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미/봉주연
맞은편으로 사람이 오자
우리는 한 줄을 만들었다.
강가에 흰 새가 잠들어 있다.
수풀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손목시계가 멈춰 있다.
올려 묶은 머리
네 윗목에 제비초리를 본다.
옛사람들에게 인형극은 덜미였대. 덜미가 잡힌 인형들, 천막 뒤에서 인형을 움직
이는 사람에겐 덜미가 전부였다. 관객들은 인형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 뒷목을 본
이는 영원히 천막 뒤에 감춰진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인형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마음을 둥글게 감아 정리하면서 서로에게 오래 감춰온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 사이에 무언가 달라져 있고 더 이상 서로의 앞에선 머리를
고쳐 묶지 않게 된다.
고백은 가슴 속이 아니라 뒷목에 담겨 있다.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사람들은 짧게 탄식했다.
저녁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듯.
수풀 속에서 계속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좋고
너는 꼭 벌레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고 무서워한다.
맞은편으로 사람이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걷는다.
녹슨 농구대 옆
전광판에는 시간도 표시된다.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가까워졌다.
<<봉주연 시인 약력>>
*1995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2023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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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미'는 목의 뒤쪽 부분으로 어깨의 바로 윗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목의 뒤쪽 부근을 목덜미라고 하고, 목덜미 아래의 어깻죽지 사이를 뒷덜미라고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덜미를 잡히면 힘을 못 쓰게 된다. 남사당놀이의 여섯째 놀이. ‘꼭두각시놀음’을 덜미라고 한다.
이 시에서 덜미란 꼭두각시놀음 또는 사람을 움직이는 우주법칙, 천리다.인생은 법칙, 천리, 숙명, 습관에 의한 꼭두각시놀음이다.그것을 깨달으면 진리가 있는 집으로 갈 수 있다
덜미/봉주연
맞은편으로 사람이 오자
우리는 한 줄을 만들었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우리는 그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 줄을 만든다.공적인 법칙을 묘사한다. 인간은 도덕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도덕적 법칙에 덜미를 잡혀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법칙이 있다)
강가에 흰 새가 잠들어 있다.
(어떤 새는 밤이되면 강가에서 잠을 잔다.새에게 강과 밤이 덜미다.시간의 덜미이다.자연의 법칙이다.)
수풀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는 수풀 속에서 운다.풀벌레에게는 수풀이 덜미이다. 자연의 법칙이다.)
손목시계가 멈춰 있다.
(밤에는 어두워서 시계가 안보인다.시간의 덜미이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몇시인지 모르므로 시간은 멈춘 것이다.)
(모든 게 서로에게 덜미라는 성찰을 하는 시간이어서 손목시계가 멈춰 있다)
올려 묶은 머리
네 윗목에 제비초리를 본다.
(긴 머리는 타인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준다는 덜미에 잡혀 올려 묶는다.머리를 올리면 윗목의 감춰져 있는 제비초리가 보인다)
옛사람들에게 인형극은 덜미였대. 덜미가 잡힌 인형들, 천막 뒤에서 인형을 움직
이는 사람에겐 덜미가 전부였다. 관객들은 인형의 얼굴을 보았지만 그 뒷목을 본
이는 영원히 천막 뒤에 감춰진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인형극을 덜미라고 한다.우리 인형들은 우주법칙이라는 덜미에 잡혀 있다.우리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것은 법칙이다.우리는 인형극의 인형일 뿐이다.덜미를 잡은 조물주가 움직이대로 움직이는 배우, 인형일 뿐이다.그 법칙은 이면에 가려져 있다)
인형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마음을 둥글게 감아 정리하면서 서로에게 오래 감춰온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 사이에 무언가 달라져 있고 더 이상 서로의 앞에선 머리를
고쳐 묶지 않게 된다.
(우주법칙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은 사람들은 오래 감춰온 이야기를 한다.우리는 꾹두각시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보편성이 확보된다. 나만의 비밀이 아니므로 감출 이유가 없다.머리를 고쳐묶는 겉치레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고백은 가슴 속이 아니라 뒷목에 담겨 있다.
(비밀은 우리 속 깊숙이 있는 곳이 아니라 법칙에 있다. 법칙이 고백을 해야하는 주체다)
(매우 통찰력이 있는 아포리즘이다)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 사람들은 짧게 탄식했다.
저녁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듯.
(깨달은 사람은 머리에 불이 켜지게 되는데 감탄사가 나올 수 밖에 없다.저녁은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시간인데 법칙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둠의 배후에 숨어 있는 법칙을 인식하게 된다)
(저녁과 가로등은 서로의 덜미다.저녁이 되어야 가로등이 켜진다.가로등이 있어야 어둡다는 저녁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인생 황혼에 이런 우주의 법칙을 깨닫게 된다)
수풀 속에서 계속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소리가 좋고
너는 꼭 벌레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고 무서워한다.
(개별적인 법칙에 대해 묘사한다. 나에게는 나에게 습관이 된 법칙이 있고 너에게는 너에게 특화된 법칙이 있다)
맞은편으로 사람이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걷는다.
(이제 맞른편에서 오는 사람이 지나가게 되면 다시 나란히 걷는다.이것이 일반적 원리다)
녹슨 농구대 옆
전광판에는 시간도 표시된다.
(오래된 농구대는 녹이 스는 것이 법칙이다.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시간의 덜미를 아는 사람이다)
(깨달음이 지나면 이제 모든 게 놀이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보게 된다.그만큼 여유있게 한 걸음 떨어져 세상을 보게 된다. 현실은 녹슨 세계처럼 불완전하고 변해간다. 성찰이 끝나면 이제 현실의 시간이 다시 흘러간다)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가까워졌다.
(공적인 덜미고 있고 사적인 덜미도 있다. 우리를 같이 움지기게 하는 법칙의 시간이 끝나고 각자 움직이게 하는 법칙의 시간이 가까워온다)
(인간은 각자의 덜미가 있으므로 공적인 덜미의 시간이 끝나면 개별적 덜미의 시간을 가진다)
(덜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집으로 가는 것이다.집은 우리가 온 곳, 가장 편안한 곳 그러므로 진리가 있는 곳이다)