은『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책에서 서경식씨가 한 말인데 깊이 공감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작가의 생애가 궁금해지는 경우는 김명국과 이인상이 대표적인 것 같습니다. 작품 그 자체가 그 사람의 생애를 드러내는 것 같거든요.    

 

이인상은 <설송도>에서 눈 쌓인 풍경을 드러내기 위해 유백법(留白法)을 사용했습니다. 눈 쌓인 부분을 하얗게 칠하는 대신 나머지 부분에 먹을 칠하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흔히 쓰는 채색기법입니다. 김명국의 <설중귀려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대신 흰 부분에 눈이 쌓였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바탕은 물론이고 눈이 없는 부분에 엷은 먹을 칠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탕이 깨끗하지 않고 뭔가 얼룩져 보이는데 이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쌀가루를 물에 타서 거기에 종이를 적셔 다듬이질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지법(粉紙法)이라고 하는데 눈 쌓인 부분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이인상,<산가도(山家圖)>,1734년(25세), 지본담채, 29.7×27.7cm, 국립중앙박물관  

 

불안하게 세워진 암벽 앞에 초가집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나무 몇 그루가 서 있습니다. 초가집 안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고, 바깥에 있는 바위 위에도 한 사람이 걸터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냉랭하네요. 이 두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서로 술래잡기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 이유없이 떨어져 있습니다. 저는 그림을 볼 때 왜 이런 것이 궁금한 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것 같은데 싸웠다면 얼른 화해하시지요. 25살에 그렸으니 젊은 혈기에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툴 수도 있었겠지만(이인상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웃으면서 살아도 짧은 것이 인생 아니던가요?  작품 왼쪽에 '갑인(甲寅) 춘야(春夜) 원령사(元靈寫)'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계절이 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잎사귀가 나지 않은 나무를 보니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봄입니다. 흠집을 잡자니 한이 없네요.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초가집을 자세히 보니 이건 아무래도 구조가 이상하군요. 주춧돌을 보면  '-'자 집 같은데 지붕을 보면 ㄱ자 집 같습니다. 선비가 앉아 있는 방 뒷벽은 어디로 간 걸까요? 아마추어적인 작가의식이 드러납니다. 위대한 작가도 출발점에서는 실수가 많군요. 

 

이인상의 자(字)는 원령(元靈), 호(號)는 능호관(凌壺觀), 보산자(寶山子), 종강칩부(鐘崗蟄夫), 뇌상관(雷象觀), 운담인(雲潭人)입니다. 그는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후손으로 명문 집안 출신입니다. 이경여의 집안은 조선조 4대 명문 가문 중의 하나로 손꼽힐만큼 유명했는데 이인상의 증조부가 서얼이었던 관계로 이인상의 신분은 반쪽짜리 양반이었습니다. 아무리 집안이 명문이라해도 서얼이 속한 중인은 문무과가 아닌 기술관직에만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양반이 아니라는 신분상의 약점은 오히려 그를 더욱 양반다워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작용했는 듯 합니다. 그의 생활태도와 그림은 비록 자신이 반쪽짜리 양반이지만 그 어떤 양반보다 더 완벽한 양반이라는 자존심과 문인으로서의 소양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을 보여 줍니다.  

 

  이인상,<야매도(夜梅圖)>, 지본수묵, 30×21.5cm, 국립중앙박물관 

 

밤에 보는 매화꽃은 어떤 느낌일까요? 제시에는 '희미한 달빛 주름에 비치어 황금가루가 차갑고, 맑고 서늘한 바람이 벽에 부니 푸른 가지가 길다(微月壓簾金紛冷 淸?吹壁翠梢長)'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제시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지난 봄에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아파트 정원에 가 보았습니다. 제법 오래된 홍매와 청매라서 꽃이 다글다글 달려 있었지만 지나치게 밝은 불빛때문인 지 별 느낌이 없더군요. '달빛 주름에 비치어 황금가루'처럼 보이는 꽃을 만나려면 아무래도 섬진강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바탕에 물을 뿌리고 먹을 떨어뜨린 듯 연하게 먹을 풀어서 그린 이 작품은 이인상이 담묵법을 능숙하게 구사한 것을 보여줍니다. 잎과 줄기는 번지게 그린 반면 꽃송이는 진하고 가느다른 선으로 그린 것이 대조적입니다.      

 

이인상의 아버지는 그가 아홉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인상의 형과 그는 편모슬하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삼촌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보산자'라는 호를 즐겨 쓴 것을 보면 경기도 양주의 천보산 자락에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이인상, <은선대>, 지본담채,55×34cm, 간송미술관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것은 아니고 간송미술관 소장품인데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소개합니다. 이인상의 작품세계가 언제부터 화보풍을 벗어나서 독창적인 화필을 드러냈는 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8세 때인 1737년에 금강산을 기행하면서 그린 <은선대>를 보면 확실히 뭔가 다른 조짐이 느껴집니다. 은선대는 금강산에 있는 명승지로 폭포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연한 채색을 섞어 담묵으로 그린 폭포를 배경으로 각이 지고 뚜렷하게 그린 바위와 나무가 선명한 대비를 이룹니다. 실경을 그렸으면서도 실경을 충실하게 옮기기보다는 자신의 느낌에 충실하게 그린 작품인데 이런 쟝르를 남종문인화라고 부릅니다.   

 

  이인상,<수석도(樹石圖)>,1738년(29세), 지본담채,108.8×56.2cm, 국립중앙박물관

 

물기에 젖은 뒷산과 바위를 배경으로 전경에 나무 세 그루가 서 있습니다. 뒷산은 바림으로 연하게 그리고 나무는 진하고 분명하게 그리는 기법은 위의 <은선대>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은선대>의 배경이 그 형태를 분명하게 유지하는 것에 비해 <수석도>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합니다. 전경과 원경의 대비를 통한 공간감을 확보하고 구도가 답답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나무는 차되 빼어나고, 바위는 문채가 있되 거치네(樹寒而秀 石文而醜)'라는 제시를 보면 계절이 가을이나 겨울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인상의 작품은 특히 가을과 겨울 풍경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시 끝에 '무오(戊午) 중하(仲夏) 인상희사(麟祥戱寫)'라고 적혀 있어 '1738년 7월에 인상이 장난삼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에 그린 겨울 나무라...실제 돌과 나무를 그렸다기보다는 왠지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 같네요. 그래서 이 그림을 남종문인화라 부릅니다. 북종화가 대상의 외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형사(形似)'에 치중한다면 남종문인화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스럽게 표출하는 '사의(寫意)'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인상은 22살(1731년) 때 고향인 보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옵니다. 26살 되던 1735년에는 진사시에 합격해서 참봉(종9품)이 되어 북부(北部)에서 근무를 시작합니다. 북부는 한성부 관내에 사는 사람들의 사건 사고를 조사하고, 교량과 도로 등을 측량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체의 검사까지 관할하는 하급 부서입니다. 그 후 전옥서 봉사를 거쳐 사재감 직장, 통례원 인의, 내자시 주부로 자리를 옮긴 다음 사근역(현재 경남 함양) 찰방 직을 제수받고 임지로 떠납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8세. 거의 10년 넘는 세월을 말단직을 전전한 셈입니다. 그동안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형편은 궁핍한 하급관리인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수석도>를 그린 것일까요? 비록 가난했지만 서울에서 그는 많은 벗들을 사귀고 수많은 시회(詩會)를 가졌습니다. 그가 특히 자주 만난 친구는 이윤영(李胤永), 오찬(吳瓚), 이운영, 송문흠, 신소,(송문흠과 신소는 이인상을 위해 3천냥을 주고 남산 기슭에 집을 사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친구도 있네요?) 송명흠, 김종수,황경원 등등이었는데 이윤영과 오찬의 작품은 이인상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여 얼핏보면 이인상의 작품으로 착각 정도입니다. (이 글 아랫 부분에 두 사람의 작품을 참고하세요)   

  이인상, <구룡연>,1752년(43세), 지본담채,117.7×58.6cm, 국박

 

구룡연이면 금강산에 있는 구룡폭포를 지칭할 텐데 이 그림에서 폭포가 보이시나요? 한참을 들여다보니까 보이는군요. 구룡폭포는 금강산의 명소라서 김홍도, 김하종, 엄치욱 등 여러 화가들이 그렸습니다. 이들이 그린 구룡폭포는 폭포의 시원함을 드러내는 데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인상은 닮게 그리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이는군요. 먹을 금쪽같이 아껴서 그린 필선은 마치 스케치를 하다만 듯 서툴러 보입니다. 그러나 서투른 붓질 속에는 지나치게 정교하고 치밀한 필치에서 느껴지는 답답함 대신 담백함이 느껴집니다. 그의 주장처럼 그림의 묘미는 '교(巧)'한 곳에 있지 않고 '졸(拙)'한 곳에 있으며, '농(濃)'한 곳에 있지 않고 '담(澹)'한 곳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졸'과 '담'의 경지가 정확히 어떤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적인 냄새가 나지 않고 서툰 듯 담담한 뜻이 아닐런지요. 이 작품은 28살 때 금강산을 다녀온 후 15년이 지난 후에 그린 작품입니다. 스스로 금강산의 '뼈대만을 그렸을 뿐 살집은 그리지 않았고, 색을 칠하지 않은 것은 감히 거만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한 것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이인상은 1747년 7월부터 1749년 8월까지 만 2년동안 사근역에서 근무하다 찰방직에서 해임됩니다.약속이 있어 외출하다가도 당색이 틀린 사람을 만나면 '저신이 더럽혀질 것 같아' 되돌아올 정도로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한 선비가 '남의 등을 쳐먹는 놈들' 비위를 맞추며 관직생활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즈음 그는 관직생활의 어려움을 지인들에게 자주 토로하는 글을 남깁니다. 1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1750년 8월에는 음죽현감(경기도 이천군 장호원)에 부임하여 3년간 근무하지만 결국 관찰사와 다투고 현감도 그만 둡니다.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 이인상을 만났다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비웃었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곧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벼슬살이 하는 것은 매우 힘든 것 같습니다. 

 

 이인상,<강남춘의도>, 지본담채,24×66cm, 국박

 

이번에는 부채 그림 한 번 감상해볼까요? 이인상은 특히 부채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풍류와 모임을 좋아했던 이인상의 생활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여름날 선비의 필수품이었던 부채는 그림과 글씨를 써서 친한 벗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재료였을 테니까요. 이 그림 역시 이최중이란 사람에게 준 그림입니다. 부채 중심에는 물가에 세워진 누정에서 두 사람이(아래 세부 그림 참조)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고 그 옆으로 나무와 집이 뒤로 물러나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넓게 펼쳐진 강 위에는 몇 척의 배들이 떠 다니는 데 가슴이 탁 트인 듯한 시원스러움이 느껴집니다.  먹을 금처럼 아낀 갈필과 연한 채색으로 물들인 화면에서 이인상 특유의 문기(文氣)가 돋보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한 날 저렇게 아늑하고 적요로운 풍경속에 파묻힌다면 영혼이 금새 치유될 것 같습니다.

 

현감을 그만 둔 후 이인상은 음죽현에서 조금 떨어진 설성(雪城)에서 '종강모루(鍾岡茅樓)'라는 정자를 짓고 칩거하게 됩니다. 사촌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역사 동편에 대와 소나무 사이를 파헤치고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네. 봇물을 끌어당기어 못을 만들고 둘러 있는 산이 제대로 담처럼 되어서 거닐며 즐기기에는 알맞은 곳'이라고 얘기하고 있어 <강남춘의도>에 나타난 분위기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남춘의도> 끝에 '종강우인(鍾岡寓人)'이라고 관서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그린 작품임을 말해줍니다. 

 

 <강남춘의도 세부>

 

강을 향해 지어진 정자 안에서 두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이인상은 '종강모루'가 거닐며 즐기기에는 알맞은 곳이나 함께 노닐 수 있는 친구나 형제가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토로합니다. 그래서 때때로 서울의 벗을 찾아갔고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오늘 그토록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인상, <송하관폭도>, 지본담채, 23.9×63.5cm, 국박

 

이인상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송하관폭도>입니다. 선비가 소나무 아래 홀로 앉아 폭포를 감상하는 그림은 동양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재 중의 하나입니다.  선비가 앉은 바위틈에서 뻗어나온 소나무가 심하게 구부러져 마치 건너편  바위에 다리처럼 드러누웠습니다. 이인상은 소나무를 즐겨 그렸습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설송도>를 비롯하여 <검선도>에서도 소나무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완고할 정도로 올곧은 성품때문에 벼슬살이하는 내내 불화하며 지냈던 자신을 소나무의 곧은 성품에 의탁하여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의 소나무를 보면 고집스럽게 자신의 지조를 지켜나간 선비의 자존심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송하관폭도 세부>

그런데 <송하관폭도> 세부 사진을 보니 선비가 폭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를 보고 있는 것 같군요. 그럼 '관폭' 대신 '관송(觀松)'이라고 해야겠군요. '송하관송도' 그것도 제목으로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인상,<검선도>,지본담채, 96.7×62cm, 국박  

 

굵은 소나무 앞에 파란 유건을 쓴 도인이 앉아 있습니다. 소나무를 자세히 보니 <설송도>처럼 두 그루가 X자형으로 교차되었군요. 이 구도는 이인상의 작품에서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도인의 수염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데 도인 곁에는 손잡이만 보이는 칼을 소나무에 세워 놓았습니다. 평범한 사람 같지 않은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제시에 '중국인이 그린 검선도를 방하여 그려 취설옹에게 바친다(倣華人劍僊圖 奉贈醉雪翁)'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당나라 때의 도인인 '여빈동'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 그림을 받은 취설옹은 이인상보다 20살이나 많은 사람으로 일본에 통신사 수행 서기관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신분이 서얼인 것을 감안해보면 그림 속의 주인공이 서얼 의식이 반영된 자화상적인 그림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우든 이 그림에는 보는 사람의 속기를 말끔히 가시게 하는 준엄한 기품이 담겨 있습니다. 한 작품이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는 것은 이런 작품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하루를 아침, 한나절, 해질녁, 한밤중 넷으로 나누고 그 시간동안 공부할 것을 정해 일찍이 폐하거나 태만하지 않았다는 이인상의 생활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속세와 절연한 사람으로 말과 행동이 속됨에 들지 않고 독서는 경전을 벗어나지 않아 담담함으로 벗을 얻고 옛 것을 스승으로 삼아 실천하매 천명을 어기지 않으니 자나 깨나 맑음 뿐'이라는 고백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여빈동이 그려진 도석인물화에 대해서는 예전에 간송미술관 전시회를 소개하면서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sixgardn/15770146) 제시 끝에'종강우중작(鐘崗雨中作)'이라고 적어 놓아 설성의 종강모루에서 비가 내릴 때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인상, <병국도>, 지본수묵, 28.5×14.5cm, 국박 

 

이제 이인상의 마지막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목이 <병국도(病菊圖)>,'병든 국화'입니다. 왠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지요. 저도 며칠 전에 국화 네 그루를 샀습니다. 은은하게 흐르는 국화향을 맡는 것으로 저의 가을은 시작됩니다. 계절별로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는 화분 몇 개를 사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잊지 않으려는 저의 '사치'입니다. 국화는 '매난국죽'의 사군자 중에서 계절별로 가장 늦게 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향기를 잃지 않아 정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서릿발같은 절개를 뜻하지요. 그런데 국화를 그린 작가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병든 국화는 이인상의 이 작품이 유일할 것입니다. '말세에 태어나서(그 때도 말세라는 표현을 썼군요) 하급관리 노릇하는 것이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면 정신이상 생기기 알맞은 일'이라던 그의 한탄이 떠오르는 군요. 설성에서 매우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병이 깊어 1760년 8월 15일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나이 51세로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이 때 그의 부인은 3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고, 남산 밑에 단칸집을 마련해준 친구 송문흠과 신소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유시의도><어초문답도><모정추강도><남간추일도> <강협선유도>등 감상하기에 흐뭇한 부채 그림들이 특히 좋습니다. '문자향' '서권기'를 이해하려면 이인상의 그림을 보라는 김정희의 평이 아니더라도 이 가을에 이인상을 만나러 가는 박물관행은 분명 흡족하실 것입니다. 아니, 이인상을 핑게삼아 분주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실 것입니다. 다음 주 12일에는 '고려 불화' 전시회가 개최됩니다. 우리 생애에 다시 보기 어려운 작품들일 테니 한번씩 다녀가시기 바랍니다.

아래 그림은 이인상과 교유했던 지인들과 그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입니다. 물론 이 번 전시회에는 출품되지 않았지만 기왕 이인상의 작품을 보셨으니 함께 감상하시기 바랍니다.(조정육)

 

 

이윤영(1714-1759),<누각산수도>,27×62.5cm, 국박 

 

 오찬,<수석도>,지본수묵, 30×50.6cm, ,개인 

 

윤제홍, <송하분향도>, 지본수묵, 28.5×43.1cm개인 

 

이재관, <송하처사도>, 138.8×66.2cm,지본채색, 국박 

 

<참고문헌>

*『능호관 이인상』,국립중앙박물관,2010년

*유홍준, 「능호관 이인상의 생애와 예술」, (홍익대학교 석사논문:1983)

*마츠바라 사브로, 『동양미술사』,(예경: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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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06 14:06

    첫댓글 무진당님 덕분에 이렇게 앉아서 고졸한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고맙습니다

  • 10.10.06 16:49

    자나 깨나 맑음 뿐일 것 같은, 고결한 기품이 느껴지는 <검선도 >의 주인공 눈매가 이 가을에 깊은 감동을 줍니다! 관세음보살()()()

  • 10.10.06 2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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