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예술인 찬솔 김석근 시인
이정환
지난해 오월 김석근 시인은 ‘찬솔 김석근 시서전’을 열면서 육필시집『솔가지에 걸린 달』을 펴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시조시인이자 서예가이며 교육자다. 경북의 사학 명문 하양여고 교장을 역임했고, 계간《시하늘》운영위원과 달메시조동인회 지도에 힘써왔다. 대구광역시 서예대전과 경상북도 서예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대금 연주도 일품이다.
예인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는 시인이다. 다만 지금까지 시조 창작의 소산이 다소 적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육필시집『솔가지에 걸린 달』한 권으로 그간의 결산을 풍요롭게 하였으니,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성 높은 그의 시서화는 문외한으로서는 부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보다 더 품격 높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심혈을 기울인 영혼의 작업에 시심을 가득 보탰으니 더 바랄 것이 없으리라. 묵향이 가득한 육필시집을 한 쪽 한 쪽 조심스레 넘기면서 조선 선비와 같은 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언제나 한결 같은 인품과 남다른 자상함이 시집 이곳저곳에서 향기로 묻어난다.
모두 6부로 나누어져 있다. ‘삶의 여울목에서, 마음은 늘 그 하늘을, 사랑은 그리움이어라, 발길 닿는 대로, 풍류 한 자락, 그리운 봄날’이다. 그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약간은 남겨 놓고/ 채울 줄을 알아야지// 살아가며 더러는/ 비울 줄도 알아야지// 채운 것/ 다 비워주고/ 웃을 줄도 알아야지’「살아가며 더러는」이라는 시편이다. 그의 성품과 인생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떠한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확연하게 보여준다.
다음 작품을 보자.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개소주 가마 앞에
송아지만한 불독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아무도 접근 못하게
충실히 근무하고 있네
-「개소주집 앞에서」
매우 아이러니컬한 시조다. 단수로서 하나의 전범이 되고도 남는다. 상황 설정이 이채롭다. ‘개소주 가마 앞’에서 지키고 있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 개다. 무섭게 생긴 ‘불독’이다. ‘불독’은 알고 있을까. 가마 속에서 끓고 있는 것이 개의 몸뚱어리라는 것을. 기실 그것을 알고 모르고는 ‘불독’에게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다. 다만 ‘불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지키는 일만 잘 하면 그만이다.
‘불독’의 충실한 근무로 말미암아 아무도 접근할 수가 없다. 사람의 건강을 도와주는 개소주는 그렇게 해서 잘 달여지게 된다. 시인은 이와 같은 별난 정황을 눈여겨보고 밀도 높은 단시조 한 편을 낚아 올렸다.「개소주집 앞에서」는 창작에서 견자의 눈을 가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준다.
그는 또 동시조에도 관심을 가졌다.
덤성덤성 돌담은
다람쥐길로 내어주고
찌그러진 사립문도
열린 채 날이 새고
삽살이
별만 헤다가
그냥 한번 짖었단다
-「옛날에는」
동심이 듬뿍 묻어난다. 소박한 삶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린다. 자연 친화적인 삶이 본연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명예로운 퇴직 후 예술 활동에 더욱 몰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조 창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면 한다. 하나만 붙들고 앉아도 잘 해내지 못하는 이들도 적잖은데 하늘로부터 두 가지 천분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머잖아 두 번째 시조집 상재와 더불어 다시 한번 멋진 ‘찬솔 시서전’을 기다려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