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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둥지
이 홍사
이사라고 했다.
둥지를 옮기는 걸 두고 인간들은 이사라고 했는데, 그 말에 어디에서 기인된 것인가? 이에서 사로, 곱빼기로 껑충 튀기는 것인가? 갑자기 그게 궁금해 어원을 분석하려고 한문으로 생각하니 캄캄하다. 이렇게 자주 쓰는 말인데 한문으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고 있으니. 이사移徙? 옮길 이에 옮길 사가 맞지 싶은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튼, 또 둥지를 옮겼다.
새로 지은 집이다.
절구는 미얀마에서 철새나 다름이 없다. 그것도 그냥 떼거리로 몰려다닌 철새가 아니라 홀로 날아다니는 아주 외로운 기러기인 셈이다.
미얀마에 와서 벌써 몇 번째 이사인지 헤아리기도 힘이 든다.
그저께 이사를 한 것이다. 일테면, 기러기 둥지를 옮긴 셈이다.
기러기 둥지?
기러기가 둥지가 있나? 어디엔가 둥지가 있으니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하겠지? 그런데 기러기 둥지를 봤다는 사람은 못 봤다. 뻐꾸기처럼 남의 둥지에서 알을 낳는 건 아니겠지? 기러기 둥지는 우리나라에 없고 시베리아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 집이 바로 기러기 둥지인데? 뭘 시베리아를 들먹여?
지난번에 살던 집은 아직 팔리지 않았다.
살던 집만 팔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옆집도 팔리지 않은 것이다. 그건 다세대 연립주택이라 문만 잠가놓고, 이웃에 부탁을 해서 봐주니 상관이 없지만 새로 둥지를 튼 집은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이라 비워두기에 곤란하다. 인건비가 싼 나라라고 하지만 순전히 빈집을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들어와서 팔릴 때까지 살면서 집에 사람냄새를 부여하고 윤기를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일단 도마뱀부터 불러들여야 한다.
동남아국가에는 천정마다 도마뱀이 거꾸로 붙어있다. 천정의 형광등 안이나 액자 뒤에 숨어 있다가 밖에 벌레가 날아오면 냉큼 긴 혓바닥을 내밀어 날름 잡아먹는다.
새로 지은 집에는 도마뱀이 없다.
페인트 냄새 때문이고 아직 영역을 늘리지 않은 탓이다. 살다보면 주위에 있던 도마뱀이 들어온다. 도마뱀이 식구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은 없다. 형광등 주위를 돌아다니며 모기나 해충을 잡아먹어 오히려 도움을 주니 식구가 되는 셈이다.
동남아로 처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자다가 호텔 천정에 붙은 도마뱀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잠을 설쳤다는 사람들이 많다.
도마뱀은 아침이면 소리 내어 운다.
울음소리가 좀 탁한 편인데 새벽에 들으니 청량하다.
궉, 궉, 궉!
이렇게 세 번을 우는데 미얀마 사람들은 이 소리를 아침에 들으면 그 날 행운이 온다고 믿는단다. 절구도 그 말을 하도 들어서 새벽에 그 소리를 들으면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번 살던 집에서 도마뱀이 들어와 번식을 하는 걸 보고 다시 이사를 왔다. 도마뱀은 아깝지만 데려올 수 없는 노릇이고, 직원을 늘려서 두 집 살림을 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집이란 물건은 자고로 사람이 살면서 관리를 해야지. 헌집은 더 심하겠지만 새로 지은 집이라도 비워두면 금세 폐허가 되는 법이다.
절구가 미얀마에 와서 집장사를 시작하고 나름대로 체득한 지식이다.
이삿날은 벌써 보름 전 쯤 잡아두고 건축업자 멧쏘에게 독촉을 했다. 모일에 이사를 해야 하니 그때까지 공사를 끝내라고,
헌데 공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절구는 한 달은 미얀마, 한 달은 한국에 있으니 지난 번 한국으로 들어갈 적에 건축업자에게 들어갈 공사비를 예상해서 넉넉하게 주고 갔다가 한 달을 있다가 나와 보니 절구가 예상했던 공정에 반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 자식들! 도대체 한 달 동안 뭐 한 거야?
이 나라 사람에게 일을 시키려면 딱 붙어 서서 미주알고주알 시켜야 하는 것이다. 입이 무거우면 이 나라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가 끝나면 하나를 시키라는 말이 한인사회에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또 숙지해야 된 사실은 시키고는 꼭 확인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 끝내고, 저것을 하고, 저것 끝나면, 또 저걸 해라.
이렇게 시켜놓고 볼일을 보러 가버리면 맨 처음에 시킨 것 하나만 하고 뭘 할지 몰라 손을 놓고 있거나, 첫 번째로 시킨 일을 계속 반복해서 한다는 말이 있다.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절구는 공정과 도면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공사업자란 자식은 도면은 고사하고 공정, 공사의 순서조차도 모른다.
참으로 애가 터지는 일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얀마사람들에게는 공사비를 줄 적에도 한 공정을 끝낼 자재비와 공사비만 지급을 하고, 그 공정이 끝나면 다른 공정을 할 적에 또 그 공정에 드는 경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그 또한 틀린 말이 아니다.
먼저 왕창주고나면 엉뚱한 데 다 쓰고 막바지 공사에서 왜 빨리 안하느냐고 독촉을 하면, 자재대금이 없어서 못한다고 드러눕는 것이다. 절구는 그것도 몸소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말을 하고보니 절구는 이 나라에 와서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이다. 하지도 않은 공사비를 먼저 주었다가 손해 본 금액을 말하자면, 말을 말자. 괜히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다.
절구는 한국으로 들어갈 날이 겨우 일주일 정도 남았다.
지금 이사를 하지 않으면 추석이 지나고 나와서 두 달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절구가 없는데 체크를 하지 않고 이사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아래층에서는 아직까지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현관 앞에 이제서 타일을 붙인다고 난리를 떨고 있다. 타일공은 내일쯤 와도 무방하지만 배관공이 빨리 와야 되는데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오늘은 아직까지 멧쏘라는 자식도 오지 않았다. 멧쏘는 절구가 선택한 건축업자인데 조수인지, 직원인지 늘 한 놈을 데리고 다닌다.
엊그제 이사를 왔는데 아직까지 수도가 연결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사를 미루고 그대로 두었다면 한 달은 더 걸리지 싶다. 일단 날을 잡았으니 이사부터 들어와서 체크하고 꼼꼼히 손수 챙기는 것이 속이 편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사를 강행한 것이다.
이삿날을 손 없는 날로 골라서 잡고 매일 붙어서 이것해라, 저것해라 간섭을 하며 독촉을 했었다. 그래도 진척이 더딘 것이다.
일단 방향을 바꾸자.
외부의 공사보다 내부의 공사를 먼저 하도록 시켰다. 우선 급한 게 전기와 물이었다. 그리고 실내 페인트였다.
이 나라는 도배라는 게 없다.
주제 넓은 한국의 작자들이 도배문화를 가지고 들어오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다 말아먹었다. 아무리 고급으로 짓는 집이라 해도 도배는 안 된다. 무조건 페인트로 마감이다. 공사비가 남아돌아 심하게 욕심을 부린 집은 방안의 벽도 타일을 붙여둔 집도 보았다. 도배를 하면 일단 벽에 붙어있지 않고 뜬다. 우기가 거의 오 개월이 넘으니 그 기간 동안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벽에 붙어 있지 않고 뜨는 것이다. 뜨는 건 다시 붙이면 된다지만 도배지 뒤에 묻힌 풀이 부패되어 곰팡이가 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건 닦아도 되지 않는다. 매일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닦으면 옆으로 퍼지고 도배지가 더러워진다.
하여, 벽지를 들여왔다가 여러 사람이 손해만 보고 손을 들고 나갔다. 절구가 알기로는 그게 다 한국 사람들이다. 절구가 여기에 와서 벽지를 생산하는 한국회사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니 여러 사람이 손을 들고 간 것이라 하겠다.
이 나라에서는 화장실 문은 플라스틱으로 찍어낸 문을 선호한다. 목문은 습기를 먹으면 틀어지는 습성이 있다. 나중엔 화장실문이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불상사가 생긴다.
새로 지은 집에 방문을 달면 처음에는 아귀가 잘 맞는다. 방문을 다는 데 엄청 정성을 기울인다. 면밀히 측정을 하여 공간을 확보하고 습기를 머금지 말라고 페인트칠 세 번이나 한다. 그러나 쓰다보면 문이 뒤틀린다. 위에는 꽉 닫혔는데 아래는 미친년 사타구니마냥, 쩍 벌어진 경우가 다반사다.
이사를 하기 전 날, 몇 가지 공정이 남았나? 수첩에 적어가며 체크를 했다. 에어컨은 오늘 다니 끝이 날 것이고, 방문의 페인트칠이 되지 않았고, 방문 손잡이를 아직 달지 않았으니, 그건 이사를 하는 날 목수가 온다고 했으니 이사와 병행하면 되는 것이고, 전기는 한국처럼 벽체 안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벽체 밖에 노출로 설치하는 것이다.
그 옛날 전선이 좋지 않을 적에 단선이 자주 되는 까닭에 노출로 쓰던 게 버릇이 되었다. 아예 노출되는 커브가 흰색 플라스틱으로 크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생산되고 있는 나라다. 벽체 수용을 고집하면 품도 더 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은 못 미더워하는 것이다.
전선이 고장 나면 어떻게 바꾸노?
주택을 매수하려는 현지인들은 난색을 표한다는 것이다. 팔아야할 집이니, 절구의 눈에는 다서 거슬리더라도 현지인들의 취향과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게 품이나 경비도 적게 들고
일단 전주에서 미터기를 거쳐 마당까지는 전기가 들어와 있고 그 전기를 사용하여 공사를 하고 있으니 실내에만 설치하면 되는 일이니 그것도 하루면 끝이 날 것이다.
그럼 뭐가 남았나?
체크를 해보니 수도였다. 마당까지는 수도가 들어와 있고 옥상에 물탱크도 설치되어 있다. 배관공을 불러서 빨리하자고 멧쏘에게 일렀더니 배관공이 내일이면 온다고 했다. 수도도 어려운 게 아니다. 얼어서 동파될 염려가 없는 나라니 다 노출이다. 집은 멀쩡하게 지어놓고 웬 노출이 그렇게 많은지 단정하게 지은 집인데 부대설비를 하고나면 단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도도 한 나절이면 족할 것이다.
절구는 멧쏘라는 자식을 불러 다시 다짐을 주었다.
내일은 배관공, 전공, 목수가 분명히 와야 된다.
일을 시키는 건 내가 하겠다.
건축업자는 염려 말라고 했다. 다 불러놓았으니 이사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취사담당인 퓨퓨가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해서 차를 맞추어 놓았다. 이사를 하는 인부가 운전자를 포함에서 여섯 명이라고 했다. 절구가 생각하기에는 거리가 채 일 킬로도 되지 않는 같은 동네이니 작은 차를 불러서 두 번 왕복하는 게 낫지 싶은데 퓨퓨가 우겼다. 큰 차로 한 번만 하면 될 것을 작은 차로 두 번하면 더 비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작은 차는 적재함 길이가 십사 피터이고 큰 차는 십육 피터라고 적어서 가격과 함께 보여주었다.
-그게 그거네. 미덥게 작은 차로 두 번 하자.
퓨퓨는 아니란다. 큰 차에 한 번에 다 실을 수가 있는데 왜 작은 차를 두 번이나 쓰느냐고 신경질을 내는 것이다.
-아닐 텐데? 이삿짐이란 어느 구석에서 그렇게 나오는지 보기보다 많은 법이야. 알아서 해라.
그렇게 하고 이삿날이 되었다. 절구는 이사를 가는 집보다 이사를 오는 집에서 챙겨야할 게 더 많다. 하여, 이삿짐센터 차가 오는 것 보고 이사할 집으로 온 것이다.
이런!
저녁에 일을 마칠 적에, 대충 청소를 하고 가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거실이고 방이고 건축에 쓰였던 자재들이 그대로 늘려있는 것이다. 건축업자라는 녀석은 그 때까지 나오지 않았고 페인트 인부만 와 있었다. 거실에 어지럽게 늘린 각목과 비계파이프를 치우라고 했다. 페인트공은 그날 이사를 오는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또 써야 하는데 왜 치우냐는 것이다.
-투데이 무빙
이 자식은 또 영어가 되지 않는 녀석이다. 일단 밖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을 때 퓨퓨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삿짐을 한 차에 다 못 싣는다는 것이다. 두 번 왕복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급하니, 그러라고 했다.
거실과 방안에 늘린 잡동사니를 다 치워갈 때 건축업자라는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일단 바쁘다. 이삿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느 것은 이층으로 올리고 어느 것은 퓨퓨방으로 넣고, 어느 것은 주방으로 갈지를 알려주고 시켜야 하는 것이다. 거리가 멀지 않아 금세 이삿짐을 실은 차가 도착을 했다.
절구는 현관 앞에 서서 이삿짐을 메고 들어오는 작자들을 보고, 이건 이층 거실, 이건 주방, 이건 일 층 방, 분류를 해주었다. 이사를 많이 해 본 작자들이라 장롱도 혼자 메고, 책상도 거꾸로 뒤집어 혼자 메고 금세 뚝딱 올리고는 다음 차를 실으러 갔다. 페인트공은 그제야 이사를 오는 줄을 안 모양이다. 손을 놓고 있는 그 녀석과 힘을 합쳐 책상을 정렬하고 방안의 장롱과 침대를 정렬했다. 그 사이에 가서 남은 허드레 짐을 싣고 퓨퓨가 타고 온 것이다. 반 차도 되지 않았다.
퓨퓨는 오자말자 이삿짐 차가 골목길을 막고 있으니 빨리 보내야 한다며 비용을 요구했다.
얼마?
곱하기 이!
그러 게 어디 있어? 가서 다시 합의를 봐!
겨우 몇 백 미터인데 이 회 왕복이니 곱하기 이라는 것이다. 두 번 부르는 값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덟 시에 오라고 했는데 일곱 시 반에 와서 아홉 시에 끝이 났는데 이사를 두 번 하는 비용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헌데, 그게 룰이라고 했다. 시내에서 이곳까지 이사를 하러 오고 가는 비용은 싹 무시하는 것이다. 퓨퓨가 당연히 그렇게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오지게 비싸다.
퓨퓨는 잘못 판단했다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 나라에서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의도가 중요한 것이지. 좋은 의도로 결과가 이렇게 되었으니 상관이 없다는 투다.
바쁘니 실랑이를 벌일 사이가 없다. 절구는 요구하는 금액을 그대로 주었다. 이사하는 날부터 큰소리를 내기가 싫었던 마음도 가슴 한쪽에 내포되어 있었다.
절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얼쩡거리고 있는 건축업자를 불렀다. 전공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열 시가 넘었는데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마네피앙!
내일이라는 말이다.
-이거 조졌군!
절구는 외국생활을 하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마네피앙과 마라가시다. 마네피앙, 이건 미얀마말로 내일이라는 말이고, 마라가시, 이건 몽골어로 내일이라는 말이다. 절구는 몽골에서도 몇 년간 일을 해보았는데 그 말을 엄청 많이 들어서 질리는 말이었는데 여기오니 마네피앙이라는 말이 또 염장을 지르는 것이다.
허구한 날 내일이란다. 성질이 급한 절구에게는 질리기에 마땅한 말들이다. 절구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마네피앙이나 마라가시가 통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건 두 나라가 지닌 공통된 점인데 결재를 해준다고 부르면 절대로 마네피앙이나 마라가시를 들먹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희한한 일이다.
-그럼, 수도 배관공은?
그 또한 마네피앙이라고 했다. 뭐라고 변명을 다는데,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다른 현장에 일이 덜 끝이 나서 부득이 내일로 미루었다는 말일 것이다. 목수는 이미 와서 문의 손잡이를 달고 있었다.
이사하는 날 점심은 골목 앞에 나가서 현지음식으로 쌀국수를 사먹기로 퓨퓨와 뜻을 맞추었는데 전공이 오지 않으니 전기밥솥을 돌려야하는 저녁이 또 문제였다.
날은 얼마나 더운지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전기가 없으니 선풍기나 비싸게 주고 일찌감치 달아놓은 에어컨은 무용지물이었다. 날만 더운 게 아니라 멧쏘라는 녀석과 그 조수라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없는 자궁마저 후덥지근했다.
절구는 당장 수도와 전기를 대체할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퓨퓨에게 정리를 좀 하라고 하고 큰 도로를 건너가 자재센터에 갔다. 전선을 사고 소켓과 전구를 두 개씩 샀다. 마당에 있는 전기를 창문으로 끌어들여 퓨퓨의 방과 이층 자신의 방에 불을 밝힐 임시 조명을 만든 것이다. 한 번 쓰고 버릴 물건이니 최단거리로 당겨야 쓸데없는 지출을 줄일 수가 있었다. 검정색 소켓은 코드를 꽂을 수 있는 걸 구입해서 선풍기와 전기밥솥이라도 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다음은 물이었다.
먹는 물이야 당연히 생수를 사서 먹어야 하지만 씻고 변기에 사용할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데는 물이 꼭 필요한 것이다. 하여 인류가 발전을 할 적에 물을 구하기 쉬운 강가로부터 문명이 발달을 한 것이 아닌가?
절구는 페인트 빈 통을 들고 이웃집의 물을 받아오라고 멧쏘의 조수로 따라다니는 녀석에게 시켰다. 일단 변기부터 물을 채우고, 변기에 물을 채우면서 보니 어느 자식이 벌써 물도 없는 새 변기에 볼일을 보고 난 다음이었다. 말라비틀어진 똥이 변기 안에 눌어붙어 있었다. 몇 번을 시켜 변기를 씻고 변기에 물을 채웠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한 번 사용할 물 밖에는 채울 수가 없는 노릇이디. 그 조수란 자식도 몇 번 나르더니 볼일이 있다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목수가 일을 하는 데는 난장판이다. 톱밥과 먼지가 침대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절구는 빗자루를 들고 따라다니며 청소를 했다.
그날 겨우 문고리를 다 달았다. 다음날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단다.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전공은 왔는데 또 배관공이 오지 않은 것이다. 건축업자를 불러 물었더니 또 마네피앙이란다. 전날 이미 생수를 열통이나 사서 썼는데 또 물을 사야만 했다. 속이 부글부글.
참아야 한다. 절구는 임시로 꾸민 사무실, 그러니까 이층 거실의 책상 앞에 앉아 장미에 눈길을 주며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장미는 새벽에 골목 앞 노천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가 두 송이 산 것인데 빨간 장미다. 커피는 한 잔에 이백 짯, 장미는 한 송이에 백 짯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생수 값은 너무 비쌌다.
전공은 전기를 설치하고 목수는 문에 페인트칠을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부는 고작 둘인데 감독은, 멧쏘에, 그 조수, 절구까지 셋이나 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예상보다 빨리 설치되었다. 절구는 전공에게 가장 먼저 사무실에 전기를 연결해 달라고 했다. 그래야 전기를 연결해서 노트북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전날부터 썼으니 노트북은 이미 방전이 되고난 다음이었다.
또 생수를 열통 시켰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사흘 동안 물을 사서 섰다.
먹는 것만 사서 먹는다면 말을 안겠다. 화장실 변기에 쓰는 물조차도 생수를 쓰니 환장할 노릇이지. 생수로 샤워를 하고 생수로 걸레를 빨고, 물 값이 싼 게 아니다. 헌데, 퓨퓨도 그렇고 이 자식들은 예사롭게 퍼다 쓴다.
이곳 사람들은 뭘 아끼는 게 없다. 남의 것은 더 아끼지 않고.
하루에 물 값이 딱 퓨퓨의 일당만큼 들어간다. 퓨퓨 월급을 풀어서 날짜로 계산을 하면 생수 값이 그 정도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정작 약이 오르는 건 생수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아니라 퓨퓨나 잡부가 생수를 거의 물 쓰듯 한다는 점이다.
그럼 물을 물 쓰듯 쓰지?
말이 어디서 꼬였나? 아무튼, 이 나라는 공산품은 엄청 비싼 나라다. 기술자가 아닌 보통 인부, 이걸 노가다용어로 잡부라고 하는데, 하루 일당이 시멘트 두 포대 가격에 못 미친다. 비싼 걸 보니, 생수도 공산품에 들어가나?
일단 전기는 연결되었는데 물이 문제다.
생수를 사서 쓰는 방법밖에는 없다.
어제는 그렇게 지나갔다.
일층 거실에는 미처 가져가지 않은 생수 빈 통이 산더미였다.
-이 자식들 왜 빨리 가져가지 않아? 누구 염장 지르나?
오늘도 배관공은 오지 않았다. 오전 열 시가 넘었다. 배관공뿐만이 아니라 멧쏘란 녀석도, 조수라는 자식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우 씨!
절구가 지닌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다.
답답해서 배관을 절구가 직접 시공하려고 했다. 그러나 퓨퓨가 말렸다. 그렇게 손을 대면 배관공이 와서 보고는 수가 틀려서 가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기술이라고?
퓨퓨의 만류가 아니더라도 배관을 십육으로 해야 할지 십삼 밀리로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물탱크에 올라가는 건 펌프를 보니 이십이 밀리 파이프가 나와 있는데 어느 것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배관 자재가 아무것도 없다. 직접 하려면 자재를 다 사와야 하는 일인데 또 불필요한 것을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 이거 환장하겠네. 야! 멧쏘에게 전화를 해봐!
멧쏘는 절구보다 세 살이 적다. 이 자식은 오전이 다 가는데도 숫제 나타나지도 않는 것이다. 절구가 전화로는 소통이 불편해서 취사담당이 퓨퓨보고 오는지 마는지 물어보라고 했더니 무슨 사설이 그렇게 긴지 웃어가며, 이건 숫제 안부전화를 하는 투다. 옆에서 통화내용을 한참 듣다가 답답해서 오는지 마는지 그것만 물어보라고 고함을 치며 다그쳤더니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고 내일 온다고 했다.
-오늘도 물을 사서 써야 하겠군.
전화를 끊은 퓨퓨에게 거실은 관두더라도 잠을 자는 방, 타일이 깔린 방바닥에 모래가 버적거려 청소를 좀 하라고 했더니 지금 공사 중이니 공사가 끝나면 한단다. 여태까지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녔었다. 방에서만이라도 벗고 싶은데 모래가 버적거리는 것이다.
방안의 공사는 이미 끝이 났다.
다만 마스터 룸에 딸린 화장실만 안 될 뿐이지. 먼저 방청소부터 좀 하자고 했더니 기다리라고 하고는, 밑에서 쿵쿵거리고 있었다. 들어보니 주방에서 마늘을 빻고 있는 소리였다. 기다리다 속이 터져 내려가서 물걸레를 하나 달라고 했더니 내일 때때가 오기로 했으니 그 때 청소하면 된단다.
갑자기 혈압이 확 솟구쳤다.
-무슨 청소하는데 사람을 불러? 꼴 보기 싫으니 부르지 마! 내가 할게.
미친년이 아이 낳아서 씻어 조진다더니 무슨 청소를 얼마나 하려고 그래?
때때는 지난번에 데리고 있던 청소담당 처녀다. 칫뚜! 애인이라는 미얀마 말이다. 그 칫뚜가 자리를 봐줘서 다른 회사에 간다고 나갔는데 일 년 남짓 다니다가 그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지금은 놀고 있단다. 절구가 알기로는 그녀의 집에서 예까지 오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물걸레 하나 빨아줘! 내가 할게.
성질 급한 놈이 도끼날을 갈고 목마른 놈이 샘을 파는 법이다.
더 고함을 질렀다가는 또 그만 둔다는 소리를 할 게 뻔하다. 그게 퓨퓨가 지닌 무기다. 그 칼을 빼어들면 깨갱, 절구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방바닥을 먼저 쓸고 맨발로 다닐 수만 있도록 물걸레로 대충 닦다가 생각하니 이사를 나온 집도 청소를 해야 할 일이다. 이사를 하느라 이삿짐센터에서 신발을 신고 들어갔을 것이고 또 장롱과 책상, 침대가 있던 자리는 먼지투성일 거다. 팔아야 된 집인데 언제 매수자가 집을 보러올지 모르는 일이니 청소를 해두는 게 마땅하다.
방청소를 대충 마치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퓨퓨에게 이사 나온 집이 비었으니 청소를 해두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퓨퓨는 알고 있다면서 사람을 불러 시켰다고 했다.
잠시 가서 빗자루로 대충 쓸면 되는 일인데, 그것도 인건비를 주고 사람을 시킨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가서 대충 빗자루로 쓸고 말 텐데. 사람을 둘이나 불렀다니 아마도 씻어 조지는 모양이다. 보나마나 하이타이를 풀어서 물청소를 하겠지. 그것도 여럿이 나누어 먹고사는 방법이겠지.
그 경비는 고스란히 절구 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눈치를 보니 벌써 며칠째 빨래를 이웃의 아줌마에게 수고비를 주고 맡기는 모양새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아주 인심을 쓰는 모양인데, 그 경비도 결국은 절구의 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절구가 청소를 끝내고 내려가니 이웃의 아줌마가 빨래를 말려서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일단 새로 이사를 온 곳이니 이웃에 인심을 날리면 안 된다. 절구가 먼저 인사를 했다. 퓨퓨는 빨래를 받지 않고서 다림질 하는 탁자위에 얹어 두라고 했다.
일층 거실에는 한쪽에 남은 식탁을 넣고 다림질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다. 지난 번 집에서 하던 대로다. 빨래는 수고비를 주고 이웃 아줌마에게 시킬 수가 있지만 다림질은 시킬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 나라에는 다림질하는 옷이 극히 드물다. 남자나 여자나 아랫도리는 치마 같은 론지를 입고 다니니 빨아서 툴툴 털어서 입으면 그만이다. 절구가 여기서 유심히 관찰한 바에 의하면 다림질을 한 옷을 입고 다니는 작자는 경찰 밖에 보지를 못했다. 경찰 제복은 윗도리부터 다림질을 해서 줄을 세워 입고 다니는 것이다. 다림질 문화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나라이다. 하니 모두들 다림질이 서툴고 아예 다리미가 없는 집이 태반일 거다. 서툴기는 퓨퓨도 마찬가지다.
먼저 바지를 재봉선을 기준으로 줄부터 잡으면, 안은 저절로 다려지고 족히 삼 분이면 끝나는 다림질을, 바지를 뒤집어 놓고 애써 잡아놓은 줄이 사라질 때까지 다려서 주름을 다 펴고 다시 줄을 세우려니 줄이 삐뚤어지거나, 두 줄, 세 줄로 잡히는 것이고 바지를 하나 다림질 하는 데 무려 삼십 분이상이나 걸리는 것이다. 몇 번을 가르쳐주었는데 그게 숙지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나다니다가 바지를 다리는 모습이 보이면 다리미를 빼앗아 절구가 직접 다리며 시범을 보여주는 데도 좀체 되지 않는다.
-그래 노는 손에 실컷 다려라. 전기세야 얼마 나오겠는가?
그 뿐만 아니라 다림질이 필요 없는 팬티나 메리야스까지 얼마나 다려대는지 팬티의 고무부분이 탄력을 잃고 헐거워져 버린 팬티가 한두 개가 아니다. 속옷은 다림질을 하지 말라고 해도 안 된다.
오늘도 물이 연결되기는 틀렸다.
미리 준비해야 된다.
퓨퓨에게 물을 열통 시키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는 공사하면서 비계파이프 대신에 대나무를 쓴다. 대나무라고 약한 게 아니다. 한국의 대나무는 중간에 구멍이 큰데 반해 여기 대나무는 구멍이 작다. 그래서 탄탄하다. 낭창낭창한 게 탄력도 있고. 타일을 붙이는 녀석은 대나무로 가설 비계를 얼기설기 설치하고 슬리퍼를 신은 채 그 위에 올라서서 현관 위 지붕 벽면에 타일을 시공하고 있다. 두 놈이 왔으면 밑에서 하나가 잘라주고 또 시멘트를 올려주고 하겠지만 혼자서 오르내린다. 그것도 발가락 슬리퍼를 신고. 한국의 건설현장 같으면 안전 감독에게 걸리면 바로 퇴장조치를 당하겠지만 여기서는 아랑곳없다. 절구가 보기에도 아슬아슬하다.
-게유 싸이바!
-쌩머퍼 바네?
조심하라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골목에 나오니 집 앞에 쌓여있는 건축 자재와 폐기물이 산더미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치우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그대로다. 쓰레기라는 물건은 늘면 늘어나지 절대로 주는 법이 없다.
이젠 뭐가 남았나?
일단 수도배관을 연결하는 게 급하고, 그 다음은 현관, 현관 바깥문은 달렸지만 현관과 거실을 구분하는 미닫이문은 아직 달리지 않은 것이다. 그걸 독촉하고, 대문은 골목 입구에 있는 철공소에서 지금 제작 중이다. 그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건축 폐기물을 치우는 게 급하다. 골목을 막고 있으니, 이래도 동네에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신기하다. 외벽 페인트는 아랫부분에 조금 남았으니 그건 대나무로 된 비계를 풀고 마무리 지으면 되고 또 뭐가 남았나? 그렇게 헤아리고 있는데 삼륜 오토바이로 생수를 싣고 왔다.
두 녀석이 타고 왔는데 물을 일층 거실에 들여놓으라고 했다. 헌데 물을 메고 들어간 녀석들이 빈 몸으로 나오는 것이다. 생수 빈 통을 들고 나오면 될 터인데. 빈 통을 가져가라고 했더니 지금은 배달하는 시간이지 빈 통을 수거하는 시간이 아니란다.
내일은 배관공이 오는지 멧쏘라는 녀석에게 다시 독촉을 해보아야 하겠다. 생수로 경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는 것도 있지만 화장실 변기에 생수를 부으려니 마음이 졸리고, 아깝기 그지없다. 들어오면서 일층 거실을 보니, 이건 무슨 생수 대리점도 아니고 빈 통과 물이 든 생수 통이 거실 가득이다.
휴대폰이 있는 책상 앞으로 와보니 절구가 없는 틈에 퓨퓨가 책상 청소를 하려다가 말았는지 물이 질펀한 걸레를 노트북 자판 위에 얹어놓고 어디를 가고 없다.
-이런 씨! 참말로 환장하겠네!
절구는 물걸레를 집어 거실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노트북 자판에 물이 흥건하다. 이거 조졌군.
아! 이 기러기 생활을 언제 면하려나? 기러기 둥지? 참말로 진절머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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