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집(松巖集) 권호문(權好文)생년1532년(중종 27)몰년1587년(선조 20)자장중(章仲)호송암(松巖), 청성산인(靑城山人)본관안동(安東)특기사항이황(李滉)의 문인
명종 | 11 | 1556 | 병진 | 嘉靖 | 35 | 25 | 10월, 淸凉山을 유람하고, 108韻으로 시를 지어 퇴계에게 올리다. |
松巖先生文集卷之五 / 錄 / 遊淸凉山錄
歲在上章敦牂十一月初吉乙丑。松庵靜者。
厥明。與阿男行可柳君應見南君義仲同歸。路逢金上舍惇敍及守愚。聯轡而行。同宿于惇敍家。又明日。偕發。路過周村。龍宮太守申詣仲,習讀李大容叔及李秀才靜可。秣馬于李希雍之別舍。吾與金,柳二君留訪。行酒而後相別。携應見歸于家。
정유일.
다음날 아들 행가, 유응현 군, 남의중(南義仲) 군과 같이 돌아오는 길에 상사(上舍) 김돈서(金惇叙)와 김수우(金守愚)를 만나 나란히 말을 타고 가서 돈서의 집에서 함께 잤다.
무술일.
그 다음날 함께 출발해서 주촌(周村)을 지나는데 용궁 태수(龍宮太守) 신예중(申詣仲), 습독(習讀) 이대용(李大容) 숙부 및 수재 이정가(李靜可)가 이희옹(李希雍)의 별장에서 말을 먹이고 있기에, 김군, 유군을 데리고 찾아갔다. 술을 마신 뒤 헤어지고, 응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D022] 남의중(南義仲) :
남치리(南致利, 1543~1580)로,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의중, 호는 비지(賁趾)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노림서원(魯林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비지집》이 있다.
[주-D023] 김돈서(金惇叙) :
김부륜(金富倫, 1531~1598)으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돈서, 호는 설월당(雪月堂)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5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유일로 경릉 참봉(慶陵參奉)ㆍ돈녕부 봉사(敦寧府奉事)ㆍ동복 현감(同福縣監)을 지냈다. 저서로 《설월당집》이 있다.
[주-D024] 김수우(金守愚) :
김윤명(金允明, 1545~1606)으로, 수우는 그의 자이다.
[주-D025] 이정가(李靜可) :
이열도(李閱道, 1538~1591)로,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정가, 호는 우암(遇巖)이다. 굉(宏)의 아들이다. 1576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랑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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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李埴) (1463~1502)
조선 연산군(燕山君) 때의 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이계양(李繼陽)의 아들이며, 퇴계 이황(李滉)의 아버지로, 아우인 이우(李堣)와 함께 학문 연구에 정진함.
이잠(李潛)
조선 전기의 유학. 본관은 진보(眞寶). 진사 이식(李埴)의 맏아들이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이복형.
이하(李河)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이식(李埴)의 둘째 아들이며 이굉(李宏)ㆍ이완(李完)의 아버지로, 예안 훈도(禮安訓導) 등을 지냄.
이완(李完) (1512~1596)
조선 중종(中宗)~선조(宣祖)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이하(李河)의 아들이며, 숙부인 이황(李滉)의 문인. 영천 교관(永川敎官)으로 재직시 임진란에 창의(倡義)하고, 조목(趙穆)과 함께 이산서당(伊山書堂)에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강론함.
자고(子固) 기암(企菴) 낙산(樂山)
마곡서원(磨谷書院) (1602)
조선 선조(宣祖) 때 경상도 안동(安東)에 건립한 서원. 변계손(卞秀孫)ㆍ김유용(金有庸)ㆍ이완(李完)ㆍ김생명(金生溟)ㆍ박사희(朴士熹)ㆍ유빈(柳贇)ㆍ윤의정(尹義貞)을 배향함.
이굉(李宏) 이굉(李宏, 1515~157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이황(李滉)의 조카이자 문인(門人)으로, 찰방(察訪)을 지내고, 시문(詩文)에 능함.
이대용(李大容) 이인중(李仁仲)
이열도(李閱道) (1538~1591)
조선 선조(宣祖) 때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이굉(李宏)의 아들로, 종조부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함. 1576년(선조 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예조 좌랑(禮曹佐郞) 등을 지냄.
이정가(李靜可) 우암(遇岩)
곽경택(郭景宅) : 곽수인(郭守仁, 1537~1606)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택, 호는 양담(瀼潭)이다. 습독 곽림(郭琳)의 아들이고, 퇴계 이황의 종손 이굉(李宏)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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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집 제2권 / 시(詩) / 곽경택이 화답하여 다시 차운하다〔郭景宅見和復次〕 곽공이 새벽에 방문하여 종일 담소하였으므로 시에서 말하였다.
새벽에 대나무 사립문을 서리 따라 열고 / 竹扉淸曉趁霜開
황혼녘 매화 핀 언덕에서 달빛 받고 돌아오네 / 梅䲧黃昏待月來
푸른 댓잎 옷깃에 스미고 매화 향기 코를 찌르니 / 翠色透襟香撲鼻
비단 같은 버들과 복사꽃은 재단할 필요 없네 / 柳羅桃錦莫煩裁
[주-D001] 곽경택(郭景宅) : 곽수인(郭守仁, 1537~1606)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택, 호는 양담(瀼潭)이다. 습독 곽림(郭琳)의 아들이고, 퇴계 이황의 종손 이굉(李宏)의 사위이다. 함창(咸昌) 출신이다. 1585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년에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관천(館薦)으로 황산도 찰방을 지내고, 임금의 특지에 의하여 창녕 현감을 지냈다. 《立齋集 卷34 縣監瀼潭郭公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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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종손 이굉(李宏)의->퇴계 이황의 조카 이굉(李宏)의
*이굉(李宏)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보(眞寶). 이황(李滉)의 조카이자 문인(門人)으로, 찰방(察訪)을 지내고, 시문(詩文)에 능함.
이대용(李大容) 이인중(李仁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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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先生續集卷之五 / 詩 / 寄金允明。兼示休庵李叔。
山雲濃翠滴松窓。江雨生波沒石矼。一片短棹堪泛泛。可隨南浦白鷗雙。
송암집 속집 제5권 / 시(詩) / 김윤명에게 부치면서 아울러 휴암 이 숙부에게 보이다〔寄金允明兼示休庵李叔〕
산 구름이 검어져 솔창에 비가 내리고 / 山雲濃翠滴松窓
강물에 물결 일어 바위 모습 사라졌네 / 江雨生波沒石矼
한 척의 조각배 타고 물 위를 떠가며 / 一片短棹堪泛泛
남쪽 포구 한 쌍의 백구를 따라가리 / 可隨南浦白鷗雙
[주-D001] 김윤명(金允明) : 1545~1606.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수우(守愚), 호는 송간(松磵)이다. 안동에 살았으며,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의 형이다. 1568년 생원시에 합격하여 안음 현감(安陰縣監)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아우 김윤안과 함께 근시재(近始齋) 김해(金垓)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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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李叔)
조선 전기의 유학.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과 교유하여 권호문이 준 시가 《송암집(松巖集)》에 여러 편 실려 있음.
휴암(休庵)@이숙 이휴암(李休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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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先生文集卷之一 / 詩 / 鶴駕寺。與休庵同棲。有時得句相和。以慰山中落莫之懷。
拂袖祗園裡。胸塵靜更淸。披雲山露色。和月澗傳聲。宦祿心曾死。林泉感此生。浩吟酬六對。還愧李長庚。
송암집 제1권 / 시(詩) / 학가산 절에서 휴암과 함께 지내면서 때때로 시구를 얻어 서로 화답하며 산중의 적막한 회포를 위로하다〔鶴駕寺與休庵同棲有時得句相和以慰山中落莫之懷〕
절간 속에서 소매를 떨치니 / 拂袖祗園裡
가슴 속 번뇌가 고요하고 맑아지네 / 胸塵靜更淸
구름 걷히자 산이 모습 드러내고 / 披雲山露色
달빛 비치자 시내가 소리를 전하네 / 和月澗傳聲
관록에 대한 마음은 전에 죽었고 / 宦祿心曾死
임천 속의 이내 삶에 감사하네 / 林泉感此生
호탕하게 읊어 육대를 수창하니 / 浩吟酬六對
도리어 이장경에게 부끄럽네 / 還愧李長庚
[주-D001] 휴암(休庵) : 성(姓)이 이(李)씨이고 호가 휴암이나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송암집 속집》 권2 시제에 〈김윤명에게 부치고 겸하여 아저씨 이휴암에게 보이다〔寄金允明 兼示休庵李叔〕〉라고 언급되었다.[주-D002] 육대(六對) : 한시를 지을 때에 여섯 유형의 댓구 형식을 말한다. 당나라 초의 궁정시인인 상관의(上官仪)가 육조 이래의 댓구 형식을 가지고 정형화하였다. 첫째 정명대(正名对)니 천지일월(天地日月) 같은 것이고, 둘째 동류대(同类对)니 화엽초아(花葉草芽) 같은 것이고, 셋째 연주대(连珠对)니 소소혁혁(萧萧赫赫) 같은 것이고, 넷째 쌍성대(雙声对)니 황괴녹류(黄槐绿柳) 같은 것이고, 다섯째 첩운대(叠韵对)니 방황방광(彷徨放旷) 같은 것이고, 여섯째 쌍의대(雙拟对)니 춘풍추지(春风秋池) 같은 것이다. 《詩苑類格》[주-D003] 이장경(李長庚) : 이백(李白)의 별칭이다. 금성(金星)의 별칭이 장경성(長庚星)인데, 이백의 어머니가 이백을 임신할 때에 꿈에 장경성(長庚星)을 삼켰다고 한다.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안정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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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巖先生文集附錄 / 行狀[洪汝河]
公諱好文。字章仲。安東權氏。世居府西松坊里。蓋自公七代祖禮儀判書靷時卜居云。曾祖修義副尉玠。祖進士叔均。考安州敎授稑。敎授公坦率有執守。苟知其非義。硜硜然不肯爲之。晨興冠櫛。出坐里街。里人作事有善者。則喜而奬之。其有不善者。輒峻呵之。以故人皆畏服。敎授公娶李氏。退陶先生伯兄女也。
松巖先生文集附錄 / 碣銘幷序 [金應祖]
公姓權。諱好文。字章仲。號松巖。權之氏於永嘉。自高麗太師諱擧始。其卜居府西松坊里。自禮儀判書諱靷始。曾祖諱玠。副司正。祖諱叔。均成均進士。考諱稑。安州敎授。妣眞安李氏。忠武衛諱潛之女。以嘉靖壬辰六月十九日。生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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定齋先生文集續集卷之十一 / 墓碣銘 / 成均進士樂山李公墓碣銘 幷序
公諱完。字子固。姓李氏。始祖碩起。眞寶縣吏。中司馬。子諱子脩。以討紅巾功。封松安君。四世諱埴。贈左贊成。生諱河。訓導卽退溪先生仲兄也。妣咸陽朴氏。忠順衛華女。公生以正德壬申。資性純愨。才思通敏。一日問於先生。伊川以次嫡承祀。視叔齊以天倫爲重。不能無疑。先生曰。爾有見矣。然大賢所處。宜加細詳。庚子。中司馬。丙辰。爲永川敎授。未幾解歸。先生賜性理大全以奬之。又曰。承家之業。此子有望。初伯父諱潛。早世。從兄寅。又夭。兩世孀婦。堅欲傳家外孫。先生知不可回。命公主宗事。公據義固辭。先生責曰。祠廟蕪沒。人生痛心。孰有甚於此者乎。公猶懇避。棲遑於襄陽。使長子宗道攝宗事。則意葢有在也。而兩世神主。畢竟歸外孫矣。於是。先生手書公名。祭告家廟。而公遂不得辭。夫以先生之處乎此者。寧不委曲懇至。而公之不蚤承其意者。葢其素所見得有不咈乎倫常。而可謂善處變者矣。逮壬辰倭訌。公已八十餘矣。命子若孫。赴義。復登高。灑涕以洩悲憤。其壯志猶未已也。公有小築在石橋傍。扁以樂山。與趙月川金後彫雪月琴惺齋諸賢。相惠好。風流韻致可像也。萬曆丙申卒。壽八十五。葬樹谷先兆之次向丁原。配草溪卞氏。司諫孝儉女。葬在公墓後。四男宗道進士,守道主簿,善道出,信道。二女黃忭,金義元。宗道男允迪敎授。五女李蓊,閔興建,金益善,李蒔,孫樂善。守道五男。仁迪贈都事,義迪僉正贈掌樂正,敬迪敎授,孝迪僉樞,啓迪護軍。善道二男。允智直長,允敬察訪。庶男允信郡守。女張好文察訪。信道二男。尙迪,惠迪。餘不盡錄。銘曰。
卽始而見終。先生之明也。處變而克讓。公之賢也。以是心承是敎。庶幾乎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